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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5일 23시 48분 등록

1. 저자 오강남에 대하여

오강남.jpg

학력 및 경력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맥매스터대학교대학원 종교학과 박사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 역임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역임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대표저서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로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를 썼으며,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를 펴냈다. 2011년에는 대담집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인류의 영적 스승 60명의 삶과 가르침을 살펴본 『종교, 심층을 보다』을 출간해 종교의 대중적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그가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

'종교 다원주의'를 말할때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있다. 다원주의가 "내 종교만 옳다, 내 종교의 경전은 문자 그대로 옳다"는 독단까지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다원주의란 그런 '독단'을 배격하자는 것이지, 이런 독단까지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233)"

거기에 우리 불교의 사상가 원효의 주장을 덧붙였다. 

"원효는 언제나 어느 한 가지 입장만을 절대화하거나 독단화하면 결국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입장을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 모든 상반된 견해들이 실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강조(238)"

이러한 생각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관점이다. 민주주의와 조화를 말할 때, 근본주의적 입장에 기반 한 독단적인 주장과 특정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발언들 까지도 포용하고 가야한다는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과 기만은 떨치고 가야한다.

 

종교의 금기를 깨다

기독교적 배경에서 출발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동양철학의 비주류인 <도덕경>, <장자>의 번역서를 통해서 였다. 그 또한 동양고전의 번역을 통해 '종교란 이런 것이로구나, 이 책을 통해 좁은 시야를 탈피할 수 있었다' 고 말한다. 그 뒤로 2001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다양한 종교 관련한 번역서와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다가 최근에 <종교, 심층을 보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라는 책으로 종교 간의 화해, 깊은 곳에서 연결된 종교의 심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는 사적인 장소에서 금기시 되는 주제였다. 최근에 와서 이 금기가 깨지고 있는데, 정치적 무관심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종교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각성이 있는 것이다. 종교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원래 종교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대중의 열망이 강해졌다. 종교가 금기시 되는 것 자체가 종교의 고립적, 배타적 해석을 가져온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경계를 허무는 것이 건강한 종교의 모습을 되찾는 길이 될 것이다.

현대인의 한 흐름으로 보이는 무신론과 반종교적인 분위기도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라면 무조건적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근본주의적인 성경해석과 전도와 헌금을 강요하는 종교의 행태 때문에 일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며, 물신숭배적 사회 분위기와 신학의 생명력 상실이 다음 이유일 것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소수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종교가 본래 가지고 있는 큰 가치인 '사랑, 평화, 평등, 조화, 포용, 자유' 에 목말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종교의 금기를 깨는 저자의 시도는 시대적 과제로 평가할 수 있다.

 

 

예스인터뷰 2011.6.1. (발췌)

아하, 종교! 깨달음의 체험

 

대담자: 오강남(오), 성해영(성), 김수영(글/사진)

 

책을 보면 종교에 대한 여러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 자리도 그렇게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정의해주신다면요?

오: “종교가 뭐냐는 대답은 수없이 많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교의 정의는 ‘깨달음을 통한 자기 변혁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개구리가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새로운 의식을 가진 새로운 개구리로 바뀌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산을 올라갈 때마다 시야가 넓어지고 ‘아하, 아하’ 깨닫게 되는데. 저는 종교를 이런 ‘아하’ 체험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성: “종교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알려주기도 하고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걸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뭐든 한국에만 오면 약효가 세진다?

오강남 선생님께서는 보수적 종교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다가 어떻게 새로운 시각에 눈뜨게 되셨나요?

오: “종교학과에 들어가 이런 저런 종교를 접하면서였죠. 특히 캐나다에서 불교를 연구하면서, 불교 도덕경, 도가 사상 선불교 이런 사상을 접하면서 ‘종교란 것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좁은 시야를 탈피한 거죠.”

