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미나
  • 조회 수 321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1월 23일 03시 33분 등록

3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세 번 읽기

1.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과 천복>

종교에서 천복은 죽어서 천국에 이르러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조셉 캠벨은 살면서도 천복을 누릴 수 있으며, 그것은 천복을 좇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한다.

 

<신화의 힘>에 나오는 식당에서의 에피소드는 조셉 캠벨이 가지고 있던 천복에 대한 생각을 잘 나타내준다. 조셉 캠벨의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가족 중, 어린 아들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며 계속 떼를 쓰고 있었고,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주면 안되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언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았다면 내가 이렇게 부유하게 살 수 없었을 걸.”

이 때, 조셉 캠벨의 이 말을 듣고 이 아버지란 사람은 살아서 절대로 천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조셉 캠벨이 이야기하는 천복을 찾기 위해 중요한 것은 마음의 소리’, 내면의 소리를 잘 듣고 그것을 따라 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삶이 곧 영웅의 삶이다.

 

천복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듯그렇게 나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미로를 어렵사리 통과하고 나면, 비로소 그것이 천복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로를 마주하는 그 순간에 미로에 들어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나, 미로에 들어선 이후에 답도 안 보이고, 길도 안 보이는 미로 속에서 계속 그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천복은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의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감내하는 사람들에게 비로소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미로로 들어서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미로에서는 누구에게나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각자에 맞는 실타래가 주어진다. 이 실타래가 과연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미로에서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천복을 찾아 나설 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 첫 째는 여백이다. 조간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은 여백이다. 이 여백으로 인해 다가올 경험들이 가능해지고, 창조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는 독서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음으로써 일정 수준에 이르면,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삶에서 삶에 대한 깨달음은 늘 다른 깨달음을 유발한다.

 

천복을 좇아 가다 보면, 당장 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시점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문은 계속 열리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천복을 좇을 때, 가장 큰 방해물은 과연 무엇일까?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는 나의 내면, 심연에 존재하고 있는 용이다. 이 용이란 과연 무엇인걸까? 천복을 좇는 데 있어, 나를 방해하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천복을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돈에 대한 나의 욕망이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면, ‘돈에 대한 나의 욕망이 바로 용인 것이다. 이 용은 그 누구도 대신 죽여줄 수 없다. 오로지 나만 죽일 수 있다.

 

이렇게 천복을 따르는 영웅의 여정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중심이 잡혀 흔들림이 덜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 여정은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된다.

 cambel.jpg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 유독 어렵게 읽혔다. 너무나도 많은 은유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신화와 인생> <신화의 힘>에서 조셉 캠벨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을 너무 막연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영웅의 여정이 더 어려웠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조셉 캠벨천복이란 단어를 검색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관련 글들을 보니, 오히려 더 이해가 잘 된다. 지금까지는 천복, 영웅, 영웅의 여정 등에 대해 별개로는 이해했는데 전체적인 연결고리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면, 솔직히 이제서야 그 관계들이 정리가 좀 된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조셉 캠벨을 떠올려 본다. 어린 시절 자연사 박물관에서 인디언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혹은 그 때의 그 만남을 그냥 지나쳐 버렸더라면, 조셉 캠벨은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내 인생에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난 인디언은 과연 무엇일까? 이미 찾았나? 혹은 아직 찾는 중일까? 그런데, 나는 이미 그 미로에 들어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미로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계속 나를 향한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참고 자료>

1)     http://www7.egloos.com/3009985

2)     미션 라이프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read.asp?page=1&gCode=all&arcid=0005538985&code=23111228

3)     천복을 찾아 나서는 여정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eoiebd&logNo=1201361783432

4)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ingknight77&logNo=70082900649&parentCategoryNo=72&viewDate=&currentPage=1&listtype=0

 

 

2.      내가 저자라면 내 책에 활용하기

- 프롤로그에서 각 장의 내용들을 간략하게 요약 및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 하나의 이야기를 영웅의 여정 각 단계에 맞추어서 잘라서 들려준다. 본문의 내용과 예시가 잘 맞아떨어짐으로써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 인용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읽고 한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 영웅의 여정을 닮아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내 책에 적용하기

::: 머리말 :::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진리의 상징적 분식을 피하고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 사건의 진상을 알게 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5

 

::: 프롤로그 :::

