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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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진지해야 한다. 진지하지 않다면 그것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신념이다. 나에게 있어 삶이란 ‘진지함’ 그 자체여야 했다. 가볍고 유치한 것은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삶에 가벼움이 들어오지 못하게 견고한 틀을 만들었다. 쉽게 웃지 않았다. 그건 가벼운 거니깐. 유치한 장난에 얼굴을 붉히며 반응하기 일쑤였던 나에게 어쩌다 장난이라도 걸었던 선배들은 반응하는 내 표정을 보고 흠칫 놀랄 정도였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빌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웃음이 들어올 틈이 없어지자 점점 내 삶에서 없어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희·노·애·락’의 감정이다. 삶은 진지해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슬프고, 기쁘고, 화나고, 즐거울 것이 있겠는가?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나는 가볍다고, 약한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내 삶은 딱히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화날 일도, 기쁠 일도 없었다.
대학교 때 남자친구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설레는 내 마음이 느껴질 때였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내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이 당황스러웠고 그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서로의 연인이 된다는 것은 풋풋하고 즐거운 일이거늘 나에게 연애는 기분 좋은 이벤트였지만 설레는 내 마음은 그 안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들키는 것이 싫어 나는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틱틱거리며 괜한 트집을 잡았다. 상대방도 나의 반응에 당황스러워 했고 그렇게 풀지 못한 오해들이 쌓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짧은 연애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겼던 나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스스로 인정한 그 때는 결과를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삶을 한결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연애라는 사건도 이리 진지하게 대했던 나는 스스로에게도 더할 수 없이 진지한 잣대를 들이대며 살았다. 일상의 소소한 일에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며 살지 않았기에 삶에서 내가 겪게 되는 모든 일이 다 대수롭지 않았다. 감정의 동요를 잘 일으키지 않았던 나에게는 또 다른 나만의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정말 좋은 경험을, 삶에 있어서 정말 나를 다시 보게 해줄 커다란 경험을 한다면 마음이 먼저 알아서 반응할 것이다.’ 였다. 오랜 시간 마음이 반응하지 않게끔 스스로를 훈련시켜가며 살았는데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신념인가?
이런 상반된 신념과 함께 살았던 나에게 일상에서 겪게 되는 많은 경험 중에 ‘이것은 좋은 경험이다.’라고 느끼게 해줄 만한 마음의 반응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시시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다지 놀랄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었다. 이상한 것은 내 삶은 이리도 시시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다른 이들의 삶은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 뒤에 이어 따라오는 생각은 ‘내가 어디가 모자라서 이런 건가?’ 였다. 자동적으로 비교를 하게 되었다. ‘쟤는 학벌이 좋아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구나.’, ‘저 아이는 얼굴이 예쁘니깐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구나.’, ‘좋은 경험을 하게 되니, 삶이 풍요로워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니깐 그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구나......’ , ‘나는 학벌도 좋지 못하고, 예쁘지도 않으니깐 애초에 저런 경험을 할 수 없나보다. 난 뭘 해도 안 될 거야. 저 아이들 따라가려면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서 일단 채워야해. 채우더라도 넘치고 또 넘치게 채워야 겨우 따라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준비만 하며 끊임없이 비교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애초에 내 학벌이나, 외모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앞, 뒤가 맞지 않는 내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방향에서 찾으니 그 해결책 또한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나의 진지함이란 안경을 가지고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다양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이 주위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입이 ‘떡’하고 벌어질만한 일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일이,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리는 일만이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일인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삶이 풍요롭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항상 진지하고, 심각하고, 무거운 일상을 껴안고 사는 삶 에서는 다채로운 표정이 나올 수 없다. 진지함을 버리고 다른 안경을 낀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이 어긋나지 않은 해결책은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진지한 표정으로 사는 삶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아니오.
그냥 글목록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대답하고싶어졌어.ㅋ.
나도 삶의 모든 것들이 진지해야하고, 진지하게만 대할때가 있었떤 것 같아. 특히 사춘기 시절이었던가?
늘 심각한 얼굴을 하고 다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웃음, 유머가 좋아지고, 나도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ㅋ
이런 통찰이 있어서인가, 요즘 언니가 잘 웃는 이유는???
참참참.. 이번에 <책은 도끼다>를 읽으면서 언니에게 도움이 될 문장을 발견했어!!!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들을 인정하게 될 터였다. p136
저 여자가 넘 이쁘면 진지해지고 싶잖아.......ㅡ,.ㅡ
언니 글을 읽고 난 '쿨하다'라는 말이 떠올랐어.
내가 받는 쿨함의 느낌이 그런 거였거든. 어떤 희노애락이 오더라도 시크하고 쿨하게 반응하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에 발을 살짝만 담그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
내 삶을 마치 남의 삶인 양 옆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눈물도 웃음도 필요없어 진 것은 아닐까.
공지영은 이런 삶을 쿨하다 못해 서늘하다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고.
언니가 생각한 진지함과 내가 생각한 쿨함이 비슷한 것 같아서 말이 길어졌네.
연애시절 언니 모습을 그려보다 쿡 하고 웃었다. 나도 그래봤거든. 아닌척하기... ㅋㅋㅋㅋ
미나의 댓글이 강추다~~~ 소식을 들려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