오강남 교수님의 ‘예수는 없다’는 도발적인 제목 못지않게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보수적인 개신교들로부터 협박도 당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오: “캐나다에 있었으니까요. 안전한 곳에 있었다고 할 수 있죠.(좌중 웃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타락했다고……. 누님들 중에서도 절더러 타락했다고 하지만. 당시에 받은 이메일에는 호의적인 반응이 훨씬 컸습니다. ‘이런 게 기독교라면 다시 교회에 나갈 수 있겠다’ ‘성경이 이런 거라면 성경을 다시 읽겠다’어느 보수적인 교회 목사님은 이런 메일도 보내셨어요. ‘교회 목사라고 하면 다 이 책을 반대할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교직원과 다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들었고요. 책 내고 나서 강연 할 때, 강의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거라고 협박하는 전화가 와서, 경호원도 부르기도 했는데요, 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강연할 때 기독교인, 불교인들이 고루 모였는데 반응이 뜨거워 인상적이었죠.”

<예수는 없다>를 집필 할 때, 책을 내면 ‘어떤 반응이 있겠구나.’ 예감은 하셨죠?

오: “예감했죠. 한국 풍토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평지풍파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나’지금 이런 식으로 있어선 안되겠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한국 기독교인만 이 바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적입니다. 즉 문자의 표피적 뜻에 집착합니다. 둘째, 모든 것을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심층차원의 종교는 문자를 넘어서 있는 더 깊은 뜻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글의 '속내'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더욱이 심층종교는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참나, 큰나, 얼나로 부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p.39)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입니다. 주로 ‘깨달음’은 불교, ‘믿음’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가치인데 특별히 불교 쪽 색채가 짙은 제목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심층종교로 발전하는 첫걸음 역시 ‘보살의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 “기독교에도 깨달음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기독교를 단순화 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깨달음을 강조하는 걸 거부당해요. 그런 경전은 파기처분 당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마복음’이에요.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믿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깨달으라고 해요.다른 종교를 보더라도, 의식의 변화(깨달음)를 통해, 안보이던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요소에요. 새로운 인식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어 자유를 누리자는 거죠. 불교책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런 기회에 자극을 해서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이야기다,라는 얘길 하려고 했죠.”

성: “깨달음이 심층 종교에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모든 개인이 종교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성장하게 되면 반드시 개인의 인식능력이 확장됩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깨달음이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책에서는 개신교를 비롯한 일신교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개인이 심층종교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신교 전통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 “심층종교가 목표지만, 그렇다고 표층종교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원이 좋다고 초등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다만, 초등학교에서 잘 훈련시켜서 심층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현실은 자꾸 초등학교에 머물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만 학생수가 많죠. 상당수가 퇴학을 하고 있고요.”성: “일신교 정착 과정에서 심층의 측면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주류가 되지 못한 거죠. 표층적인 신 관념이라든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형태로 굳어지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유일신 종교가 반드시 타자에 배타적이거나 힘들게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유일신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 사랑을 주고 받고 대화할 수 있는 신입니다. 불교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으레 궁극적 실체가 ‘공’이다 하면, 막연하기만 한데, ‘사랑의 신’이라고 하면 확 와 닿잖아요. 기본적으로 매력을 갖고 있는 종교죠.”

오: “산이 그냥 산일 때는 산입니다. 매일 산에 가서 산을 어머니다, 나를 품어준다. 생각하면 관계를 맺게 되는 거죠. 인격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relationship)를 갖게 되요. 인도에서는 종교적 궁극 목표에 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어요. 지혜, 신, 행동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제일 많아요. 인격적 관계를 맺는 곳에 사람들이 많습니다.”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심층종교로 들어가기엔 현대인이 너무 바쁜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와 심층종교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까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성: “심층종교는 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 가능합니다. 심층종교란 신이든 실제든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면 깊숙한 있다고 보니까요. 이렇게 보면. 세상에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이 자신을 깊고 넓게 만드는 계기가 되잖아요. 제도 종교는 특정 공간에, 특정 경배 대상을 만날 때만 종교생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비해 심층종교는 바쁜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적합한 종교죠.(웃음)신 자유주의 시대는 한마디로 경쟁사회잖아요. 심층 종교차원에서 보면 모든 인간 내면에 심층종교적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불성이든 신이든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을 싸우고 이길 존재로 볼 수 없겠죠. 함께 가는 존재로 보일 거예요.”

