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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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좀 더 똑똑해진다면, 내가 말을 잘 한다면, 내가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등등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당당해 질 수 있을텐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변해야만 내가 당당해 질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행복에는 어떤 조건이 붙어야만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꿈꾸는 행복의 조건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늘 상황에 따라, 내 기분에 따라 그 조건들은 변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행복의 조건이라 여겼던 것들이 현재 내 것이 된다하더라도 그로 인해 꼭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그 행복의 조건처럼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욕심도 그렇다. ‘이것만 이루어지면 더 바랄게 없을 텐데.’ 하던 것이 이루어지더라도 어느 새 내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때론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막상 내 손에 들어와도 그다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기도 한다.
얼마 전 번데기 장사를 하시다가 번데기 싸는 신문으로 한글을 익히셨다는 한 할머니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신문으로 글을 익히시고 난 후에는 신문에 나온 한자를 한자, 한자 찾다 그것이 쌓여 한자검정시험 1급 까지 따시고 그 자격증이 토대가 되어 지금은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계신다. 처음 글을 익히실 때 신문 한 줄 한 줄이 자신한테 이야기를 건네주는 것 같이 재미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그 분의 기사를 보고 있자니 내가 부르짖던 행복의 조건들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어떤 조건 아래서만 당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내 욕심이 사치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자 익히기가 얼마나 재미있으셨으면 그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한 신문기사들의 글자가 이야기를 건네주는 것 같으셨을까? 비바람이 치는 거리에서, 뜨거운 뙤약볕이 머리를 뜨겁게 달구는 그늘 한 점 없는 길가에서, 그런 환경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신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어느 곳에서도 당당하지 못했던 이유는 늘 가진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두고 다른 이들과 비교를 하며 끝도 없이 자기 비하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삶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면 남과 비교해서 매꿔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비교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치명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문이 말을 걸어 올리는 없다. 그 순간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그 순간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유채예요. 제주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드셔 보세요.”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한 국수집에서 밑반찬으로 나온 향기가 너무도 좋은 나물이 있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주인아줌마는 이런 대답을 해주셨다. 같은 앉아있던 사람들은 ‘아, 그래서 향기가 이렇게 좋았구나.’ 하는 표정이다. 순간 주인아줌마의 그 한 마디로 식탁이 향기로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저 말을 듣고 속으로 ‘제주도는 무슨, 이게 정말 제주도에서 온 건지 어떻게 알어?’ 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언젠가 갔던 제주도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생각하는 건데 그 유채가 진짜이든 가짜이든 무슨 상관인가. 내가 한 순간이라도 그 유채를 통해 제주도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순간에는 제주도에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10에 3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족한 7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끝없는 자기비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우선 있는 3을 가지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앞에 얘기한 할머니도 번데기 장사를 해야만 하는 현실에 좌절하기 보다는 사람이 뜸한 틈을 타 신문이 건네주는 이야기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기에 그 나머지 시간을 인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장면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없다면 여타 다른 매체를 통해서라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던 장면이라도 생각해보자.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지금 그곳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작은 한 조각의 웃음을 찾듯이 내 마음도 들여다보자. 늘 부족하게만 보였던 내 마음 어느 한 구석에도 분명 한 조각의 웃음은 존재할 테니깐.
밤새 눈이 내려 길이 온통 눈으로 덮인 아침, 출근길을 불평으로 가득 채울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이라도 이런 들판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찌푸린 얼굴이 조금은 펴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언니 글을 읽고 나니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지난 번 북페어 때, 모 출판사 분이 내게 명함을 건네면서, 글과 그림, 글과 사진이 결합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길 했어.
그런면에서뿐만 아니라, 언니의 그림은 참 좋단 말이지. '나도 저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그림.
미선언니, 2012년에는 365일 중에 300일은 저 들판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쓰는 고통과 고독의 시간에도 무언가 즐길 수 있기를..!!!^^.. (참.. 결혼은 뭐..ㅋㅋㅋ.. 난 여전히 반댈세.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