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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일 23시 42분 등록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 쌤앤파커스, 2009)

2011.3월 60쇄 발행


* 저자에 대하여

  지은이 김정운은 현재 명지대학교 교수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소장이다. 기업들이 강연 스케줄 잡기 가장 힘든 강사이자, 방송 매체 섭외 1순위이며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최고의 명강사’라고 소개된다. 1962년 서울 태생으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저서로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 열광>, <휴테크 성공학> 등이 있다.

 

 ‘김정운’은 팔뚝 굵은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상에 감사하며, 아침마다 그날 가지고 나갈 만년필 고르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거리의 망사스타킹을 보면 가슴이 뛰어 낚시가게 그물만 봐도 흥분하고, 자동차 운전석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목 놓아 따라 부르며 주책없이 울기를 좋아하는 사십 끝줄의 대한민국 남자다. 귀가 얇다 못해 바람만 불어도 귓바퀴가 귓구멍을 덮을 정도고, 한번 폭발하면 대로변에서 삿대질도 일삼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한번 마음에 담아두면 며칠 밤 잠 못자며 고민하는 소심남이기도 하다.


  제일 행복해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이 글 쓰는 일이라는 사람답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재미있게 읽히길 바라며, ‘재미없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는 저자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멋진 프로필이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는 ‘문명文明적 불만’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 교수는 ‘일상의 즐거움’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했다.

30~40대 기혼 여성들의 ‘기분 그래프’

남편이 막 퇴근했을 때, 기분이 아주 좋다가도 곤두박질치는 경향이 관찰됨

함께 있으면 행복해야 할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는 이야기 [9]


왜 우리는 이토록 행복하기 힘든 것인가? 삶은 왜 이다지도 힘겨운 것인가?

인간 문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를 ‘문명의 불만’으로 압축해 표현한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압하는 것을 기초로 생성된 ‘문명’은 그 본질에 있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게 프로이트의 결론이다. [9]


가장 본질적인 문제

‘사람’의 문제다. 문화심리학적으로 한국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는 게 재미없는 남자들’이다. 온갖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구호 뒤에 숨겨진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실체는 ‘재미없는 삶에 대한 불안’이다. [10]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쉽게 화내고, 자주 좌절하고, 사소한 자극에도 짜증부터 내는, 아주 전형적인 한국의 중년 남자. [11]


삶의 재미는 ‘내 이야기’가 있을 때 생긴다. 건강한 사회는 각자의 ‘내 이야기’가 풍부한 사회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12]


CHAPTER 1.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하얀 침대시트에서는 누구나 잘할 수 있다

가끔 나는 이런 황당한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15]


조명은 정서다. 형광등 아래에서 느끼는 정서와 백열등 아래에서 느끼는 정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백열등을 이용한 부분조명은 사람에게 지극히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17]

짧은 문장, 명확하고 직선적인 비유!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침실의 ‘백열등 부분조명’과 ‘하얀 침대시트’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정의 내리는 것을 ‘개념적 정의’라고 한다면, 조작적 정의는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행복을 아주 ‘심플하게’ 정의한다. 행복이란 ‘하루 중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불행한 것이다. 아주 기막힌 행복의 조작적 정의가 아닌가. [19]


근엄한 사람들은 ‘행복’과 ‘돈’은 상관이 없다고 힘을 주어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정 수준까지 ‘행복’과 ‘돈’은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카네만 교수는 행복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연봉이 9만 달러 이상인 사람’(약 1억 정도)은 ‘연봉이 2만 달러 미만인 사람’(약 2천 2백만 원)에 비해 두 배 이상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돈’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봉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9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 간에 행복의 차이는 별로 없다.

요약하지만 이렇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 한도를 넘어서면 돈과 행복은 별 상관이 없다.’ [19]


행복의 60%를 결정하는 내적, 외적 조건들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 외향적인 성격이어야 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일정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종교를 가져야 한다. 또한 건강하고 민주적인 국가에서 살아야 한다.’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능력’이 행복을 결정하는 나머지 40%가 된다. [20]


사는 게 재미있고 유쾌하면 사람들의 기본적인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다. 일단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기분 좋은 사람이 더 쉽게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 [21]


사는 게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은 창조적이며 타인들과 보다 협조적으로 행동한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는 훨씬 더 과감해진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시도하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돈의 지출까지 과감해진다. [21]


죽을 때 하는 후회 ‘껄, 껄, 껄’

 ‘보다 베풀고 살 껄!’

 ‘보다 용서하고 살 껄!’

 ‘아, 보다 재미있게 살 껄!’  [22]


삶이 재미있으면 저절로 베풀게 된다. 삶이 재미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관대해진다.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더 중요한 것은 재미있으려 노력하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재미는 자신이 유쾌해지는 상황과 느낌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23]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죽는 사람이 태반이다. 막연하게 좋은 것은 정말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한다. [23]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가 아침밥을 해주지 않는다

내게 그 착하고 어린 아내는 아침식사의 리추얼로 존재했던 것이다. 사랑은 리추얼(ritual, 의식)이다. 그런데 이제 그 아내가 집에 없고, 내 삶의 리추얼은 망가져버린 것이다. [27]


리추얼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형태상으로는 습관과 리추얼은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습관에는 ‘의미부여’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반면 리추얼에는 반복되는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된다. ‘사랑 받는다는 느낌’, ‘가슴 설레는 느낌’등등. 내 아침식사 장면에서는 아내가 따뜻한 빵을 내 앞에 두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맛있게 먹으라고 한다. 이때, 뭔가 가슴 뿌듯한 느낌이 동반되면 그 행동은 ‘리추얼’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있었음에도 이후 전혀 기억에 없다면, 그것은 단지 습관일 따름이다. 사랑이 식으면 그렇게 된다.

