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 조회 수 2136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아내 없는 밤
아내가 오랜만에 저녁 모임을 갔습니다.
저녁을 챙겨 먹고 민호랑 놀기 시작입니다.
"아, 아빠랑 씨름하고 싶다." 괜히 혼잣말을 하듯 내뱉으며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저녁 탁구 동호회 모임에 못간 난 갑자기 '탁구'가 떠올랐습니다.
"탁구는 어때?"
"어! 탁구할래"
미리, 할 일을 정해놓지 않으면 마냥 시간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9시면 자야하니까. 먼저, 이닦고 세수한 다음에 잘 준비 해놓고, 그리고 탁구 하고, 동시 2개만 읽고 자자."
이렇게 미리 제 머릿속 계획을 쫙 읊었지요.
"알았어."
그러고나선 이닦고 세수를 함께 하고, 이불을 펴 놓았습니다.
이제 탁구 칠 준비 완료! 조그만 그림책을 서로 들고 마루에 마주 섰습니다.
기껏해야 두세번 공을 주고받고 딴데로 공 찾으러가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자뭇 진지하고 흥미진진한 민호.
나의 현란한 쓰리 쿠션 탁구 기술을 보여주자 웃음보가 터집니다.
천장까지 이용해서 탁구를 치고 몇 십분이 지나고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늦게 탁구를 치면 밑에 집 아저씨가 올라올지 몰라. 그만하고 아까 말한 씨름 한 판만 하자."
씨름에 귀가 솔깃한 민호.
상호간의 인사를 한 후 쪼그려 앉아 서로 허리를 잡습니다.
역시 민호는 진지합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힘을 쓰게 했습니다.
스코어 조절을 하며 2 : 1 로 민호의 승!
갑자기 민호가 말합니다.
"아~ 한 판만 더 하고 싶다."
"그~그럴까?"
한 판 더 해서 2:2로 스코어를 만들었으나, 민호가 승부를 가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한 판을 더해 3:2로 민호의 승리!
내가 이기면 아마 또 하자고 할 것 같아서 져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요새 읽고 있는 동시책을 집어들자 민호가 말합니다.
"그건 다 읽었고, 너무 짧아서 싫어. 다른거 읽고 싶어"
"그럼 한 권만 네가 골라봐."
그러자 민호는 신중하게 고민을 하더니 책 한 권을 고릅니다.
'할머니 밥상' 이란 책이었습니다.
아이가 밥상 투정을 하자 할머니가 산과 들, 바다로 나가
찬거리들을 채집해서 반찬을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뭔 노무 찬거리들이 그리 많은지...
나물, 채소, 과일, 열매, 바다식물들...
그 많은 반찬 재료의 이름을 다 읽어준 후
휴~ 이제 자자 하니,
"아~ 더 읽고 싶다. "
"안돼~!"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그냥 냅다 불을 껐습니다.
뽀뽀도 하고, 잘 자라고 인사도 한 후
한참을 잠을 청하고 누워있었습니다.
민호가 다시 일어나 무슨 소리가 난다며 거실에 나갔다가 옵니다.
그리곤 또 화장실 간다며 나갑니다.
또 물 마시고 싶답니다.
내 미쳐...
아내 없는 밤은 너무나 깁니다.
반대로 남편 없는 밤도 얼마나 길까요?
남편들이여 일찍 들어갑시다! ^^
<결국 잠든 십자가 민호, 잘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