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하는 인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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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예보를 살피고 스스로 경로를 점검해보니
순탄치 않은 날들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예측된 어려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대응 가능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대응 가능한 범위에서 예측하고 항로를 조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비행은 순조로웠다. 예측했던 어려움들이 예상했던 얼굴로 나타났다. 그것을 헤쳐나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서서히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정간의 레버에 손을 얹고서 구름위로 치솟아 운해(雲海)를 깔고 고공비행을 하는 순간을 생각했다. 문제는 예측을 벗어난 돌발상황이다. 레버를 당겨 고공으로 오르려고 시도하는 순간 미처 예측하지 못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비행기는
깊은 협곡으로 묻혀 버린다. 짧은 순간이었다. 외견상으로 들어난 장애물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조정간을 놓친 손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공을 가른다.
연구원 북페어 이후에 마음은 정처(定處)를 정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엇 때문인가 생각해보지만 딱히 이유가 없다. 북페어 발표에 대한
신통치 않은 반응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높은 산을 오른 후에 풀린 다리처럼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연구원 1년이 끝나간다는 보람과 허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반응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차지 않는 잔월처럼 마음은
이지러지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런 마음을 주섬주섬 챙겨서 졸업여행 길에 올랐다. 그래도 여행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기대를 동반한다. 그들을 만나고 마음의 낯빛이 바뀐다. 응달에 비추는 해의 양기처럼 그들의 얼굴이 밝게 다가온다. 그들과
강원도 7번 국도 여행을 했다. 일정표가 없는 여행이었다. 지나던 길에 금진항에서 바다를 엿본다. 겨울바다의 기세는 바람을
타고서 하얀 포말을 도로 위에 퍼부어 놓는다. 옥계를 지나 늦은 저녁까지 숙소를 잡지 못하고 일행은
밤길을 더듬었고, 늦은 시간 어느 포구에 있는 구멍가게 주인 아줌마의 안내로 동해의 한편에서 일정을
풀고 쉴 수 있었다.
날이 밝아 추암 촛대바위를 찾았다. 촛대 바위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남게 된 남자의 전설을 담고 있다. 그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30분이
넘도록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 전설 속 남자의 넋일 수도 있고, 본처나
소실의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스친다. 삼척 인근에서 5일장을
들른다. 시장(市場)은 내가 알고
있고, 살아가는 삶보다 훨씬 생생하다는 다른 삶에 대한 혼란스러운 갈망을 느끼게 한다. 비록 그 곳도 권태와 일의 피로와 삶의 애증들이 뒤범벅된 곳이겠지만 도시에 살면서 내가 느끼는 삶의 활력에
대한 갈증을 담고 있다는 혼란스러운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사부는
<못된 음식>이라는 힌트를 주시면서 시장에서 이것 저것을 구입하신다. 우리에게 한 끼 밥을 손수 차려주신다고 하신다. 연구원 생활 중에
사부님께 우리가 차린 밥을 대접하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사부님에게서 받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감사하는 표현이 궁색할 뿐이다. 우리는 저녁에 스승께서 차려주신 <못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그림, 삶의 가치, 타로 점을 통해서 서로의 속 마음을 들춰본다.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 우리가 얼마나 고독해야 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사부님은 각자에게 연구원 수료하였음을 알리는 말씀을 해주셨다. 제자들은
진심으로 무릎과 머리를 조아려 사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나도 머리 조아리며 마음으로 인사 드린다. '당신으로 인해서 생긴 좋은 인연들입니다. 함께 배우고, 살고, 기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들기 전에 밤을 배경으로 겨울바다를 마주한다. 시선은 먼 곳을 응시한다. 애초에 무엇을 찾을 생각도 없었지만 멀리 던져진 시선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다 이내 발 끝으로 돌아온다. 밤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부서지는 포말은 더욱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갈 곳 없는 시선을 매어 놓는다. 다가와서 부서지고 다시 밀려나간다. 크고
검게 일렁이는 움직임은 밀려나가는 파도의 태클에 그르렁거리며 엎어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내 안에 무엇이
다가와서는 부서지고 그리고 멀리 밀려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다음 날 아침 곰치를 넣은 김칫국, '곰칫국'으로 어제 저녁의 숙취를 달랜다. 그리고
태백을 들러, 서울 가시는 사부님을 배웅하였다. 우리는 정선을 둘러보고 화엄동굴 인근식당에서 막걸리와 곤드레 나물밥으로
배를 채운다. 점심 시간이 지난 탓에 우리는 식당에 누워서 잠깐씩 잠을 청하기도 하고,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느긋하게 풀어놓았다.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움이
있다. 서로에 대한 격려가 있고, 사랑이 있다. 1년간 함께 한 시간의 한 땀 한 땀이 '우리'라는 인연에 쉬이 풀어지지 않을 매듭으로 무늬를 수놓는다. 나에게
지난 1년간의 연구원생활은 낯선 비행과 같은 것이었다. 일상을
떠난 여행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갈망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욕망의 헛된 발길질에 채이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본 시간이었다. 처음에
그곳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지금 그곳은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정처(定處)를 알 수 없는 마음 하나가 언제든지 찾아가면 스승과 함께 사우(師友)들과 함께 쉴 수 있을 만한 그런 곳이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에서 여독을 풀어놓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마치 한 가족이 된 것처럼 평화로웠던
휴양림의 저녁은 우리의 지난 시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계속 잠이 온다. 지난 몇 년간 외면하고 일어났던 모든
새벽의 잠들이 몰려오는 것 같다. 졸업 여행 중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나의 열정은 여전히 불시착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깊은 저녁 겨울 바다의 하얀 포말들이 밀려나고 밀려 오듯이 마음 속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나를 흔들고 있다. 어쩌면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스승의 말씀은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도와줄 수 없다. 이 지점이 지나면 너희들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 고독할
것이고 그것을 잘 견디어 내야 너희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불시착한 지점은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타야 하는 환승지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스승과 함께 사우들과 함께 동석했던 비행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아주 작은 비행기에 나만을 태우고
교신 장치를 준비하여 떠나야 하는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홀로 떠나는 비행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함께 한 지난 여행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다. 가치관
경매에서 '고독'이라는 가치를 선뜻 구입하였던 것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고독을 조금이나마 익숙하게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땡7이들에게 연구원 2년차인 올해도 강제성을 두어 우리의 모임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늦은 저녁 혀 꼬인 소리로 떠들었던 마음도 혼자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의 항변 같은 것이었으리라.
기침과 몸살이 심해졌다. 이틀째 링거를 맞고, 병원에 누워서 한나절을 보내도 잠은 여전히 몰려온다. 마음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달려 들었다가 다시 몰려 나가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여전하다. 새로운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