서로 상대방을 만져주는 스킨십과 같은 가장 원초적인 상호작용의 리추얼부터, 상대방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고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서로 손잡고 산책하는 일상의 리추얼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리추얼이 다양한 삶은 풍요롭다. 느끼는 정서의 차원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리추얼은 남성의 리추얼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28]


리추얼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도 바로 리추얼이다.

근대사회에서 집단 리추얼은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문화는 ‘정서공유의 리추얼’이다. 문화란 특정한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공유되는 정서와 리추얼이 없는 사회는 문화가 없는 것과도 같다. 어떠한 정서적 매개나 의미부여의 과정도 없는 기계적 구조만 남는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리추얼이 없는 삶은 정서가 메마른 건조한 삶이다. [30]


내 삶이 행복하려면 반복되는 정서적 경험이 풍요로워야 한다.

그런 정서적 경험이 꼭 일상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일상에서 즐거운 리추얼을 다양하게 개발하면 된다. 특별한 느낌과 의미를 부여하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삶은 즐거워진다. 즐거운 정서적 경험이 동반되는 까닭이다. [30]

=> 우리 가족 문화 만들기, 정서적 느낌을 가미한 작은 의식 만들기


나이가 들수록, 이런 종류의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추얼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준다.

내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즐거운 느낌이 반복되는 나만의 리추얼이다. [31]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한번 결정을 하게 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회하게 되어 있다.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내가 행한 일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면 후회란 있을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은 후회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37]


*후회의 종류 1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

아무 생각 없이 섣부르게 뛰어든 행동에 대한 후회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 흔히 하는 후회 [38]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닐 로즈 교수 <IF의 심리학>

로즈 교수에 따르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결정적인 차이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최근’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전’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다. 뒤집어 말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는 반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바로 끝난다는 이야기다. [39]


B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아니 평생토록 후회하게 된다. “그때, 그 임용고시를 봤어야 하는데...” 하면서. [39]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가 정신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는 이야기다.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은 반드시 오래, 아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40]


보편적으로 여자에 비해 남자의 후회가 훨씬 더 오래가며,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40]


*후회의 종류 2

‘자기계발’에 관련된 후회

남녀 간의 큰 차이 없음

‘인간관계’에 관한 후회

남자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를, 여자는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훨씬 더 많이 한다  [41]


인간이라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후회라면 짧게 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말까를 망설인다면 일단 저지르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한번 세운 계획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 [42]


첫사랑의 그녀가 나를 모른다 했다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르게 지각하고,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만약 내 아내나 내가 결혼한 이후로 동일한 사건만을 기억한다면, 도대체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51]

우리의 춘천에 얽힌 기억 이야기.


우리가 원치 않는 기억이나 생각을 억압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억압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애증과 같은 모순적 감정도 결국 이 억압과 집착의 변증법적 관계인 것이다. [53]


‘억압과 집착의 악순환’

그럴 때는 걷는 것이 제일 좋다.

깊이 박혀 있는 대못 같은 기억들을 억압하려 해선 절대 안 된다. 다른 사소하고 다양한 자극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면, 그 대못은 대못대로 다양한 자극들의 일부가 되어 작아진다.

우울한 생각이 들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 [54]

=> 시간이 약일 때


어느 날부턴가 김혜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삶의 재미와 행복이 뭔지 알아야 즐겁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일궈나가야 하는 구체적 삶의 조건들도 ‘행복과 재미’라고 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58]


진정한 의사소통 행위에는 ‘정서공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59]


중년 사내들의 마라톤 열풍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 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느끼고 싶은 것이다.

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62]


이 땅의 사내들은 자신과 마주 대하며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내 진정한 존재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소통 행위의 부재로 야기된 불안은 소통의 회복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62]


폭탄주는 문제로부터 도피하려는 아주 심각한 퇴행적 현상이다.

폭탄주는 집단 자폐증상이다.

술이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세계관을 공유하거나,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서를 공유하려고 마시는 것이다.  [63,65]


‘피부자극결핍증후군’

만지는 행위는 상호작용의 가장 기본적 형태다. 우리가 남의 몸을 손으로 만질 때, 우리의 손은 상대방의 몸에 의해 만져진다. 만질 때 만져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껴안는다. 만지고, 또 만져지고 싶기 때문이다. [66]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다. [67]


CHAPTER 2. 계절이 바뀌면 남자도 생리를 한다

봄에는 발정하는 수컷처럼 설레야 옳다

봄이 되었는데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다. [72]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가능케 하는 심리적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지각된 자유’라고 주장한다. 행복은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은 것은, 많이 벌수록, 높아질수록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착각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76]

=> ‘인생의 성취’ 편


심리적으로 경험하는 자유는 실제 자신을 둘러싼 공간의 자유로움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 공간이 넓어야 정서적으로 안정될 뿐만 아니라, 주체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며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이 심리적 공간은 일상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공간의 넓이만큼 커진다는 사실이다. [77]


시간이 되면 자꾸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에 나갈 여유가 없을수록, 더욱더 짬을 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퇴근하면 아이들 손잡고 동네라도 한 바퀴 돌아야 한다.

공연히 불안하고, 쓸데없는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질수록 심리적 공간을 넓혀야 한다. [79]


망각할수록 삶은 만족스러워진다

이런 종류의 과도한 유년기의 충격은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다. [84]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쇠퇴의 반대급부로 얻어지는 지혜는 ‘선택의 범위를 줄이는 능력’이다.

