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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3일 06시 25분 등록
나 만두씨는 20년간 만두를 빚었다. 만두 솜씨는 포정해우 못지않다. 쇼윈도우 앞에서 반죽을 하고,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속을 채운다. 그의 퍼포먼스를 보면, 침샘에 침이 고이고, 안먹고는 못배겼다. 앞만 보고 만두만 빚어온 결과, 상당한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가 입지한 상권은 IMF때 유명 패션몰이 들어섰다. 명예퇴직에 줄도산이 횡행했던 분위기와 달리, 그는 인생 최고의 빛을 발하며, 만두를 빚었고 돈을 벌었다. 

어느날 고개를 들어보니, 주변상황이 많이 변했다. 그도 만두만 빚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건물을 물색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만두집 바로 옆에 또 유명 패션상가가 들어선다고 한다.대박을 느꼈다. 과감하게 만두를 빚어서 번 돈을 건물에 투자했다. 부동산은 만두 만큼 잘풀리지 않았다. 패션상가가 너무 들어서다 보니, 이미 포화상태라 그곳까지 유동인구가 미치지 못했다. 새벽 1시면, 장사가 한창 될 때인데, 파장 분위기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커다라 무언가가 입지한다고 해서 주변으로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기업 본사가 들어선다." 내지는, 커다란 마트가 들어선다고 하면, 주변 상인들은 많아지는 유동인구에 가슴에 설레인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 건물안에서 모두 해결이 되기때문에, 밖에까지 밥을 먹거나, 쇼핑하지 않는다. '상권이 알뜰해졌다'고 할까? 대기업이나, 커다란 조직이 들어온다고 부스러기 떨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나 만두는 생애 첫번째 투자에 실패했다. 하루 18시간 만두 빚어서 번 몇억을 순식간에 날렸다. 누군가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갑자기 건물주가 집세를 두배로 올린다고 한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어떻게 집세가 1,20만원도 아니고, 두배 가깝게 뛸 수있는가? 이 건물에서만 10년넘게 장사를 했는데, 건물주는 어찌 야속한가? 최근 프랜차이즈 만두집 덕분에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뻔히 알 것이다. 그런데도, 터무니 없이 집세를 올릴 수 있는가? 나 만두씨는 장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꿈도 못 꿀 소리다. 

그렇다면, 궁금할 것이다. 해도 너무 했지, 어떻게 집세를 두배나 올릴 수있는가? 여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나 만두씨의 건물주, 은수저는 선친으로부터 지지리궁상같은 건물 하나를 물려받는다. 그는 평범한 세일즈맨이었는데, 월급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사업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지도 못했다. 그저, 어느 정도만 고정수입이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생활했다. 물려받은 건물에서는 관리비가 더 많이 들어갔고, 재미는 없고, 때로는 세입자들의 잦은 보수요청에 성가셨다. 답답한 나머지, 건물 전문가를 찾았다. 서울에는 건물이 참 많다. 그 건물에는 각각 주인이 있다. 나라의 것이 아닌 것이다. 이들을 컨설팅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위 '건물 전문가'다. 그들은 건물을 이쁘게 화장해서 비싸게 팔거나, 아니면 세입자가 꼬이도록 관리비와 보증금을 적정하게 설계하는 일을 한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실력있는 전문가를 찾다. 

은수저의 이야기를 들은 건물 전문가는, 한숨을 쉬며 자기 일인냥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이 사람 참 모르네,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이미 50이 넘은 은수저가 건물 전문가의 수렴청정을 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전문가는 먼저, 월세를 두배로 올리라고 했다. 은수저는 그래도,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장사 안되는 것 뻔히 아는데, 그럴수는 없다.라고 했으나, 전문가는 '당신이 매일 그렇게 사는 것은 그런 알량한 연민때문이다'라며, 잔말 말고 시키는대로 하라고 일렀다. 

