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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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이 시들을 모았습니다. 여기 모은 시의 절반은 최근 한 달 사이에 읽은 것들입니다. 나는 국어시간 외에는 시를 독대해 본 적도 시집을 돈 주고 사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시집으로 만나고 싶어 했던 이들을 이번 기회에 한 권씩 주문했습니다. 천양희, 함민복, 황인숙, 고정희, 김선우, 문태준, 백석, 신경림, 정호승 시집, 현대문학 50주년 기념시집, 장영희, 천양희, 임혜신 시인이 엮은 영미시, 정지용 산문도 사왔지요. 김선우, 문태준, 천양희 시인의 책은 여러 권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바로드림으로 한 보따리 찾아오면서, 저녁을 같이 먹은 이에게 '나는 이래도 된다, 뭐 어떻냐' 공연한 소리를 했습니다. 시집을 사는 게 어색했어요.
쌓아놓고 한 동안 읽지 못했습니다. 저 무더기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스러웠습니다. 닥쳐서 후루룩 들이마시듯이 읽었어요. 이건 적당한 시 음용법이 아닌 듯 합니다. 뻑뻑해서 꿀떡꿀떡 목으로 넘어가지가 않았어요. 절반도 읽지 못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시는 한 마지기 참깨농사를 지어 짜놓은 참이슬 병에 든 참기름, 흠 없는 청매실로 담은 후 백일 숙성시킨 매실원액, 수없는 날개짓으로 따모은 벌꿀 류 같습니다. 시집이 얇고 글자보다 종이가 많이 보이는 게 이해가 갔습니다. 그래도 남는 게 영 없지는 않은 겁니다. 세상에나! 내게 와 닿은 것은 그 시에 고리를 거는 부분이 내게 있기 때문일거라 추측합니다.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걸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래도 신기했습니다. 해설서 없이 읽는 시집의 느낌은 뭐랄까요 소개팅 주선자 없이 단 둘이 만나는 것하고 비슷했습니다. 좀 어색하지만 새로왔어요. 주선자 없이 시와 만나본 적이 없는 나는 들으시면 웃기겠지만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이게 젤 큰 수확입니다. 그래도 33편을 추릴 때는 주선자의 책들을 주로 참고 했습니다. 김선우, 천양희 시인, 그리고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님입니다.
그림을 새로 그릴 포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질 못했어요. 꿈일기를 쓰면서 그려둔 것을 급하게 스캔했습니다. 이 부분은 좀 아쉽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것도 당신 덕분입니다. 3년간 당신이 나를 따뜻이 지켜본 걸 알고 있습니다. 나의 반응이 시원찮았는데도 당신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어주고, 내가 필요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에게 좋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그 말들을 쓰레기통 옆에서 우편물을 뜯는 비서처럼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습니다. 그러나 당신 쪽에서 든든함과 밝음이 계속 비춰 오니까 어느 새 나는 그 편지들을 버리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참 뒤에는 뜯어서 읽어봤지요. 이제는 힘들고 외로울 때 나와 함께 거기 머물러 주는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의 말을 떠올리며 위로받곤 합니다.
나는 다이소에서 사온 3천원짜리 하드보드 노트 표지에 이렇게 써두었습니다. 현경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베껴온 구절입니다.
Follow your bliss, Then universe will open the door for you
Walk in beauty, live in beauty, love in beauty
Yes, si, oui, find a river and say Yes to it’s flow
이게 최근에 내게 가장 관심있는 것입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구절은 좀 알아먹겠는데 세 번째는 영 깜깜합니다. 하지만 당신하고 함께라면 나는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날마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언제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옆에 있겠다고 말해주실거지요? 구령 같고, 요식적이라고 내가 퉁을 주어도 변함없이 그렇게 해주세요. 내가 관심없는 척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예요. 단지 어색할 뿐이예요. 이제야 조금씩 당신을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말을 배우듯이 나도 배워가고 있어요.
제가 당신께 드리는 조촐한 선물입니다. 저는 이걸 만들면서 많이 낑낑거렸고, 많이 즐거웠습니다. 보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