불필요한 것을 제가해나가는 망각과 더불어 얻어지는 지혜는 ‘통찰과 직관’의 능력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척 보면 아는’ 능력이다. 논리적인 설명이나 합리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현명한 결정이었음이 판명된다. 실제로 자신의 행위를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사람은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88]


세세한 것에 대한 기억력이 감퇴할수록 추상화와 통찰의 능력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직관과 지혜는 논리적 판단과 합리적 설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준다. [90]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합리성과 논리성에 근거한 판단’이 오히려 실패할 확률도 높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직관과 느낌에 근거한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수록 우리의 삶은 더 살 만한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 [90]


외로움에 천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아는가?

내게 슈베르트는 면역시스템이다. 존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하나의 세포가 유지되기 위해 세포 안과 밖을 구별하고, 막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해야 한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켜준다. 난생 처음 ‘내가 누군가’를 처절하게 고민했던 그 베를린의 밤거리를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바쁠수록, 정신없을수록 내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여겨지는 어느 회사의 부장, 사장, 교수와 같은 내 사회적 지위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 본질과 상관없는 것들이다. [100]


여자는 남자를 떠나고...

내 나이 또래의 고만고만한 여학생들에게 나는 세계문학전집 여주인공들의 이미지를 덧입혀 사랑을 고백하고, 쫓아다녔다. 그렇게 자가발전된 환상에서 시작한 내 사랑은 항상 몇 달 안에 덧나곤 했다. [101]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시간이 흐를수록 여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바라게 된다. 그러나 보니 자꾸 두려워진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높아진다고 느낄수록 자꾸 두려워진다. 그래서 그때 바로 그 책, <희랍인 조르바>를 다시 찾아 읽는다. [105]

아이들에 대해 자꾸 욕심이 많아질 때,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맘이 희석될 때, 건강에 이것저것 덧붙이는 주석들이 많아질 때, 나는 어떤 것을 돌아볼까. <청춘합창단>오디션 중 외아들을 잃은 부부가 노래하는 장면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중얼거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다. 누구나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 그런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중심적 언어’라고 한다. [107]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타인의 사회적 지위나 연봉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며 한없이 움추러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여행이란, 목적지에서 밥 해먹는 시간뿐이다. 준비과정은 여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여행은 준비할 때부터 시작된다. 여행지를 선택하고, 장을 보고,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사는 것도 당연히 여행에 포함된다. 가는 길, 돌아오는 길도 여행에 포함된다. 그래서 아내들은 차안에서 아이들과 먹을 과자, 과일, 커피를 챙긴다. 고속도로 휴게실에도 꼭 들러 아이스크림과 호두과자를 사야 한다. 갓 구운 따끈한 호두과자를 소프트아이스크림에 찍어먹는 그 맛 또한,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109]

가족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장거리 여행만이 아니라도 꼭 차 안에서 먹을 간식과 물과 과일을 챙기고 아무리 배불러도 휴게실 호두과자는 빼먹을 수 없다. 혼자 일이나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도 호두과자를 꼭 챙겨간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의 설레임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와 아이들과 할 이야기가 없다고? 기껏 이야기를 꺼내야 옆집과 비교로 이어지고, 양쪽 집안 이야기로 이어져 결국 좋은 꼴 못 본다고?

가족여행을 가는 것은 공통의 소재와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이야기거리를 만들러 가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우리 가족만의 스토리텔링을 하러 가는 것이다. 목적과 수단이 항상 기억되어야 한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항상 불안하다. 타인의 완성된 결과와 내 미숙한 결과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 지향적 삶’에는 어떠한 즐거움도 없다. 결과를 이루는 순간, 또 다른 결과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 지향적 삶’을 하버드 대학 심리학고의 엘렌 랑거 교수는 ‘mindfulness’라고 정의한다. 한국어로는 ‘마음 챙김’이라고 번역하지만, ‘정신 차림’으로 번역해야 옳다. 반대로 ‘결과 지향적 삶’은 ‘mindlessness’라고 정의한다. ‘넋이 나감’ 혹은 ‘정신없음’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넋 놓고, 정신 못 차린다는 이야기다. [109]


결과만 중요시하고 과정을 생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넋을 놓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까닭 없이 불안한 것이다. 내가 남은 세월 이뤄낼 수 있는 결과라는 것도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이유 없이 막 화가 나는 것이다.

희랍인 조르바가 가르쳐주는 자유의 내용은 바로 이 결과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물론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향해가는 그 여정도 그 목표만큼 내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110]


나는 매일 매일 교복(?)을 입는다

“당신, 이젠 제발 좀 혼자 나가 놀 수 없어?”

다들 착각한다. 열심히 일해 은퇴하면 행복한 가정에서 다복한 노후를 즐길 수 있으리라.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해지자!’고 구호 외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몸은 함께 살았지만, 평생토록 함께 기쁨은 느껴본 적이 없는 부부가 어찌 갑자기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제 이혼은 철없는 젊은 부부의 문제가 아니다. 황혼이혼이 대세다. 살만큼 다 살고 이혼한다는 이야기다. [114]


‘은퇴남편증후군’ [115]


일생 동안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지위로만 확인해온 남자 자신들이 문제다. 이 땅의 사내들이 불쌍해지는 것은 잘못된 존재 확인 방식 때문이다. 이제까지 아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존재를 확인해본 적이 없던 이들에게 사회적 지위의 상실은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 존재 확인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19]


나는 절대 스스로 확인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어떤 것에 의해 확인되는 존재다. 그러나 나를 확인해야 하는 그 대상이 쉽게 사라지는 것이라면 존재불안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이다. [119]


내 존재는 내가 즐거워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로 존재를 확인하면 관계에서 확인되는 존재 역시 언젠가는 다시 작동하게 되어 있다.

