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 조회 수 2366
- 댓글 수 11
- 추천 수 0
창조(創造)의 창(窓) -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최 세 린
“그림책은 시와 같아요. 시는 함축이 많잖아요. 시를 하나 읽다 보면 행마다 끊기는 것 같지만 다 읽고 나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고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줄 때가 있죠? 그것처럼 그림책도 장면마다 끊기는 것 같지만 다 읽고 나면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있는거에요.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묘사를 해보세요.”
곧 동화책을 낼 친구가 최근 『금동이네 김장 잔치』글을 쓰신 동화작가 유타루 씨와 이야기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었다. 동화작가 분은 친구에게 그림책은 시와 같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림책? 시? 함축? 묘사? 감동?’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연달아 내 안에 박히는 단어들을 주목했다. 동시에 정민 교수의『한시 미학 산책』을 읽으면서 시에서 묘사된 풍경, 사물, 사람의 모습 등을 연필로 스케치 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정민 교수도 『한시 미학 산책』에서 말했듯이 시는 그림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가보다. 그렇게 시는 내게 그림을 그리고 싶게 했고, 시를 읽으며 상상할 때 한 폭의 그림을 보게 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의 2차 레이스 과제를 받던 날이다. 작년에 7기 연구원의 연구 과제 중 몇 권의 책을 사서 반도 못 읽고 덮었던터라 그 책들을 다시 읽을 기회를 얻을 줄 알았다. 근데 나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8기 예비 연구원들의 과제는 7기 연구원 때와 사뭇 달라졌으며 특히 나에게는 아주 생소한 분야인 ‘시’가 포함 되어 있었다. 나는 그 과제를 받자 마자 시집을 찾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딱 3권이었다. 그것도 모두 선물받은 것이었다. 한 권은 내게 사랑 고백을 했던 남정네가 선물한 책이다. 또 한 권은 선배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나머지 한 권은 생일날 친구가 자기 친구의 추천으로 선물해준 시집이다. 이렇게 달랑 3권의 시집을 발견한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시에 대해서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날이다. 그렇게 시는 내게 낯선 문학이었다.
그러나 나는 낯선 것에 호기심을 느꼈다. 관심 없었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문학을 과제로 받은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들 새롭지 않겠느냐마는) ‘시가 내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 시가 내게 어떤 풍부한 감성을 선물할까?, 시가 내게 어떤 철학적 사색을 하게 할까?’ 호기심과 떨리는 마음으로 시집을 펼쳤다. 처음으로 펼친 시집은 김용택 시인이 사랑하는 시를 엮은『시가 내게로 왔다』였다. 제일 처음 내 마음을 찌른 시는 황지우 시인의 <나무에 대한 예배>이다. 그 시는 내게 ‘용서’를 가르쳐 줬다. 아주 간결하게 용서를 ‘나를 휘어지게 만들더라도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가르쳐줬다. 내게 있어 첫 번째 시는 ‘용서’를 알게 해준 통로였다. 생각보다 출발이 좋았다. 시를 읽을 때 내 마음이 스르륵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시가 내게 뭐라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시를 읽어도 아무 느낌이 나지 않을까봐 겁을 먹고 있었던 터라 나의 작은 반응에도 기뻤다. 매일 시집을 읽으면서 ‘내 인생의 시집 한 권’을 채워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일 뿐 실현되진 못했다. 시와 관련된 과제를 하기 전에 해야하는 3주간의 과제들은 시집을 읽으면서 여유를 부릴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깊은 인생』, 『한시 미학 산책』과 더불어 주어진 컬럼 주제는 그것에만 몰입해도 모자랄 만큼 내 생각을 집중시켰다.
