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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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새 내린 눈이 여우숲을 온통 뒤덮었습니다. 나는 오전 내내 눈을 쓸었고 이 숲에 있는 붉은 여우 토피어리는 그 눈을 뒤집어 쓰고 종일 햇살을 쬐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숲이 눈 속에 갇히기 전, 우리는 재미있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여우숲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주민 열 두 명의 소박한 여행이었습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공부를 목적으로
한 여행이었습니다. 급한 하드웨어를 1차적으로 마무리한 우리
여우숲이 장차 어떻게 그 진화의 방향을 잡아야 할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지, 숲을 주제로 이미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의 장소는 동네 목수가 추천하여 이사회의 적극적 동의를 거쳐 결정됐습니다.
그곳은 강원도 횡성에 있는 어느 사진작가의 삶이 녹아있는 미술관이었습니다.
그의 공간은 국도에서 마을 길로 들어섰다가 좁은 농로를 거치고
나서야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여우숲에 이르는 비포장길은 아주 널찍하게 느껴질 만큼 자작나무숲
미술관의 접근성은 열악했습니다. 주차장 역시 비포장이었고 전체 공간 역시 투박했습니다. 이런 공간을 살피고 겨우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비용으로 1인당
만원의 입장료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비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오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관장님은 입구 매표소에서 우리를
맞았습니다. 전시중인 미술작품이 그려진 엽서를 입장권 대신 교부했습니다. 미술 작품과 사진 작품을 각각 전시하고 있는 두 동의 전시실은 지나칠 만큼 소박했습니다. 함께 간 목수는 단박에 건축의 완성도가 매우 낮음을 간파했습니다. 하지만
제법 이른 그 시간에도 홀로 왔거나 함께 걷는 연인들이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겨울이라는 비수기, 그것도 아직 이른 시간에 이 정도의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것이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가신 동네 형수님은 차 안에서 이곳을 안내하는 홈페이지의
공지문을 인쇄하여 차 안에서 미리 돌렸습니다. 인쇄물에는 아홉 개의 유의사항이 단정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사소한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분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아무 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였습니다. 나머지의 유의사항 역시 정중하지만 대단히 불친절한 항목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미술관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공간이고 푸른 계절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술관 내에 있는,
그 역시 아주 소박한 카페에서 관장님과 좌담을 나눴습니다. 그는 몇 가지를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 중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시골이 삼성을 따라 하면 이길 수 있겠습니까? 도시에
있는 공원이 얼마나 세련된데 그곳을 모방한다고 해서 도시인들을 부르고 다시 찾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내
유익한 좌담, 아니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이 자작나무의 은빛 줄기처럼 기품을 지닌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곳을 나와 우리는 횡성의 한우를 포식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민들을 가까운 곳의 다른 체험 장소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은
정부의 지지와 수백억 원이나 하는 기업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유명한 숲 공간이었습니다. 두
곳을 모두 둘러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이웃에게 물었습니다. “어떠셨어요?” 여든 살을 바라보는 어르신은 미술관이 참 좋았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나중에 간 그 화려한 곳보다 역시 미술관이 훨씬 좋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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