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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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같은 노비가 죽기엔 이곳은 너무 호사스럽지 않은가."
오래전에 종영한 드라마 '추노'에서 도망간 노비를 쫒던 주인공이 상대와 싸울자리를 골라가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그곳 풍광이 정말 멋지더군요. 다시 보니 멋진데, 왜 이전에 아름답다 못 느꼈을까요. 드라마 제작자들이 멋진 곳을 찾아서 아름다운 구도로 촬영해서 멋지게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아름답게 보는 눈을 뜨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지다라며 보니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없네요.
지난 토요일에는 겨울비가 조용히 내렸습니다. 몹시도 기다리던 비여서 빗속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말라버린 국화가지들이 비에 젖었고, 길 옆의 떡갈나무 낙엽도 비를 흠뻑 물고 있습니다. 바스라진 낙엽들은 이전에 보던 색이 아닙니다. 길과 들에는 차분하고 곱상한 고동색들이 넘쳐납니다. 그 속에 빗방물 물고 있는 초록 싹 또한 곱상합니다. 그 고동색과 초록을 넣어 한복을 한벌 해입고 싶습니다.
추위와 감기를 핑계로 방에 메여 있던 저에게 안겨주기에는 호사스런 길이지만, 그 속에 서면 저도 진한 색을 내며 고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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