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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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새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도 TV는 사지 않았다. TV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개그 콘서트나 절대 놓칠 수 없는 꽃미남 드라마는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거기다 가족들과 TV 채널을 두고 다툴 필요도 없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이 아주 가끔은 책을 펼쳐 들기도 하니 흐뭇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곤란한 경우가 가끔 있다. 반드시 생방송으로 봐야 하는 프로그램, 예를 들면 얼마 전 있었던 우리나라와 쿠웨이트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최종전 같은 경우다. 모처럼 일찍 들어온 남편은 축구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TV 생중계 서비스를 찾아 냈다. PC 모니터 화면에 펼쳐지는 축구경기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모처럼만에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 민국을 외쳤다.
전반전이 득점 없이 끝나고 후반전 30분이 지나 이동국의 골에 이어 이근호의 골이 터졌다.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1박 2일 동안 혹한기 훈련을 받았던 그 둘이 결국 일을 낸 것이다. 통쾌한 슛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하다. 이동국의 노련함과 이근호의 젊음이 빛난다. 그런데 경기 내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최강희 감독의 표정. 거의 두 시간 동안 그는 무표정한 상태로 있었다. 아니 무표정이라기 보다는 무엇인가가 못마땅한 사람 같다. 골이 터져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선수 못지 않게 화려한 골 세레모니를 보여주었던 히딩크 감독과는 정반대다. 경기가 끝난 후 최감독의 표정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무표정한 이유를 묻는 질문이 지식 검색에 등장하고 나름 통찰력 있는 분석들이 쏟아진다. (주로 언급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승부를 떠나 경기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편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이므로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이 흥분하면 선수들도 흥분해 경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국내파로만 운영하려는 대표팀을 비관적으로 보던 축구팬들에게 ‘내 말이 맞지?’하는 의미로, 무게 있는 대표팀 감독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원래 캐릭터가 그래서 등) 그의 무표정에는 진정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창조해 낸 위대한 세기의 드라마 『파우스트』. 인생의 가치와 의미, 진정한 진리를 알고자 갈망했던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지상의 모든 쾌락과 권력, 부귀영화를 경험한다. 젊고 아름다운 그레트헨과 사랑을 나누고 신화 속 최고의 미녀 헬레네와 결혼해 아들까지 두지만 잠시의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결국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민중과 함께 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념이 실현되자 파우스트는 인생 최고의 감탄사를 입에 올린다.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지존의 행복한 순간을 맞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아이,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이곳에서 위험에 둘러싸여 알찬 삶을 보내리라.
나는 사람들이 그리 모여 사는 것을 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네.
그러면 순간을 향해 말할 수 있으리라,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이 지상에서 보낸 내 삶의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걸세 ---
그런 드높은 행복을 미리 맛보며, 나는 최고의 순간을 즐기노라.
내 인생에서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최고의 감탄사를 연발했던 때가 언제였나? 혹시 최강희 감독처럼 기쁨의 순간에도 무표정했던 것은 아니었나? 내 표정을 보고 사람들이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항상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되돌아보면 기쁨은 도처에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보석 같은 아이들을 얻었고 많은 직업적,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 그 순간 하나하나가 감탄해야 마땅할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감탄에 인색했다. 어제 갔던 온 가족 등산길, 비록 야트막한 동네 뒷산이었지만 조무래기 두 딸이 정상까지 씩씩하게 올라가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소리 내어 감탄하지 않았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행운도 행복도, 기쁨도 아닌 감탄이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끝없이 감탄하라고 강조한다. 가장 미숙하게 태어난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한 학습 능력을 보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엄마의 감탄’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지난 3일간 감탄한 일이 없었다면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이라 그는 단언한다. 감탄하고 감탄 받고 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려면 얼마나 감탄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묻는단다. ‘감탄할 일이 없는데 어찌 감탄을 합니까? 감탄은커녕 한탄만 나와요.’ 그럼 그는 간단히 대답한다. ‘감탄을 하면 감탄할 일이 생겨요.’
나의 스승은 나에게 자신에게 감탄하라 이르셨다. ‘사람은 무한한 것이다. 필멸의 존재이나 그 내면은 참으로 깊어 무한한 탐험이 가능하다. 자신에게 감탄하고 자신에게 놀라거라. 너는 그리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잘 알지 못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다 보면 자신에게 감탄할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파우스트는 극한의 감탄의 순간,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게 되므로 일생의 딱 한 번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루에도 수 십 번 감탄의 말을 내뱉어도 되지 않은가? 감탄은 감탄을 부른다. 감탄에 인색하지 말지어다. 다음 번 월드컵 축구팀 경기에서는 최강희 감독의 화려한 오바 액션 골 세레모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 아는가? 그의 감탄이 더 큰 감탄할 일 – 골 소나기 또는 골 폭풍 – 을 부를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감탄할 일이 있는지 잘 찾아 보라. 자신의 작은 재능과 가능성일지라도 감탄을 계속한다면 또 다른 감탄할 일이 생길 것이라 믿어보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감탄뿐 이다.
앞의 녀석이 내가 생각하던 첫 문장을 써먹어 버렸다......
나도 언니의 글이 감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ㅋㅋㅋ
언니의 글은 깔끔하면서 추동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최근에 난 언제 감탄했지?" 라고 생각해봤다는.
언니 정도면 맨날 맨날 "브라보~~~"짝짝짝 해줘도 되는 캐릭이예요.
힘, 민첩, 지능 뭐,,, 이런 것들이 골고루 발달된 캐릭이라는... ㅋㅋㅋㅋ
어떤 일이고 유니크하게 언니의 스타일로 해내면서 왜 감탄을 안해줘..
나 같음 "나 너무 잘했다." 맨날 이러고 있을텐데...
언니 말에 힘을 입어 오늘 뭐에 감탄할지 생각해 봐야겠당~ 언니도 그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