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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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3. 나도 알아 금방 싫증날 거란 걸. 하지만 ‘지금’ 하고
싶으니까!
눈을 뜨자마자 얼마 전에 구입한 그림 그리기
책을 펼쳤다. 하루에 30분씩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었을까? 지금까지 익숙하게 사용해 온
말이나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워낙 주변에 친한 친구들에게도 내
얘기나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성격 탓인지, 나는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다. 28년간 말로써만 표현을 하다가, 작년부터 글로써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뻥하고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글로써도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내게서 꿈틀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들을 계속해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다. 물론 아직 내 안에 꿈틀대는 무언가를 표현하기에 옹알이하는 아기마냥 답답하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니 왠지 예술가의 길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하다. 이렇듯 나는 무언가 하고 싶으면, 오랜 고민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친절한 책 덕분에 첫
장에 있는 과제들을 무사히 마쳤다.
생활계획표에 맞춰 방학숙제를 하는 초등학생처럼
그림 그리기가 끝나자마자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다. ‘첫 술에 배부르랴’란 속담은 그저 말뿐이었으면 좋겠다. 언어를 배울 때는 이상하게 첫술에
배가 엄청 부르길 바라게 된다. 이탈리아어 기초가 담긴 책을 보다, 왠지
이 책만으로는 진도가 너무 느릴 것 같아 이탈리아어를 빨리 습득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한다. 각종
웹사이트를 뒤지다 예전에 친구가 알려 준 Language Exchange 언어교환 사이트가 생각났다. 그래서 당장 관련 사이트를 찾아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중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탈리아 사람을 찾는다. 연결이 되면 나는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한 사이트에서 한국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을 세 명 정도 찾았다.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에게 쪽지를 보낸다. 몇 시간 후 가입했던
사이트에서 쪽지가 왔다. 내가 먼저 쪽지를 보낸 사람은 아니었다.
33세의 남자이고,. 이태원에 살고 있는 러시아 사람인데 이탈리아에서 산 적이 있어서 이탈리아어도
잘 할 줄 안다고 생각이 있으면 쪽지를 달라고 한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또 몇 시간 후, 내가 쪽지를 보낸 이탈리아 남자에게 쪽지가
왔다. 이렇게 연락이 되어서 반갑다고, 자기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며, 공부도 연습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어는 완벽하게 알려줄 수 있다고 호언 장담을 한다. 추석 연휴에는 일본 여행을 가니까, 갔다 와서 주말에 연락하자는
내용의 쪽지였다. 다다익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나는 그의 쪽지에도 답장을 했다. 반갑다고, 영어는 조금 할 줄 알고, 이탈리아어 실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그리고 한국어는 잘 가르쳐줄 수 있다고 보냈다. 두 명과 쪽지를 주고 받고 나니, 왠지 일이 착착 진행 되어 가는
느낌이다. 학원에 가서 돈을 주고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백수
신세라 교육비로 쓸 여유가 없다. 서로 언어를 가르쳐주면서 배우게 되면 더 빨리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이 닿은 두 사람과 만나서 이탈리아어를 배울 생각에 왠지 이미 이탈리아어를 ‘쏼라쏼라’ 말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두둥!!!