나 만두는 건물주, 은수저를 저주하며, 만두를 빚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간간히 알고 있던, 옆 건물 부동산의 중개업자다. 수억의 권리금을 줄테니, 가게를 넘기라는 이야기다. 나 만두는 또 다시 대박을 느꼈다. 이쯤 되면, 눈치 채듯이 그의 육감은 대부분 맞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권리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주의 만두에서, 황홀의 만두로 바뀌었다. 나 만두는 권리금을 내고 장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증금과 집세만으로 만두가게를 시작했다. 권리금을 받는다면, 예상치 못한 프리미엄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다면, 권리금이란 무엇인가? 권리금은 영업권을 양도하는 금액이라고 내 마음대로 정의해본다. 권리금은 전세만큼이나 우리 나라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인데, 사실 외국에도 비스무리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뉴욕에 중심가에 식당을 한다고 하면, 기존의 영업권을 양도 받는대신, 매출의 3배 정도를 전 사장에게 선납한다. 우리나라는 노점상에도 권리금이 있다. 권리금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용산 참사로 희생당한 사람들은 모두, 권리금을 받지 못해서 투쟁한 것이다.  보증금 보다, 훨씬 상회한다. 장사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말그대로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이고, 또 하나는 권리금 장사다. 손님을 일단 많이 끌어서,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나면  권리금을 챙겨서 다른 곳에서 또 가게를 오픈한다. 이들은 손이 크다. 손해 안볼 정도로만 물건을 팔기 때문에 당연 손님이 꼬인다. 나름대로 장사할려고 하는 것이니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참고만 해두자. 

이야기는 계속 흐른다. 중개업자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물건이 크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표정이었다. 알고보니, 그의 매장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배짱을 튕기면서 권리금을 올려갈 수 있었다. 나만두는 더 황홀했다. 길 가는 사람, 모두에게 만두 하나씩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로또가 부럽지 않다. 그러나, 황홀에 취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하지 못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도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하는가?라는 기초적인 질문이었다. 

결국 그는 가장 좋은 조건의 입찰자와 홀라당 계약을 한다. 졸지에 생각지도 못했던 수억이 생기자, 그의 마음은 사춘기 처녀의 가슴처럼 미칠듯이 부풀어올랐다. 그동안 2평짜리 주방에서 만두만 빚어온 자신의 삶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다. 큰 맘 먹고, 난생 처음 해외여행에 갔다. 중고가의 ,4박5일 일본 미야자키, 조식 포함 상품이었다. 

한달 정도 그의 기준으로 흥청망청 놀았다. 그도 장사꾼인지라, 놀고 있자니 특유의 불안이 치통처럼 올라왔다. 오랜만에 만두피를 잡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만두피를 놓은 적이 없는데, 예의 만두 실력은 손마디마디에 깊숙히 박혀있다. 이걸로 여기까지 왔고, 그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순간, 그의 만두 빚는 실력이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결정화 되는 것을 보았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이야기햇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한편, 은수저는 건물전문가의 코칭으로 하나 하나 건물재테크의 세계에 입문하고 있었다. '도대체 건물만 물려주면, 다인가. 무식한 노인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지 않은가?' 예상대로 오랜 세입자 나만두는 거품을 물고 나갔다. 내 건물에서 터무니 없이 몇억을 꿀걱 챙겨서 나간 것은 배가 아프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많은 월세를 받을 수가 있다. 은수저는 돈 벌 능력은 없었지만, 편안한 삶에 대한 동경과 꼬박꼬박 월세가 나오는 건물재테크에 크나큰 매력을 느꼈다. 머리가 이미 굳을대로 굳었는데도,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스스로 깨쳤다. 건물 전문가도 은수저의 영특함에 내심 감탄했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불쑥 이야기하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세상은 공평하다. 나만두가 횡재를 한 것은, 오히려 그가 세상 물정 모르고 만두만 빚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수십년간 일한 그 과정은 쌓이고 쌓여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난다. 이런 행운에 겸손해하며, 하던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만두가 세상 물정 아는척하고 덤벼들려고 할때, 이미 행운은 그의 손에서 떠난다.  

슬슬 가게 자리를 알아보던, 나만두는 예상보다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물론 집을 장만할때도 동산에 올라 그런 생각했다. 이렇게 집이 많은데, 설마 내집이 없겠는가? 그러다가 결국 내 집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정말 바늘하나 찌를 틈도 없이, 자리가 없었다. 비어있는 자리는 돈이 안되고, 돈이 되는 자리는 모두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돈이 꽤 많은 금액이기는 하지만, 사업을 하기에는 애매하다. 본인이 만두가게에서 올린 수익율을 벌기위해서는 오히려 터무니 없이 모잘랐다. 서울시내를 뒤집었다 싶을 정도로 상권을 보았지만, 장사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여기까지 나만두씨 근황이다. 그는 여전히 놀고 있다. 자영업은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도, 장사를 이미 해온 사람에게도 어렵다. 
IP *.111.206.9

프로필 이미지
2012.02.15 08:39:22 *.180.232.11

장사의 어려움은 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사업 계획을 세워 투자를 끌어 내는 일 조차, 거인은 몇 번 씩 실패를 맛 보았습니다.

장사를 시작할 상인으로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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