원질 신화

1 신화와 꿈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p33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은 가슴 안팎으로 이 미궁을 안고 있다는 이야긴데 아, 미노타우로스와 맞설 용기를 심어주는 미궁 탈출의 단서와, 괴물을 만나 도륙한 다음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이끌어줄 안내자, 저 아름다운 처녀 아리아드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신화, 아리아드네의 실, 미궁 탈출이야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 얼마나 하찮은 물건인가! 그러나 이나마 없으면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모험과 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p37

è  나의 희열을 따라서

 

그는 실타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아마를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들판에서 거두었다. 수세기에 걸친 경작, 수십 년에 걸친 채집, 수많은 가슴과 손의 힘겨운 작업…. 이 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마를 훑고, 간추리고 헝클어진 실무더기에서 실을 자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서는 이 모험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p39

è  <신화와 인생>당신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곳, 그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와 함께 인용하면 좋을 듯. 불안은 영혼을 잠식할까?

 

2 비극과 희극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p40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죽지는 않는다. 영혼은 여기저기를 방황하다 마음에 드는 뼈대를 취한다….. 따라서 한번 존재한 것은 다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되니, 모든 운행의 주기는 반복한다. p43

 

<회귀와 사회와의 재통합>은 정신 에너지가 세계로 흘러들어오는 연속적인 순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고, 영웅이 속한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영웅의 오랜 후퇴에 대한 변명이 되나, 영웅 자신에게는 가장 어려운 필요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웅이 부처처럼 승리를 거두고 완전한 정각 상태에 들어버린다면 이 경험의 만족감이 세상의 슬픔에 대한 그의 기억과 흥미와 희망을 없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을 잡힌 사람들에게 이 깨달음을 전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p51

 

보잘것없는 영웅이든, 탁월한 영웅이든, 그리스 영웅이든, 야만족의 영웅이든, 이방인의 영웅이든, 유태족의 영웅이든, 영웅의 행장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잣거리에 나도는 이야기는 영웅의 행위를 주로 물리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고급 종교에서는 영웅의 행적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p53

 

<이브의 복음>

나는 높은 산 위에 서서 거인과 난장이를 보았다. 천둥소리 같은 음성이 들려 나는 자세히 들으려고 다가갔다. 그 분은 나에게 이르셨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어디로 가건 나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없는 곳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 나를 찾는 것은 곧 너를 찾음이다.’

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 p55

 

4 세계의 배꼽

이 자리 밑에는, 심연의 물을 상징하는 용, 즉 우주적인 뱀의 머리가 있는데, 심연의 물은 생명을 창조하는 신적인 에너지이며, 불멸하는 존재의 세계 형성자인 데미우르고스다. p58

 

한 문화가 신화 안에서 인간 존재의 면면이나 그 문화의 면면을 키워나갈 때, 그 문화는 상징적인 암시와 함께 싱싱하게 살아난다. 산과 숲은 저마다 초자연적인 보호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러한 보호자들은 세계 창조에 관한 그곳 역사의 유명한 에피소드와 관련을 맺고 있다. p61

 

익살스러운 신 에드슈 이야기 p63

 

::: 1부 영웅의 모험 :::

1.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신화적 여행의 첫 단계(우리는 일를 <모험에의 소명>으로 불렀다),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영웅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모험을 완성할 수 있는데, 테세우스가 아버지의 도시 아테네에 도착하여, 미노타우로스의 놀라운 역사를 듣게 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영웅은, 노한 해신 포세이돈이 보낸 바람에 밀려 지중해로 밀려나간 오뒷세우스의 경우처럼, 호의적, 혹은 악의적인 세력에 의해 방랑해야 하는 수도 있다. 동화에 나오는 공주가 그랬듯이, 모험은 우연한 실수로 시작될 수도 있다. 혹 우연한 현상이 방랑자의 눈길을 사람의 내왕이 빈번한 길에서 엉뚱한 길로 돌려버림으로써, 모험 당사자는 무익한 방랑만을 일삼는 수도 있다. 세계를 구석구석 뒤지면 이런 예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p80

 

2 소명의 거부

부정적인 길을 따르는 영웅이나 여걸,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이 두 예화에서 운명 지워진 이 한 쌍의 결합을 완성시키는데 기적이 필요하다. 얼마를 기다려야 삶을 부정하는 마법을 깨울 힘이 생겨 두 아버지의 분노를 삭일 수 있게 될까? p92

 