드디어 이탈리아 청년을 만나기로 한 토요일이다. 밀린 집안일과 게으름에 결국 약속시간을
넘기고 나는 급히 이탈리아 청년에게 늦겠다고 문자를 보낸다. 정확히
4시 3분에 약속장소에 도착. 기대했던 잘생긴
이탈리아노는 아니었지만, 훤칠한 키에 예쁜 노란 머리의 외국인 청년이 서 있다. 그에게 다가가 ‘Are you andrea?’라고 물었는데, ‘No!!!’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엇,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다던 안드레아는 보이지 않는다.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이게 왠일!!!! 서울대 입구역, Seoul National Univerty 역에 있어야 할 이 친구가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길…’ 혹시나 했던 걱정이 현실로 되어 버려서, 그녀는 그냥 자기가 교대역쪽으로 가겠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근처
카페에 가서 기다리라고 다시 문자를 보낸다. 그랬더니, ‘괜찮다고. 여기서 기다리는게 더 낫겠다고 이쪽으로 와줘서 고맙다.’는 문자가
온다. 분명 서울대입구 역이라고 친절하게 한글까지 써서 문자를 보냈던 그녀이기에 ‘뭐지? 얘 일부러 자기 집에서 가까운 교대로 잘못 간 척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과 ‘이상한 애면 어쩌지..’ 온갖 상상에 휩싸인 채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교대역에
도착해서 불안한 마음 반, 잘 생긴 이탈리아노에 대한 기대 반으로 3번
출구로 향하는 그녀. 출구 밖으로 나오니 출구 바로 앞에 외국인이 한 명 서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찾았다. 이탈리아 여행 사전 모임에서 봤던 알베르토만큼
잘 생긴 이탈리아노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적당한 키에 노란 머리, 26살이란 나이보다는 조금 더 ‘아저씨’스러운 얼굴을 가진 이탈리아노다. 두 사람은 함께 맞은 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잘못
찾아와서 미안하느니, 괜찮다느니 이런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가 영어를 너무 잘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영어를 그리 유창하게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카페에서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안드레아는 녹차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에서 한국어 교재를 꺼낸다. 나도 얼마 전에 주문한 이탈리아 책을 꺼냈다. 생각보다 그는 한국어를
꽤 잘 하는 편이었다. 글을 쓰고 읽을 줄도 알고, 간단한
한국어로 대화도 가능하다. Language Exchange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둘 다 처음이라
어떻게 할지 어리버리하다 처음에는 영어도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 온 지 6개월이 되었다는 안드레아는 이태리에서 공부를 마치고, 싱가폴에 있는
회사를 3년 정도 다니다가, 현재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에서 매일 아침 한 시간씩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같이 공부하는 이들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배워서, 즉
‘우등생’인 덕분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회사에서 일대일
한국어 과외를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받고 있단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사람, 한국어를 정말 배우고 싶은 모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는지, 주말엔 주로 뭘 하는지, 서로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서로의 언어를
왜 배우고 싶어하는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뭔지 등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짧은 영어와 간단한
한국어로 2시간 정도 떠들었다. 각자 이후 일정이 있어서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태리어를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이런
만남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기초의 중요성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다.
2주 후에 만나기로 한 안드레아에게는 더 이상 연락이 없고, 그 사이 이탈리아어와 그림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렸다.
이렇게 나는 늘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이지만, 그만큼 금방 싫증이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덮어버리고
마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게 하는 가장 난감한 질문 중에 하나가 “취미가
뭐에요?”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금전적 목적이 아닌 기쁨을 얻는 활동’이다. 그리고 취미가 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데에서 시작해야하고, 지속성이
있으며,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과 구별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활동들을 보면 그림 그리기, 이태리어 공부하기, 축구, 독서, 스노우보딩, 팬플룻, 꿈너머 꿈 모임, 뮤지컬 등이 있다. 다 좋아해서 시작했고, 직업과 구별되었으나, 단 하나 지속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 한번 하고 말았다. 그나마 독서만 유일하게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는 활동이다. 그래서
요즘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책 읽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취미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이것저것 다 좋아해요. 혹은 특별한 취미가 없는데요.? 라고 하면 사람들은 전부 ‘얘는 뭐야?’ 이런 표정을 짓기 십상이다. 거기에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종에서는
취미생활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하나에 푹 빠지는 것이 열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빠지는 것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취미생활이지만, 이것이 언젠가 나의
또 하나의 직업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이 꿈도 바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으면 한다!!!!
<신치가 미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모두 멀리 보고 행복을 찾는데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p46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중)
우연히 너에게 다가오는 순간의 행복을 찾고 따르는 너를 응원한다~!!!!
#36. 지구는 각자의 ‘나’를 중심으로 돈다.