덤으로 처칠은 우리에게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한 가지 알려준다.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를 개발하라는 것이다. [121]


우리 집 뒷산에는 ‘형제약수터’가 있다

허나, 계절은 타라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사계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126]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할 자신이 없는 거다. [127]


이제 ‘형제 약수터’에 오르는 일은 우리 식구의 정기적인 행사가 되었다.

가족이 모두 약수터를 방문하는 날은 우리 가족이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과일을 깎고, 보온병에 커피와 코코아를 담는다. [129]


‘형제 약수터’에 오르는 일은 우리 식구가 최근 발견한 행복의 리추얼이다. 행복과 재미는 리추얼로 확인된다. 리추얼을 통해 사람은 서로의 정서를 흉내 내기 때문이다. [129]


이 세상의 모든 가족은 이렇게 서로의 기쁨, 슬픔을 공유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족을 떠나 먼 곳에 있으면 그토록 가족이 그리운 것이다. [132]


CHAPTER 3. 도대체 갈수록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아, 그렇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메타코그니션’

‘생각에 대한 생각’은 자신을 돌이켜 보는 자기반성 능력의 심리학적 기초가 된다. 나에 대해 반성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판단하는 능력인 것이다. [139]


사람은 바쁘면 바쁠수록, 정신없으면 정신없을수록, 자기반성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형편없이 망가지는 까닭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는 메타코그니션 능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사회적 성취가 크면 클수록 반성적 거리는 사라진다. [140]


입 꽁지가 내려간 만큼 우리는 불행해진다

문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명함을 건네는 행위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의 권력관계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다. 서열이 정해져야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회적 지위, 연배의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상호작용의 룰이 애매한 상태처럼 견디기 힘든 상황은 없다. [142]

사회적 지위관계가 미약한 여성들의 집단에서는 ‘나이’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서를 공유하는 일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의 ‘정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일지라도, 동일한 정서를 느끼는 경험을 통해 동일한 의미를 유추해내는 의미 공유의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144]


본능적인 정서 공유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145]


내 삶이 재미없으니 상대방의 분노와 적개심 같은 부정적 정서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반응하는 반면, 기쁨과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 정서에 반응하는 법은 아예 흔적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모든 인간관계가 스트레스가 된다. [147]


긍정적 정서 표현이 가능하도록 볼의 근육을 되돌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가능한 한, 권력관계와는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자주 갖는 것이다.

재미는 전염병이다. 재미는 정서 공유를 전제한다. 재미있으면 볼근육은 저절로 올라간다. [147]


‘아침형 인간’? 이건 정말 아니다

빨리 흥한 나라일수록 빨리 망한다.

한 시대를 발전시켰던 동력은 그 다음 시대에는 발전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역사의 변증법’ [151]


‘근면, 성실’이라는 가치가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이야기다.

참고 인내하는 근면, 성실은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다. 참고 인내하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창조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끼고, 재미있으면 불안해지는 각 개인들이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다. [152]


21세기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근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152]


사는 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 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153]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21세기 핵심가치는 ‘재미’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 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창의적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그래서 재미와 창의성은 심리학적으로 동의어다. [153]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예술적 작업의 특성을 ‘낯설게 하기’라고 했다.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창조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 있는 것이다.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 ‘창조적 사고’다.

이를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맥락적 사고를 한다’고 한다. 사물을 이미 정해진 맥락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제와 오늘은 전혀 다른 맥락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바보 같은 사람은 맥락을 보지 않고 자신만 바꾸려는 이들이다. [154,155]


인간이 매년 축제를 벌이는 이유는 맥락을 바꾸기 위해서다. 매일 똑같은, 생명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의 맥락을 바꾸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축제를 벌인다. 축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행위다. 운명으로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삶의 시간을 바꾸는 행위가 축제다. 타자에 의해 정해진 객관적 시간의 흐름에 내 삶이 내던져 있을 때, 인간은 두려움을 느낀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삶을 두려움과 공포로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축제를 통해 내 삶의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축제를 통해 삶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축제는 맥락 바꾸기, 혹은 낯설게 하기의 구체적 실천인 것이다. [155]

=> 의미 부여하기, 삶을 축제로 만들기


노력한다고 창조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력하는 것과 맥락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자만이 꿈꿀 수 있다. 현재의 한계를 떠난 가능성의 영역은 삶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르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근면 성실한 산업사회에서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었다. 그러나 재미가 시대정신인 21세기는 다르다.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156]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이 사실이 나를 자유케 한다

사람의 성격은 안 바뀐다. 적어도 성공처세서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종류의 성격은 절대 안 바뀐다. 그러나 바꾸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의 성격을 ‘다르게’ 규정하면 양상은 아주 달라진다. 고립된 개체로서의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사회적 컨텍스트, 즉 맥락이 달라지면 성격은 아주 쉽게 변한다. 인간의 성격은 사회적 맥락과의 통합된 전체란 이야기다.  내 성격은 동일하지만 사회적 맥락과의 관련성에 따라 어떤 때는 좋은 성격이 되고, 어떤 때는 나쁜 성격이 된다는 이야기다. [159]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인식

자신을 둘러싼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 즉 맥락적 사고는 ‘재미’, 더 나아가 성공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삶의 재미는 바로 이 맥락을 바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만이 맥락에 따라 자신을 바꿀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줄 안다. [160]


객관적 맥락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 맥락을 인식하는 주관적 포지셔닝이 존재해야만 객관적 맥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주관적 관점이 객관적 맥락에 선행한다는 이야기다.