그럼 지금 일반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좀더 건강한 고민을 하려면, 이렇게 책을 찾아보는 일 정도가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오: “더 알고 싶으면. 성해영 교수님께 가라고 해요.(좌중 웃음)”성: “선생님이 수십 년 공부한 내용과 제가 뒤따라 배운 이야기가 많으니까 이 책이 도움이 될 겁니다. 종교는 양날의 칼이에요. 자기나 타인을 위할 수도 있고 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살인사건까지 일으키는 게 종교죠. 종교가 기쁨도 주고 즐거움도 주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에 갖는 건데, 지금 사람들은 너무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죄를 짓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국에 가려고 하고, 고통스러운 이 땅에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종교활동을 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경우일 거예요.”

심층종교는 종교를 신나는 종교로 되살리는 것입니다. 상벌에 관계없이 자기의 수행이 나날이 깊어져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자연스럽게 참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까요?(p.179)

 

 

참고자료

예스인터뷰 : 신자 여러분, 종교 생활 안녕하십니까?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cont=6058&title=003001

예스24 작가파일 : http://www.yes24.com/2.0/AuthorFile/AuthorFileD.aspx?authno=125367&Scode=008

경향신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소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22111275&code=960205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또다른예수.jpg

현암사, 2009

 

서문

14. 앤드류 하비 : 1945년 12월에 발견된 이 <도마복음>은 같은 해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진 문헌이다.

15. 1945년 12월 어느 날,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카이로 남쪽 약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나그함마디라는 곳 부근 산기슭에서 토기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가죽으로 묶인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 종이 문서뿐이었습니다. 모두 52종의 문서, 이집트 고대어 중 하나인 콥트어로 기록, <도마복음>, <빌립복음>, <진리복음>, <이집트인복음>, <요한의 비밀서> 등...

20. <도마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그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23. 세계 종교 전통 어디서나 심층 깊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신비주의'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던 복음서로 보아도 무방할 것.

23. 프라즈나, 반야, 통찰, 꿰뚫어봄, 직관, ... 깨달음을 통해 참된 쉼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

24.  <도마복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만 적은 '어록'이라는 것입니다.

24. 깨달음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천국, 내 속에 있는 하느님, 내 속에 있는 참나를 발견함으로써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라는 기본 가르침에 충실한 복음.

26. 본문을 읽고 거기에서 '촉발'되어 제 나름대로의 뜻을 찾아 보려는 이런 식의 읽기를 '환기적' 톡법 혹은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3. 서언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들입니다.

34. 예수님과 같이 모두 한 분 하느님에게서, 혹은 한 태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예수님과 쌍둥이라 이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도마복음>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가 깨치기만 하면 모두가 형제자매 내지 쌍둥이라 불릴 수 있는 경지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선불교에서도 함께 깨달음을 얻은 도반을 쌍둥이라고 한다.

37. 영지주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종교적 진술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네 가지 의미 층이 있다. '문자적' '심적' '영적' '신비적'

 ☞ 카발라 : 표면적, 비유적, 미드라쉬적, 신비적/비의적 의미

 

39. 2절, 예수왈 "추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찾으면 혼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놀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42. 3절, 예수왈 ".. 그 나라는 여러분 안에 있고, 또 여러분 밖에 있습니다."

43.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속에 있는 하느님의 임재하심이라 보아야 한다.

44. 신의 내재만을 강조하면 범신론에 빠지고, 신의 초월만을 강조하면 초자연주의 신관에 빠지게 된다. 신은 '내재이며 동시에 초월'이라는 역설의 논리로 이해해야 하낟. 신의 이런 양면성마저 바로 '천국 비밀'의 일부인지 모를 일이다.

47. 하느님이 바로 내 속 가장 깊은 차원의 '참나' 혹은 '얼나'에 다름 아니라는 엄청난 사실을 깨달음!-이것이야말로 바로 이 삶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진주' 같은 진리다.

50. 5절, "여러분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감추어졌던 것이 여러분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55. 행동의 결과는 나중에 하늘이 내리는 보상이나 형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나 자신의 삶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63. 도덕경,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일손"의 길."(48장) 우리가 가진 일상적 견해를 깨끗이 비워야 도를 체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전을 청결케 하심", 나아가 아주 "성전을 허는 것"이기도 하다.

