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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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옆에 이도 그런데요?”
“네?”
“보세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냥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 대단한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앞니 근처에 뭔가 부딪힌 것 뿐이었어요. 그리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피도 나지 않았고 입술도 멀쩡했어요. 물론 아팠죠. 이가 조금 흔들리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정말 대수롭지 않은 정도였으니까요. 하룻밤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연한 멍자국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여전히 아프고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급히 해야 하는 일을 후다닥 해놓고 이리저리 거울을 돌려 보다가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금이 갔던 거였어요. 당연히 아프고 흔들릴 수 밖에요. 병원해 갔습니다. 이미 부러진 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치료 중 저 말을 들었죠. 네. 부러진 이는 두 개였던 거예요. 공황상태였습니다. 뭔가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경지였지요.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와서는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최악의 이 순간에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어쩌면 깨어나서는 ‘서프라이즈! 꿈이었네.’ 라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꿈은 아니었습니다.
다쳤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끔찍이 싫은 일 중의 하나지요. 아픈 통증보다도 싫은 건 일상의 불편함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활하기엔 제약이 많이 따르잖아요.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불편해 졌습니다. 물 마시기 외엔 다 불편했지요. 당연히 배는 고프고,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습니다. 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외출은 싫어졌어요.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는데 이게 얼마나 숨 막히는지. 내가 뱉은 숨은 다시 들이마시고 있는 기분은 뜨끈뜨끈하고 축축한 것이 익숙해지지 않았지요. 그대로 하루 종일 티비 리모컨이나 쥐고 뒹굴거리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치과에서 한 달이라니 한 달은 이런 기분이겠지요.
최대한 일상에 빠져들어봅니다. 어차피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로 찾아서 하는 거지요. 다행히 이가 부러진거니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았습니다. 운전도 할 수 있었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집안 에서는 하니에게 책을 읽어줄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니는 엄마는 이가 빠졌으니 이빨 빠진 괴물 놀이를 하자고 하더군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네요.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벌리고 있는 것도 편한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하는 동안은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수백 번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봤을지도 몰라요. 한달이 언제 지나가나 한숨을 내쉬면서 말이예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을 때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친 것이 아픈 것이 아니었어요. 다쳐서 아프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어서 아픈 거였죠. 나는 내가 다쳤기 때문에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불편함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자 하루 종일 불편한 것들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죠. 이것도 해보니까 불편하네. 저것도 생각보다 불편하잖아. 이런 생각들만 줄줄이 달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하루 종일 불편할 밖에요. 불편한 것들만 세고 있는데 하루가 편할 리가 있겠어요. 결국 날 불편하게 만든 건 나였어요. 다쳤다는 사실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들을 세는 방법보다는 할 수 있는 것들을 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요. 다친 순간에는 그것으로 인해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커져서 우리의 시야를 가려버리니까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그런 생각들이 점점 자라나 나를 먹어치워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조금씩 삐걱대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실험해 보는 거죠.
일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극도의 당연함과 편안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은 행동들은 습관화가 되어 의식하지 않더라도 행동하게 되죠. 오랜 시간의 반복으로 우리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의식하지 않지만 넘어지지 않고 잘 걷고 있으며 흘리지 않고 음식을 먹으며 펜을 사용해 글씨를 쓰지요. 그 당연함과 편안함이 깨지는 순간을 우리는 불편함이라 느끼게 됩니다. 익숙했던 만큼 큰 불편함이 되지요. 한참을 의식하지 않고도 해오던 일을 의식하면서 끙끙거리고 있는 자신에게 짜증이 나고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 결국은 하고 있던 것을 내팽개치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라고 내뱉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래요. 다친 것은 불편함입니다. 그것도 나만이 느끼고 있는 불편함이지요.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사는데 나 혼자 쉽지 않아 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상에서 발견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연한 듯이 해 왔던 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거지요. 아직도 이 일은 할 수 있구나. 저 일도 가능할 것 같아. 이렇게요. 그 순간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세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세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엄청나게 커다란 괴물 같았던 불편함의 덩어리가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죠. 지금도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세요.
“이것도 할 수 있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할 수 있는 것들에 감탄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불편함의 기간을 보내는 거죠. 그 기간은 생각했던 것만큼 길지도 않고 큰 불편함이 아닌지도 몰라요. 단지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뿐.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들을 발견할 지도 모르지요. 내 안에 숨어 있는 다른 능력을 발견할 지도 모르구요. 오른손을 다쳐 젓가락질을 못하지만 왼손의 현란한 포크 실력을 발견해 낼 수도 있고, 다리를 다쳐 걷기는 힘들어 졌지만 최소한의 동선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도 있겠지요. 내 이는 부러졌지만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빨 빠진 괴물 역할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