매주 월요일은 모든 임원이 모여 중요한 회의를 한다. 회의가 끝나면 임원들이 돌아가며 점심을 대접한다. 다음주는 내가 모시고 있는 임원이 임원오찬의 호스트가 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있으니 부서장 비서가 답답했는지, 내게 이리 오라 손짓을 한다. 30미터 앞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로 가자 사장님부터 본부장에 이르는 서열의 순서와 호스트의 순서가 동일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리고 임원 외에 참석자 명단까지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적어 준다. 부사장 비서가 없었으면 나는 여기서 어찌 견뎠을까 싶다.
임원에게 임원오찬을 어디에서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그러자 임원은 내게
“어디 괜찮은데 없을까? 몇 개 괜찮은 데 알아보고 나한테 얘기해 주는 게 니 일이지. 가격도 적당한 곳으로.”
“아. 그래요? 근데 제가 이 근처에서 밥을 많이 안 먹어봐서, 아는 데가 별로 없어서요. 몇 군데 알려 주시면 거기랑 몇 군데 더 알아볼게요.”
임원실에서 나와 부사장 비서에게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사장 비서는
“감사님은 어디가 좋을 것 같데요?”
“송학이나 남산복집?”
“악! 언니, 거긴 안 되요!”
“왜요?”
“거기 가면 너무 일찍 오신단 말이에요. 12시 40분쯤이면 벌써 사무실 도착할 걸요?”
그렇다. 점심시간이 다른 직원들에게는 1시간30분으로 넉넉하지만, 비서는 임원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들어와 있어야 한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 데 말이다. 물론 임원에 따라 늦게 오는 들어오는 것을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되도록이면 멀리, 그리고 오래 앉아 있다가 올 수 있는 곳으로 정하라고 조언을 해준다. 그래서 나는 거리는 가깝지만 차로 이동해야 하는 삼청동 쪽의 한정식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찾다 보니 여러 조건들이 걸린다. 특히 임원 차량의 주차와 기사님들의 식사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감사님 기사인 과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과장님, 저 이미나에요.”
“어, 미나씨.”
“다음 주, 월요일 임원 오찬을 감사님이 준비하세요. 삼청동쪽에 있는 한정식집을 알아보는 중이거든요. 만약 거기로 가면 과장님이랑 다른 분들 주차랑 점심은 어떻게 하세요?”
“어? 삼청동? 삼청동에 한정식집 없어!”
“어, 꽤 있던데요?? 큰나무집, 산에나물.. 등등 생각보다 많아요. 왜 별로에요?”
“두 개는 들어 본 것 같고, 두 개는 처음 듣네. 삼청동 별로야. 차라리 인사동으로 해. 그 쪽에 괜찮은 집들 많아.”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부사장 비서의 왈,
“삼청동으로 하지 말라고하죠? 운전하기 귀찮아서 그래요.”
하하하하하하하. 이 상황이 왜 이렇게 웃긴거지?
