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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6일 01시 19분 등록
1. 작가에 대하여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어: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1957)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오스만 제국 치하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할리스 카잔차키스는 곡물과 포도주 중개상으로 중산층에 속했다. 그는 크레타 섬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902년 아테네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도중 수필 《병든 시대》와 소설 《뱀과 백합》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희곡도 쓰기도 했다. 1907년에는 파리로 유학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 철학을 공부했다. 1911년 그리스로 돌아와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결혼했으며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베니젤로스 총리 비서실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1917년 고향 크레타 섬에 돌아와 후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의 모델이 된 요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 사업을 했었으며, 이것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발전하였다.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에 의해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차 대전 평화 협상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베니젤로스의 자유당이 선거에 패배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파리로 갔으며 그 후 유럽을 여행했다.

 

빈에 체재하는 도중 1922년 그리스 터키 간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전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 성향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동경으로 러시아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1925, 1928년에는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루사코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소비에트 체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1926년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이혼했으며 이후 프랑스어와 그리스어로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1940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그리스를 침공하자, 일시적으로 민족주의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으며 1944년 독일군이 그리스에서 철수하자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때 12월 사태로 알려진 내전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이후 정치로 다시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리스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소풀리스 연립정부의 정무 장관으로 임명된다. 1946년 정무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해, 그리스 작가 협회는 카잔차키스와 앙겔로스 시겔리아노스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동반자였던 엘레니 사미우와 결혼했다.

 

1953년 소설 《미할리스 대장》이 발간되자 그리스 정교회는 맹렬히 카잔차키스를 비난했으며 이듬해 로마 가톨릭 교회도 《최후의 유혹》을 금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그리스에서 일시적으로 출간되지 않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의 말을 인용해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다. 1955년에는 그리스 왕실의 도움으로 《최후의 유혹》이 그리스에서 발간되었다.

 

1956년에는 국제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7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여행했으며 일본을 경유해 돌아오는 도중 백혈병 증세를 보여 급히 독일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때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만나기도 했다. 고비를 넘겼으나 독감에 걸려 10 26일 독일에서 사망했다.

 

카잔차키스는 불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탐구, 한계에 저항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줄거리 전개보다는 사상의 흐름을 강조했으며, 1951년과 1956,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최후의 유혹》과 《그리스인 조르바》,《오디세이아》()가 있다. 이중 소설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신성모독을 이유로 파문당할 만큼 당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니코스 카찬차키스는 교회로부터 반 기독교도로 매도되는 탄압을 받았어도, 평생 자유와 하느님을 사랑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극작으로 1946년에 <카포디스토리아스>, 1959년에는 <배교자(背敎者) 율리우스>, 1962년에는 <메리사>가 각기 상연되었다.

 

생전에 미리 써놓은 묘비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ά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εύ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kazantzakis2.jpg

 

[참고자료]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8B%88%EC%BD%94%EC%8A%A4_%EC%B9%B4%EC%9E%94%EC%B0%A8%ED%82%A4%EC%8A%A4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P8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카페의 지저분한 창문을 뚫고 손이며 콧잔등이며 이마를 비추었다. 빛줄기는 내친걸음에 카운터까지 뛰어올라 술병을 휘감았다.

 

P10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고통은 꿈이며, 인생은 재미있는 연극이어서 촌놈이나 바보만이 무대로 뛰어 올라가 연기에 가담한다는 듯이

 

P13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P18 그러고 보니 당신은 거기에 앉아서 묻기만 하는군. 지랄병이 도졌다는 것뿐이라니까 그러네. 젊은 양반,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이야기 아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 배우겠다는 생각은 당신도 안 하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

 

P21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되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조르바?

이런 모르시는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P22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P24 기분이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베키코, 하사피코, 펜도잘리도 출 수 있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P34 그렇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때는 내 피가 뜨거웠어요. 도무지 라든지 어째서같은 걸 생각해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이빨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 돼, 얘들아. 깨물면 못써하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이빨 서른두 개가 말짱할 때는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그래요, 두목, 사람 잡아먹는 야수 말이오!

