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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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내 의도대로 살기 위해
인생의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무를 심고 이 숲에 살고 있다.”
지난 주에 다녀온 미술관 자작나무숲의 사진 작품 전시관 입구
한 켠에 자리한 간판에 써있는 글입니다. 송판을 못으로 박아 만든 작은 간판에 어두운 물감을 칠하고, 흰색의 물감을 찍어 투박하지만 힘있게 써놓은 글이었습니다. 한 눈에도
관장님의 솜씨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외지고 거칠고 투박한 미술관이 세간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가장 큰 힘을 나는 이 간판의 글에서 찾았습니다.
몇 년간 전문가들은 농촌이나 산촌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어매니티(amenity)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농촌들이
경관과 시설을 개선하는 일에 힘써 왔습니다. 여우숲이 있는 우리마을 만해도 최근 3년 사이 대단히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경관을 고치고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산막이 옛길’이라는
명소화된 관광지 하나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제 철에는 하루에 만여 명 가까운 관광객이 그곳을 찾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문객들 중에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실망감을 드러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실망의 요체는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는 것입니다. 강을 거슬러 좋은 경관을 누리며 걸을 수 있도록 길이 조성된 것은 좋다. 하지만
나무 데크나 시멘트로 길을 내놓고, 특정한 나무만 잔뜩 옮겨 심어놓은 경관이나 여느 관광지 입구와 다르지
않게 복잡한 먹거리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모습은 방문객이 품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의 본질을 훼손한다… 등의
의견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차를 몰면 국토의 어느 곳이든 하루 안에 다다를 수 있는 이 시대에
관광객들은 전국 각지를 다양하게 여행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여행지 역시 전국의 다른
장소들과 경합하게 된 것이지요. 그곳에만 존재하는 특별함이 없는 공간은 장기적으로 도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인 셈입니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그러한 점에서 특별함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소 불편하고 거창할 것 없이 소박하지만, 여행자들의
정서적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편안함이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호텔에 버금가는 값비싼 투숙비를 요구하지만 그 숲 속 숙소에 머물 수 있다는 자체가
유니크한 경험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주인장이 써 붙여 놓은 불친절한 안내 역시 그가 지켜온 철학, 혹은 똥고집으로 느껴졌고, 내가 지켜내지 못하고 사는 바로 그것을
그가 지켜내고 있다는 안도감, 혹은 선망 같은 것을 갖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특별함 중에서 가장 큰 힘은 아마도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살고,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무를 심고 그 숲에 살고 있다는 그의 똥고집일 것입니다. 내게도 그런 똥고집 하나 있으니 과정이 험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불행한 삶은 누군가의 삶을 그저 따라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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