67. 종교사적으로 볼 때 여러 종교에서 '씨'는 인간 속에 있는 '신의 씨앗', 곧 신성의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데 주목!

68. 10절, "나는 세상에 불을 지폈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불이 붙어 타오르기까지 잘 지킬 것입니다."

82. 깨달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구경의 깨달음에 이르면 이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

85. 진리를 들으면 우선 "혼란스러워"지는 법

97. 16절, "...다섯 식구가 있는 집에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서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설 것입니다. 모두가 홀로 설 것입니다."

102. 17절, "나는 여러분에게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했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겠습니다."

103. 인간의 일상적 감각이나 지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궁극 진리

 ☞ 그게 뭘까. 어떻게 그런 세계를 사진과 글로 표현해 낸단 말인가? 욕심인가?

110. '종교religion'라는 말 자체가 이렇게 근원으로부터 떨어졌던 내가 거기에 '다시 결합'한다는 뜻

123. 22절, 예수께서 젖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젖 먹는 아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이들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묻기를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처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왈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하고,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하고, 높은 것을 낮은 것처럼 하고, 암수를 하나로 하여 수컷은 수컷 같지 않고, 암컷은 암컷 같지 않게 하고, 새로운 눈을 가지고, 새로운 손을 가지고, 새로운 발을 가지고, 새로운 모양을 가지게 되면, 그러면 여러분은 그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 합일의 상태, 이분법적 의식이 없는 상태

128. 양극의 조화, 음양의 조화를 말하는 태극, 유대교의 '다윗의 별',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두 원을 아래위로 반반씩 겹쳐놓고 그중 겹쳐진 부분을 잘라 만든 초기 그리스도의 물고기 상징, 불교 사찰에서 보는 만자

135. 미국인 리처드 베이커, "제가 <도마복음>을 미라 알았더라면 구태여 불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 도로테 죌레, '신비주의의 민주화'

139. 깨달음은 평생에 단 한 번 오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일 수 있겠지만, 일회적으로 그치기보다는 매일, 매순간 깨달음의 연속을 맛보며 신나게 사는 삶, 매사에서 죽음과 부활의 연속을 체험하며 사는 삶이 더 현실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바울 "나는 날마다 죽노라"

142. 예수님 자신뿐 아니라 깨달은 사람 누구에게나 그 속에 빛이 있다는 것, 따라서 빛은 어디에나 다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

152. 궁극적인 것이 아닌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여기고 떠받드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이런 우상숭배를 버리는 것이 영적인 길을 가려는 사람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154. 안식일, 현상세계, 일상의 차원에서 영원의 차원으로 승화됨을 의미하는 것

 ☞ 한 꼭지의 주제가 될 수 있을 듯, 안식일, 쉼, 그냥 그대로 있음을 즐기는 날

155. 28절 "나는 내가 설 곳을 세상으로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들이 취해 있음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목말라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내 영혼은 이런 사람의 아들들로 인해 아파합니다. 이는 이들이 마음의 눈이 멀어 스스로 빈 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취해 있지만, 술에서 깨면 그들은 그들의 의식을 바꿀 것입니다."

157. 아픔 자체보다 아픔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161. "도대체 왜 공허만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인가? '존재의 신비', '존재의 충격' 말이다.

162. 이 물질세계는 그것을 초월하는 세계를 일러주는 표지sign, code나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

 ☞ 이 물질세계를 잘 살펴보리라. 그것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아내리라.

162. 어렵게 말하면, 궁극 실재인 비존재가 현상세계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지만, 그 존재는 우리에게 비존재의 실재를 체험하도록 인도해주는 '암호' 역할을 한다는 것

 

169. 설득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 로고스 -말하는 내용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 파토스 -말하는 방법이 정열적이고 힘차야 한다.

• 에토스 -말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신뢰를 받을 만큼 그럴듯해야 한다는 것

 

175. 보시의 세 가지, 첫 째, 물질을 나누는 것, 둘째,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셋째, 진리를 나누는 것.

176. 우선 등불을 켜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놓기만 하면 된다. 변화된 나의 영적 상태를 구태여 숨기려고 애쓸 필요 없이, 내 속에 밝혀진 내적 빛을 가지고 가만히 그 모습 그대로만 유지하면 된다.

