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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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생전 처음 세상을 본다는 듯 막대사탕을 핥으며 맛을 음미하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집 밖을 거의 나와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창 밖 세상은 어릴 적 엄마의 손에 이끌려 누군가를 피해 달아나던 순간의 목이 막힐 듯 가쁜 숨소리와 기분나쁘고 질척한 땀으로 기억되었을 뿐이니.
그가 가지고 있던 형체없이 거대한 두려움을 여기에서 세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어떤 형태로든 우리 모두가 다른 이름으로 지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여태껏 자신을 집 밖으로 이끌어 줄 그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 왔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씩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했고, 어느덧 늘어가는 주름살과 함께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리는 인생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런데 한걸음 문 밖으로 나서고 나니 아, 세상은 온통 유혹이었다. 땡땡이 벽화가 말을 걸었다. 꽃돼지가 은은한 미소를 날렸다. 텅 빈 미끄럼틀이 다시 돌아올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나지막하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바로 오늘이 시작하기 좋은 날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어느 오후였다. 잔뜩 보풀이 인 군청색의 니트와 색바랜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한 남자는 그렇게 고장난 시계 바늘처럼 한참을 멈춰 서 있다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하나의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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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작이 코마자와 공원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가깝기 때문입니다. 항상 거창한 꿈만 꾸다가 시작은 자꾸 뒤로 미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시작의 장소는 언제든지 쉽게 떠날 수 있는, 가까운 곳이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나가네요. 혹시 당신도 저처럼 떠나가는 한 해가 아쉽게 느껴지신다면, 오늘이라도 동네 공원을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돌멩이같이 단단한 결심으로 길을 나서보세요. 늘 그렇듯이 오늘은, 참 시작하기 좋은 날입니다.
P.S. 안녕하세요. 3기 연구원 김도윤입니다. 저는 “Round Round Tokyo Round”란 제목으로, 도쿄와 그 주변의 이미지들과 함께 떠오른 짧은 이야기와 변화에 대한 단상을 담아 매주 수요일의 이미지 에세이를 전해 드리려 합니다. 혹시라도 원본(이미지+글)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PDF 파일(1-1.pdf)을 참조하세요.
그럼, 올 한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