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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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시와 첫 번째 만남 – 시는 나의 영혼을 깨워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저녁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손에 조그만 책한 권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복도 창가에 있는 학생에게 교실 불을 끄라고 손짓했다. 불이 꺼지자, 두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눈을 감았다. 정적이 흐르고 선생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시를 읊으셨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그 마음가짐 이라네”라고 시작하는 시는 한 구절 한 구절마음에 와 닿았다. 눈을 감고 들었을 때, 행이 끝나고 난 뒤의 침묵은 시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공부에 찌들어 있던 감성들이 깨어났다. “영감의 안테나를 더 높이 세우고 희망의 전파를 끊임없이 잡는 한, 여든의 노인도 늘 푸른 청춘이네” 마지막 행에서는 전율까지 느껴졌다. 그 뒤에도 많은 시를 읽어주셨지만,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느낌은 잊을 수 없었다.
시와 두 번째 만남 – 시는 나를 절벽으로 몰아가는 호랑이였다.
작년 여름, 나는 시 창작 수업을 수강했다. 2010년 단편소설을 쓰면서 지적 받았던 묘사 부분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내 작품을 합평해준 소설가는 ‘묘사가 없는 소설은 재미없으며, 소설을 썼을 때 하나의 시로 녹여 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문학에 대한 기본바탕은 없는 상태였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내고 있는 수준이었다.
직장인을 상대로 하는 ‘시 창작 교실’은 시를 써 오면 시인과 수강생들이 합평하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첫 시간, 태어나서 처음 지어 본 시에 대한 평가였다.
“당신의 글에는 감정이나 감동이 없다. 시의 깊이가 없다. 깨달음이 없다, 당신의 글을 단지 이미지만을 나열하고 있다.” 쏟아지는 비평들을 받아 적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의 깊이는 무엇인가?’, ‘깨달음이 왜 필요하지?’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 들러서 시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을 찾았다. 오규원의<현대시작법>이었다. 시 쓰는 기본원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 속에 다양한 시를 보면서 흉내내기도 했다. 다음시간, 두 번째 평가를 받았다.
“감정을 너무 드러냈군요, 겉멋만 부린 것 같아요, 너무 다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당신의 글은 과거의 추억회상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나를 절벽으로 몰고 가는 기분이었다. 나름 상황 설정을 하고 몰입해서 열심히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각이 꽉 막혀버린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시인 선생님을 찾아갔다. 도대체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단지 ‘좋은 시를 많이 읽어봐야지만 깨달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했다.
“문장 중에 ‘슬프다, 우습다’라고 표현했는데, 왜 슬프고 우스운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전이 부딪치며, 시끄럽다.’라는 문장도 동전이 부딪치면 당연히 시끄러운 것이니, 다른 상반된 단어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후에 몇 차례 시를 써서 제출했다. 하지만 규칙에 얽매여 쓴 시는 더 이상 내가 쓴 시가 아니라 남의 흉내를 낸 시였다.
시와 세 번째 만남 – 시는 다시 밝은 빛을 가져다 주었다.
다른 책들은 주로 집에서 책을 읽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시미학산책’은 버스 안에서, 출장 가는 기차 안에서, 공원 벤치에서 보았다. 읽을수록 자연이 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책장을 남겨둘 때는 산이 보이는 커피숍에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마지막 문구를 읽고,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시를 읽어주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시를 음미하고, 선생님은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에 담겨진 선생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산이 보였다. 감동의 여운이 메아리 되어 내게로 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시는 시인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읽으면서 얼마나 내가 시에 대해 무지하고 부족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명과 코골기를 함께 가진 환자였다. 정해진 규범과 형식에만 집착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 변화시키지 못했다. 책 속의 시인들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함께 보자며 눈 앞에 사물과 풍경들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시간은 숨을 멈추고 나를 무아지경으로 안내했다. 어느덧 자연과 하나되어 내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렇게 한시는 깨달음의 미학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운 만남이 있었다. 이번 주는 출장이 많아서 KTX을 타고 다녔다. 그 기차 안에서 어느 노 부부를 만났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였다. 동대구에서 기차를 탄 노부부는 내가 앉은 건너편 앞자리에 짐을 풀었다. 앉자마자 할머니는 가방에서 책과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한참 뒤적거리더니, 지나가는 승무원을 불렀다. “혹시 연필 있나요?” 말하자, 승무원은 “볼펜은 있는데, 연필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샤프펜슬을 할머니에게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무슨 보물이라도 찾는 것처럼 기뻐했다. 옆에 앉아계신 할아버지도 연신 고맙다며 인사했다. 나는 ‘한시미학산책’을 잠시 덮어 두고, 할머니가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책을 보다가 창 밖을 응시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 느낌을 노트에 옮겨 담으셨다. 할아버지는 커피와 음식을 챙겨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쓰고 있는 것은 분명, 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았다. 서울역까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내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기차가 도착하자 할머니는 펜을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는 메모와 함께였다. “작가 분이세요?”라고 묻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웃음으로 대신했다.
이번 과제의 초안은 이 펜으로 작성했다. 어느 노 작가의 영감을 느끼면서, 혹시나 그 영감이 시마詩魔가 되어 나에게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이준혁님: 감사합니다. 그런 감동의 순간들이 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터닝포인트님 : 아마도 제 성격인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든요. 너무 매사에 진지해서인지
저의 아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레몬님 :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더 많이 고쳐지고 배워야 합니다.
함께 레이스를 하게되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재용님 : 글의 수준이 남 다르세요, 꼼꼼한 자료 정리도 압권이시구요.
앞으로 배워야 점이 많습니다.
@펄펄 :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눈물 흘린적은 많아도, 보잘 것 없는 저의 글이
누군가의 눈물샘을 자극한다고 생각하니깐, 글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집니다.
님의 댓글이 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