3 초자연적인 조력

그런 조력자를 맞는 영웅은, 소명에 응답한 영웅일 경우가 보통이다. 실제로 소명은, 통과 제의의 사제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는 첫번째 통고다. 그러나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알라 신뿐>이라는 말에서 보았듯이, 영혼을 닫은 자들에게도 초자연적인 안내자가 오는 예가 있다. p101

 

자기 생활권이라는 벽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영웅은 반드시 이런 괴물(몹시 위험하면서도 때로는 마법의 권능을 베푸는)과 만나야 한다. p112

 

5 고래의 배

 

2. 입문

1 시련의 길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웅은 거듭나는 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액막이), 그리고 이 영역에 이르기 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p129

 

2 여신과의 만남

여신은 그를 유혹하고, 인도하고, 그의 발목에 채인 족쇄를 깨뜨리게 한다. 그리고 만일 영웅의 능력이 여신에 미치면 이 양자, 즉 아는 존재와 알려지는 존재는 갖가지 제약에서 해방된다.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열등한 눈으로 보면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p156

 

에오카이드 왕의 다섯 아들 이야기

처음에는 그대 역시 이 몸을 추악하고, 야비하고 욕지기가 나는 노파로 보았다가, 이윽고 아름다움을 보셨습니다. 왕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

왕도가 그렇다니? 아니, 인생이 그렇다는 뜻이다. p156

 

3 유혹자로서의 여성

삶의 상황을 수습하는 데 대한 실패는 결국 의식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수밖에 없다. 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한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세계 도처에 널린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모험은 일반적인 양식으로, 어떤 계층에 속하는 사람에게든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여기에 광의의 술어로 공식화시켜 본 것이다. 우리는 이 일반적인 유형과의 비교에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밝혀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제약의 벽을 허물어 뜨리는 데 필요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도깨비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깨비들이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의 예외 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p160

 

자기의 시체 같은 육신을 조금이라도 의식하면 그는 이제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생, , 사뿐만 아니라 자기 적들로부터도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을 순수한 존재, 선의 정수, 부동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진다…… 원래 타성적이고 추악한 존재인 이 육체의 모든 제약을 떨쳐버리라! 육체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한번 속에서 토한 것을(그대 육체를 토해내듯) 다시 생각하면 혐오감만 더해지느니. p162

 

약속의 땅으로 갈 때 거쳐야 하는 광야에서 불길 같은 비사가 득시글거린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아직까지 우리 앞길을 막고 우리 기를 완전히 꺾을 수 있는 놈은 없었다. 천국에 이르는 길에는 사자의 소굴과 표범의 산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끔찍한 마귀떼도 있다….. 우리는, 마귀의 무대이며 마귀의 목표이기도 한 이 땅, 시온을 향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가 도둑무리와 은거하고 있는 이 땅의 초라한 나그네다. p166

 

4 아버지와의 화해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순간에도 밤은 이미 서쪽 해안에서 제 목적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이 보이고 있지 않느냐? 보아라, 날이 밝아오고 있다. 아들아, 네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행운이 네 길을 인도하게 하여라. , 이제 고삐를 잡아라. p176

 

포이보스의 마차를 타고 가던 파에톤 여기 잠들다.

비록 실패했으되, 그 용기는 아주 가상하지 않은가. p177

è  불안에 쫄지 않기

 

그러자 노인들이 각각 돌칼을 손에 들고 앞으로 나섰다. 두 소년에게 다가간 그들은 소년들의 동맥을 따버렸다. 잘린 동맥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고, 다른 사내들은 모두 소리를 질러냈다. 두 소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늙은 주술사는 돌칼을 그 피에 담갔다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입속에다 차례로 갖다 대었다……. 사람들은 이 의식의 희생자들의 시체를 요리했다. 의식에 다섯 차례 참석했던 사람은 모두 고기 한 덩어리씩 먹었다. 이러한 광경을 구경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았다. p183

 

힌두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만물 속에 숨어 있어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하지 않으나, 뛰어난 지력을 가진 명민한 자의 눈에는 보인다. p191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그가 속한 세계와 함께)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p192

 

5 신격화

부처 자신처럼, 이 신과 같은 존재는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 무지의 공포를 초월하고 획득하는 신적인 상태 divine state의 한 본보기다.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이며, 영웅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만물에는 불성이 있으니>, (같은 말을 달리 하자면) <일체의 존재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p197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하지 않을 것

<신은 각기 다른 신도, 시대, 국가에 맞추느라고 서로 다른 종교를 만들었다. 그 교리에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 그러나 길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심 전력으로 어느 길이든 따라가면 누구든 신에 이를 수 있다…… 얼음 과자를 가로로 먹든 모로 먹든 무슨 상관인가! 어떻게 먹든 달콤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p208

 

육계 미망의 도시 가운데

으뜸가는 소인은 악업에서 나온 죄악과 우매함이다.