184. 35절, "사람이 먼저 힘센 사람의 손을 묶어 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 집을 털어 갈 수 있겠습니까?"

191. 천만 길도 더 되는 깊은 바닷물에 나를 턱 맡기고 떠 있는 것

193. 37절, 제자들이 말했습니다."당신은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는 언제 당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들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옷을 벗어 발아래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을 때, 여러분은 살아 계신 분의 아들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200.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생래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그리스 사람들은 타우마젠이라 했다. 뭔가 경이롭게 생각하고 호기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206. 어는 종교에서나 이런 신비적 차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215. 우리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이라면 나와 이웃을 하느님께 더욱 가깝게 가도록 하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더욱 사랑하도록, 궁극적으로 나와 하느님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데 어느 쪽 해석이 더 도움이 될까 물어보는 정도

215. 42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가 되십시오."

216. 문제는 세상에서 줄 수 있는 즐거움을 고맙게 여기고 즐기면서 살아가지만, 이 삶이 우리의 궁극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길을 가느냐, 아니면 갈길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이 삶에 달라붙느냐 하는 것이다.

 ☞ 갈길을 잊어버리지 말자. 갈 길은 죽음 이후까지도 포함한 전체

222.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 혹은 성령을 거스르는 것은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세밀한 소리를 거절한다는 뜻이 아닌가?

226. 아놀드 토인비는 종교를 '자기중심주의의 극복'이라 정의했다.

232.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약 1:6-8)

233. 다원주의란 그런 '독단'을 배격하자는 것이지, 이런 독단까지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238. 원효는 언제나 어느 한 가지 입장만을 절대화하거나 독단화하면 결국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입장을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 모든 상반된 견해들이 실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강조

243. 49절,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행복합니다. 나라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244. '사막'이란 결국 지리적인 장소이기보다 정신적인 자세.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정신적 사막'을 만들어, 그 속에서 수행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어쩌면 더욱 훌륭한 일일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244. 신유학자들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 격물치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

245. 칼릴 지브란 <예언자> -결혼에 대하여-

그리고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47. 50절,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그들에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빛에서, 빛이 스스로 생겨나, 확고히 되고, 그들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그곳에서 왔다.' 라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그것이 너희냐?'하고 묻거든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그 빛의 자녀들로서, 살아 계신 아버지의 선택받은 사람들' 이라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너희 속에 있는 너희 아버지를 입증할 증거가 무엇이냐?' 하고 묻거든 그들에게 말하십시오. '그것은 움직임과 쉼'이라고."

 ☞ 새로운 정체성의 발견

251. 더욱 근본적인 것은 본래 움직임이 없던 근원으로서의 궁극 존재가 움직여 만물이 생기게 되고, 이 만물이 다시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가 움직임이 없는 쉼의 상태에 이른다고 하는 이 엄청난 우주의 순환 원칙이 신의 실재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는 말로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253. 51절, 제자 "언제 죽은 사람들의 쉼이 있겠으며, 언제 애 세상이 이르겠습니까?" 예수왈. "여러분이 기다리는 것이 이미 와 있지만, 여러분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256. 하느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를 체험하는 것

264.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빌4:11-12)

266. 모든 종교적 여정의 출발점은 지금껏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일상적인 것, 인습적인 것, 당연시되던 것, 혹은 내가 생각 없이 무조건 복종만 하던 권위적인 것, 정통적인 것 등을 뒤로한다는 뜻이다.

267. 인간의 발달상 누구나 십대가 되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자동적으로 부모와 형제들을 미워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 부모를 미워하여 집을 떠나야 족외혼이 가능하여 좋은 자식을 낳을 수 있께 된다는 것이다.

267. 56절, "누구든지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입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은 세상보다 더 값진 사람입니다."

269. 세상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 달라붙지 않는 태도, 영어로는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의 자세

 

275. 58절, "아픔을 겪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찾았습니다."

