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 제동
- 조회 수 565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레이첼 나오미 레멘(Rachel Naomi Remen) 박사는 마음과 몸의 조화를 이루는 건강법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지닌 사람들을 치유하는 심리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하고 의사들에게 그 필요성을 교육하는 일에 투신하는 선두주자로, 20년 동안 암 등의 중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또한 빌 모이어가 진행하는 PBS 방송의 특집 ‘치유와 정신’에서 소개된 바 있는 ‘암 환자 복리 증진 프로그램’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하며 의과 분야 책임자다. 현재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임상 교수이며 국내에 발간된 저서로는 『할아버지의 기도』 『할아버지의 축복』 『그대 만난 뒤 삶에 눈 떴네』가 있다.
레이첼의 부모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여기는 사회주의자였다. 아버지는 의사고 어머니는 가정 간호사였는데 전문직 종사자답게 그 유일한 딸인 레이첼에게 지적인 성취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녀는 헤브라이 신비 철학의 전통을 이어오는 카발라 학자였던 외할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영향을 받으며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레이첼은 세 살이 될 때까지 말도 하지 못하는 늦된 아이였다. 이어 열 일곱살에 발병한 크론병으로 인해 평생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소아과 의사로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중증환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상담사 역할을 하면서 그녀 또한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참고자료] 『할아버지의 기도』 저자 소개와 본문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P5 『할아버지의 기도』의 저자 레이첼 레멘도 지금 힘들고 고단한 삶에 절망하는 누군가에게 삶은 바로 그 자체가 축복임을 들려줍니다.
저자는 생명을 위협받는 질병으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연민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도록 이끌어줍니다. 병은 육체적 치유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치유도 함께 이루어져야 온전히 치유되는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레이첼 레멘은 어렸을 때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외할아버지와 포도주를 마시면서 “레치얌”이라고 외치며 건배했습니다. ‘레치얌’은 히브리말로 ‘삶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뿐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고 때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삶일지라도, 삶은 여전히 거룩하고 서로 축복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P6 상실과 고통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체험을 통해 열정적인 “레치얌”을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은 기쁨을 통해서도 성숙하지만 때로는 슬픔을 통해서도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합니다. 슬픔은 우리가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P8 저자는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고 인간적인 의사가 된다고 전문가로서 뒤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데 많은 세월이 걸렸다고 고백하면서 “마음 안에는 삶의 어떤 체험을 변화시키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찾고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려면 지식이나 전문성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마음을 계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서문_외할아버지의
축복
P17 네쉬메레야, 생명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단다.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도 생명은 숨어 있는 법이란다.
네쉬메레야,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란다.
외할아버지는 헤브라이 신비 철학의 전통을 이어오는 카발라학자였다.
P18 카발라에 의하면 태초의 어느 시점에서 거룩한 존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꽃으로 나뉘어 우주에 흩어졌다고 한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 안에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신의 불꽃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신의 현존을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이상에서 만날 수 있다. 카발라는 우주 안에 숨어 있는 거룩한 존재가 매순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고 가르친다. 세상이 우리의 귀에 속삭이고 우리 안에 계시는 신의 불꽃이 우리 마음에 속삭인다. 외할아버지는 그것을 어떻게 듣는지 가르쳐주셨다.
거룩한 존재와 예기치 않은 만남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축복을 빌어주는 일이다. 세상 안에는 거룩함을 일깨우는 축복들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순간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삶 속에서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거기 특별한 축복이 있을 것이다.
P22 인도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고개를 숙여 “나메스테”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 말은 ‘제가 그대 안에서 신의 불꽃을 보았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네쉬메레야, 그분이 사람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몫이란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축복이 필요하단다.
P23 축복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축복은 만남의 순간이다. 함께한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친다.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아무런 가식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될 수 있다. 이 순간 상대방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식을 얻는다. 우리는 축복을 통해 나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깊이 성찰할 수 있다.
I 인생의
향기
P32 우리 자신이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질 때에만 우리는 누군가를 축복해줄 수 있다. 삶의 축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삶을 어떻게 즐기는가 배우는 것이다.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우리 삶에서 간혹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면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삶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눈을 키워 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를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는 겸손이다.
P38 진정으로 생명을 축복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축복으로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축복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래리는 깨닫지 못했다.
P41 매주 돌아오는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 완전한 평화와 휴식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나의 부모님은 항상 내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잘하기를 바라셨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그런 칭찬은 아예 없었다. 내가 시험에서 98점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항상 잃어버린 2점은 어디에 잃어버렸느냐고 물으셨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잃어버린 2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외할아버지만은 그런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으셨다. 그분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분했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그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누구도 부르지 않는 ‘네쉬메레’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나를 부르셨다. 그것은 ‘사랑스러운 작은 영혼’이라는 뜻이었다.
