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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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시인을 사랑했다. 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도통 시가 어려워서 그 동안은 시를 읽은 적이 별로 없다. 주로 소설이나 수필을 좋아했고, 전공도 소설을 했다. 시는 신의 경지에 있는 분들이 짓는 장르였다. 그러니 신을 사랑한 것인가?
신께서 어느 날 전화를 했다.
“뭐하냐? 일 끝났냐?” 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대답을 하면 만나주려던 마음을 거둘까봐. 말을 돌려, “왜, 놀아 주려고?” 하고 반문했다.
전화기 너머로 신의 모차르트 같은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놀 시간은 없고 공부를 좀 해야겠는데, 어디서 하지? 남들처럼 까페에 가서 할까?”
“그럼 우리 동네 까페로 와! 아니다 도서관 어때? 우리 동네 도서관으로 와라!”
“맨 날 지네 동네로 오래!” 그러면서 들리는 웃음소리.
“그래, 그럼 가 있어! 내가 금방 챙겨서 나갈게.”
전화를 끊고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신을 만나도 되는 것인가?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발걸음은 서두르고 있다.
어떤 정신으로 도서관에 갔는지 기억이 없다. 차를 타고 갔는지, 달려 갔는지, 걸어 갔는지. 나는 도서관에 도착했고, 신을 찾았다. 열람실 한 쪽에서 시집을 읽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맞은편에 앉아서 내 책을 꺼냈다.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시선은 신을 향하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러나 신께서 무슨 시집을 읽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난다. 김기택의 <사무원>, 나희덕의 <어두워진다는 것>, 양현구의 <개굴이네 집>, 박성우의 <가뜬한 잠>.
그날 나의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써졌다.
도서관이다.
그 사람이 앞에 있다.
눈을 들면 그가 보인다.
그러나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인가
전화기의 그를 알려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올 때의 환희란!
환희는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낮 동안 잊고자 했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 편에서 들린다.
괴로운 사랑이었다. 신을 사랑한 인간, 오랜 고통 끝에 인간은 신의 창조물만 사랑하기로 했다. 시를 읽기 시작했다, 김기택을 읽고, 문태준을 읽고, 천양희, 허수경, 나희덕, 복효근, 곽재구, 이문구, 박남준, 안도현, 김용택, 정호승, 정양, 도종환, 백석, 신동호, 황동규, 황지우, 박노해, 백무산, 신동엽, 함민복, 이성복, 이병초, 이원규, 이병률, 박성우 등을 읽었다.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시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