그런데도 시집을 펼쳐 시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시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과제를 받은 날 부터 그 전까지는 ‘시’에 대해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시집을 사보지도 않던 내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기 구독한지 얼마 안 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출판 전문지 『기획회이』313호에서는 철학자 강신주 씨에 대해 다루면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강신주 씨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이란 책에서 한 이야기들도 적혀 있었다. 또한 인문정신에 대해 쓰면서 철학, 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얼마 전 나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종이 신문을 통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그 신문에도 ‘시가 있는 아침’이란 코너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예능 프로그램 중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에서 작년 가을 ‘시’를 주제로 방영했던 적이 있다는 정보까지 내게 흘러 들어왔다. 신발 사려고 마음 먹으면 사람들 신발만 눈에 보이고 머리 스타일 바꾸려고 마음 먹으면 사람들 머리 스타일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시는 내게 동시 다발적으로 다가왔다. 정기 간행물에서도, 신문에서도, 심지어 티브이 프로그램에서까지 조차 말이다. ‘요즘 시가 대센가?’ 라는 생각을 했다.
결정적으로 3월 1일 내가 구독하는 신문에는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 실렸다. 커피 두 잔 값이면 좀 더 나은 존재로 비상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면서 시집도 한 권 추천했다. 기사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언젠가 이 지면에 ‘시는 쓸모 없는 짓’이라고 적었습니다. 시는 바로 그 쓸모 없음 때문에 읽어야 합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우리가 보낸 순간』)고 적었는데, 시는 바로 그런것이지요.” 시를 읽으면 우리의 인생이 약간 고귀해 질 수 있다고 이야기 하면서 정강현 기자는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나는 시와 인연이 있나보다. 내가 시에게 호기심을 보였더니 시는 내게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달려와 주었다. 나는 그렇게 시와 만났다.
정민 교수의 『한시 미학 산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시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책을 읽는 내내 시가 내게 말했다. ‘시란 말이지, 이런거야. 시란 말이야 이래야 해. 시란 말이지 이런 면도 있지’ 라고 계속 속삭였다. 시가 내게 말해 준 몇 가지를 적어본다.
시는 숨은 그림 찾기와 같다.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면 안 된다. 그 대신 행간을 읽을 줄 알아 시인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을 간파해야 한다.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많이 읽다보면 어느 정도 간파해 낼 수 있게 되긴 하지만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재미있다. 시인이 숨겨놓은 뜻을 찾아 이리저리 궁리를 하며 시를 대하니 이전 보다 훨씬 시를 읽는 묘미가 생긴다.
시는 이야기꾼과 같다.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태도와 관련지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역사를 간직한 책 생략법을 사용하여 전쟁을 통한 아픔을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어떠한 사람에 대해 온통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정을 말해주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은근히, 싱그럽게,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지루하지 않게 변형을 시도하기도 했다. 좋은 시를 짓는 것 자체도 어려웠을 텐데 재미와 규칙을 넣어 잡체시의 세계를 보여주니 그 또한 흥미롭고 즐거운 이야기거리가 됐다.
시를 쓰는 시인에 대한 말도 빼놓지 않았다. 시인은 진정성을 가지고 시를 지어야 한다. 시인이 자신만의 정신의 향기 없이 표현의 아름다움만 추구하면 시는 생동감을 잃게 된단다. 옛사람의 문장이라고 다 잘된 것이라 생각하고 베껴서도 안된다. 꾸며서 웃고 거짓으로 슬퍼해서도 안된다. 정민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이 정을 머금어 이를 펴고, 경물을 대하여 마음을 움직이며, 물상을 그려냄에 그 정신을 얻게 된다면, 저절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시인의 정신이 맑고 투명해야 함을 알았다.
시가 내게 무엇인지를 골똘이 생각하면서 떠오른 문장이 있다. 그것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시란 창조(創造)의 창(窓)이다. 시는 시인들이 자신들만의 창조성을 가지고 세상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막힌 벽과 지붕에 작은 창문을 내줬다. 그리고 시는 창을 만들어 시인들이 밖에 있는 맑은 공기, 따스한 햇빛을 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인생과 자연을 노래할 수 있게, 깨달음과 지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말이다. 시는 그렇게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도록 마음에 작은 창문 하나를 내준다.
(참고)
- 『시가 내게로 왔다』, 김용택
-『기획회의 』 313호
- 중앙일보 (3월 1일)
- 『한시 미학 산책』 중 101, 184~185, 312, 320, 577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