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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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회사와 집의 중간지점. 나는 이곳 카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지난 11월 말, 2011년의 한해 실적을 정리한다, 2012년 계획을 짠다 정신 없던 때였다. 전철역을 나서 종종걸음을 치던 때, 낮동안에 오다 그친 줄 알았던 비가 다시 쏟아졌다. 비를 피해 찾아 들어간 가게, 그곳이 지금의 이 카페다. 주인이 빌려준 우산을 돌려주려 다음날 퇴근길에 다시 들르면서 나는 이 카페의 주인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카페 주인장은 카페를 경영하며 직장인 여성을 위한 진로상담을 한다. 주인은 회사와 가정에서 양쪽 모두에서 다 잘해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달리다가 힘겨워 하던 나에게 삶의 균형을 찾을 여유를 주었다. 어릴적 뒷산의 상수리나무를 닮은 화분이 놓인 자리에 앉는다. 무성한 나뭇잎이 어깨에 닿는다. 잎사귀를 쓰다듬어 풋풋함을 손에 묻힌다. 회사와 집의 중간지대, 두 곳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공간의 거리감이 나 자신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나무그늘에 숨어 앉아 숨을 천천히 깊게 쉬어 본다.
찻잔을 잡은 손에 따뜻함이, 연이어 손이 있음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 동안 내 눈앞에 계속 있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손이다. 이런 나를 수첩에 기록한다. 위쪽 엊그제 기록한 2012년 올해 하고 싶은 일이 눈으로 들어온다. 그 목록들을 보고 수첩의 앞쪽에 적당한 날을 골라 기록한다. 4월 1일, 둘째가 좋아하는 동물, 동물원 나들이. 5월 가족사진촬영. 사진촬영을 위한 자금마련, 매달적금 2만원 추가적립. 이번주내 통장 개설. 6월 15일, 남편생일, 회사창업기념일, 포럼개최, 진행자, .......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양재 꽃시장에 가봐야겠다. 집안에 싱그러움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상큼하고 달콤한 이 향이 오렌지, 오렌지자스민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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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꿈그림은 이선형씨가 2010년 6월에 들려준 꿈을 듣고 그린 그림의 새버전입니다.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카페를 연상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한 여성을 연상해 보았습니다. 직장인 여성을 위한 카페, 타인과의 소통보다는 자신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자신은 그곳에서 진로상담을 하고 싶다는 말에서 떠오른 것들입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앙상한 가지만이 찬 바람 속에 선 나무가 눈에 들어 옵니다. 고개를 조금 더 들면 파란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찹니다. 하늘이 찬건지, 머리가 시원한 것인지, 저는 점점 더 예민해집니다. 그럴 때 저는 초록이 몹시도 그리워 양재 꽃시장으로 초록을 먹으러 갑니다. 네모난 모니터, 네모난 책, 네모난 창문, 네모난 문, 네모난 건물에서 벗어나 작은 것들이 뒤섞여 만든 불규칙, 그 속에 가지런한 자연을 보고서야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꿈이란 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것들과 때로는 하나이다 싶을 만큼 가깝게 때로는 전체를 조망하듯 멀게 거리를 자유자재로조절할 수 있어야 더욱 또렷이 보이고,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힘도 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2년 올해 계획 세우셨나요? 화사의 스케줄이 곧 자신의 계획인 건 아니시죠? 아이의 1년간 일정이 본인의 1년 삶? 하면 재미있을 일을 몇 개 추가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