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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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레이스 - 2주차 칼럼] 나는 누구인가
미래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꿈을 꾸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작업은 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나의 잠재력을 찾고 계발하는 고독의 시간을 지나 훌쩍 커진 후 그때 다시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고 싶다.
1. 깨우침
일상의 저녁이었다. 그날은 아내도 잘 아는 내 친한 친구가 새로 이사한 집에 와서 자고 간 날이었다. 왠지 그 날 밤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 친구는 첫 직장 친구이다. 같이 유학 준비를 했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공부했지만 계속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녀석이다. 같이 주식에 빠진 적도 있고 서로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민을 주고 받기도 했다. 그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작년부터 벤처 기업 사장이 되었다. 아직도 내겐 학생 같은 모습이지만 사장이 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고 한다. 한때 그가 꿈꾸었던 교수나 뮤지컬 배우가 부럽지 않고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고 했다. 물론 가끔 힘들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책임이 커지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와 성취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남다르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안정된 직장에서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안전한 우리 안에 조용히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갈기를 매일 깎고 꼬리를 안으로 말아 넣으려 노력하는, 석양을 받아야만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사자였던 것이다. 그날 밤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 첫 페이지를 완성했다.
2. 견딤
내 생애 첫 번째 책에 대한 3차 북페어가 끝났다. 아직 한 권으로 완성된 책을 볼 때까지 많은 장애물이 남아있다. 첫 번째 북페어가 있을 때는 이번만 끝나면 마치 책이 금방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아직도 가끔 내가 무사히 졸업장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규칙적인 새벽 기상이 익숙해져 눈을 떠서 시계를 보면 항상 새벽 4시다.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글을 쓰다가 다시 침대로 들어간 적도 많지만, 새벽마다 눈을 떠서 하는 나만의 의식은 어언 500일이 넘었고 바로 이것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나만의 의식이다. 나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응시하고자 새벽에 힘차게 눈을 뜬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태양이 떠올라 있다. 기분 좋은 뻐근함을 떨쳐 버리려고 아기처럼 팔다리를 길게 뻗어 본다. 이제 출근을 준비해야 할 때다. 졸업장을 손에 쥐는 그날을 상상해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3. 넘어섬
나는 오늘 드디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약간의 돈을 손에 넣고 나의 삶을 향해 돛을 올린다. 항구에 있을 때는 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고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준다. 하지만 배가 만들어진 목적은 항구에 돛을 내리고 멈춰 서서 이끼가 내려앉도록 멈춰 서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돈보다 자유를 선택했다.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삶이 시작하려는 시점이다. 나는 감추고 있던 야성을 깨우기 위해 나만의 여행을 떠난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내 발로 밟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둘 작정이다. 내 몸 한 곳 누일 곳이 있음을 감사하고 따뜻한 밥 한 공기에 기뻐하며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딜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른다. 어느 순간 알 것 같다가도 해가 지면 그 기분은 사라진다. 내가 누구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이대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 대해 너무나 대견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나는 다시 해가 뜨고 있는 밖으로 힘차게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