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샐리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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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
1) 중고등학교 때의 시와의 만남 그리고 K 교수님 : 텍스트 분석의 방법론
나에게 시란 늘 외워야 하는 숙제였다. 그 시의 맛과 멋을 알아차리기까지...그리고 난 한시미학산책을 읽으며 알아 차렸다.
이 시기가 나에겐 글만 읽고 그 마음은 제대로 읽지 못했던 시기라는 것을.
난 좀 늦게 성숙했는지 그 시의 감칠맛 나는 시의 멋과 함축미등을 대학에 가서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학교 국문학과 K 교수님은 이런 감성적인 접근 보다는 텍스트 분석의 방법론이란 교과목으로 우리를 옥죄기 시작하셨다. 난 시 수업 시간이 두려웠다. 그 맛을 좀 음미하기도 전에 해야 하는 시 분석 시간이 참 내겐 어려운 시간이었다. 수업 형태도 우리가 준비해서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그 날은 더더구나 죽음의 시간인 것이 저자의 의도를 잘못 파악 할라치면 교수님의 치도곤이가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내가 혼나는 것도 두려웠지만 잘못 분석한 친구들에게 교수님은 여지없이 수치심과 죄책감을 선물로 안겨주시곤 했다.
그래서 난 참 한동안 시가 싫었다. 한 학기 시론 수업을 들은 이후론 나는 시라면 주눅 들고 나를 위축 시키는 이미지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2) 시는 내게 어머님과 같은 따스한 품이었다. : 이해인 수녀님과의 만남
때는 대학 졸업반 초가을로 접어드는 무렵: 밖의 교정엔 스멀스멀 가을 기운이 다가 오고 있었다. 난 우연히 알게 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받아 들고 하염없이 그 시를 음미하다가 난 부산 베네딕트 수녀원으로 편지를 보냈다. 저자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갖고 싶다는 일념하에...그런데 뜻 밖에도 수녀님께선 내게 새로 나온 책과 한 장의 편지를 보내 오셨다. 나에게 다시 시의 감성들이 살아나며 시에게 받은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순간들이었다. 난 그 이후로 이해인 수녀님의 시 수필집등은 꼬박 꼬박 사 모으며 수녀님에 대한 연모의 정을 새록새록 키워 나갔다. 그러다가 시는... 삶의 여유로움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난 직장인으로 생활인으로 삶을 정신없이 살며 내 시간에서 시는 다시 아득한 문학의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이시기는 또 내게 이런 시기였구나 하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에서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 입을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속에 이른바 정서란 것이 생겨난다. 그것이 슬픔과 분노, 격정과 눈물이 되어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시이다. 289 (한시미학산책)
3) 시는 내게 다시 깨달음의 광장으로 나가라고 한다. : 시를 매개로 한 소통과 한시미학산책의 만남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최근 SNS를 하며 다시 만난 그리운 싯귀들 - 박목월의 나그네.
내가 근무하는 정림 건축은 일년에 한번 고건축 답사를 한다. 아주 날 좋은 가을 날에 300명정도가 움직이는 대 행사다. 이번엔 특히 카톡이 우리의 여행길을 즐겁게 해 주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이번 임원들과 소장급들에게 내 준 커뮤니케이션 숙제 때문이었다. 난 이번 여행길에 그저 건축물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들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고 오란 숙제를 낸 것이다. 난 여행 떠나기 하루 전날 저녁에 일단 내 카톡에 저장된 80명 정도의 직원들에게 소통에의 초대를 했다.
그런데 뜻밖에 카톡은 고건축 답사 내내 우리의 신나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우린 12대로 각자 나눠 탄 버스에 일어나는 일등 중계방송을 하며 돌아올 때 까지 즐거웠다.
그런데 답사 마지막 날 영주 부석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누군가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을 하고 올린 것이다. 그 때부터 이육사의 청포도를 비롯하여 박목월 선생님의 나그네 등 주로 중고등학교 때 외운 시들이 우리의 소통꺼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가을 정취에 카톡의 시놀음은 얼마나 멋들어지던지 다들 돌아와서 카톡으로 소통한 시 놀이가 무척 즐거웠다는 후일담을 보내왔다.
이번에 정민 교수의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은 억울함이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좋은 시책을 그렇게 멀리 두고 아니, 내 인생에 절대로 들어올 것 같지 않은 책을 읽을 기회를 선물 받은 것이다. 난 초반부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더구나 그림이 있어서 그런지- 더 깊은 이해와 함께 속 마음으로는 “ 아 ! 좋다 ” 이렇게 좋은 책을 왜 난 그동안 몰랐던고? 하는 속상함, 아쉬움 자책이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모르고 살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아주 잘 차려진 밥상을 한 상 받은 느낌이었다. 그 중에서도 의식적인 부분 언령이라던가 말, 글, 생각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 이치로 보는것만 못하다. 만약 이치로 볼 수 있다면 만물에 환히 통하게 되어 내 안에서 모든 것이 갖추어진다. 486 두꺼운 책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었다. 시를 마음으로 보는 것을 뛰어넘어 이치로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 좀더 성숙해져서 마음과 이치로 보고 싶은 언어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