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지적 레이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라는 구본형선생님의 선동이 마음에 들었다. 제왕들이 다스렸던 거대한 제국을 떠올리면 단 한 장의 벽돌도 쌓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구본형선생님은 자기만의 능력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독특한 모양과 빛깔로 제국을 구축하라고 했다.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자기만의 제국을 구축하여 그 안에서 살고 있다. 단지 그 제국이라는 것이 많은 이의 관심과 눈길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문득 왜 나는 자신의 신화를 만들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생각을 모았다. 조지프 캠벨을 읽지 않은 탓이다. 왜 나는 내가 만든 제국 안에서 영웅으로 살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생각이 멈추었다.
앞으로 튼실하고 신선한 ‘나의 제국’을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 작업으로, 지금의 ‘나의 제국’을 돌아보려 한다. 작고 초라한 나의 제국이지만 <깊은 인생>의 형식을 빌려 ‘나는 누구인가’라는주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첫 번째의 문, 우연은 운명을 이끌어간다. 어떤 이에게는 우연이 우연으로 끝나버리지만, 필연이 되기도 한다. 내가 문화센터에 나가기 전까지는 살림살고, 아이 키우는 주부였다. 우연히 신문에 끼여 온 전단지를 보고 ‘수필강좌’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책 읽고 글쓰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수필문예지에 등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나는 일부러 등단이 조금 까다로운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다. 글이 둔했기에 등단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수필강좌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난 유명하지는 않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수필강좌에 등록을 하지도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를 시도하긴 했겠지만, 글쓰기만큼 매혹적인 일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의 문, 피할 수 없는 길을 걸어라. 내 글에서 불교냄새가 묻어났는지, 불교문예지나 언론사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그전에도 불자였긴 하지만, 본격적인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다. ‘문사수법회’의 여여법사로부터 경전을 경전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내면화하는 것을 배웠다. 경전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도 배웠다. <금강경>, <육조단경>, <법화경>, <화엄경>등 이곳에서 여러 경전을 공부했다. ‘문사수법회’에서의 삼년 동안은 내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고, 나의 사고체계를 바꾸어놓은 한 장이 되었다.
‘문사수법회’에서는 염불수행을 중시하기에 선사상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곳을 나왔다. 나 혼자서 <전등록>, <벽암록>등을 읽어나갔다. 이때 불교월간지에 <에세이로 읽는 금강경>을 연재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원고를 게재하였으니 32개월 동안의 연재였다. 나중엔 연재한 것이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이렇게 하여 나는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세 번째의 문, 꿈을 가지다. 불교를 공부하고 있으니 불교의 발상지요 붓다의 숨결이 묻어있는 인도를 한 번 가보고 싶었다. 한 달 간의 세미배낭여행은 재미있었다. 인도여행을 갔다 와서 어느 문예지에 <인도네팔기행>을 연재했는데,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인도기행집을 낼 생각으로 인도를 한 번 더 여행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신들의 땅에서 찾은 행복 한줌>이었다. 이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 후부터 여행작가를 꿈꾸었다. 이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구본형선생님은 “꿈은 무엇인가? 자신을 주도적 인물로 정립하기 위한 정신작용이다.”라고 했다. 이 책의 출간 이후 나는 좀더 주도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네 번째의 문, 열심히 노력 했다. 불교 쪽 신문사에서 나에게 객원기자라는 명함과 함께 인물취재를 맡겼다. 그때의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구입했다. 그 당시 기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는 캐논350D 카메라와 렌즈와 후레쉬 그리고 가방을 사들였다. 이때 카메라에 들인 비용은 내 반 년 치 원고료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만큼 객원기자라는 일에 매혹 당했다는 이야기다. 다른 쪽 신문사에서도 일감을 맡았다. 인물을 취재하는 일을 4년 넘게 하였다. 차도 없이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원고는 한 꼭지에 불과했지만 내 생활은 취재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터뷰한 것들이 세 권의 책으로 묶어져 세상에 나왔다.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다섯 번째의 문, 고독을 견디다. 나는 이 고독의 시간들을 좋아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배낭여행도 하고, 취재도 다니니까 굉장히 활발하고 사교적인 줄로 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나는 일로 만나는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과 별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물론 마음 맞는 사람들과는 밤늦도록 술 마시고 놀기도 하지만, 이런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글을 쓰고 부터는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만남에 들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의 조금은 폐쇄적인 생활이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다. 내 삶의 방식일 뿐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놀 것 다 놀면서 굉장한 일을 해내곤 하지만, 매사에 느리기만 한 나는 한 편의 원고를 완성하는데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무엇을 배우고 수용하는데도 난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어쨌든 불필요한 만남과 외출을 자제하고 살았기에 이만큼의 글쓰기라도 했다고 생각한다. 자화자찬인가?
