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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5일 17시 48분 등록

 

<월요편지-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들 아시겠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지요. 이것은《맹자(孟子)의 이루(離婁) >〉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원래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제가 경험했던 역지사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올해 2월초, 한 단체에서 교육을 3박4일간 받았습니다. 이 단체가 은근히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꼭 넥타이에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육받기 전날 서울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서서 5분도 안되어 눈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아프고 무섭기?도 해서(저와 같은 백수는 몸뚱이 하나가 아주 큰 재산입니다.ㅋ^^;) 다시 집으로 가서 등산화에 세미 캐주얼로 갈아입고 교육장소로 갔습니다. 교육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교육 담당자가 저를 불렀습니다. ‘민진홍씨, 복장이 이게 뭡니까. 집에 다시 옷 갈아 입고 오던가, 아니면 바로 퇴소 조치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정장을 입고 출근을 했는데, 눈에 미끄러져서 옷을 급히 갈아입었다 등등..... 상황을 진실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담당자는 무작정 한명의 예외는 없다고 고자세(高姿勢)를 취하였습니다. 약간 부탁하는 조로, 아니 지금 여기가 시청 근처 안쪽이고, 저희집이 분당 안쪽인데 다시 왕복거리만 4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오늘 하루만 넘어가고, 내일부터는 정장차림을 하고 오겠다고 좋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교육담당자는 ‘예외는 없다’ 는 말만 반복할 뿐이고, 한 번만 더 따지고 들면 본사에 말해서 바로 퇴소조치를 하겠다고 아주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약간 욱하는 성격이 있고, 너무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야이~Eighteen dog baby 등등.. (나이가 젊으신 독자들이 있어서 언어 수위를 낮추었습니다.ㅋ^^;) 욕을 하며 멱살을 잡고 벽에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교육 교재를 땅에 다 던지면서 ‘Eighteen... 나도 더러워서 교육 안 받아 퇴소시켜! dog-baby야!.’ 라고 말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씩씩거리면서, 교육장을 빠져나와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후 저희 산악부 선배님께서 불이 나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안 받다가 그냥 받았습니다. ‘ 야...진홍아...결혼하고 애도 둘이나 있으면 성격 좀 바꾸어야지, 언제까지 니 성격대로 살래? 어느 정도 타협하고 살아...... 내가 그 교육 담당자한테 말을 잘 해놓았으니까 옷 갈아입고 다시 참석해... 참석하고 다음날도, 도저히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하면 그땐 책상을 엎던가!, 니 마음대로 해!! 아무튼 이번엔 선배 얼굴봐서 참아라.....’ 대충 이런 전화통화를 하고 끊었습니다. 군대와 같이 저희 산악부(암벽등반)도 위계질서가 엄격하기에 10년 동안 알고 지냈던 선배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배님 얼굴도 있어서 옷을 갈아입고 가기로 했습니다.

  

 

  서울시청에서 분당으로 가는 광역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보며, 분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저의 지금 상황들이 데자뷰[Deja vu] 효과처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황처럼 느껴졌고,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4년간 저는 원자력 계통에 일하면서 주물 생산관리를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재료검사였습니다. 용해로에 넣을 고철과 특수강들을 협력업체에서 가지고 오면 정해진 절차대로 PMI기계등 각종 기계를 이용해 검사 후 승인하는 업무였습니다. 특수강들은 환경적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해, 출고 당시 SPEC이 안정권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역작업 및 컨트롤 도중 오차가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은 알고 어느 정도 적용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검사원에 비해 까다로웠습니다.

 

  

  부산, 울산등지에서 온 16TON 트럭은 물론이고, 24톤 대형트럭까지 재료 샘플링을 해보고 SPEC에 맞지 않으면 그 협력업체에게 말하고 트럭을 그대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아주 고자세(高姿勢)를 취했습니다. 해당 담당자들은 당황해서 이번만 좀 받아달라고, 며칠 전 비가 와서 그런데, 창고가 습해서 좀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사정사정을 했습니다. 현금유동성이 급한 협력회사들은 잠시만 계시라고 말하며, 김해, 부산에서 해당 담당자들이 황급히 차를 타고 넘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장님 사정은 알겠는데, 보시다시피 불합격입니다. SPEC 범위에 니켈[nickel]함량이 모자라잖아요!! 등등... 아주 재수가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요령이 생긴 몇몇 회사들은 제가 출장가거나 월차 때 다른 검사관을 통해 물건을 납품하였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과 배려가 너무 부족한 철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 때문에 맘고생을 했던 협력업체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재수 없이 고자세를 취하고 갑(甲)이었던 제가 3년 뒤에 을(乙)로 변해 이런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2시간 가량 걸려서 다시 교육장으로 갔습니다. 교육담당자에게 오전에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음료수를 드렸습니다. 그 교육 담당자도 분(憤)은 다 안 풀린 것 같았지만 알겠다면서 교육받으러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3박 4일의 저의 교육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육 마지막날 무기명 설문조사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

OOO 교육 담당자님... 언제까지나 당신이 갑(甲)일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유도리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피교육자 을(乙)  민진홍 드림

]

 

 

 

  그리고는 다른 교육 담당자는 전부 “매우 좋음”으로 평가하고 저와 싸운 그분 교육 평가는 “중간”으로 메기고 나왔습니다. 저 O형인데도 은근히 소심하고 뒤끝 있는 남자인 것 같습니다. 이 성격 언제쯤 고쳐질까요? ㅡㅡ; 이상입니다.^^

 

 

 

#페이스북 <우리는 스토리다>에서 지금 신나는 10줄 스토리 경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얼쑤~ ~~ 신명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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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jpg

 

 

 

IP *.94.15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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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6 15:29:05 *.180.232.156

누구나 처음부터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인생이란 경험 부족한 시기, 초보와 반풍수 시절을 좌충우돌로 견디면서 그렇게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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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7:15:48 *.226.205.22

진홍의 글에는 진실이 묻어납니다. 그것이 스스로 겪은 리얼스토리이기 때문이죠..

나도 직장에서의 대부분을  '을'의 위치에서 보내왔기 때문에, 이런 부당한 상황들을 잘이해하고 있지요. 그들이 '갑'인 이유는 그 스스로가 잘 나서가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에 기인한 바라는 것을, 자신들만이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자신들의 조직에서 떠나야할 때, 불연듯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건가? 아무도 그들을 더이상 '갑'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은 '을'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인생은 이토록 공평하단 생각이 듭니다. 

'을'의 인생을 살지만, 우리의 내공은 그들의 것보다 강합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더 떳떳할 수 있습니다. ..

암튼 진홍..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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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9:37:19 *.222.3.90

철준형님.... 응원 감사합니다.

 

 2주 내로 분당 근처에서 술한잔하면서,

 

이번 3월 12일 생방송 북포럼 토크쇼 준비등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형님,.... 사랑합니다.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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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1 12:34:20 *.69.102.245

새벽산책님 글에 꽂혀서 월요편지를 금새 다 읽었습니다.

진정한 자신을 살아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갈등과 고민과 어려움이 있어도 사진의 모습처럼 해맑게 웃으며 헤쳐나가시는 것 같아, 그 미소와 용기가 부럽습니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코너에 몰려 바둥거릴 수 있는 용기. 극한 상황에서도 화이팅하는 긍정과 용기.

칼럼 계속 지켜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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