여기서 중생은 좋고 싫음에 의지하니, 언제 이 좋고 싫음이 다르지 않음을 알 틈이 없다.

오호라, 좋고 싫음의 무상함이여.

만상이 본래 비었음을 알면,

그대 마음에 대자 대비가 일어나리라.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 내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p209

 

nirvana라는 동사는 <분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어서 이동시킨다는 뜻이 아니고, 불 같은 것을 불ㄹ어서 꺼버린다는 뜻이다. 기름을 따라 삶의 불길이 잠잠해지듯이, 마음이 제어되면 그 마음의 주인은 <열반의 평화>, <신 안에서의 자포자기>에 이른다. 평화에 도달하는 것은, 불길에다 기름을 끊음으로써인데, 이를 달리는 <이해를 초월한다>고도 일컫는다. p213

 

삶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Jivan mukta, 욕심이 없고 대자 대비하고 현명한 사람이 요가로 자아를 통일하고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 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 속에서 일체 만유를 본다. …..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p217

 

<나무, 바위, , , 이 모든 것은 살아 있다. 이러한 무정물은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우리에게 의지할 것이 없을 때, 문득 그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무정물들이다. p222

 

어느 도깨비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죽음은 여기서 먼 곳에 있으므로 찾기가 어렵다. 아주 넓은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에는 푸른 참나무가 자란다. 그 참나무 밑에는 쇠로 만든 궤짝이 하나 있고, 그 궤짝 안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있다. 그 상자 속에는 토끼가 한 마리 들어 있고, 그 토끼 안에는 오리가 한 마리 있으며, 그 오리 뱃속에는 알이 하나 들어 있다. 그 알을 찾아내어 깨뜨리면 나 역시 죽으리라.’ p229

 

동화적인 에린 동산에서, 불사의 투아다 데 다난은 마나난의 재생하는 돼지를 먹고 귀브네의 맥주를 퍼마신다. 페르시아에서는, 하라 베레자이티 산 꼭대기에 모인 신들이 생명 나무인 가오케레나 나무에서 뽑아낸 불사주 하오마를 마신다. 일본의 신들은 <사께>를 마시고, 폴리네시아 신들은 아베를 마시며, 아즈텍 신들은 선남 선녀의 피를 마신다. 야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은 천상의 낙원에서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맛있는 베헤못과 레비아단과 지즈 고기를 먹으며, 천국의 네 강에서 퍼올린 달콤한 물을 마신다.

천국을 떠나면서 단테는 이렇게 쓰고 있다.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작은 쪽배에 있는 그대들이여. 노래를 부르며 저어가는 나의 배를 뒤따르라. 그리고 돌아서서 그대들의 물가를 굽어보라. 나를 잃으면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바다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가지 마시라.

 

내가 지나는 물은 일찍이 아무도 건넌 바 없다.

미네르바가 나에게 영감을 주고, 아폴로는 내 길을 인도하며,

아홉 뮤즈는 내게 북두칠성을 알려준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무용해지고, 이곳을 지나면 모든 느낌이 죽는 경지다.

상상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말로 다할 길 없는 천복의 가르침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옷으로 위장하고 우리에게 온다. p233

 

고대 탄트라의 정통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신들은 정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상을 표상하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36

 

이 여자는 모습을 감춘 채 길가메쉬의 앞을 막았다. 그러나 길가메쉬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시두리 사비투는 모습을 드러내고,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하러 다니는 대신 인간 세상의 기쁨에 만족하라고 충고했다. p241

 

길가메쉬여, 내 그대에게 비밀을 일러주고,

몇 가지 가르침을 베풀겠노라.