결국 임원오찬을 마치고 돌아온 임원이 처음에 추천했던 곳으로 결정을 했다. 본인 법인카드로 결제를 해야 하는 임원은 많이 비싸지 않지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원하고, 비서는 최대한 오랜 시간 앉아 있을 만한 곳을 원하고, 기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이 상황을 보니 어찌되었든 지구는 모든 이들에게 ‘각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37. 옷 주는 착한 친구들
내 돈으로 옷을 안 산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정장을 입고 다녀야 했던 첫 직장을 그만 둔 뒤에는 편하게 입을 옷이 없어 온갖 구박을 견뎌가며 동생 옷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면서 내가 입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옷 몇 가지만 남겨두고 싹 다 가져가 버렸다. 이제 옷이 없는데 어쩌냐고 걱정하던 그 때 온라인 쇼핑몰을 했던 친구 마나가 집에 있는 옷을 가져가라고 한다. 쇼핑몰 할 때 친구인데도 구입하나 하지 않았던 터라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일단 준다고 할 때 덥썩 받는 것이 사람의 미덕이니, 주말에 친구네로 달려 갔다. 그리고 여름이었던 상황을 고려해 친구는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을 커다랗게 한 보따리나 싸 주었다. 하늘거리는 실크 블라우스, 아주 얇은 연보라색 티셔츠, 약간 쌀쌀해 지면 입을 수 있는 가디건, 청바지에 치마까지. 엄청난 양의 옷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한 바탕 패션쇼가 벌어진다. 뭐랑 입어야 어울릴까? 어릴 적 설날에 까까옷을 산 것마냥 그저 신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쑥쑥. 쑥쑥은 본인 집에서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해 먹이는 걸 아주 좋아하는 친구다. 얼마 전 이유 없이 갑자기 꿀꿀해 진 어느 날, 쑥쑥네 집으로 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는 야들야들한 삼겹살과, 살아서 생기가 넘치는 각종 채소들,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계란 프라이, 건강까지 생각한 현미밥과 쑥쑥네 엄마표 정성 가득한 밑반찬까지 진수성찬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은은한 불빛에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배려심 깊은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왜! 왜 기분이 꿀꿀해?”라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면서 내 기분도 좋아지고, 내년엔 일이 어찌 될지, 연애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그녀의 타로로 마무리를 했다. 집에 가려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그녀가 나를 위해 옷을 챙겨뒀다며, 고급스러운 갈색 톤에 마치 유럽 귀족 문장 같은 그림이 새겨진 단추가 달린 자켓을 내게 내민다. 옷을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는 나. 안 그래도 요즘 입을 옷이 없다며, 무한 반복 감사인사를 전한다.
사실 1년이 넘게 나와 동고동락 하고 있는 내 가방도 그녀가 준 것이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회사에서 허리가 아파 그녀의 가방을 빌려 매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내가 너무 잘 쓰고 있었고 정작 가방 주인인 그녀는 1년에 한 두번 사용하니 별로 필요가 없다며 내게 선뜻 그 가방 가지라며 준 것이었다. 옷도 가방도 아주 잘 쓰고 있긴 한데, 매번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해서 참 미안하긴 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안나짱. 첫 직장 동료인 그녀는 예쁘고 질 좋은 옷을 싸게 사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 비싸고 별 볼일 없는 옷을 사는 나에게 늘 가감 없이 독설을 퍼부어주는 아주 좋은 친구다. 그녀 덕분에 바닥이었던 나의 정장 패션 센스가 그나마 조금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며 옷을 사는 게 취미인 그녀 덕분에 나는 사이즈가 좀 작은 옷들을 입으라고 나에게 던져 주곤 했다. 회사를 그만 둔 이후에도 꾸준히 만나고 있던 얼마 전, 임신을 해서 집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뭘 좋아할지 몰라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사 가지고 가서 맛있게 먹고, 한창 수다도 떨었다. 그러고 집으로 오는데 또 옷을 한 보따리 내민다. 가기 전부터 ‘너에게 줄 옷을 골라놓겠다’고 했기에 ‘요즘 입을 옷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잘 됐다’고 응수했던 나였다. 셔츠나 티셔츠 종류를 생각했던 나에게 의외의 선물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마침 전 날 토악질로 술김에 겨울외투를 물에 푹 담가놓아 ‘남은 겨울을 어찌 버틸까?’ 고민하던 나와 텔레파시가 통했나보다. 모자가 달려서 귀여운 겨울 외투, 따뜻한 소재의 가디건, 엄청 예쁜 카키색의 트렌치코트, 예쁜 단추가 달린 약간 쌀쌀한 봄에 입을 수 있는 회색 재킷까지. 나는 향후 1년간 외투를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주 커다란 종이가방에 옷들을 꾹꾹 눌러담아 룰루랄라 집으로 오는 길, 발걸음도 가볍다~!!
이런 친구들 덕분에 나는 지난 2년간 옷을 사지 않아도 내 옷장의 옷은 늘어나기만 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친구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언급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모두 댓글을 달아 주었는데, 이 중 한 친구의 댓글.
“옷장 정리하면 한 번 더 쏠게” 으하하하하. 역시 내 친구들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