 ☞ 실존적 한계 상황에서 오는 근원적 아픔이나 고통

277. 종교적 삶은 '아픔'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78. 59절,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살아 계신 이를 주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살아계신 이를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280. '맹귀우목'이란 거북이 : 망망대해에 조그만 구멍 하나가 뚫린 작은 나무 조각이 물결 따라 떠다니는데, 눈먼 거북이가 백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밀다가 우연히 그 나무 조각에 뚫린 구멍 속으로 머리를 내밀게 되는 확률 =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

280. '주목하라', '들어라' 하는 말이 <도마복음>의 특징!, 스스로 깨닫고 발견함이 중요하다는 것

282. 양이 살아 있을 때는 먹지 못하지만, 죽은 몸이 되고 생명의 피가 없어진 고깃덩어리가 되면 먹히고 마는 것처럼, 우리도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지만 얼이 나간 산송장처럼 살면 먹힐 뿐이므로, '쉴 곳을 찾아 언제나 살아 있음을 유지함으로써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

286. 원초의 '하나'는 빛이지만, 이 빛으로부터 분리되면 어둠이 있을 뿐이라는 <도마복음>의 기본 진리

288. 종교적 영역에서는 표층적 차원과 심층적 차원이 있는데, 심층적 차원의 진리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공개하지 말라.

 ☞ 사진으로 심층적 차원의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 나는 알고 있나? 사진이론에 대한 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겠다. 내 책의 차별성은 그것 아닌가. 에세이 위주로 단상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면 차별성이 없다. 독자들에게 지적으로도 줄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심층적 차원의 진리를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고.

289. 63절, "한 부자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나는 돈을 들여 씨를 뿌리고 거두고 심고, 내 소산물로 창고를 가득하게 하겠다. 그러면 내게는 모자랄 것이 없겠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계획이 있었지만 그 농부는 그날 밤 죽고 말았습니다. 귀 있는 이들은 들으십시오."

 ☞ 현대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이윤이 생기면 다시 투자해서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무한 욕망의 자본주의 말이다.

291. 대지에만 발을 굳게 붙이고 서 있는 이들에게는 '천국의 비밀' 같이 일견 구름 잡는 듯한 고매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는 관심 밖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비밀로만 남을 것이다.

295. 심오한 진리니 통찰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사람이 별로 없다.

301. 67절,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일상적 지식을 쌓느라 부산하게 쏘다닐 것이 아니라, 고요히 앉아 깊은 내면적 성찰을 통해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 본래의 나를 깨닫는 것이라는 뜻.

308. 69절, "그들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행복합니다. 원하는 사람마다 그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312. <도마복음>에는 누가 우리를 위해 죽음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식의 '대속론'이 없다.

 

313. 71절, "내가 이 집을 헐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도 그것을 다시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 집= 몸 , 지금 여기 이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영원토록 죽지 않는다는 생각은 관심 밖이었다.

316. <도덕경> 28장,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는 나누는 일을 하지 않는다."

320. 74절,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 우물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물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324,. 참된 깨달음의 진리, 천국 비밀을 발견했을 때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가지고 있던 잡다한 이론, 사상, 교리, 주장, 주의 등을 다 팔아버리고 오로지 깨침을 이루는 일, 천국의 비밀을 아는 일, 그 하나에 전인적으로 몰입해야 한다.

 

326. 77절,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입니다. 내가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통나무를 쪼개십시오.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돌을 드십시오. 거기서 나를 볼 것입니다."

 ☞ 내 책의 모티브, 서문에 사용할 문장

329. 신비주의 전통에서 '빛'은 때 묻지 않은 순수 의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내면세계의 찬연함을 말해주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

351. 지금 우리의 삶은 그 나름대로 즐거움의 근원이 될 수 있다.

 ☞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염세주의, 허무주의를 경계하라.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356.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도 있지만, 죽음을 극복하도록 하는 동인이 될 수도 있다.

363. 90절, "내게로 오십시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쉼을 찾을 것입니다."

365. 종교는 결코 우리를 억지로 묶어놓는 굴레일 수 없다. 우리를 서로 합치도록 인도하고 이끄는 기구여야 한다.

368. 92절, "구하십시오. 그러면 찾을 것입니다." "전에 나는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가 대답하려 하는데, 여러분은 물어보지 않습니다."