저 풀은 벌판의 넝쿨장미 같은바,

장미 가시 같은 저 가시가 그대 손을 찌를 것이나,

그대가 저 풀을 손에 넣으면,

떠나온 땅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p243

 

만물은 나아가고, 일어나고, 되돌아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뿌리로 되돌아감은 정일을 찾음이다. 정일을 찾음은 합일함이다. 천명에 합일함은 영원에 합일함이다. 영원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마가 인다.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도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p248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p249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찾아낸다-말하자면 인간이 자기 내부의 뚜껑을 열어젖힐 수 있을 때 그렇다. 게르만족의 이교 신 오딘은 이 무한한 어둠 속의 지식을 꿰뚫어볼 작정을 하고, 고난의 시련을 겪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나는 비바람 몰아치는 나무에

꼬박 아흐레 밤을 걸려 있었던 듯하다.

나는 창에 상하여, 나 자신인 오딘에게 바쳐졌다.

뿌리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나무 위에서. p251

 

3. 귀환

1 귀환의 거부

떠나려고 동굴을 나오던 무추쿤다는, 적국의 병사들이 모두 석상으로 화해 있는 걸 발견했다. 그의 키는 석상들보다 컸다. 그는 그 동굴에서 나와 높은 산으로 올라간 다음 고행에 들어갔다. 이 고생만이 모든 존재의 형상과의 마지막 인연으로부터 그를 해탈로 이르게 할 터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추쿤다는 회귀하는 대신 이 세상으로부터 한 차원 더 떨어진 곳으로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감히 그의 결심이 무분별하다고 할 것인가? p257

 

2 불가사의한 탈출

승리한 영웅이 여신이나 신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할 불사약을 가지고 원상 복귀할 대목이 되면, 영웅 모험으 l이 최종 단계에서 초자연적인 후원자에 의한 지원이 따르는 법이다. p257

 

영웅이 도망치는 대목에서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방법은, 도망치는 영웅이 끊임없이 장애물을 던져 추격을 지연시키는 수법이다. p262

 

오냐, 내 집으로 돌아가 도기를 가지고 다시 와서 이 거울 산을 둘로 쪼개놓으리라

마귀 할멈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도끼를 가지고 와서 거울 산을 부쉈다. 그러나 오누이는 이미 멀리 도망쳐 있었다. 마귀 할멈은 할 수 없이 다시 샘으로 되돌아갔다. p263

 

인간은, 사소한 일만 피하면,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p269

 

3 외부로부터의 구조

4 귀환 관문의 통과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립 반 윙클은 무엇을 체험하고 왔는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귀환은 한낱 우스개로 끝나고 만다. 오이신은 자신의 저승 체험을 알고 있지만, 자기의 중심이 저승에 있다는 걸 잊어버렸기 때문에 역시 전락하고 만다. 카마르 알 자만은 그중에서도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 속한다. 그는 깨어 있는 채로 깊은 잠이라는 천복의 은혜를 체험했고, 믿어지지 않는 모험이라는 튼튼한 액막이를 지니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기 때문에 일상의 엄연한 환멸에 직면하고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p291

 

5 두 세계의 스승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p305

 

오직 믿는 마음이면 나를 알 수 있고 참답게 볼 수 있으며 내게 들어와 하나가 될 수 있느니라. 항상 나를 위해 일하고 오직 나만을 목적으로 알고, 진실로 나를 정성으로 믿으며,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악의를 품지 않는 자, 그런 자가 내게 오느니라.

<나를 위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이제 의미는 분명해진다. 말하자면 이것은 모든 종교적 관행이 좇고 있는 바다.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느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자기 화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p306

 

깨달은 자는 이런 상태에서도 지복의 극락을 산다.

 

6 삶의 자유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p307

 

영원의 원리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 이승 세계의 인간이 만일 자기 행위의 결과에 초연해하고, 이를 살아 있는 신의 무릎에다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제물에 의해 죽음의 고해에서 풀려날 수 있다.

<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p308

 

변화가 영속성을 파괴할 때도, 다음 순간(혹은 <다른 사물>)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위대한 재생의 손길인 자연은 부단하게 형상에서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p313

 

4 열쇠

영웅은 이를 퇴치하거나 이 권능을 지닌 존재와 화해하여 산 채로 암흑의 왕국으로 들어가거나(골육상잔, 용과의 싸움 : 제물 헌납, 혹은 호부에 의지하여), 적대자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의절, 고난). 이 문턱을 넘어선 영웅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한 힘에 이끌려 이 세계를 여행하는데, 경우에 따라 위협을 받기도 하고(시련),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조력자) 신화적인 영역의 바닥에 다다르면, 영웅은 절대한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을 이긴 보상을 받는다. p317

 