객관적 맥락에 선행하는 자신의 관점을 발견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관점을 변화시켜 맥락을 바꿀 때,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행위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재미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자신이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재미를 결정짓는다고 설명한다. [162]


내 삶의 재미를 찾아야 한다. 그 재미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맥락을 바꾸고 재미를 찾아,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할 때, 내 삶의 맥락이 바뀐다. 내 삶의 게슈탈트가 바뀐다는 이야기다. [163]


인생이 재미없는가? 원근법으로 보라

대부분 인생을 바꾸려면 관점을 바꾸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관점인지, 관점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바꾸라고만 한다. 그래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관점의 본질을 깨달아야 관점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166]


‘원근법’, ‘관점’ 퍼스펙티브 perspective


세상은 기준을 정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문제는 내가 내 삶의 소실점을 정하고 있는가다. 소실점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재미’다. 재미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일 때만 얻어진다. [169]


남자들은 주말마다 골프장으로 탈출한다

골프는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골프는 운동이 아니다. 이야기다. 한국 남자들이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네 시간 이상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골프밖에 없다.

무슨 일인들 이야기가 없겠냐마는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상실한 중년들에게 골프만큼 공통의 화제를 만들어주는 일은 없다. [176]


이야기에 굶주린 대중들은 스타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며 자신의 허전한 존재욕구를 충족시킨다. [180]


내 피부로 느끼는 삶의 기쁨이나 슬픔에 관한 이야기, 내 가족,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자잘한 즐거움과 설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다. [181]


산 정상에 오르면 모두 멀리 본다.

빨리 달리는 차 안에서도 멀리 봐야 한다. 그래야 멀미가 나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높을수록, 빠를수록, 멀리 봐야 한다. [183]


CHAPTER 4. 우리는 절대로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

잘 보라, ‘독수리오형제’는 절대 ‘형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확인되어야 할 삶의 재미와 놀이를 통한 정서 공유, 의사소통을 통한 존재 확인의 과정이 생략된 이들에게는 오직 ‘지구를 지키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187]


존재하지도 않는 ‘타인의 눈길’이 두려워... [188]


사는 게 재미없는 이들은 세상이 ‘뒤집어지길’ 원한다.

‘엄청난 재미’에 대한 환상이다. [189]


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삶이 재미없다는 이야기다. [191]


재미의 사회적 구성을 가능케 한 조건은 주체의 성립이다. 신분, 계급, 친족이라는 봉건적 아이덴티티로부터 자유로워진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주체가 근대에 들어서 등장하면서, 재미는 비로소 개념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한다. 이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억누르는 구조적 억압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주체적 행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전에 집단적 의미부여의 행위로만 존재했던 ‘역사 서술’을 이젠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2]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현상은 삶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미부여 과정이다.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이렇게 느끼는가에 관해 더 이상 조직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 내 생각과 느낌에 관해 스스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 [193]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위는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다. [193]


이야기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생략되어버리는 까닭이다.  [195]


모여 앉으면 누가 아파트 팔아서 돈 번 이야기나 주고받는 삶은 삶이 아니다. 자기가 찾은 작은 즐거움에 관해 가슴 벅차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진짜다.

가슴 설레는 나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삶이 진짜 재미있는 삶이다. [196]


그러니까 제발 너만 말하지 말란 말이야!

아무리 상처가 깊은 일이라도 이유가 분명하면 잠을 잘 잔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유가 분명치 않으면 밤새 잠 못 자고 고민하게 된다. 원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들을 합리적 인과관계로 해석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197]


스스로에게조차 설명되지 않는 사태처럼 괴로운 것은 없다. 특히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설명까지 되지 않는 일을 겪으면 정말 밤새 잠 못 이룬다.

자기 자존심에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자신의 인지체계를 바꿔버린다. [198]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사람들에게는 자기존중감, 그러니까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 자존감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아주 중요하게 작동한다. [199]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귀중한 존재로 여겨질 때, 자존감은 유지된다. 타인에게 비춰진 객관화된 나의 모습을 통해 내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을 헤겔은 ‘인정투쟁’이라 불렀다.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상대방의 일방적인 훈계와 계몽의 대상이 되면 이 자존감은 여지없이 망가진다. 그리고 아주 묘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199]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줄 때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자존감은 자신이 진지한 의사소통의 상대로 여겨질 때만 지켜진다. [200]


인간의 기초적인 상호작용 형태인 의사소통은 두 가지 원칙에 의해 유지된다. ‘순서 바꾸기’와 ‘관점 바꾸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 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200]


상대방에게 도무지 이야기할 순서는 물론, 반응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이런 종류의 실수는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상대방을 계몽과 설득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202]


‘순서 바꾸기’가 망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불안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나 스스로가 먼저 설득당해야 한다. 스스로도 설득당하지 않는 이야기에 상대방이 설득될 리 만무하다.

상대방은 본능적으로 안다. 확신에 찬 이야기와 자신 없는 이야기의 본질적인 차이를. 바로 ‘순서 바꾸기’의 매끄러움 덕분이다.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은 상대방이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표정, 몸짓, 말투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에 맞춰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필요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도 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 불안한 이들은 이 자연스러운 ‘순서 바꾸기’를 망각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그저 자기주장만 반복할 따름이다. 그러나 불안은 전염병이다.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203]


‘관점 바꾸기’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이다. ‘순서 바꾸기’라는 기본 능력이 갖춰지면 이제 ‘관점 바꾸기’라는 기본 원리를 익혀야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204]


과도한 자기확신으로 인해 타인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안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205]


사는 게 재미없는 상사와 일하면, 죽고 싶다

영화 보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영화 속 주인공의 관점을 빌려오기 때문이다.

