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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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이 책에서 세 개의 문을 열고 나서, 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황금열쇠를 선물 받았습니다. 하나씩 문이 열릴 때마다 다소 냄새가 나더라도 참아주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깨우침의 문 – 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똥쟁이였습니다.
저에게는 똥쟁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분뇨처리장에서 일 한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그 곳에서 하는 일은 분뇨를 미생물로 분해하는 일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미생물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들의 먹이가 똥인 것이죠. 그래서 똥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좋은 점은 도로 위를 달릴 때 주변에 차들이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비켜줍니다. 나쁜 점은 식당이나 휴게소에 가면 멀찌감치 주차를 하고 걸어와야 합니다. 그 때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다녔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버스 승객 한 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하필이면, 옆에다 대고 그래” 기분은 나빴지만 늘 상 있는 일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휴게소 직원까지 나와서 저 멀리 주차하라며 손짓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시 시동을 켜면서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뭘 보니, 니들은 똥 안 싸니’
밤 늦은 고속도로에는 군데군데 가로등만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어서 인지 졸음이 밀려 왔습니다. 하지만 강한 바람으로 차가 휘청거렸습니다. 조금씩 차가 흔들릴 때 마다 머리를 흔들면서 졸음을 쫓아냈습니다.
차선 중앙에 희미한 불빛이 깜빡 거리면서 다가왔습니다. 순간 차량 전조등이 아닌가? 불길한 예감이 와서 헤드라이트를 올렸습니다. 차량 한대가 도로 중앙에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측으로 핸들을 꺾었습니다. 다행히 사고 차량을 지나서 멈춰 섰습니다.
차문을 열고, 사고 난 차량을 바라보았을 때 뒤집어진 차량 아래에서 사람 손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함께 탄 동료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부탁하고, 저는 앞으로 뛰어 갔습니다. 다음에 오는 차를 멈춰 세워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이어서 바람이 매서웠지만 옷을 벗고 미친 듯이 흔들었습니다. 내리막이라 100km/h 이상으로 달려오는 차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 수십 대의 차를 세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함께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휴게소에서 만났던 버스 승객도 있었습니다.
“오늘 똥차 만나서 운이 좋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똥쟁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 견딤의 문 - 나는 사람들의 불만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4년 동안 똥쟁이로 살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은 ‘똥쟁이’ 이야기만 나오면 열광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와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얻었습니다. 이후에 식품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고객 만나는 일을 했습니다. 영업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불만으로 가득 찬 고객을 만나는 일입니다. 만나는 고객들 대부분이 호락호락 하신 분들이 아니어서 심적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제품을 던지면서 욕 하시는 분, 불만 제품을 건네면서 너도 똑같이 먹어보라고 권하시는 분, 추운 겨울날 대문 밖에서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라고 하시는 분, 다양한 성격과 여러 계층의 고객들을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아서 오히려 고객을 화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회사에서 인사징계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또다시 사람 만나는 게 싫어졌습니다. 심지어는 회사까지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그런 힘든 순간에 아내는 똥쟁이 시절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데일 케네디의 <인간관계론>를 보면서 ‘미소를 지어라’ 라는 글귀가 가슴 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 미소는 ‘나는 당신은 좋아해요, 당신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고객을 만날 때면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효과가 있었는지 어떤 고객은 “당신의 웃음 때문에 화가 다 풀렸다”고 말하고는 그냥 가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긴장된 얼굴보다는 진심으로 웃는 얼굴로 다가갈 때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5년간 고객 만나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모든 고객은 고객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면 그들도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나를 표현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저를 한없이 낮추고 칭찬과 격려로 그들의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 넣습니다. 심각한 순간에는 슬픈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심리를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심리학 책을 보고 성격과 유형을 상황 별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름 대로 재미있게 정리해서 사내 교육자료로 만들었습니다. ‘고객커뮤니케이션’이란 주제로 전국 영업지점 교육도 하게 되고 외부에서 강의 의뢰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변화와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스승님의 책을 읽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가 경험했던 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3. 넘어섬의 문 – 이제 똥쟁이는 글쟁이가 되려 합니다.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작가님, 홍대 앞에서 독자 싸인회를 열 계획인데, 꼭 참석해 주세요” 지금까지 위대한 작가들의 싸인을 받기만 했었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과연 나의 꿈이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야, 사람들이 얼마 오지 않을 거야.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싸인회가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일찍 도착해서 근처 커피숍에 들어갔다. 2층 창가에 앉았다. 앞으로 두 시간 뒤에 눈 앞에 보이는 싸인회 자리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씩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큰 현수막 옆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졌다. 스승님 얼굴이 떠올랐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으신다. 현장에서 내가 느낀 감동을 전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출판사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모두 준비되었으니 내려오세요”. 커피숍을 나와 야외 공터에 마련된 긴 탁자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카메라 불빛이 터졌다. 나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차례로 사람들과 인사하고 서명을 했다. 아직까지 실감이 가질 않았다. 순간,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첫 책을 냈을 때의 모습, 몇 년 뒤에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모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똥쟁이 양반, 축하하네”, 스승님의 얼굴이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를 더욱 가슴 벅차게 만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아직 넘어섬의 문은 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꿈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좀 더 많은 견딤의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의 격려와 조언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큰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