:::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

1.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이름과 형식을 통하여 이 세계의 얼개를 설명하는 성질이 부여되어 있을 뿐, 이들은 결국 세계를 설명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들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며, 우리 마음을 겨냥할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탄생, ,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및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있는 대리하는 자다. p331

 

전통적인 방법에 따르면, 상징에 대한 명상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상징이 인간의 운명, 인간의 희망, 인간의 믿음, 인간의 어두운 신비의 메타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p333

 

2 우주의 순환

우주의 발생적 순환은 우주 자체의 반복, 즉 끝없는 세계로 표상된다. 각 순환의 주기 안에는 소멸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삶이 잠과 깨어 있음의 주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즈테크인들의 설명에 따르면, 4(곧 물, , 공기, )가 각 세계의 주기를 끝맺는다. 즉 물의 시기는 홍수로, 흙은 지진으로, 공기는 바람으로, 그리고 현재의 주기는 불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p333

 

세네카는 저서 <마르치아의 위안>

 

우주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 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첫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삶에 관한 교훈적인 체험과 만나고, 두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화되어 꿈을 꾸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동화되며, 세번째 단계에서는, 내부적 통제자가 들어앉은 방 안, 모든 것의 근원이자 끝인 상태, <마음속에 있는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p338

 

보이지 않고, 말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추정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의식 상태에 있는 만물이 공유하는, 자기 인식의 본질.

현상계는 이 안에서 소멸한다.

이는 평화요, 행복이요, <둘이 아닌 것>이다. p339

 

3 허공에서-공간

우리의 참 존재를, 파멸하는 형상이 아닌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화 체계는 그리 비극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화 체계의 문법을 숙지하고 나면 비극적이란 표현은 천만부당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정상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마음이 좋아하는 이미지나 전통적인 이미지에 안주하려 할 때 신화 체계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이미지가 메시지 자체라고 옹호하면 안 된다. p343

 

4 공간의 내부에서-생명

회임에서 생산이,

생산에서 생각이,

생각에서 기억이,

기억에서 의식이,

의식에서 욕망이,

 

언어가 풍성해졌다.

언어는 어렴풋한 인식 안에 있었다.

언어가 밤을 만들었다.

큰 밤, 긴 밤,

낮은 밤, 아주 높은 밤,

두껍게 느껴지는 밤,

만져지는 밤,

보이지 않는 밤,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밤. p349

 

5 하나에서 여럿으로

이 창조된 형상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은, 강력한 무기에 의해 위험과 고통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조의 현실이란 중심점에서 보면, 티아마트의 육신은 자발적으로 이에 응한 것이다. 따라서 그 육신을 도륙한 손은, 희생자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대리인의 손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신화의 근본적인 모순, 즉 이중 초점의 모순이 있다. 우주 발생적 순환의 초기에 <신은 관여하지 않으나>, <신은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며 파괴자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운명은 <우연히>그러나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p365

 

6 창조의 민화

 

2.     처녀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4 미혼모의 민화

 

3.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전설을 만든 사람들에겐 탄생의 순간, 심지어는 잉태의 순간에 영웅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의 생애는, 그의 모험을 절정으로 하는 엄청난 장관으로 그려진다. p400

 

실제 역사적 인물의 행위가 영웅적인 것이었다면, 이 전설을 만드는 사람은 그를 위해 영웅의 모험과 그 심도가 유사한 정도의 모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험이 바로 초자연적인 영역으로의 여행인데 이 여행이 독자에 의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라는 밤바다로의 여행,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의 삶으로 구체화하는 인간의 운명의 측면, 혹은 영역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p402

 

요약건대 이렇다. 문제의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기간을 견디어야 했다. 이 기간은 극히 위험하고,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며, 치욕을 당하는 기간이다. 그는 자기 내부로 깊이, 혹은 미지의 세계인 외부로 던져졌다. 어느 경우든 그를 당혹케 하는 것은 미지의 암흑이다. 이곳은 의외의 존재, 자비로운 동시에 심술궂은 존재의 영역이다. p410

 

유아기 이야기는 영웅의 귀환 혹은 그의 정체가 드러남으로 그 결론에 이른다. 즉 오랫동안 묻혀 지내던 영웅의 암흑기가 끝나고 그의 진정한 성격이 노출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상당한 위기가 따른다. 영웅의 권능이, 인간 사회에서 소외, 축출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양상은 토막나거나 사람들 기억에서 해소되어 버리고, 재난이 몰려온다. 그러나 재난이 지나가면 새로운 권능의 창조적 진가가 드러나고 세계는 다시 영광의 새 형상을 얻는다. p413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그의 손에 살해되는 용은, 현상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옹호자이다.