그 지역, 그 나라의 문화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관점을 찾아내느라 여행을 가는 것이다. 단지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바쁜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말 그대로 관광일 뿐이다. [209]


삶이 재미없다는 것은 관점 바꾸기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에겐 반드시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210]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 그리고 ...

남의 정서를 흉내 내면서 우리에게는 ‘이심전심’의 능력이 생긴다. 서로의 정서를 흉내 내는 것으로부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18]


감정정체란,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물처럼 순환되어야 하는데 러시아워의 꽉 막힌 도로처럼 감정이 표현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현상을 뜻한다. [218]


감정정체를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식은 ‘내적 민주화’다. 내적 민주화란 자신의 정서적 장애와 결핍증후군을 인식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적 민주화는 ‘치료적 문화’를 통해 가능하다. 치료적 문화란 함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뜻한다. 강요나 억압에 의해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정서의 공유를 통한 의사소통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220]


정서 공유의 과정을 생략하고 월급만으로 사람을 움직이려는 것은 곳곳에 구멍 난 수도관에 물을 흘려보내는 일과 마찬가지다. [224]

 

해병전우회, 고대교우회, 호남향우회의 공통점

서구적 합리성의 근거는 ‘나’라는 주체의 성립이다. ‘나’가 있어야 그에 상응하는 ‘너’라는 존재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와 ‘너’의 동등한 관계로 만날 때, ‘우리’가 가능해진다. [226]


서구인들에게는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성립된다면, 한국인들은 ‘우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난 후에 비로소 ‘나’와 ‘너’가 성립된다는 이야기다. [227]


CHAPTER 5.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이건 국정원도 모른다, 독일 통일은 내가 시켰다

인간의 경험은 아주 구체적인 감각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감각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244]


맥시마이저와 새티스파이저의 ‘황야의 결투’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란, 그 본질에 있어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당화하는 사후예측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 사후예측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의미부여와 정당화 없이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대처하는 자세로 원칙론보다는 상황론이 훨씬 더 유연하고 편안한 방식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칙론자는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해서 완벽하게 준비한 이후에 비로소 행동에 옮긴다. 상황론자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면 곧바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쇼핑할 때도 그렇다. 인터넷으로 며칠에 걸쳐 검색하고 시장에 나가 실물을 확인하고 가격 비교까지 끝낸 이후에 행동하는 사람과 일단 자기가 원하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사고 보는 사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앞뒤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행동하는 원칙론자를 심리학에서는 ‘맥시마이저maximizer’라고 부른다. 무질서한 현상을 어떤 원칙에 따라 정리하여 무언가를 극대화하려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상황론자들은 ‘새티스파이저satisfiser’라고 부른다. 웬만하면 만족하려는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새티스파이저’쪽이 주관적 행복감을 더 느끼며 편안한 삶을 산다고 한다. 반대로 ‘맥시마이저’는 완벽주의에 대한 편집증과 자책감에 빠져 삶의 만족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이 섞여 살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상황론자들이 일을 저지르며 치고 나가고, 원칙론자들은 쫓아다니며 정리하는 방식이다. [253]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셔보라

매일 아침 나는 만년필 수집상자를 열고, 오늘 가지고 나갈 만년필을 고른다. 하루도 빼놓지 않는 나만의 아침 리추얼이다. 아침마다 이 만년필 저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내는 밉지 않게 빈정댄다. 이 또한 아내의 정기적인 아침 리추얼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내가 바로 이런 내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을. 물론 착각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 편하다. 누구나 한 여자와 오래 살려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즐거워하는 습관을 가능한 한 많이 개발해야 한다. [258]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대나무 만년필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릴 적 꿈꿨던 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충족되지 않는 어릴 적 욕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나무 만년필은 내게 단순히 욕구충족의 수단만이 아니다. [260]


대나무의 마디를 만질 때마다 나를 짓누르는 내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내 두려움은 다름 아닌 ‘나이를 먹는’ 일이다. [260]


대나무 만년필 뚜껑의 마디처럼, 삶의 시간은 마디를 만들 때 통제 가능해진다. 사긴의 흐름이 두려운 것은 방향도 알 수 없고, 그 속도 또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속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하루의 삶의 속도=1/나이’

열 살 먹은 아이의 하루는 1/10이다. 오십 먹은 사람의 하루는 1/50이다. 이 공식에 의하면 오래 살수록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를 심리학자들은 ‘회상효과’로 설명한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삶의 시기를 길게 느끼고,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시기는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가장 분주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여겨지는 40~50대의 기억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정신없이 바쁘기는 했지만 별로 의미를 부여할 일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재미없이 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의 기억들은 모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 벅찬 일들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장기기억장치로 저장하는 정보처리 과정이 매번 활성화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들이 ‘그저 그런’ 것들이 된다. 그다지 기억해야 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61-262]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바로 삶의 마디를 만드는 일이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삶의 마디가 있을 때만 삶은 살 만한 것이 된다. 이 마디를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축제’다. 내 청춘의 삶이 활어처럼 펄떡거렸던 까닭은 온통 축제로 가득 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내는 설날, 추석 같은 명절 또한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아두기 위한 ‘마디 만들기’축제다. 축제를 통해 시간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축제를 할 때마다 시간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축제는, 영원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마치 매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내 삶의 통제력을 높이는 수준 높은 문화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삶의 축제는 사라진다. 삶이 매듭지어지지 않고 마디가 없으니,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63]


대나무의 마디는 속이 비어 있는 그 가느다란 나무를 20~30미터까지 올라가게 한다. 마디가 촘촘하고 튼튼한 대나무는 웬만해선 부러지지도 않는다. 마디가 있는 삶은 천천히, 그리고 의미 있게 흘러간다. 기억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 사건을 기억하는 일이 내 삶의 가치를 높여주지 않는다. 나와 관계없는, 허접한 기억들로 인해 내 삶의 속도는 더욱 정신없어진다. 마디가 없이 그저 뻣뻣하게 위로만 올라가는 삶은 언젠가는 한 번에 부러지게 되어 있다.