 

P38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정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P53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P78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 여자, , 빵이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P83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è  이 책을 읽으며 아주 가끔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을 만나곤 했다.

 

P94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P95 인도에서, 밤이 깔리고 나면 나지막한 소리, 먼 곳에서 육식 동물이 하품하는 듯한 느리고 야성적인 노래가 들리는데이것이 호랑이의 노래란다. 사람들은 이어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로 가슴을 두근거린단다.

 

P99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은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P108 왜 웃지 않소?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시오? 나라는 놈은 원래가 이렇게 생겨 먹었어요.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놈이 소리칩니다. ‘춤춰!’ 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그러면 숨통이 좀 뚫리지요. 칼키디체에서 우리 꼬마 디미트라키가 죽었을 땝니다. 나는 벌떡 읽어 서서 조금 전처럼 춤을 추었지요. 친척과 친구들이 시체 앞에서 춤추는 나를 말렸어요. ‘조르바가 돌아 버렸다! 조르바가 미쳐 버렸다.’ 그 사람들이 웅성거리더군요. 하지만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너무 슬퍼서죠. 그게 내 첫아들인데다, 세 살 때 죽어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지요. 두목, 이제 내 말 이해할 수 있겠지요? 젠장, 아니라면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건가?

 

P111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은 채 깡그리 낭비하고 만 내 인생을 생각했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별빛으로 조르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밤새처럼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부러웠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세상이 아닌, 좀 더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다면, 조르바는 한 종족의 추장쯤은 넉넉히 했으리라. 그는 앞장서서 도끼를 들고 새 길을 열었으리라. 아니면 유명한 성을 찾아다니는 유명한 음유 시인이 되어 누구나(성주교 귀부인이고 하인이고 간에) 자기 시를 노래하게 했으리라. 이 불행한 시대에서 조르바는 주린 이리처럼 울 안을 목마르게 배회했다. 아니면 글쟁이의 광대로 떨어지고 말거나.

 

P119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è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

 

P131 있을 턱이 없지 않소! 두목, 당신은 여자가 별것인 줄 아는데하기야 별 것은 별것이지. 여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데 뭣 하러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률과 종교가 들고 나서 봐서 여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요. 여자에 대해서는 그런 걸 쓰면 안 됩니다. 두목, 그건 너무 가혹한 짓이에요. 공정하지 못해요.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남자에겐 십 계명, 백 계명, 천 계명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내는 사내니까계명이 아무리 많아도 지킬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 필요한 율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아니 두목, 이놈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힘이 없는 피조물이오. 두목, 누사를 위해 마십시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남자들에게 분별력을 조금 더 허락하셨으면!

è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조르바에게 당신은 어줍잖은 남녀평등 어쩌구를 말할 수 있겠는가?

 

P134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던가. 지당한 말씀! 따라서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내 사랑하는 제자여, 스승이여. 이즈음의 내 행복도 그렇다네. 나는 내 키 높이를 열심히 재고 있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사람의 키 높이란 늘 같은 게 아니라서 말일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과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P155 두목, 나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외다. 나는 하느님이 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크고, 힘이 세고, 나보다는 돌아도 좀 더 돌았겠지요만덤으로 주는 것과는 담을 쌓았겠죠. 부드러운 양피 무더기 위에 턱하니 앉아 하늘을 집으로 삼고, 오른손에는 칼이 나 저울 같은 걸 들고 있는게 아니고(이 웃기는 연장은 백정이나 식료품 가게 주인이나 들고 다니는 거지요) 꼭 구름 같은 스펀지 한 덩어리를 들고 있을 거예요. 오른쪽에는 천당, 왼쪽에는 지옥, 이윽고 혼란이 하나 들어옵니다. 가엾게도 이 불쌍한 것은 옷(그러니까 육신 말이오)을 잃어버려 오들오들 떱니다. 하느님은 그걸 보시면서 팔소매로 웃을 가리고 요괴 역을 연기하십니다. 이렇게 호령하시는 거죠. ‘이리 오너라, 이 거지 같은 자슥아!’