영웅의 행적은 순간의 결정화에 대한 끊임없는 파괴 행위다. 이야기는 순환한다. 신화의 초점은 발전하는 단계에 모인다. 변모, 유동성, 일정하지 않은 무게는, 살아 있는 신의 특징이다. 한 시대의 위대한 형상은 부서지고, 토막나고, 이윽고 흩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도깨비-폭군은 불길한 사상의 옹호자이며 영웅은 창조적인 삶의 옹호자이다. p422

 

4 애인으로서의 영웅

적과 싸워서 장악하는 주도권, 괴물과 싸워서 획득하는 자유, 폭군의 족쇄에서 풀려난 에너지는 여성으로 상징된다. 이 여성은, 수많은 용을 죽인 영웅의 애인이며, 질투심이 강한 아버지로부터 유괴되어 온 신부며, 부정한 애인으로부터 구출된 처녀다. <영웅과 영웅의 상대역인 여성은 곧 하나>이기 때문에, 처녀는 영웅 자신의 <다른 한쪽>이다. 영웅이 세계의 군주라면, 처녀는 세계이며, 영웅이 전사라면 처녀는 명예다.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그러나 영웅이 자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p428

 

예기치 못한 조력자의 도움을 얻고, 시간과 공간의 기적을 경험한 그는 마침내 자기 과업을 완수한다. 즉 운명 자체(곧 처녀)가 그에게 힘을 빌려준다.

이 다채로운 쿠훌린의 모험에서, 가장 웅변적이고 가장 극적인 것은, 바퀴와 사과가 구르면서 영웅에게 내어주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길이다. 이것은 운명적인 기적의 상징이며 교훈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p431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인간의 시각이 평형 상태의 인간적 측면으로 기울어질 때, 천상적 능력의 체험은 그것으로 끝난다. 한 사회를 관류하던 사상도 사라지고, 오직 힘만이 그 사회를 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437

 

6 구세주로서의 영웅

모두 나를 보아라.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세상의 크기는 내 몸만하다. 세상은 내 얘기만하다. 세상은 내비는 것만하다. 하늘은 내 얘기, 내 비는 것만하다. 계절은 내 몸, 내 얘기, 내 비는 것만큼 위대하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내 몸, 내 얘기, 내 비는 것은 바다보다 더 위대하다. 나를 믿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장생할 것이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른 사악한 생각을 품는 자는 단명할 것이다. p437

 

영웅의 행위가 위대한 것은,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나 할 수 있으리라고 헤아리던 일을 현실적으로 바로 눈앞에서 해치우는 데 있다. p438

 

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심령에 의한 조형(유출)과 무로의 소멸, 젊음과 늙음, 탄생과 죽음, 형상을 창조하는 생명력과 타성적인 죽음의 중압은 영원히 갈마드는 것이다. 생명이 태동하고 이어 형상이 빚어지면, 쇠퇴가 따르고 이윽고 운명에 농락당한 잔해만 남는 것이다.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p44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고,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p442

 

7 성자로서의 영웅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 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p443

 

8 영웅의 죽음

더 살기를 바라는 영웅은 죽음에 저항하고, 일정 기간 자기 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 p451

 

제행이 무상하구나. 태어난 것, 모습을 나타낸 것, 죽기로 마련된 것들이 어지 이를 피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가 없구나. p456

 

4.     소멸

1 소우주의 끝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손가락으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올릴 수 있고, 자기 몸을 우주의 엄청난 영광으로 채울 수도 있는)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크리슈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p458

 

이것은 바로 개인이 소멸되는 순간, 사자의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기도다. 즉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p459

 

혼령은 들으세요. 그대는 이승의 삶이라는 수고로운 시련을 다 치러내고 승리했던 분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이 그대를 데려갔으니 이 아니 기쁜 일입니까? 우리 역시 영원히 이승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잠시 다녀가는 것뿐입니다. 우리 삶이란 햇볕에 몸을 하는 것 같은 것이지요. p461

 