내 삶에서 기억해야 할, 의미 있는 일들을 꼼꼼히 챙기는 일만이 내 삶의 속도를 낮춰준다. 올해에는 아주 완벽하게 혼자 보내는 휴가를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마디가 없었던 내 삶에, 마디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다. [264]


도대체 댁은 누...구...세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심리학에서는 ‘아이덴티티’라고 한다. 즉, 어떤 것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이 끊임없는 노력이 곧 삶의 내용이다. 혼자, 고립된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자신이 하는 일, 사회적 관계 등등. 그러나 세상에 바보 같은 짓이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사회적 지위는 반드시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지위로 미래를 살아가는 것처럼 서글프고 초라한 일은 없다. [265]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266]


내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어떤 일이 되었든 상관없다.

내가 헤맬 때, ‘나’와 ‘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아 헷갈릴 때, 내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비결이다. [267]


한가함을 즐기는 것을 그리스어로 ‘스콜레scole'라고 한다. 여가를 의미하는 ’레저leisure', ‘학교school'로 발전했다. 서로 상반되는 두 단어가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학교나 여가나, 그 본질은 한가로움을 즐기는 동일한 심리적 과정이다. 한가로움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 것을 그리스의 현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즐거운 일은 공부하는 일이다.

학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267]


가장 훌륭한 노후대책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일이다. 은퇴한 후의 인생도 내 인생이다. 내 전체 인생의 1/3이나 된다. 그저 죽기만 기다리기에는 너무 귀하고 아까운 시간이다. [268]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공부하는 것과 더불어, 내 안의 심리적 상태를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유지해야 하는 적정 각성수준이 있다. 가장 상쾌하고 즐거운 기분이 유지되는 심리적 상태를 뜻한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일정한 각성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일정한 심리적 각성수준이 있다.

적정 각성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자극과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외부의 자극이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각성수준보다 높으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진다. 이때는 쉬어야 한다. 만약 외부의 자극이 너무 낮으면 지루하거나 심심해진다. 이때는 놀아야 한다.

쉰다는 것은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휴식休息’이라는 한자가 그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휴식의 한자를 풀어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스스로自의 마음心을 돌이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쉬는 것이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내 안에는 내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양한 ‘나’가 존재한다. 남편, 아버지, 선배, 후배 등등. 이 다양한 나를 불러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쉬는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한 가지 ‘나’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주도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나’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놔둬야 한다. 쉰다는 것은 이렇게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270-271]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271]


식욕, 성욕은 인간의 욕구가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산다. 행복하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우리는 감탄하려고 산다.’ 감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274]


아기의 아주 섬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모든 엄마는 어쩔 줄 모르며 감탄한다. [278]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아기의 섬세한 변화를 눈치 채고 감탄해 주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과 다른 포유류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인간만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기의 변화에 감탄하며 그 사소한 변화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문화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인간의 모든 발달은 상호작용에서 먼저 나타나고 내면화되어 개인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 ‘유도학습’ ‘적극적 교육’ [281]


인간은 끝없이 감탄해야만 한다. 죽을 때까지 누구로부터든 감탄을 받아야만 한다. [282]

 

우리는 감탄하려고 산다, 아닌가?

에펠탑을 보고 ‘감탄하러’가는 것이다.

바다 보고 “우와~!” ‘감탄하러’ 가는 것이다.

산꼭대기에 올라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우와~!”하며 감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날 보고 끝없이 반복해서 해준 그 감탄이 그리워서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도 나를 보고 감탄해주지 않는다. 감탄할 일도 없다. [285]


골프

허나 그 다양한 삶과 문화의 영역을 제쳐두고 오직 산비탈 한구석에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감탄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외된 삶은 없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음악회도 열심히 가야하고, 미술관도 아내와 팔짱 끼고 가야하고, 축구장과 야구장에 아이들 손잡고 가야 하는 것이다. [286]


예술을 통한 가장 중요한 정서적 경험을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장엄함’이라고 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엄청난 자연의 풍광 앞에서, 폭풍우 치는 바다나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서, 우리는 말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그 벅찬 느낌을 그저 숨 막히도록 감탄할 뿐이다. 칸트는 바로 이 ‘숭고함’ 혹은 ‘장엄함’의 경험이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예술, 종교의 목적은 바로 이 숭고함과 장엄함이라는 궁극적 경험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지적 능력으로는 개념화할 수 없는 이 초월적 영역은 숭고함이라는 미학적, 정서적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의 구체적 생활을 자극하고 변화시킨다. 숭고함의 경험을 통해 감성과 이성이 화해하게 된다는 것이 칸트 미학의 핵심이다.