 ☞ 끊임없는 추구가 영적 성장 과정

393.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결여된 '여성성'을 회복하여 양극의 조화와 균형을 맞추려 한 사람들의 노력을 중심으로 씌어진 소설

399. 둘이 하나가 되었던 상태가 다시 둘로 분리되는 경우, 그때에만 그런 상태를 슬퍼하며 둘이 다시 하나 됨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하나의 상태에 있을 때는 금식할 이유가 없겠지^^

404. 참 하느님 아버지, 참 하느님 어머니를 알게 된 사람은 그 사회에서 받느는 인습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받들고 살 수가 없다.

405. 106절,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만들면 여러분은 사람의 아들이 됩니다. 여러분이 '산아, 움직여라.'고 하면 산이 움직일 것입니다."

 ☞대립과 모순을 초월한 완전한 사람, 자유인, 깨친 사람, 호연지기의 사람

406. 107절, "그 나라는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목자와 같습니다. 무리 중 제일 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습니다.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놓아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가 그것을 찾았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다음 그는 그 양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귀히 여긴다.'고"

 ☞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내용이다. '귀한 양'은 뭘까? 양극의 합일?, 참 나를 찾아 울타리를 떨쳐나갈 용기 있는 사람의 상징?

417. 113절, 제자들 왈 " 그 나라가 언제 올 것입니까?" , 예수왈 "그 나라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어 사람들이 볼 수 없습니다."

423. 고대의 문화 코드에 의하면 '여자'란 불완전한 인간의 대명사였던 셈이고, '남자'란 '완전한 인간'을 가리키는 상징이었다.

 ☞ 예수가 성차별주의자였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

 

저자 후기

 430. "회개라하.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을 "눈을 떠서 천국이 가까이 있음을 알라." 혹은 "정신 차려라"하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의식의 변혁'을 촉구하는 말씀

431. 하나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 다스리심, 임재 등을 뜻하는 것이지 '땅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432. 하느님의 나라는 시간적으로 어느 때쯤에 올것인가 하는 문제로 보기보다, 공간적으로 바로 내 손 닿는 지근 거리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지 않겠는가?

435. 만물일체론 : 신유학자들은 우리가 양지를 극대화하면 나와 만물이 일체임을 깨닫게 되고, 그 결과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 아픔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 마무리,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정진과 노력을 당부한다.

 

 

3. 내가 저자라면

전체적인 구성에 대하여

저자 오강남은 <도마복음> 114절을 13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각 장과 절에 적절한 제목을 붙였다. 구절들 중 핵심이 되는 단어나 문장을 제목으로 붙여 읽는 이의 이해가 쉽도록 한 것이다. 114개의 절이 원문에서부터 구분되어 있는 것인지, 저자가 구분해 절로 나눈것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아마도 외국 번역서들의 구분을 따른 것이리라 짐작이 된다.

각 절들의 해석은 높임말을 사용한  '경어체'와 교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역개정'판의 표현법 두 가지로 나누어 놓았다. 경어체를 사용한 것은 예수가 대중을 상대로한 연설, 대화에서 반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에서 그리했다고 써있다. 오강남 교수의 다른 번역서를 보아도 그러한 경향을 따른다. 읽다보니 '경어체'의 문체가 익숙해지고, 나에게 하는 말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개역개정'판의 해석은 읽어 보지도 않게 되었다.