P43 매우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삶과 첫 대면하는 순간을 만난다. 그 순간 삶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성찰하게 된다. 상처를 입은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한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다.
è 돌이켜보면 내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것은 신이 나에게 무언가를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구원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축복이었던 것이다.
P45 네쉬메레야,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천사는 야곱에게 상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어루만져주었단다. 야곱은 남은 생애 동안 늘 그 상처를 지니고 살았지. 천사를 만난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잊지 못할 상처였어.
나는 그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천사를 적과 혼동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이러한 사건은 우리에게 항상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점이 아니라고도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것 안에 그 나름대로 축복이 있다는 사실이란다.”
P46 삶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적을 만나서 그곳에 감추어져 있는 축복을 발견하기까지 용기 있게 붙잡고 싸움을 계속할 때에만 진정한
삶을 사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P49 안식일이란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일을 하지 않도록 명하신 날이다. 이날만은 사람들은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하느님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또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사람들은 일 때문에 지치기 마련이란다. 네쉬메레야,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으로 안식일을 주신 것이란다. 안식에는 우리 모두 푹 쉬어야 하지.
할아버지는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넘어간 후에 시작하여 토요일 해가 진 다음에 끝난다고 설명해주셨다.
P50 내 생각에 세 개의 초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몸을 나타내는 것 같구나. 그리고 촛불을 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단다.
P51 이 세상은 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다. 하느님은 우리가 일도 해야 하지만 삶을 즐기기를 원하셨단다. 춤추고 먹고 마시고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겪는 체험 안에 모든 즐거움을 있단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서로의 몸을 통해 나는 특별한 즐거움도 있단다.
P53 외할아버지 부부는 정통 유대교의 법에 따라 결혼 생활을 하셨다. 유대교의 법은 한 달 중 두 주간만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한다. 아내가 생리를 시작하면 두 주 동안은 따로 독방에서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아내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미크바라고 부르는 공동의 목욕 의식에 참여해 기도하고 몸을 정결하게 한다. 그런 다음에야 남편의 품안에서 잠을 잘 수 있다.
다시 정상적인 부부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의사 표시를 하는 것에는 미묘한 문제가 따랐다. 유대 법에 따르면 남편이 설령 부인이라고 해도 여성의 얼굴을 바로 보아서는 안되었다. 더구나 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했다. 어머니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당시의 여인들은 남편에게 다시 한 몸이 되기를 바란다는 각자의 고유한 비법을 지니고 있었단다.”
P56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지혜를 지녔단다. 그들 모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지.
P59 때로 삶은 우리에게 고통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어떤 과정을 지날지라도 뒤돌아보면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성숙해졌음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성숙을 위한 씨앗이 뿌려져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이다.
P60 부처의 씨앗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닌 지혜를 발견하는 능력이리라. 지혜는 우리가 얻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혜란 우리 자신이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의 기본적인 인간성 안에 있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변화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연민의 마음을
지니는 것, 즉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고 나누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 안에 있는 부처의 씨앗에 물을 준다. 지혜를 키워나갈
능력은 우리 삶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P78 레치암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과 고통스럽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삶은 거룩한 것이며 서로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미란다.
P85 슬픔이여. 나는 그대의 닻을 끌어내고 이제 바람을 잡는다.
II 눈높이를
낮출 수 있다면
P92 날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우리는 기적 사이로 소리 없이 걸어 가고 있습니다. 저희의 눈을 보게 해주시고 저희의 마음을 지혜로 채워주십시오. 번개가 번쩍 빛나는 순간처럼 당신의 현존이 우리가 걷고 있는 어둠을 비추시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바라보는 어느 곳에서나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가 타오르고 있음을 보게 해주십시오. 당신 손으로 손수 지으신 진흙인 우리가 거기서 거룩함을 알아보고 외치게 해주십시오. 이곳이 바로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곳임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나이다.
III 삶을
강하게 만드는 법
P127 프루스트는 발견을 위한 항해는 미지의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각을 지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가끔 엔젤스 에린이 그의 저서 『네 개의 다른 양식』에서 말한 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일을 해보라고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잠들기 전에 15분 정도 시간을 내 그날 하루를 성찰한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노트에 답을 적는다.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나에게 놀라운 일이 있었는가?’
‘오늘 나에게 감동을 준 일이나 마음에 와 닿았던 일이 있었는가?’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일이 있었는가?’
많은 것을 노트에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해준다. 이 일은 하루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돕는다.
