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다
- 조회 수 2349
- 댓글 수 5
- 추천 수 0
나는 누구인가?
얼마 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자기 소개서 비슷한 글을 20페이지 분량 썼다. 또한 한 페이지 분량으로 나에 대한 요약의 글도 써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하니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확신에 차서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오기나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나에 대해서 글을 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또한 누가 들으면 공주병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능력과 사람됨에 대해서 자신감이 넘쳐있다. 나는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만큼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학문 영역 중에서 인문학을 좋아하고 특히나 문학을 좋아한다.
나는 항상 살아있기를 희망했다. 즉 항상 꿈꾸어 왔다는 것이다. 가끔은 꿈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고, 꿈이 있기나 한 것인지 방황을 하던 시절들이 있었지만 그 순간마저도 항상 꿈에 대해서 생각했다. 삶이 지루해질 때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하는 생각은 나의 화두였다. 그럴 때마다, 답은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고, 책을 나누고 책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해서 아이돌 스타를 만난 10대 같아진다. 나는 별을 좋아한다. 내가 뜬금없이 책 이야기를 하다 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책이나 별이 나에게 항상 아이로 살게 하는 힘을 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동화가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음을 별이 나에게 준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선생님은 『깊은 인생』에서 각성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우연의 마주침 속에서 각성되는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피디이자, 서평꾼으로도 유명한 정혜윤씨가 어떤 강연장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프랑스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우두커니 하늘을 보다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을 보고는 소름이 돋았던 각성의 순간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별들이 구름이 걷히며 일시에 반짝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녀는 큰 깨우침을 가졌다고 한다. 자신이 보고 있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아도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 린다 수박이 쓴 『사금파리 한 조각』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주인공 목이가 깨우침을 얻는 순간인데, “산에 나무를 하러 간 목이가 잠시 쉬면서 숲 속의 푸른 나무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느닷없이 눈에 사슴 한 마리가 잡혔다. 사슴은 오래 전부터 거기 서 있었고, 목이는 줄곧 사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슴을 본 것은 바로 그 마지막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사슴은 목이가 보고 있지 않던 순간에도 목이를 보고 있었을 테지만, 목이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이의 눈이 줄곧 그 사슴을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목이는 그릇(자기)을 만드는 진흙을 거르는 작업에서 진흙이 그릇을 만들 수 있는 적당한 상태가 되는 때를 알게 되는 순간의 깨우침의 상태가 사슴을 봤던 때와 같다고 생각했다. 진흙은 거르면 거를수록 어느 순간 그릇을 만들 수 있는 상태로 되지만, 그 상태가 언제인지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수십 번, 수백 번의 경험을 지나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상태야, 하는 것을 알 게 되는 순간. 그것은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목이는 스승님께서 왜 가르쳐주시지 않았는지 그때서야 알게 된다. 그것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깨우침의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을 글로 말하고 싶다. 삶의 깨우침의 순간을 포착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항상 살아있고 싶다. 나는 이것을 꿈꾸는 사람이다.
기대한다니깐 더 부담되어서...ㅎㅎㅎ
난다는 제가 SNS를 하면서 사용하게 된 닉네임입니다.
페이스북을 주로 하는데 그곳에서도 새로 친구가 되면 많은 친구들이 제 이름을 궁금해 해서 써둔 글이 있는데...
그것을 퍼왔습니다.
궁금증이 좀 풀리실듯....ㅋㅋㅋ
******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들 하나같이 물어오는 질문이다.
(본명을 썼어야 하나. ㅠㅠ)
언젠가 내 이름에 대해 아주 긴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
친구 담벼락이었나보다. 누구 담벼락이었을까?
아마 내가 쫌 이뻐하는 친구 분 중에 하나였을텐데...
거두절미하고.
얼마 전에도 이름에 대해 질문을 받았고
오늘도 질문을 받아서.
미루지 않고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또 물어 올 친구를 대비해서 오늘은 노트글로 쓴다.
(나 지금 시답지 않은 어떤 글을 쓰느라 무지 바쁜 와중인데 불구하고.)
내 이름은 인도 남부 깨랄라에 있는 '마타 암리타난다메이'라고 부르는 성자의 이름에서 왔다.
짦게 그 분의 이름은 암마.
내가 좋아하는 성자다. 인도에는 아난다라는 이름이 많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도 있고, 어찌되었든 환희라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아난다라는 닉네임을 트윗에서 쓰려고 했는데.
이 놈의 이름을 쓰는 사람이 전 세계에 어메이징하게 많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를 빼고 난다.
난다를 만들어 놓고 보니 내가 공부한 성명학적으로도 돈을 부르는 이름이고.
또한 우리말로는 발생한다, 일어난다의 생성의 의미도 있고.
또 한 난~다!!라고 하는 I am all...이라는 의미도 있고.
날아다닌다는 의미의 난다도 되고.
암튼 다양한 해석의 맛도 있어서 나는 이 이름이 좋다.
나는 세상이기도 하고, 나는 날고도 싶고, 나는 생성하는 삶을 살고 싶고. 환희의 삶을 살고 싶다.
나는 그래서 난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