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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7일 07시 42분 등록

<꼭지15.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다>

4개월 계약직 직원인 나에게 직장생활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편도 티켓만 끊어서 제주도로 내려 간 친구가 큰 자극제가 되었다. 덕분에 4개월 계약직 임에도 용감하게 과장님에게 회사 메신저로 용감하게 물어본다.

과장님~~”

.”

저 휴가 써도 될까요??”

휴가? 뭐 딱히 정해진 날짜는 없지만, 우리 팀장님이 그런 면에서 막히신 분은 아니니까.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정말요???”

일단 지나가는 말로 휴가 써도 되냐고 한번 운을 띄워봐요. 그럼 가타부타 말씀을 해 주실 거에요.”

 

이렇게 과장님의 긍정적인 반응을 듣자마자, 지난 여름에 먼 나라 이탈리아를 다녀온 덕분에 마일리지가 꽤 쌓여 있는 항공사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한다. 그리고 보너스 항공권 중에 예매 가능한 날짜를 확인한다. 당초에 예상했던 날짜는 2주 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3일간의 일정이었지만,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원하는 시간대에 티켓은 이미 매진이다. 그래서 일정을 조정해 토요일 점심 때에 김포공항에서 출발 해 월요일 저녁 늦은 시간에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일정으로 예약을 한다. 제주 왕복 항공권인데도 공항 이용료와 유류할증비를 포함해서 3만원 안팍의 금액만을 결제하니, 저렴하게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하다. 제주행 나를 자극한 친구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하루 숙박료는 1만원대이다. 그러니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맛있는 것도 안 사먹고, 그저 게스트 하우스에서 먹고 자며 그 주변만 버스로 돌아다니거나 걸어 다니면 23일간의 제주 여행은 10만원 내외의 여행 경비로 충분히 즐기고 올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 비행기표도 예약했으니,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월요일 휴가에 대한 허락을 팀장님으로부터 득하는 것만 남았다. 무척이나 설레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가서 앞으로 남은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주일 후인 여행 중에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시뮬레이션 하면서 즐거운 저녁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하면서 팀장님에게 언제 은근슬쩍 물어볼지 고민을 한다. 자리도 떨어져 있어서 팀장님이랑 부딪힐 기회가 거의 없어서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팀장님 기분이 좋을 때 물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출근해서 오전 시간은 이런저런 고민과 요기조기 눈치만 보다가 어느 새 점심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점심을 먹고, 책도 조금 본 이후에 다시 근무시간이 된다. 팀장님께 이야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중에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크게 울린다.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홈페이지에서 확인 하세요

 

, 잠시 잊고 있었다. 4개월 계약직으로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지금 회사. 기왕 일을 할거면 월급이라도 많이 받으면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마 전에 회사의 신입사원 공채로 지원을 했다. 오늘이 바로 합격자 발표날이었던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주민번호를 적고 입력버튼을 누른다.

 

죄송합니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아쉽게도 남은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국ㅇㅇㅇㅇ공사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귀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 이런 화면을 보는 순간에 드는 허탈한 마음을 도대체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감사하긴 개뿔.’ 도대체 나 같은 인재를 알아보는 눈도 없으면서 정말 미안하긴 한거냐며.

그래 니네가 얼마나 잘 되나 보자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도대체, 내가 왜? 어디가 모자라서?? 왜 떨어뜨린거야??”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메신저에 접속 해 있는 과장님에게 이 슬픈 소식을 알린다

.

과장님~~~~ 저 이번 신입사원 공채 불합격이래요.ㅜㅜ..”

, 벌써 발표 났어요?? 이런.. 아쉽네. 미나씨는 어딜 가나 잘 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으니, 넘 상심하지마. 우리회사보다 괜찮은데 훨씬 많아. 미나씨 데려가는 데는 정말 복 받는 거라고.”

그죠? 고마워요 과장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위로가 되네요.. 근데 왜 떨어 진 걸까요? 영어 점수가 문제인가?? 사실, 영어 점수가 좀 많이 낮긴 해요.”

 

사실 말도 안되는 영어 점수이긴 하지만, ‘지금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실전을 쌓고 있다는 내게는 커다란 장점으로 부각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영어 점수는 비록 낮지만, 그래도 서류는 합격시켜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던 거였다.

 

영어 점수가 좀 중요하긴 하지. 그거 다 죽은 영어인데 말이야.”

 

얼마 전, 차장님, 과장님과 식사를 하면서 회사의 영어점수 커트라인을 들었는데, 토익 990점 만점에 900점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한참 못 미치는 점수지만, 지금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서류는 합격시켜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입사원서를 냈다. 하지만 역시나불합격이다.

 

…….. 갑자기나 지금 제주도 여행 갈 때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번뜻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내 손은 어느 새 인터넷 창을 켜, 가까운 날짜의 토익시험일정을 검색하고 있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신의 장난인가.’ 예약해 둔 제주도 여행 23일 중에 중간 날인 18일이 바로 이번 달 토익 시험날이다. 일단 집 앞에 있는 중학교에서 시험을 보겠다고 접수를 했다. 그리고 아직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으니, 여행에 대한 일정은 다시 고민 해 보기로 했다.

 

이틀간 제주 여행과 토익 시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괜찮은 방법을 찾아냈다. 토익 시험 장소를 제주도에 있는 학교로 변경하는 것이다!!! ‘, 난 역시 잔머리의 천재다!!!’라고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하지만, 그 대견함도 잠시.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 월급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내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월급날에 맞춰 빠져나가야 할 돈들, 카드요금, 핸드폰과 각종 통신요금 그리고 학자금대출 등을 결제했더니 통장에 남은 잔고가 예상했던 제주도 여행 경비보다 훨씬 적은 돈이 남았다. 삐까번쩍한 제주도의 해변이 보이는 호텔에서 묵으려 했던 것도 아니고, 평소에는 꿈만 꾸고 있던 외제차를 렌트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이 내 몸하나 편히 눕힐 수 있는 침대 한 칸 있을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머물러있으려고 했던 것 뿐이다. 그저 편하게 좋은 곳에서 서울과 다른 경관을 보고,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내 욕심이 과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 순간도, 이런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이 너무 싫다. 내 통장엔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돈으로는 내가 결제 할 수 있는 비행기 값 정도의 돈이 남아있었다. 이 돈을 여행경비로 고스란히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월급날까지 아주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어느 한쪽도 마음에 드는 선택은 없다. 내 앞에 놓은 선택권 모두 우울하고 찌질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면 내가 대학생인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흔히들 대학교 다닐 때는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못한다고 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학생 때보다 여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의 여유는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적 여유까지 포함한다. 심적인 여유를 위해서 경제적인 여유를 침해 받더라도, 감행하기로 했던 이번 여행에 대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당분간 여행은 기약없이 미루기로 했다.

 

내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태리에 다시 가리라. 마음을 먹고는 있다. 그래서 토익 점수 따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게 다가 올 기회나 또 다른 상황에 대비해 현실에서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원하던 제주 여행을 이렇게 포기하고, 토익 시험을 치러 가는 길이다. 하지만 가면서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 하나.

 

, 지금 제대로 선택한 거 맞는 걸까??’

 

<저녁 내내 앉아서 고민하고, 수정을 했어야 하는데, 계속 현실을 외면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글은 하나 밖에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주신 댓글들 감사하고, 이후 글을 쓰거나 기존 글들을 수정할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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