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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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단어가 내게로 왔다.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을 한다. 헤로도토스 <역사>의 도움을 받아 어두컴컴한 생각의 터널 안에 전등을 하나씩 켜기 시작한다.
첫째 역사는 내게 ‘싫은 과목’이다. 나는 청소년 시절 수학, 과학을 좋아하면서 역사 쯤 싫어해도 되는 과목이라고 여겼다. 부끄럽게 느껴지는 생각이지만 기록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역사다. 어렴풋이 역사를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고구려, 신라,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 때의 사회, 문화, 지리, 풍습, 전쟁, 왕권 등을 배우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실’,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한채 붕 떠 있었던 역사 책의 기록들은 내게 피부로 와 닿지 않자 나의 장기기억에 잘 머물지 못했다.
둘째 역사는 ‘관점과 기록의 만남’이다.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 객관적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도 가끔 같은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다르게 해석할 때가 종종 있다.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의 틀에 따라 해석되고 이야기 되어 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시대적 상황에 역사가의 관점이 투영되어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믿을 수 있는 역사는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기록으로부터 오는 지혜, 영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역사는 ‘스토리텔러’다. 우리에게 왕, 귀족, 예술가, 정치인 등 각기 각층에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또 역사는 지도(地圖) 위의 권력을 이야기 한다.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역사는 그 시대의 풍습을 이야기 한다. 한 사회로 묶인 무리가 가진 관습, 풍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넷째 역사는 ‘숫자’다. 역사는 우리에게 시간적 개념의 숫자, 지리적 개념의 숫자를 알려준다. 시간적 개념의 숫자란 시대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리적 개념의 숫자는 넓이, 길이, 양 등을 알려준다. 역사가 이야기 해주는 숫자를 좀 더 파고 들었다. 숫자가 우리에게 얼마나 무의미 하면서 동시에 유의미 한가를 생각하게 됐다. 나는 기원전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 찾아봤다. 자료가 나와 있었지만 확신이 들진 않았다. 왜냐하면 여러 학자들의 추측을 통해 정해진 연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적 개념의 숫자는 동시에 흐렸던 사고를 조금 명확하게 해주기도 했다. 역사는 무의미하면서도 유의미한 숫자를 우리에게 남긴 셈이다.
다섯째 역사는 ‘마땅히 이어져야 하는 순간들의 엮임’이다. ‘역사가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가 우리에게 올바르게 전달되고 있는가?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의 대답이 역사인가? 우리의 시작이 언제인지에 대한 답을 갈망한 것이 역사를 낳았나?’ 연속적으로 역사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나는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 나는 어떠한 흐름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란 기원전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나 긴 시간이 촘촘히 쌓여 그것이 나의 과거 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바로 어제 일어났던 어떠한 사건, 이슈들도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순간들을 엮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역사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바빌론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할 때 마다 어머니와 여자 한 사람만 남기고 그 밖의 여자들은 모두 모아서 죽였다고 했다. 여자 한 사람만을 남긴 이유는 식사를 만들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 여자를 죽인 까닭은 식량의 소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역사의 핵심이다. 나머지 여자들의 죽음은 <역사> 책에 이름이 씌여진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상황을 오롯이 보여줬다.식사를 만들기 위해 살아남은 한 여자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신과 인간의 합작품’이다. 신은 인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신을 두려워하며 신에게 자신들의 앞 날과 해야할 행동 등에 대해 묻는다. 인간은 신의 말에 순종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순종하기도 한다. 역사에 등장하는 신은 다양하다. 민족과 문화에 따라 신의 종류는 각양각색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참 신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역사를 이어나간다. 신과 인간의 합작품이 걸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2주간 역사에 대해 생각하려고 부단히 나의 생각의 터널을 달려왔다. 나는 여전히 터널을 달리며 나에게 역사가 어떠한 의미인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기 위해 전등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계속 달릴 것이다.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우주는 오늘도 역사의 한페이지를 써내려가며 숨을 쉬고,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