지금도 난 혼자 커피 마시러 다니고, 미술관 다니고, 혼자서 쇼핑 다닌다. 어느덧 홀로 다니는 것이 참으로 편하게 느껴진다. 스피노자가 홀로 지낸 고독과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 가을날 노란 단풍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고독을 즐기면서 혼자 거닐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촘촘히 짜여진 햇빛이 거실 가득 들어와 있고, 바흐의 무반주첼로를 들으면서 혼자 차를 마시는 그 시간도 참으로 행복하다. 첼로의 현이 내 심장 위에서 노니는 것 같다. 홀로 음악을 듣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섯 번째의 문, 스승을 얻다. 수필강좌를 지도한 정봉구선생님은 아직도 아련하게 그리운 사람이다. 불문학교수로 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문화센터에서 수필 강의를 하셨다. 학생들보다 일찍 오셔서 수업준비하시고, 열정을 다해 가르치시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모습에 더욱 놀랐다. 글쓰기도 배웠지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가운데 배웠다.
두 번째 스승은 ‘문사수 법회’의 여여법사님이다. 사찰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불식시킨 선구자 같은 분이다. 그리고 올곧게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려 애썼다. 불교란 가르침을 공부하는 곳이지 복을 비는 곳이 아니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붓다의 시절 그대로 법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소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여여법사로부터 ‘자신이 어떤 견고한 틀에 갇혀있음’을 깨달았다. 법사님은 불교라는 틀에도 갇히지 말고 남이 만들어놓은 견고한 틀에도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그때 나는 한 겹 벗고 새로이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곱 번째 문, 깊은 그늘을 체험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기록한 나의 이야기는 13년간의 궤적이다. 내 인생의 궤적을 짧지만 언어로 표현하고 보니 조금은 슬프다. 신화로 승화될 요소가 별로 없다.
작년, 2011년 나는 도약을 꿈꾸면서 적극적으로 나를 드러내고 홍보했다. 사실은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하지만 사회는 냉혹했다. 돈이 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선택하려 들지 않았다. ‘나’를 두고 보았을 때 상품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그들의 처사에 분노했고, 절망했다. 마음을 많이 다쳤고,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품었다. 자존감마저 무너지려 했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구겨 넣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남들의 평가에 한동안 가슴 아파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많이 울었다.
이제까지 이렇게 깊고도 혹독한 그늘체험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그늘체험을 겪으면서 어떤 때는 이를 악물고 한 권의 책을 내기도 했고, 어떤 때는 자신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난 지금 새롭게 태어나려 한다. 지금까지의 글쓰기는 앞으로 구축하게 될 ‘자신의 제국’을 위한 기다림의 세월로 생각하려 한다. 조지프 캠벨이 침묵의 10년을 걸었듯이.
지나온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13년 동안의 이력이라는 것이 나에겐 달빛이지만 남들에겐 반딧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부당했을 때는 ‘세상이 냉혹하다’고 분노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음이고,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함이었다. ‘나 열심히 살았거든요’ 이것은 세상을 향한 답이 아니다. 세상은 결과물을 원한다.
난 <깊은 인생>을 통해 가당치도 않은 커다란 꿈을 그렸다. 아직 꿈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좀더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 묵혀두어야 한다. 영웅의 신화를 흉내 내고 싶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자신의 제국’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그날까지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