사후의 영혼은, 이승에서 보낸 삶의 내용에 합당한 층으로 끌려가고, 그는 여기에서 이승에서 보낸 삶의 의미를 반추한다. 이 반추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느끼면 사자는 이승으로 되돌아와 다음 단계의 경험을 준비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모든 단계의 삶을 경험하고, 마침내 우주적 알이란 벽을 깨뜨릴 수 있게 된다. 단테의 <신곡>은 이 단계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옥편>은 육신의 욕망과 행위에 얽매인 영혼의 참담함을, <정화편>, 육신의 경험이 영혼의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국편>은 정신적 자각의 단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p462

 

창조된 것은 내 손 안에 있고, 아직 창조되지 않은 것이 내 몸 안에 있음이라. p464

 

2 대우주의 끝

여보게들, 십만년이 흐르면, 우주 순환 주기가 다시 시작된다네. 이 세계는 파멸에 들 것이고, 바다는 마를 것이네. 이 넓은 땅, 산들의 왕인 수메루 산이 불에 타, 브라마의 세계는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될 것이네. 그러니 여보게들, 선의를 이 땅에 넘치게 하고. 연민과, 기쁨과, 평등이 여기에 넘치게 하소.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고, 집안 어른들을 섬기소. p468

 

고대 바이킹족의 <에다 시가집>

신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신인 오딘이 자신과 자신의 신전이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묻자 세계의 어머니, 운명적인 예언의 화신인 <현명한 여성 Wise Woman>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가 서로 싸워 서로를 쓰러뜨리고,

자매의 자식들이 집안을 더럽힌다.

어려워라 매음굴이 되는 이 세상

도끼 시대, 칼의 시대, 방패가 부서지고

바람 시대, 늑대 시대, 세상이 무너진다.

인간은 하나도 살아남을 길이 없다. p470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p473

 

::: 에필로그 :::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삶의 양태에서, 개인은 인간의 전체 이미지의 단편이며 일그러진 형상일 수밖에 없다. 개인은 남성으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제약을 받고 있다. 주어진 수명의 한도 내에서 개인은 다시 유아로서, 청년으로서, 성인으로서, 노인으로서의 제약을 받는다. 더구나 살면서 맡는 역할상 개인은 다시 기술자, 상인, 하인, 혹은 도둑, 성직자, 지도자, 아내, 수녀, 혹은 매춘부로 전문화한다. 개인은 이 모두일 수가 없다. 따라서 개인의 전체성은, 개벌적인 구성 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요소일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p479

 

사회적인 의미를 통해 개인은 축제를 정상적, 일상의 생존으로 수렴할 것을 배운다. 이로써 개인의 정체가 확인된다. 거꾸로 말하면 무관심과 반항(혹은 도피)은 개인과 사회를 단절시킨다. 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성직자든, 매춘부든, 여왕이든, 노예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p480

 

3 오늘날의 영웅

IP *.38.222.3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92 [44] <의식혁명>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수희향 2010.02.22 3211
1291 두 번 읽은 파우스트 [1] 레몬 2012.06.25 3211
1290 21. 동방견문론_저자, 구성 맑은 김인건 2010.08.02 3212
1289 아이의 스트레스_오은영_웅진리빙하우스 양갱 2012.06.13 3212
1288 북리뷰 59 : 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범해 좌경숙 2010.11.18 3213
» 3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 캠벨 file 미나 2012.01.23 3212
1286 천만번 괜찮아 : 박미라 [1] 소현 2008.01.14 3214
1285 [41]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3] 정산 2009.03.03 3214
1284 12. 괴테 자서전 - 시와 진실 file 미선 2011.06.20 3214
1283 [혁신하는 경영, 신뢰받는 기업, 서울대 경영대학 연구소 편] 통찰맨 2005.09.26 3215
1282 경영의 미래 [2] 콩두 2012.12.24 3215
1281 #53_어린왕자, 생텍쥐페리 [1] 서연 2013.05.12 3215
1280 [17] 노동의 종말 - 제레미 리프킨 최지환 2008.08.04 3216
1279 14. 백범일지_발췌 맑은 김인건 2010.06.07 3216
1278 2-8 일상의 황홀 - 구본형 콩두 2013.06.08 3216
1277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이이디어 5/7~6/2 [3] 이선이 2005.06.23 3217
1276 [북리뷰2] <부부의 심리학> 미셀 와이너-데이비스 이선형 2011.02.15 3217
1275 20: 주역,하늘의 뜻을 묻다. 김귀자 2006.07.30 3219
1274 [북리뷰] 맹자 이선형 2010.11.22 3220
1273 북 No.47 -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 file 재키 제동 2012.03.18 3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