이윽고 하느님은 심문을 시작하시지요. 발가벗은 혼령은 하느님 발밑에 몸을 던지고는 애걸복걸합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죄를 지었나이다.’ 혼령은 자기 죄를 밑도 끝도 없이 조목조목 외어 나갑니다. 하느님은 심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하품을 하십니다. 그러고는 꾸짖으십니다. ‘제발 그만둬! 그런 소리라면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그리고는 쓱싹쓱싹 물 묻은 스펀지로 문질러 죄를 몽땅 지워버리시고 혼령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천당으로 썩 꺼져라. 여봐라, 베느로. 이 잡것도 넣어줘라!’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란 뭡니까? 용서해 버리는 거지요!

è  조르바의 상상력에 감탄을 보낸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기발랄하고 기발하다. 그러니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P157 웃지 말아요, 두목.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정네들의 잘못이에요. 우리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한 짓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얼마 전에 서로 얘기했다시피 하느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들 몫의 스펀지를 준비하고 계시지요. 그러나 그 죄만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여자와 잘 수 있는데도 자지 않는 사내에게 화 있을진저! 남자와 잘 수 있는데도 안 자는 여자에게 화 있을진저! 호자가 뭐라고 했는지 생각해 봐요!

 

P174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은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P222 조르바의 편지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두 가지로(아니, 세가지로) 망설였다. 화를 내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아니면 인생의 껍질(논리와 도덕과 정직성의 껍질)을 깨고 표면으로 뛰쳐나오려는 이 원시적인 인간에게 그저 감탄만 하고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편리한, 자질구레한 덕성이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만족을 모르는 극히 불쾌하고 위험한 덕성뿐이어서 이런 상태가 그를 극한과 지옥의 나락으로 끊임없이 충동질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P226 나는 중얼거렸다. ‘조르바에게 복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P326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잇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밥이니까.

 

P333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겁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è  조르바는 뭐든 제대로 하는 걸 좋아하는 사나이다.

 

P340 ‘그렇다. 바다, 여자, , 그리고 힘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놓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나 자신을 격려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P359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P391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부불리나가 살아 있는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뼈다귀에 가족을 입힌 이 조르바 말입니다)만큼 이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늙은 것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 유식한 양반, 이 이야기는 하고 넘어갑시다.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진짜 여자에게는잘 들어 두시오,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è  그 순간을 사는 조르바!

 

P398 조르바, 내 말일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글쎄, 무슨 싸움일까요?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P418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다니, 어림없는 수작!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목차가 없다. 그저 2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을 뿐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친절한 서문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의 글 또한 누런 원고지에 철필로 쓴 뭉텅이 원고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아주 가끔 수려한 장면을 묘사한 문장을 마주치면 아주 반갑다. 걸쭉한 목소리로 여자, 인생, 행복, 정열, 자유를 이야기하는 조르바의 목소리는 귓가에 울리는 듯 하여 정겹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안소니 퀸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봐야 한다. 그러면 산투르의 선율과 안소니 퀸 조르바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여운으로 남는다.

 

연구원 과정을 밟으며 철학, 역사, 경영, 자서전은 읽었지만 문학서는 읽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시집과 소설도 많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용서는 밥상을 차려 숟가락을 들려 주지만, 문학서는 밥상에 무엇이 올라야 하는지 알려준다. 꼬집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은유와 암시를 통해 길을 안내해준다. 그것이 문학의 힘인 듯싶다. 내 책의 주제를 염두 해두고 책을 읽고 있자니 내 주위에 일어나는 일 역시 나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해주려 하는 것 같다. 그런 일이 이제야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제야 눈치챈 것일까?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러면 조르바가 나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해줄 것 같다. 조르바가 해 줄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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