P133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삶을 산다. 어떤 일을 다르게 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일을 새로운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관점을 지닌다면 오랫동안 해왔던 일들 안에서 놀라운 축복을 발견하고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다. 육안으로 볼 수도 있고 이성의 정신으로 볼 수도 있으며 영감으로 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바라볼 때에만 삶이 지닌 깊은 의미와 축복을 발견하게 된다.
P142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위험 요소가 있지만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열정을 지닐 때만이 우리는 삶에 온전히 투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보다 더 큰 가치를 찾게 된다. 보람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나 자신을 던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P148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되도록 고통의 상황을 외면하려고 하지만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삶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겪는 고통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연민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고통의 상처에서 얻은 지혜만이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안식처를 찾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고통이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P156 마음 안에는 삶의 어떤 체험을 변화시키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찾고 인생을 완성시켜나가려면 지식이나 전문성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마음을 계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식만으로는 인간답게 살거나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쓴 가면을 벗어 던져야 한다.
P164 사전을 뒤지자 놀랍게도 clear라는 낱말에는 60가지도 넘는 뜻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의미는 자유와 연관된 것이었다. ‘장애로부터의 자유’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 ‘비난으로부터의 자유’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덫으로부터의 자유’ ‘제약으로부터의 자유’ ‘빚으로부터의 자유’ ‘흠집으로부터의 자유’ ‘의심으로부터의 자유’ ‘환상으로부터의 자유’ ‘불확실로부터의 자유’ ‘애매모호함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등등. 그 낱말의 궁극적인 의미는 ‘빛의 인도를 받아 온전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었다.
IV 영혼의
쉼터
P176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침묵일 것이다. 드러내지 못한 비판과 불평으로 가득 찬 침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처가 되고 영혼의 쉼터가 되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침묵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침묵을 몹시 목말라한다. 침묵 안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를 맛보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침묵은 위대한 힘이 있는 장소이며 치유의 장소다. 침묵은 하느님의 무릎이다.
P178 안식처나 영혼의 쉼터란 우리가 부닥친 삶에서 도망쳐 갈 도피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힘을 얻는 장소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감사의 마음으로 삶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 장소를 찾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P180 놀랍게도 우리는 죽음에서 지성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여기서 지성소란 우리 문화나 우리 안에서 참된 것이 아닌 모든 것에서 벗어난 진정한 안식처를 말한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 인정받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진실하고 소중한 것을 덮어두라고 배웠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진실을 따르는 것이 본래 우리의 길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직면하면 비로소 가면을 벗는다. 그리하여 자기의 역할과 기대, 자기에게 진정한 것이 아닌 삶의 방식들을 버리게 된다. 처음에는 더는 그것들을 지닐 힘이 없기 때문에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그런 것이 더는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에 버린다.
P184 그날 나는 깊은 강이 우리 일상의 발 아래로 흐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곳에 발을 담그기만 하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P190 ‘쉐마’는 고통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삶은 가치있다는 의미란다.
P192 암 환자들을 상대로 20년 동안 일을 해오는 동안 나는 우리의 생각과 실제 삶의 괴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생기는가를 알았다. 스트레스란 단순히 시간에 쫓기거나 일이 많거나 하는 문제라기 보다 내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스트레스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P193 우리 각자는 그와 같은 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영혼이라고도 부른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오직 깜깜한 암흑 속에서만 자신의 별을 제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별을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P196 영적인 체험은 배움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한순간 우리에게 발견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어진다.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전혀 기대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거나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을 바꾼다.
V 받아들임
P225 여성은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낼 줄 아는 감각이 있다. 아이들에게 주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 수 있다.
P244 나는 인생을 고치는 법을 배우려고 몇십 년의 세월을 애쓴 후에야 문득 인생이 고장난 것 이 아님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 안에는 더 큰 온전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씨앗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그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어 나갈 때 삶을 잘 섬길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P245 스승은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알아내야 한다. 스승을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스승이 가리켜 주는 길을 따라 우리 스스로 걸어감으로써 알아내야 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듣는 비법을 배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삶의 비법을 배울 수는 없다. 스스로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VI 본래의
모습
P266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완벽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고대의 지혜를 지닌 문화에서는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것에 가치를 두었다. 일본에서 선 정원사는 정교한 균형미를 이룬 정원의 한쪽 구석에 민들레를 몇 송이 심는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섬세하게 짠 카펫에 의도적으로 흠을 하나 남겨놓는다고 한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부른다. 청교도들이 누비 이불을 만들 때 누비 이불의 대가는 그가 만드는 누비 이불마다 피를 한 방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었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렀다. 영혼을 지닌 것은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천에 ‘영혼의 구슬’과 같은 올이 하나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이 꿈꾸었던 삶의 천보다 더 멋진 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삶의 중심보다 가장자리에서 더 큰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마는 카드가 섞이는 것처럼 우리의 가치관을 뒤섞어 놓을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래에 놓여 있던 카드가 가장 위에 놓인 카드가 되기도 한다.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카드 놀이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에이스는 완벽함도 재산도 심지어는 자존심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P267 누군가의 삶을 축복해준다는 것은 그가 지닌 고유함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본질 속에서 성장하도록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우리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면 그가 지닌 본래의 모습을 망가뜨리게 된다. 삶을 축복해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P281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축복해주는 방법은 그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나가도록 지지해주면서 가만히 어깨동무해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직 신뢰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그 믿음이 그의 삶에 커다란 버팀목이 된다.
