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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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시대를 살았던 고대인들에게 ‘사냥’은 단지 식량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냥은 불안하고 위험한 활동이었습니다. 사냥에 나섰다가 맹수에게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대인들은 나름의 과학적 사유를 통해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고 보다 효과적인 사냥법을 고안해냈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뭔가를 죽이는 과정은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적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내가 살기 위해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생물을 죽여서 먹어야 한다는 죄의식이 사냥꾼들을 괴롭혔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까다로운 이 문제를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답은 신화적 사유입니다. 사냥의 의미를 신화로 만들어 함께 나누고, 온갖 의례와 금기로 사냥을 포장했습니다. 사냥에 나서기 전에 정화 의식(儀式)을 거치고, 동굴 천장에 사냥할 동물을 그리고 상처 입히는 주술적 행위를 하며, 사냥 후에는 사냥감의 넋을 위로하는 제의(祭儀)를 올렸습니다. 이런 신화적 사유와 의례(儀禮)를 통해 사냥꾼의 역할을 숭고하게 정립하고, 사냥을 생존 활동을 넘어 신성한 활동으로 승화했습니다.
비교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신화는 ‘파편적이고 비극적인 우리의 세계를 변형시켜보는 놀이’라고 말합니다. <신화의 역사>에서 그녀는 “신화는 ‘만약 이렇다면?’하고 물음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어렴풋이 보여주었다”고 말하며 신화적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렇듯 신화에서도 우리는 어떤 가설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의식(儀式)을 통해 그 가설을 소생시키고 행동으로 옮긴 다음, 그것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이라는 까다로운 수수께끼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렇습니다. 신화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재미를 위해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곤경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늘 신화를 창조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화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입니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사냥에 대해 고대인들처럼 불안과 위험에 빠지지 않지만, 살기 위해 산 것을 죽여 먹어야 하고 우리 역시 언젠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삶의 비극적(?)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시대마다 다르긴 하지만 인간은 삶과 죽음의 의미처럼 과학과 논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나름의 신화가 필요합니다. 사냥에 관한 고대 신화가 그랬듯이 좋은 신화는 인간에게 더 큰 관점을 갖게 해주고, 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해주며, 삶의 바탕에 자리 잡은 원형을 드러냅니다. 고통스럽고 힘에 겨울지라도 인생에는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신화는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신화는 ‘포기하고 회피하는 삶’이 아닌 ‘참여하고 기뻐하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 카렌 암스트롱 저, 이다희 역, 이윤기 감수, 신화의 역사, 문학동네, 2005년
* 교육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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