- 주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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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두시, 잠을 깼다.
나와 앉으니 거실밖 낮은 동녁에 초승달이 걸려있다.
며칠째 미루던 절을 한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하던 절이지만 오늘은 왠지 어색하지 않다
어둠을, 혼자있는 시간을 느끼며 한배 한배 쌓아간다
어느 순간 절로 절로 절이 되고 있다. 하~
삶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맘 먹은대로 절로절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갈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엎어지고, 고꾸라지고, 진흙탕에 뒹굴다가 빠져나오고, 또 빠지고의 연속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어느때엔가는 그 곳에 다다르리라는 것도 안다.
기운이 차고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절하는 것에만 열중하려 하지만 온갖 생각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다.
해야할 일도, 잊고 있었던 일도 떠오른다.
생각의 줄기가 이리저리 흐르는 것을 본다.
생각이 드나드는 것을 바라본다. 절은 참 오묘하구나.
절을 하듯,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
매일, 매순간에 긍정을 선택하면서, 절을 하듯, 그렇게 낮은 자세로 묵묵히 살아가고 싶다.
이런 날이 무수히 쌓이다보면 어느땐가는 변화의 모습이 보여질 테지.
아~ 또 욕심이 난다.
욕심도 말고, 조바심도 말고, 그저 무심한 마음으로 찬찬히 가자.
내 인생, 율려에 따라 그렇게 자연스레 흘러흘러 가자
D-2 2012년 1월7일(토요일)
둘째 보배님, 연우양의 돌잔치가 있었다. 가까운 친지분들과 신랑 직장부서원들 그리고 가족이라 할만한 지인들만을 초대한 아주 조촐한 자리였다. 오늘의 이자리를 준비하면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랑 겹쳐져서 에너지 파이 관리가 되지 않아 다해 놓은 것을 빠뜨리기도 했고 잘못 오더가 되기도 해서 시간은 시간대로 들이고 결과물은 결과물대로 제대로 나오지 않아 마음이 어찌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잠깐 토막잠자고난 연우양이 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방긋방긋 웃어주어서 그 모든 부족함과 아쉬움을 일시에 해소해주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순간이다. 아직도 그 번복된 결정으로 틀어진 관계때문에 내내 마음한켠을 찌르는 고통이 있기는 했지만 잔치가 진행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몇달만에도, 몇년만에도, 얼마전에도 본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새롭고 또 반갑다. 좀 더 잘 살아야겠다.
뭔가에 꽂히면 신중해지지 않고 마음이 앞서서 훅 가버리는 것, 그리고 뭔가에 홀리면 그것에 집착해서 그 이외의 일들을 놓치게 되어버리는 것...꼭 고쳐져야 할 패턴이다. 아직도 20대의 그것을 고수해서는 안될 일이다. 도전은 하되 무모해서는 안된다. 열정과 무모함을 혼돈하지 말자. 몰입은 몰입대로 하되 일상과의 조화점을 잘 유지해나가야 한다. 일상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오르막을 오르던 내리막을 가던 평상심을 유지해야한다.
지금 마음이 힘든 건 내 선택의 결과다. 좀 더 진중해지자. 오고가는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깊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런 힘듦도 또한 감사하다. 꼭 이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내려놓자.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듯 꼭 이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돌아보게 된 나, 내가 애써 무시하려 했던 중요한 문제들, 두루두루 잘 살펴가야 한다.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