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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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예술은 곧 변모의 경험이다.
-조지프 캠벨-
사진이 표현하는 세 가지 세계사진은 우리를 지상에서 초월로 나아가게 해주는 수단이다. 왜냐하면 사진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지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담겨 있으며, 때론 이 세상을 넘어서는 세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진이 표현하는 이 세 가지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진이 '보이는 것을 담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카메라 렌즈의 눈으로 본 사물과 세상의 모습을 필름이나 이미지센서에 그대로 기록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다'는 것은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을 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 미술이 어려워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던 미술이 점점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게 된 것을 떠올리면 이해 할만 하다. 그나마 현대인들이 가장 친근해 하는 마네, 모네,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 덕분에 이미지에도 느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사진이 이 세상을 넘어서는 세계를 가리킨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쉽게 생각하자. 일단 사진을 예술의 수단이라고 믿고, 예술이라는게 원래 이 답답한 세상을 넘어서려는 것이라고 이해해보자. 예술이 우리 삶에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믿어보자. 자신 있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었다. 나와 아내는 난생 처음으로 한국사회의 중력을 뚫고 다른 사회를 경험했다.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인도에서 일 년여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때 우리에겐 완전 자동인 똑딱이 필름 카메라가 있었다. 줌이나 조리개 조절 등 그 어떤 기능도 없는 그냥 누르면 찍히는 장난감 같은 카메라였다. 그 오래된 카메라를 통해 내 인생에 가장 강렬했던 순간들이 담겼다. 인도 시골의 요가대학에서부터 남인도의 여행길에 만난 풍광과 사람들. 인도 국립공원의 호수와 숲. 그리고 오로빌 공동체에서의 생활 등이 그것이다. 여행 끝에 우린 다시 한국 사회에 편입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살아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깨달음은 삶 속에 있으니 피하지 말고 부딪히자는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국에 돌아와 부모님 댁에 잠시 들어가 직장을 구하며 살던 때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굳게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던 시기였다. 좁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아 있으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인도에서 찍은 사진을 다 펼쳐놓고 들여다보았다. 뭔가 이 사진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가위를 들고 사진들을 자그마한 사각형으로 잘랐다. 그리고 신들린 듯이 검은 종이 위에 마음 속 에 떠오른 형상대로 그 조각들을 붙였다. 그것은 내 마음 속 '우주'의 모습이었다. 완성을 한 후 한 쪽 구석에 이렇게 썼다.
<우주>
Life is change.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2005.5
<이 사진 꼴라쥬를 완성한 후 몇 년 뒤에 아내는 생일선물로 액자를 해주었다.>
이 사진 꼴라쥬 한 장은 그때의 막막함 속에 빠져있던 나를 구원했다. 형상의 한 가운데에는 인도 여행의 막바지에 만들었던 빨간색 옷을 입힌 인형의 사진이 있다. 인형 만들기 워크샵에 참가해 만든 발도로프 인형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는 듯 했다. 전체 형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한한 힘이 느껴졌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내 인생이 전체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혼돈 속에 빠져 있던 난 내 안의 질서를 느낄 수 있었고 편안해졌다. 이것이 내가 사진(예술)이 내 삶에 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사건이다.
생활사진가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
그 뒤로 많은 나이였지만 운 좋게 지방 공기업 취업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배우고 있던 친구에게 부탁해 중고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아이를 포함한 내 일상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년 넘게 일상을 찍고 인화하고, 사진벽과 액자를 꾸미고 사진책도 만들면서 사진은 나의 가장 좋은 취미가 되었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사진을 즐기는 사람, 곧 '생활사진가'가 된 것이다.
이제 사진은 우리의 삶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예술 도구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돌 사진부터 시작해서 기념할 만한 삶의 순간들을 사진 이미지로 붙잡아 놓았다. 그러다 이제는 디지털 사진기의 보급으로 특별한 순간 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만큼 사진은 우리와 친근해졌으며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게다가 사진 속에는 참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진 잘 찍는 법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기술적인 방법을 배워 눈길을 끄는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것도 사진을 즐기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지만, 정작 더 기본이 되는 '잘 찍은 사진이 무엇인지,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부족하다.
생활사진가가 사진을 즐기는 목적이 뭘까? 일상을 예술로 살기위해서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사진가에게도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철학의 벽이 너무 두텁고, 전문가의 말은 독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풀 방법은 생활사진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삶의 변화를 체험해 보아야 한다. 예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듯이 말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큰 변화가 있기 전에는 언제나 대중의 언어로 새로운 글쓰기를 하던 문필가들이 나타났다. 어려운 말과 미사어구로 장식된 형식적인 글만이 판을 치다가 보통 사람들이 명료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단테가 그렇고, 신성로마제국의 괴테가 그랬다. 프랑스에는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가 있었고, 중국엔 <아Q정전>의 루쉰이 있었다. 유명한 토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혁명을 글쓰기로 준비했던 사람들이다. 넘겨 집자면 현대의 한국에는 미술엔 조영남, 정치엔 김어준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정재승, 신학과 철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김용규 등 각 분야에서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우리 사회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시대가 쉬운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다. 커다란 변화를 품고 있는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또한 이 시대적 요청에 몸을 던지고 싶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떠들어 대고 싶은 것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더 좋은 조건이다. 더 자유로울 수 있고, 학문적 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학문적으로 비판받으면 난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내가 신경써야할 부분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냐 없는냐 또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냐'이다.
김어준이 말했듯이 정치는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에 정치엔 관심조차 가지기 싫다는 사람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대중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일부러 정치 무관심을 조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정치를 대중들이 일상적 언어로 이야기하고 소통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술도 똑같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게로 예술에 관심이 없는 당신은 속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지상에서 초월로 나가게 해주는 수단인 예술에 대해 대중들이 일상적 언어로 이야기하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시대가 혁명의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창하지만 생활사진가가 직접 사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한다. 일년 동안 사진을 가지고 글을 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진을 매개로 글을 쓸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잡아내서, 사진이 표현하는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와 설명 형식으로 풀어 볼 것이다. 그 여정을 함께 가다보면 우린 예술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