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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7일 16시 15분 등록
 

빌 루어바흐/크리스틴 케클러 지음, 내 삶의 글쓰기, 한스미디어, 2011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자서전 즉 회고록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우리 모두는 내게 들어 온 직간접적인 기억 한 토막을 다른 것과 연결하거나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회고록의 문학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모든 기억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쉬지 않고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대도 여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고록은 신문기사가 아니다. ... 내가 볼 때 회고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학성이다. 단순히 사실성을 지키기 위해 급급해하는 것보다는 드라마의 필수 요소부터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다시 말해 첫째는 문학성, 둘째는 사실성이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것이 회고록의 기본 전제다.

글에 미학적 수사학적 아름다움을 덧대려 한다면 진실만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창조적 논픽션이라는 거대한 벌판’을 아름다운 마을로 꾸며 놓았는데, 나는 이 곳에서 회고록 뿐만 아니라, 그저 신변잡기를 쓰던 사람이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세심한 조언을 모두 얻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년, 내게는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은 단순하고 검박한 기술記述을 넘어 단단하고 풍요로운 은유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누구나 쓰는 표현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들을 문학에서 배워오기로  마음먹었는데, 바로 이 책이 오랜 시간을 들여 내가 발굴했어야 했을 것들을 미리 정리해 놓은 것이다. --더 탐구할 것이 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의 역할은 독자의 마음속에 꿈을 불어넣는 것이다. 꿈의 효과가 강력하려면 그 꿈은 우선 생생하고 연속적이어야 할 것이다.


독자는 재판관이 아니다. 독자들은 그저 믿고 싶어 한다. 그러니 작가가 굳이 그들을 흔들어 깨운 뒤 믿으라고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독자가 꿈을 꾼다면 그것이 그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은유는 우리가 중고등학생 때 배운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큰 개념이다.

자크 데리다의 말에 따르면 모든 단어가 은유적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은유metaphor는 실어 나른다는 뜻이었다. 즉 우리는 한 사물이나 유사체에서 다른 사물로 의미를 실어 나르는 것이다.

은유가 솜씨있게 잘 가미되면 의미의 층위는 한층 더 두터워진다. 당신이 그 미묘한 층위를 마음껏 조종할 수 있다면, 독자는 뚜렷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당신의 글을 더 즐겁게 읽을 것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내가 혹한, ‘장면만들기’나 ‘은유’에 대한 것들이 저자만의 노하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원칙만 나열하거나 감질나게 조금 보여주고 마는 대부분의 책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궁궐 터는 이 곳에서 십리를 더 간 곳에 있다’는 ‘왕십리’의 유래처럼 그는 ‘십리’를 더 간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좀 더 심도있고 분명한 지침을 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좋은 문장이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이렇게 포괄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은 처음이다. 저자의 관점을 응용하여 두고두고 써 먹을 것이 생겨서 무진장 기쁘다.

 

 

아름다움을 더하는 모든 것들(명료성, 운동감, 밀도, 리듬, 정확성, 질감,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전략은 작가 스스로 찾아야한다.


명료성: 명료하지 않은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일부러 불완전한 문장을 썼다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감: 산문은 상어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산문은 관계다. 자라나지 않으면 질식해 버린다. 산문은 섹스다. 움직여야 더 즐겁다. 운동감이란 글을 읽으면서 어딘가로 가는 것이다. 당신의 글에 운동감이 드러나면 독자도 따라 움직인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뜻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글 전체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때는 글이 ‘나’라는 댐에 갇힌 채 괴어 있는 것이다.


밀도: 문장은 지갑과 같다. 크기도 다양할뿐더러 그 안에 적은 양도, 많은 양도 담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의미는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하면 많을수록 좋다.

 

리듬: 어디서나 그렇지만 핵심은 다양성이다. 초보 작가들은 대부분 단 한 가지 리듬에만 의지하거나 아예 리듬 자체를 쓰지 않는다. 문법에 맞기만 하다면 단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알아서 자리 잡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하지만 리듬도 목소리에 포함된다. 리듬은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귀에도 들리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정확성: 정확성은 곧 솔직함이다. 정확하려면 자기기만은 용납되지 않는다. 타인을 기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확성을 기한다는 것은 글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뛰어난 의사처럼 언제 어디를 잘라내야 하는지, 어디를 봉합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정확성을 기한다는 것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다. 시야가 정확해야 결과가 명료해지고, 그로써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질감: 글에서 질감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며 만나는 산악지대와 같다. 봉우리와 계곡, 울퉁불퉁한 곳과 반반한 곳, 웅장함과 자연스러움이 뒤섞여 각양각색의 기쁨을 준다. 쉬어갈 곳, 헐떡거릴 곳, 힘겹게 가는 곳, 수월히 가는 곳, 다양한 소리들, 수백 그루의 나무, 갖가지 냄새, 호수에서는 만나지 못할 무수한 감정들, 뒹굴며 내려가던 언덕, 무수히 부딪친 얼음조각, 내리막길을 요란하게 질주해 가다가 만난 막다른 길에서 내 앞을 가로막고 섰던 나의 커다란 개 윌리.


절박감: 뛰어난 글에는 필연성이 있다. 이 글은 써야만 한다는 그것도 이렇게 써야만 한다는 필연성이 있다. 그런 글에는 필요 없는 부분이란 없다. 횡설수설하는 부분조차 필수적인 것이 된다. 글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아이디어는 요긴하고, 사건은 중대하며, 사랑은 살아 숨 쉰다.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살짝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만 참고 읽어내려 가면 익히 알던 것도 다시 벼려주어, 난생 처음 글쓰기를 하는 사람처럼 설레고 흥분되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저자도 다 겪은 양 정확하게 묘사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촉구하기 때문이다. 


글은 가만히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그리 어려운 걸까? 그것은 바로 당신의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누구나 글쓰기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서 지름길부터 찾으려 한다. 하지만 지름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눈앞에 있는 길이 바로 지름길이다. 자신 안에서 어떤 거부감이 일든, 이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극복하는 것이 작가로 발돋움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그저 군말 없이 연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나 역시 똑같은 연습만 반복하면서 규칙만 줄줄이 외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습을 하다가 글감을 발견하거나 기억 창고의 문을 열게 되었다면, 연습을 하면서 감정의 진솔한 뿌리를 보고 인간의 삶과 정신을 전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다면, 연습의 효과는 어마어마해 진다. 처음에는 고만고만한 연습에 불과해 보이던 것들이 결국에는 글의 단단한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소소한 과제를 일일이 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알맹이가 꽉 찬 책이다. 이 책은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얼마나 갈 길이 먼 지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고, 자세를 정비하게 해 주었으며, 나의 다음 책들이 어떻게 깊어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다음 구절로 등불을 삼고 터벅터벅 걸어가야겠다. 



 

초심자에게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에게는 가능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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