해석에 이어 주석이 따르는데, <장자>, <도덕경>, 불경 등에서 관련되는 구절들을 가져와 비교하면서 이해를 돕고 있다. 물론 <도마복음>의 본문 자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그것을 비교종교학자인 저자의 스타일대로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비교하면서 나름의 뜻을 찾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런 본문을 읽고 거기서 '촉발'되어 나름의 뜻을 찾아보는 읽기를 '환기적evocative' 독법 혹은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이라고 정의 했다. 이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다른 경전을 읽을 때에도 적용해보면 좋을 읽기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서로 연결시켜보고 대조해보면서 그것들이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생각해봄으로써 경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기독교 문화와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친구따라 동네 교회에도 다니게 되었다. 교단은 예수교 장로회였는데, 동네의 제법 큰 교회였다. 대학을 가게되고 청년부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교회의 문화는 뭐랄까 대학에서 접하는 자유로운 사상의 폭과 깊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독단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사회주의니, 자유주의, 실존주의니 하는 현대의 사상들을 곰삭혀 넓은 하나님의 품으로 이해해내려는 노력은 없고, 세상적인 모든 것들은 잘못 되었고 교회의 전통만이 옳다는 식의 독단이 느껴졌다. 중세적인 분위기랄까. 그러다 보니 성경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말씀은 삶과 함께 살아 숨쉬지 못했다. 그럴때 대학의 한 동아리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게 기독학생회(SCA)라는 초교단적 대학선교 단체로,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대학 운동권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동아리였다. 어떠한 권위주의도 없고 스스로 신앙을 찾아가는 길이 그곳에 있었다. 그 길이 비록 많이 돌아가는 길 일지언정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도 공부하고,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사회참여를 고민하면서 창신동 지역 공부방활동과 철거지역 연대활동도 시작하게 된다.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고 월곡동의 민중교회로 옮겨 성경공부와 새로운 청년부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때는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사회변혁적인 활동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런 활동과 밥벌이 사이의 현실적 벽을 허물지 못하고 전공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 IMF가 닥쳤고 사회운동의 약화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종교적 성향이 강했었나보다. 계속해서 '참된 자신'을 찾게 되었고, 진짜 신앙이 뭘까 질문을 놓지 않았다. 2002년 집단 상담과 영성훈련을 결합한 어느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한 꺼풀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만난 '요가' 수행법을 통해 몸을 풀고, 내면의 세계에 깊게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요가'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결혼 후 아내와 인도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도에서의 경험은 내 생에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다시 이곳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난  종교적인 성향과 더불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공대생이라 좀 늦게 발견한 관심분야이지만 만화와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는 이론적 공부를 해봤으며, 나름 영화평론가를 꿈꾸기도 했다. 꿈만 꿔봤다는 얘기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표피적인 것에서 깊어지지 못하다가 2002년 이후로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물론 취미생활 정도였지만 예술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를 낳게 되면서는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취미생활인 '사진'을 알게 되고, 일상을 사진으로 채집하는 것에 푹 빠지게 되었다. 6년 정도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해 공부하고, 사진이론, 사진철학을 접하게 되면서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원 과정을 시작하면서도 쓰고 싶은 책이 '사진에 관한', '사진을 이용한' 책이었다. 아직은 기술적인 배움이 부족하고, 현장 경험도 거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에서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에게는 당연한 것이라 본다. 일단 '사진'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뭔가 해보려는 열정이면 족하다.

 

이렇게 내 종교적 성향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길게 서술한 이유는 이것들이 나의 '첫 책'의 구상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제 연구원과정 일 년이 되어 진짜 첫 책을 구상하고 쓰는 단계에 와있다.  컨셉트는 '사진으로 일상 속 신비를 발견하기'다. '신비'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난 '보이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깨닫는데 까지 관심이 있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그것을 해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 종교적 구도의 마음과 사진 철학이라는 두 가지 도구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교적 구도만으로는 구체성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도구로 시각적 생생함과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다. 사진은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널리 사용하는 예술도구이기 때문이다.

 

내 책에 담으려는 이 두 가지 축을 풀어가는 과정에 지금까지 연구원 과정을 통해 읽은 문헌들이 녹아 들어가면 좋겠다. 사부님이 바라듯이 적재적소에 딱 맞게 지혜를 빛내며 자리 잡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강남 저자가 제안하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사용하여 내 마음을 끄는 문장들을 찾아내 '촉발'되는 사례와 사진 이미지를 결합해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을 써볼 것이다.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그러한 독법을 사용해온 것 같지만 의식적으로 계속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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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13:04:02 *.216.38.18

저도 언젠가는 신화와 종교를 생할 가까이에서 풀어낸 책을 구상중이랍니다^^ 제가 남이 읽을까봐 몰래 읽어두었던 책을 리뷰하신것을 보았을때는 뭔가, 들킨 느낌? 내것을 빼앗긴 느낌? 이었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또한 북페어의 건승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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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1:12:57 *.166.205.132

문학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저와 관심사가 비슷하신 듯 해서 반갑네요.

좋은 책 있으면 추천 좀~ㅋ

 

한 달도 안 남은 북페어로 연구원 1년차를 멋지게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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