VII 신비
P291 유명한 선사가 깨달음을 얻고 썼다는 게송이 있다.
“나는 지금 장작을 패네. 나는 지금 우물에서 물을 긷네.”
그는 깨닫기 전에도 장작을 패고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실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고통이 조금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상실 그 자체는 영원히 지속된다.
P294 양파 껍질을 벗기듯 삶의 본질에 다다르면 삶은 의외로 아주 단순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매달렸던 것들은 지극히 사소해지고 아주 단순한 몇 가지만이 중요해진다.
P295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되돌아온 사람들은 특별한 통찰력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그런 체험을 통해 그들은 삶 안에는 단 하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방법이 있지만 모든 삶은 지혜에 이르는 하나의 영적인 여정이다. 그것을 안다면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달라진다.
P310 진정한 지혜는 해답을 구하는데 있지 않다. 우리가 찾는 해답은 항구한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잘사는 비법은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삶에서 일어나는 물음들을 나누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P315 민얀은 유대인들의 영성생활에 중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다. 누구라도 아무 때나 기도를 드릴 수 있지만 공적인 예배로서 기도를 드릴 때는 반드시 남자가 10명 이상 있어야 했다. 열 명 남자들 모임을 민얀이라고 한다.
P323 자유를 위한 투쟁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었단다. 오직 자유를 지닌 사람만이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세상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어떤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그들 안에 있는 선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단다.
P324 이 선택은 노예냐, 자유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었어. 우리는 항상 노예 생활이냐, 미지의 삶이냐를 놓고 선택을 하게 된단다.
P325 우리 가운데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돈, 명예, 권력, 성, 칭찬, 젊음 등등. 무엇이든 우리가 거기 애착을 둔다면 그것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들을 주인으로 섬긴다.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많은 것들이 우리가 진정 삶을 풍요롭게 누리고 깊이 있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약속된 땅은 많은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굶주림이나 두려움에서 빠져 나와 누리는 자유일 수도 잇다. 그러나 깊은 차원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것이리라. 바로 내면 안에 있는 선을 따라 살고 서로를 섬기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능력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법정 스님이 사랑한 50권의 책을 소개한 한 권의 책에서였다. 완벽주의 기질을 가진 나는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마 이 책에서 이란의 고급 카페트에서 의도적으로 흠을 만드는 ‘페르시아의 흠’과 인디언들이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의도적으로 살짝 깨진 구슬을 넣어 ‘영혼의 구슬’이라고 부른다는 구절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이 책을 꼭 읽어보마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독서 코치로 유명한 지인의 책 추천 글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 났다. 이승만 정권 때는 크게 건축업도 하셨고 연세가 드신 후에는 청주 향교의 교장까지 지내실 정도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분인데 외할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신영복 선생님처럼 할아버지께 중국 고전이나 붓글씨를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친할아버지는 어떠한가? 지금 살아계시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진 이후로는 왕래가 별로 없다. 사실 가끔 인사를 드리러 가도 대화를 별로 하지 않는다. 저자는 행운아다. 할아버지와 많은 추억이 있고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야망이 큰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매우 따분할 것이다. 건강을 잃고 깨달음을 얻어 야망을 버렸다고 생각한 나에게 조차 이 책은 다소 심심했다. 법정스님과 같이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한 분에게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는 책이겠지만 하루하루의 밥벌이를 위해 바쁜 삶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향기가 있다. 이웃집 할머니처럼 편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음성은 따뜻함이 묻어난다. 힘들어 처진 어깨로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아울러 유대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어 흥미로웠다. 성경의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아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천사와 싸운 야곱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58개의 꼭지글이 7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장의 제목과 연관된 꼭지글로 분류한듯 싶은데 글을 읽으면서는 별다른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수필 형식으로 쓴 글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역시 글은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글을 어렵게 쓰지는 않으며, 쉬운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 중 생소한 것들은 거의 없었다. 역시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읽은 책의 내용을 하나씩 실천해 가는 것이 진정한 독서가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