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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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일이었다. 전쟁이 치열해져 남북간 공방을 주고받을 때, 링컨 대통령과 참모총장 간에 군작전에 대한 의견대립이 생겼다. 결국 링컨은 자기의 생각대로 고집을 부려 일을 처리해버렸다. 그런데 그 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링컨은 비서를 통해 참모총장에게 정중한 사과문을 보냈다. 그 사과문을 읽더니 참모총장은 소리쳤다.
“멍청한 자식 같으니!”
비서가 돌아오자 대통령이 물었다.
“뭐라고 하던가?” 비서가 주저하자 대통령이 말했다.
“괜찮아, 말해보게나.” 할 수 없이 비서가 말했다.
“‘멍청한 자식..’ 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링컨은
“참모총장이 사람 하나는 제대로 보는군.” 이라 말하며 크게 웃었다.
만약 링컨이 감히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당장 참모총장에게 쫓아가 멱살잡이라도 하려 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통령을 비난했으니 당연한 행동일까?앞뒤 상황 고려하지 않고 단지 그 말에만 집중한다면 참모총장이 잘못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화를 내는 것은 참모총장이 비난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은 자신의 고집이 일을 그르치게 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눈앞에 여실하게 드러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링컨이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기에 비난에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가 드러날까 초조해하고, 말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불같이 화를 내거나 열등감에 빠진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서는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지금 부족한 내 모습을 당장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하더라도 그 순간일 뿐이다. 언제까지고 진실을 숨기며 살 수는 없다. 설사 잘 숨기고 있다하더라도 자신의 본 모습이 들통 나지 않았다며 편안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들통 날까 불안함에 빠져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
한 집단 상담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내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참 찌질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못나게 여기며 궁상맞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걸 알아챈 순간 나는 집단 상담을 시작할 때 지었던 내 닉네임을 지우고 대신 ‘찌질이’란 닉네임을 달았다. ‘찌질이’란 말은 그 어느 누가 들어도 불쾌한 단어다. 이 이상 사람을 못나 보이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용기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게 무슨 용기씩이나 필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그 닉네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 웃자고 잠깐 우스운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 나를 그렇게 부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닉네임을 바꾸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닉네임을 붙였다고 해서 내가 정말 찌질이가 된 것처럼 여겨지기 보다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내가 남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특정한 부분들이 정말로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못나서 행동을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단 상담이 끝난 후에 같이 했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를 찌질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찌질아, 언제 왔어?’ 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집단 상담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 닉네임에 반응하는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계속 그렇게 부르는 사람에 대해 화가 나지는 아니었다. ‘내가 나를 그렇게 여겼을 때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살다보면 어느 일을 하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때론 못난 내 모습이 너무도 여실하게 드러나기도 해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숨으면 그 순간을 모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일단 인정하자. 내가 이 부분이 좀 부족하구나, 못났구나. 그다음 좌절하며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떨어져 들여다보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선 일어설 힘을 내야 한다.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힘 또한 그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 여자 참 요상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 파란색의 몸빼바지가 묘한 매력을 풍긴다. 눈동자를 좀 더 가운데로 모으고 입에 미소를 지어주면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가 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시도를 해보면 된다. 어쨌든 난 파란 몸빼바지가 아주 멋들어지게 어울리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