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시집 한 권 서문
상처, 치유를 위한 시들에게
시는 외롭고 아프고 허기진 사람들이 읽는 것이 더 제격이라 생각한다. 시를 읽으면 자연스레 시인의 얼굴을 그려보게 된다. 어딘가 아픈 듯 파리하고 창백한 얼굴이 떠오른다. 외롭고 생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 찬 그 시인이 나를 위로해 줄 것만 같다. 시인의 마음 풍경에 내 마음을 보태어 시를 읽다보면 생채기 난 마음이 어느덧 치유된다. 내 삶에 대해 품었던 불온한 마음도 풀어지고, 삶에 대한 허기짐도 채워지고, 내 안에 맑은 빛살이 돋아난다.
여기 내 마음에 차고 들어왔던 시 그리고 나를 위무해주었던 시 33편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이 시들은 슬픈 이에겐 깊은 슬픔을 줄 것이고, 아픈 이에겐 큰아픔을 줄 것이고, 고독한 이는 고독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 것이다. 슬픔은 슬픔끼리 끌어안고, 기쁨은 기쁨끼리 끌어안고, 사랑은 사랑끼리, 이별은 이별끼리 끌어안아야 위로 받는다. 그래서 종내는 슬픔, 아픔, 고독함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슬픔은 슬픔에 의해 치유되고, 아픔은 상처받은 것으로부터 치유되고, 외로움은 더 깊은 외로움으로부터 치유된다.
시인 전미정은 “슬픔에 내재하는 쾌감은 즐거움의 쾌감보다 훨씬 더 달기 때문이다. 시속에서 상처받은 너와 내가 어우러져 빚어낸 우리라는 황홀한 삶의 바다를 만나면 마음은 해갈의 자유, 사랑의 자유 속에 젖어들게 된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지독히도 고통스런 시를 읽으면 지독히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역설적 치유를 알게 되었다.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리고 시의 언어는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듯 해서는 안되고, 범종의 소리와 같은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치유의 힘을 가진 시들이 그러하다.
시집 제 1부에서는 사랑에 관한 시들을 모았다. 청춘의 어느 한 시기를 건너오면서 누군가는 고운 추억으로 남은 사랑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흉터처럼 껴안고 있을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덥석 깨물었다가 아프고 괴로운 그 무엇임을 온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을 위한 시들이다.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마음에서 삭혀낼 것인가. 여기, 사랑을 노래한 시들 속에는 설렘과 기대와 꿈으로부터 섭섭함과 괴로움과 아쉬움과 분노가 다 들어있다. 타인의 상처가 나의 상처가 되어 어루만져 주기를 기대해 본다. 나의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시들은 말한다. ‘사랑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도 생에 한자락 사랑을 숨쉬게 하라’고 말한다.
제 2부에서는 알아챌 수 없는 혹은 알아채기엔 너무 늦어버린 생의 기미에 대한 시들로 모아보았다.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 자기만의 작은 성공을 향한 질주를 멈출 수 없는 생의 모순에 대해 노래한 시도 있다. 그리고 이 지구별은 거대한 증발접시와도 같기에 너무 애착하지 마라는 부드러운 경고의 시도 있다. 상처 하나 없이 어떻게 인생의 사막을 건널 수 있겠는가? 속으로 가만히 울음을 삼키는 시인의 울음은 세상을 향해 공명한다. 어느 시인은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고 했다. 상처가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닌 꽃이 되도록 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말했다. 시는 시인의 삶에서 온 것이기에 그 위에 내 삶을 보태어 나를 보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상처받은 그 마음이 치유되었다면 이젠 과거의 아픔을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생의 얼룩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거룩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시도 있다. 우리에게 또 다른 위안을 준다. 세상에는 완전한 기쁨도, 완전한 슬픔도 없다. 기쁨, 슬픔, 절망, 희망, 행복 이라는 그림이 바꿔가면서 우리 앞에 나타날 뿐이다. 살다보면 생에 대해 얼룩도 생기고, 아픔의 무늬도 새겨지지만, 그것을 딛고 새로이 출발하는 것이다. 시인들 작은 행복을 발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일상의 것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들의 시들은 미소 짓게 만든다. 그래도 생은 찬란한 것이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심어준다. 우리는 나로부터 출발하여 너를 만나야 하고 너로부터 출발하여 나를 만나야 하고 그러할 때 삶은 완성된다고 했던가. 시는 어쩐지 우리와 닮아있다.
여기 소개한 33편의 시들은 내가 지금보다 더 머리숱이 많을 때, 지금보다 더 피부가 윤이 났을 때 좋아한 시들도 제법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첫 느낌이 오롯이 살아나는 듯했다.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쉬이 마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시를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지금도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있으니 위안 받는 느낌이다. 내 느낌이 독자들에게도 오롯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꼭꼭 닫혀 진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서로가 너에게로 건너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른 들판의 한떨기 들꽃에게도,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하늘의 흰 구름에게도, 숨어서 저 홀로 흐르는 계곡의 물에게도 시 한 조각을 보내고 싶다. 그들도 때론 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2012년, 산수유꽃 피어나는 봄날에
문 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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