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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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기의 비밀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산방 마루에 둘 항아리를 사고 싶었습니다. 숲과 들에 지천인 풀과 나뭇잎을 아주 조금씩 따서 효소도
담고, 감나무에 감이 달리면 감식초도 담고 싶어서 질 좋은 토기를 사고자 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옥천군에 있는 ‘안내토기’를 추천 받고 동네 형님과 함께 그곳을 찾았습니다. 사장님을 뵙자
하고 30분쯤 기다리자 거의 칠순에 가까운 노인이 작업장에서 나왔습니다. 바쁜 일정이 있어 얼른 둘러보고 계약을 한 뒤 돌아오고 싶은데, 노인은
점심 때가 되었다며 함께 점심을 먹자 하셨습니다. 자연스레 거래에 필요한 양보다 많은 양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노인은 50년간
토기를 만들어 왔다고 했습니다. 일체의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오로지 천연 유약만을 쓰면서 모두가 떠난
분야를 지키고 있는 중이지만, 뒤를 잇고자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아쉽다고 했습니다. 다행이 하나 뿐인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담소 중에
마침 광고회사에서 제품을 홍보해 주겠다는 제안의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습니다. 사장님의 부인이 소용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끊으라며 쌀쌀맞게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궁금해서 여쭈었습니다. “아니 돈을 조금만 부담하면 좋은 제품을 인터넷과 전화로 홍보 해준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세요?” 노부인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항아리는 그렇게 선전해서는
팔지 않아요. 다른 곳보다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모양을 낸 항아리도 아니에요.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그저 오랫동안 지켜온 고집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아름아름 사가는 항아리에요.”
아닌 게 아니라 항아리 값이 다른 곳에 비해서 싸지는 않았습니다. 천연유약을 만들고 바르는 과정이 그만큼 많은 정성과 땀을 요구하는 과정이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날 나는 항아리를 사지 못했습니다. 한 두 개 사는 것은 모를까
여남은 개를 사고자 하니 전체 액수가 너무 커져서 주머니 사정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된장 사업을
하시려는 동네 형님만 계약을 했고 나는 결국 훗날을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삼 년이 지난 얼마 전 나는 그 아버지 사장과 아들 사장이
대를 이어 만들고 있는 장 항아리를 주문했고, 여우숲의 장독대는 그 항아리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부자는 여우숲으로 직접 배달을 왔습니다. 그 사이 아들 사장은 보다
안정되어 보였지만, 아버지 사장님은 부쩍 더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꾼도 없이 우리는 힘을 합쳐 항아리를 내렸습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장독대
모퉁이에 서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아들
사장님, 정말 대단합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한 길을
걷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힘들지 않아요?” 아들
사장이 아버지를 멋적게 바라보며 웃습니다.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흙을
빚고 가마에 불을 지피며 사신 아버지께 드리는 존경의 눈빛이 담겨 있었습니다.
부자가 나누는 눈빛과 웃음이 참 좋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오래 간다는 것은 고집을 묻는 것이요
세월을 이기는 것이리라.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요, 오직
정직함으로 승부하는 것이리라. 세대를 이어 일하고, 또한
소비자의 몸을 생각하며 천연유약을 고집하는 부자의 근성과 묵묵함은 그 자체로 가르침이었습니다. 지난
삼일절, 그 분들이 만든 커다란 장 항아리 두 개에는 고집스러운 농부가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을 쒀 만든
메주로 장을 담았습니다. 여우숲도 오래 가기의 철학을 세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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