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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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이 두 번째 출사표를 내고 비장한 각오로 힘겨운 위나라 공격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의 이야기다. 공명은 빨리 승패를 결정지으려 했으나 사마중달은 공명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며 지구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렇게 오장원에서 서로 대치해 있는 가운데 사자들이 자주 오고 갔는데 하루는 중달이 사자에게 물었다.
“공명은 하루 식사를 어떻게 하며 일 처리는 어떻게 하시오?” 사자가 대답했다.
“공명은 음식은 지나치게 적게 들고 일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일이 처리하십니다.”
중달이
말했다.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거로우니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소?
사자가
돌아오자 공명은 중달이 무슨 하는 말이 없던가 하고 물었다. 사자가 들은 그대로 전하자 공명이 말했다. “중달의 말이 맞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을 관측하던 태사관으로부터 장수성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중달은 공명이 드디어 죽었다고 믿고 공격을 개시한다. 그런데 자기가 죽으면 중달이 공격해올 것을 예견한 공명은 만일 중달이 쳐들어오거든 자신의 등신 인형을 만들어
수레에 싣고 나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 넷이었다. 학창의를 입고 손에는 학우선을 들고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공명을 본 중달은 공명의 계략에 속은 것이라
여기고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죽은 공명이 살아 있는 중달을 쫓은 것이다.
삼국지에서 사마중달이 제갈공명을 두고 한 말 ‘식소사번(食少事煩)’의 유래다. 당신은 이 고사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나는 일중독자의 참담한 최후가 보인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분주히 일하다 결국 단명하고 마는 일중독자 제갈공명. 그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사후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준비한다. 이 무슨 오지랖인가? 죽어가면서도 그는 얼마나 분주하고 고달팠을까. 공명은 그래도 그리 하지 않고는 편히 눈감지 못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오지랖 대마왕 제갈공명이 아닌가!
2011년 한 해를 마감하면서 되돌아 보니
내 오지랖 또한 제갈공명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속의 경보 벨을 울린 일은 대학동창 윤희의
결혼 소식이었다. 마흔 고개를 넘은 노처녀 윤희는 내년 2월, 내가 소개한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대학 시절 나와 함께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윤희는 졸업 후 잠깐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고 몇 년 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하더니 결국 합격했다. 이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발레를 취미로 하며 인생을 즐기는 멋쟁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녀는 결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것이 안타까워 작년 봄 친구 영선이의 남편 친구와 만나도록 연결해주고
잊고 있었는데 이른 아침 그녀의 결혼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그녀의 문자를 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반가움보다는 잘 살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었다. 중매를 세 번하면 천당 간다는 말이 있다. 두 번째 중매가 성공했으니 천당에 더욱 가까워졌을 텐데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이유는 내가 중매한 첫 번째 커플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미선이는 그야말로 발랄하고 발칙한 소녀였다. 고교시절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영화 ‘프리티 우먼’을 보러 가기 위해
엄마 옷과 구두, 붉은 립스틱을 챙겨 학교에 온 미선이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정말 신나는 인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입시 낙방을 시작으로 그녀의 인생에는 이런저런 실패의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고
서른이 다 되어 갈 무렵 만난 그녀는 눈가의 자글자글한 주름만큼이나 지쳐 보였다. 그때 내가 여동생의
대학 선배를 그녀에게 소개해주었고 그녀는 그렇게 그와 순식간에 결혼했다. 결혼 후 그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 어귀에서 살았다. 가끔 그녀의 집에 가보면 꼬질꼬질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과 그녀 얼굴의
거뭇거뭇한 기미가 그녀를 더 지쳐 보이게 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던가? 중매한 커플의 결혼이 끝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잘 살고 있을지 때때로 걱정이 되었다. ‘이건 친정엄마의 마음인데’ 내 오지랖이 태평양을 덮고 우주로 뻗어 나간다. 중매했으니 좋은
옷 맞추어 입으라고 그녀의 결혼식 전에 받은 돈봉투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져 걱정의 무게 또한 늘어갔다. 얼마
전 집 근처 할인점 입구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눈가의 주름과 그 주름 아래 기미는 더 늘어나 있었고
마흔을 앞둔 그녀는 이미 마흔 고개를 한 참은 넘어가 있는 듯 했다. 아이를 낳은 후 산후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는 그녀는 더 이상 발랄하고 발칙한 소녀가 아니었다.
윤희의 문자를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또 하나의 업보를
만들었구나. 이제 딸 둘을 시집 보낸 친정엄마의 마음이겠구나.’ 남편은
말한다. ‘중매자가 할 일은 둘을 만나게 해주는 일까지다. 잘
살고 못 살고는 그 둘의 문제다.’ 그렇다. 머리로 생각하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가슴은 그렇지 않은데 어쩌겠는가? 진정
오지랖 대마왕 제갈공명의 피가 내게 흐르는 것인가?
오지랖의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 보았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옷을 다 감싸버릴 수 있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라면 나는 오지랖 주의보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 나는 즉각 솔루션 위원회를 소집한다. 그가 필요한 것이 위로인지 해결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연결해 주고 진행상황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심지어 어줍잖은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조언이란 상대와의 감정적 거리가 충분히 가깝지 않으면 비난으로 들릴 수 있음을 나 또한 경험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여간 피곤하지 않다. 죽은 후의 일까지 예견하고 준비하는 제갈공명의 후예이니 들은 이야기를 그냥 넘기기 힘들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러한 태도가 나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혹자는 이런 오지랖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라 말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면도 있다. 내 오지랖으로 자신의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한 지인도 여럿이기
때문이다. 쌍둥이 엄마는 난생처음 코칭을 받아보았고 그녀의 딸은 좋은 상담선생님을 만나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다. 전 직장 동료 경숙이와 그녀의 남편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 하지만 당신의 오지랖이 당신에게 심리적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당신이 나와 비슷한 류의 사람이라면 삼사일언(三思一言)이란 말을 마음에 새겨보길 권한다. 오지랖이란 결국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를 내 뱉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 당신이 내 뱉은 말이 당신의 몸과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