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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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지금은 오후 세시. 무엇을 시작하기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도 아쉬운 시간이다. 모처럼의 휴일을 이렇게 잠으로 보낸뒤의 허탈함은 담배연기로도 다정한 연인의 안부 전화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다정한 연인이 있다거나 담배를 멋들어지게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늘 결핍은 갈망을 부르기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더 늘어져 있다가는 정말로 휴일을 통째로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기지개를 활짝 켜고 따뜻한 이불자리에서 일어난다. 왠지 겨울잠을 대신할 따뜻한 차 한잔이 마시고 싶다. 향기는 아름다우나 차맛의 깊이와 색의 아름다움은 약하다고하는 얼글레이 티백을 꺼내든다. 그래도 왠지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해주는 그 차가 나는 좋다. 차 향기만으로도 세계일주를 하는 기분은 얼글레이와 친해져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찻물을 담은주전자를 불 위에 올리고서 어제 읽다가 만 책을 다시 집어든다. <콜럼버스는 담배를 좋아했을까> 권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즘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내게 위안이 될 것 같아서 읽고 있다. 담배 대신 난 차 한모금을 마신다. 눈 내리는 풍경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을 펴니 어제 잠들기전에 읽었던 페이지에 줄이 쳐져 있다. 어젯밤 위안이 되었었나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색연필로 밑줄치는 습관이 있다. 푸른색. 가슴에 남기고 푸른 새벽 노트에도 옮길만한 좋은 문장이라는 나만의 약속이다.
문제를 뒤로 미루면
문제는 계속 자라난다
나도 모르게 나의 고민과 문제는 계속 자라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모험을 결심했지만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신대륙을 향해 떠나기를 결심했던 콜럼버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결코 권태로움에 쌓여서 담배를 물고 있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 문제는 끝도없이 자라고 있다. 미루는 것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이다. 잠시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소리도 없이 자유롭게 지상에 낙하하는 그 여유있는 모습에서 고요한 여여를 본다.
문득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특별한 계획없이 그냥 떠나보자며 나섰던 길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난다. 우연히 시골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계획에도 없던 개암사를 들리게 된 것이다. 그날도 눈이 내렸다. 정말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있는 눈이 모두 내리는 것같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행운이였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정지된 듯이 소복히 쌓인다. 난 그런데 그 때 그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죽음'을 떠올렸던 것 같다. '죽음'의 정적과도 닮았었기 때문일까. 권태의 끝자락 그리고 무기력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움과 고요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숨소리가 크게 느껴질만큼 고요한 정적이였다. 온 우주가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풍경사진처럼 마음에 남는다. 그 여행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그 떠남 자체에 있었다. 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행운도 아무 계획 없었지만 나서기로 했던 나의 결심 하나 때문이지 않았겠는가. 다시 꺼내보는 그 장면은 또 다시 새로움으로 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무거운 죽음을 내포한 질식할 것 같은 아름다움이라니, 마음 속에 자리한 비밀의 화원치고는 상당히 버겁기는 하다.
누구나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해주고 싶지 않은 비밀의 화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권태로움과 무기력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 난 그곳을 찾아가길 바래본다. 나 역시 효과가 있었으니까. 나의 경우는 권태로움과 무기력도 비밀의 화원을 열면 눈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정지된 시간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풍경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경험이다. 그 비밀의 화원을 열고 들어서면 눈이 덮인 사찰이 나오고 그 사찰 안마당에는 사진집이 하나 펼쳐져있다. 언젠가 서점에서 우연히 보았던 죽은 사람들만을 찍은 사진집이다. 왠지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그 사진집 속의 사진들처럼 그렇게 고요한 여여를 닮았기 때문이려나. 문득 죽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에게 죽음은 눈송이처럼 가볍지 않다. 한없이 무겁고 깊다. 그 깃털보다도 가벼운 눈송이 하나하나의 권태로움이 쌓여서 질식시킬것만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존재하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유영하듯이 그 노래 소리를 따라서 가보니 눈 쌓인 벌판 위에 책상 하나만 덩그러이 놓여져 있다. 그 위에 향수병같은 유리병이 하나 놓여져 있다. 그 유리병을 열자 그 벌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시가 떠오른다.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칠흙처럼 까만 어둠이 내린 밤바다를 본 사람은 안다.
흰 파도가 드러나야만 그 곳에 '쏴아 쏴아' 바다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언제든 상대성의 세계에서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드러내준다.
빛을 선택하던 어둠을 선택하던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된 것이다.
빛과 어둠 그 모두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 때 그 풍광과 하나되어 버리리
그 때 멀리서 하얀 눈코끼리가 다가온다. 코끼리는 언뜻 보아도 5층건물만한 크기였는데 그 걸음이 하나도 무거워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점보 코끼리 마냥 저 귀로 날아다닐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어느 덧 내 앞에까지 다가온 코끼리가 눈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중력이 사라지면 언어도 필요없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마음으로 대화했다. 보아하니 자신의 등에 타라는 것 같았다. 나는 코끼리의 코를 지지대로 삼아 그 큰 등 위로 올라탄다. 이것이 빛으로 향하는 길인지 어둠으로 향하는 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매순간의 선택 속에서 그리고 움직임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고요한 정적 속 하얀 벌판을 뒤로하고서 일단 눈코끼리가 이끄는대로 가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