감탄은 이 숭고함과 장엄함의 구체적 반응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고 개념화할 수 없으나, 삶의 가장 궁극적 경험이 우리에게 와 닿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감탄이다. [288]


아무도 자신을 보고 감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가면 감탄은커녕 책임만 늘어난다. 집에 오면 아내는 돈 이야기밖에 안 한다. 아이들은 클수록 내 곁에 오지 않는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는 놀러 가자면 흥분해서 따라 나서고, 내가 조금 늦기만 해도 전화를 해, “아빠, 지금 어디야?”했다. 그런 그 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함께 놀러 가기는커녕, 얼굴 보기도 힘들다. 어쩌다 말을 걸어도 우물쭈물, 영 신통치 않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느낌이다. 어디서도 이 감탄의 욕구는 채워지질 않는다. [288]


내 삶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이 감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문화적, 예술적, 종교적 체험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289]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다. 사회적 지위나 부의 여부와 관계없다. 내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하루 종일 어떠한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으로 매개된 감탄이 없다면,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돈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한도를 지나치게 되면 돈은 내게 더 이상 감탄을 주지 않는다. 걱정과 불안의 원인이 될 뿐이다.  [290]


내 가족이 행복한가 아닌가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내 아내, 남편, 우리 아이들이 나와 있을 때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가 행복의 척도다. [291]


우리가 계속 함께 사는 이유는 감탄하고 감탄 받고 싶어서다. 서로 살을 부대끼는 관계 속에서 그 작은 감탄을 얻고 싶어 가족을 꾸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이다. 감탄하고 감탄 받고 싶어서. [293]


에필로그 - 캠핑카를 사야 한다

나는 ‘재미’와 ‘행복’이라는 가치가 다양하게 구현되는 한국사회를 꿈꾼다. 문화다양성이란 재미가 다양한 사회를 의미한다.


* 내가 저자라면

  일부러 저자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인기강사인 비결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솔직하다. 강연 요청을 거절하는 비서가 따로 있을 만큼 인기가 있고 ‘잘 놀아야 한다’고 강의하러 다니느라 요즘 잘 못 놀고 있다고 잘난 척을 하지만 그것 또한 그 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습고 재미있는 표현과 문체, 적나라한 사례들로 책 또한 처음에는 쉽게 느껴지지만 차츰 자신의 이야기가 ‘깊은 학문적 성찰의 결과’라는 주장에 긍정하게 된다.   ‘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는 걸까?’라는 절박한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문화심리학적 사례와 연구결과를 종합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걸러내어 이 책을 집필했다는 설명이 납득이 간다. ‘재미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고 성공한 삶이다’라는 일관된 요지를 어려운 전문용어와 이론을 통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감정이입을 시킨 후 풍부한 이론과 논리적인 설명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는 그의 글은 확실히 매력 있다. 피식피식 웃어가며 재미있게 읽지만 읽다보면 배우고 깨닫고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숨은 내공이 느껴진다. 목차를 읽고 정리하다 보면 이런 점이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아래 왼쪽의 소제목들과 각각의 주제를 정리한 것을 살펴보자.

 

하얀 침대시트에서는 누구나 잘할 수 있다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라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가 아침밥을 해주지 않는다

나만의 리추얼을 만들어라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하라

첫사랑의 그녀가 나를 모른다 했다

‘억압과 집착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몸을 움직여라

어느 날부턴가 김혜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큰 가슴(모성으로의 회귀), 마라톤(자학적 존재확인), 폭탄주(집단 자폐증상), 향락산업의 발달(자연스런 스킨십의 박탈)은 모두 의사소통 장애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봄에는 발정하는 수컷처럼 설레야 옳다

자주 밖으로 나가 심리적 공간을 넓혀라

망각할수록 삶은 만족스러워진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 나가는 망각의 지혜와 ‘통찰과 직관’의 능력을 믿어라

외로움에 천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아는가?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의 본질을 기억하라

여자는 남자를 떠나고...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 또한 내 삶임을 잊지 말라

나는 매일 매일 교복(?)을 입는다

사회적 지위는 자신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 집 뒷산에는 ‘형제약수터’가 있다

정서공유의 리추얼을 개발하라

아, 그렇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자기반성능력을 유지하라

입 꽁지가 내려간 만큼 우리는 불행해진다

권력관계와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자주 가져라

‘아침형 인간’? 이건 정말 아니다

근면성실이 산업사회의 핵심원리라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핵심원리는 재미(=창의력)이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이 사실이 나를 자유케 한다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어 삶의 재미를 찾으면 삶의 맥락이 바뀐다

인생이 재미없는가? 원근법으로 보라

내 삶의 기준을 내가 정할 때 관점이 바뀌고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남자들은 주말마다 골프장으로 탈출한다

가슴 설레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은 삶이 행복한 삶이다

잘 보라, ‘독수리오형제’는 절대 ‘형제’가 아니다

일상의 재미와 정서공유, 의사소통을 통한 존재확인 과정을 잊지 마라. 

그러니까 제발 너만 말하지 말란 말이야!

‘순서 바꾸기’와 ‘관점 바꾸기’는 상대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의사소통의 기본원리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상사와 일하면, 죽고 싶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은 관점 바꾸기가 안 되고 의사소통이 문제가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 그리고 ...

자연스런 정서 공유의 과정을 통한 의사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해병전우회, 고대교우회, 호남향우회의 공통점

정서공유를 통해 공동체가 구성된다

이건 국정원도 모른다, 독일 통일은 내가 시켰다

구체적인 감각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사회주의의 몰락은 ‘재미와 행복’이라는 21세기 시대정신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맥시마이저와 새티스파이저의 ‘황야의 결투’

원칙론자들은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셔보라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마디를 만드는 것만이 삶의 속도를 낮춰준다

도대체 댁은 누...구...세요?

자신의 존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확인된다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성찰하여 노는 것(대상에 몰입하는 것)과 쉬는 것(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조절해야 한다

식욕, 성욕은 인간의 욕구가 아니다

감탄하는 것은 인간만의 욕구이다

우리는 감탄하려고 산다, 아닌가?

감탄은 삶의 궁극적인 경험이 구체화된 것이다

감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체험을 하라

감탄하고 감탄받으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만약 이 책의 목차가 왼쪽과 같았다면 이만큼 인기가 있었을까? 잘 짜인 목차와 매력있는 제목의 힘을 한 눈에 알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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