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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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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6일 10시 00분 등록

사람의 상체에 염소의 하체를 가진  마르시아스는 어느 날 냇가에서 사슴의 뼈로 만든 피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처음보는 그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랐다.  어쩌다가 입에 대고 불게 되었는데 놀랍게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 나왔다. 마르시아스는 피리부는 데 몰두했다. 자나 깨나 피리만 불었더니 피리 없이는 살 수 없었고 세월이 흘러 이내 피리의 대가가 되었다.

 

 

 피리의 대가가 된 마르시아스의 마음 속에는 음악의 신 아폴론 보다 더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오만이 싹 트기 시작했다. 그는 아폴론에게 도전했다. 그리하여 아폴론은 수금을 연주하고,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불어 누구의 연주가 더 훌륭한지 겨루기로 했다. 누가 이기든 이긴 자는 진자에게 어떤 가혹한 벌이라도 내릴 수 있다는 내기까지 걸었다. 아폴론은 심판관으로 무사이의 여신들을 불렀다. 첫 라운드가 시작되었으나 결과는 무승부였다. 화가 난 아폴론은 이번에는 서로 악기를 거꾸로 들고 연주하자고 했다. 이 두 번 째 경연에서 무사이의 여신들은 아폴론이 이겼다고 판정했다.

 

 

 내기에 진 마르시아스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신에게 도전한 오만한 죄를 단죄하기 위해 아폴론은 그를 참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산채로 껍질을 벗겼다. 신화 이야기 중에서 아마 가장 엽기적인 장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신의 경지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 즉 휴브리스는 가혹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만들어 냈다.

  마르시아스-티치아노.jpg

  (티치아노,  가죽이 벗겨지는 마르시아스)

 

그런데 매우 신기한 것은 이 마르시아스의 이야기를 예술가들이 매우 좋아하여 수많은 소재로 써 왔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화가인 티치아노는 이 장면을 열정적으로 화폭에 담았고,  젊잖은 라파엘로도 시스티나 성당의 교황 집무실인 스탄차, 즉 '서명의 방' 천장 귀퉁이에 이 장면을 그려 넣어 두었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 조각가이며 설치 예술가인 애니쉬 카푸어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길이가 150 미터에 달하는 붉은 나팔관 모양의 '마르시아스'라는 작품을 선 보였다. 정말 껍질이 벗겨져 피로 물든 온 몸에 실핏줄이 섬세하게 퍼져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 예술가들은 끔찍한 마르시아스의 이야기에 끌리는 것일까 ? 왜냐하면 그들은 즐겨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껍질이 벗겨져도 좋다는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단테는 '신곡' 속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표현해 두었다.

 

 

"아폴론이여,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마르시아스를

그 사지의 덮개 속에서 벗겨 냈을 때처럼

그대의 영감을 불어 넣어 주소서

(신곡 천국 제 1곡 19-21)

 

 

예술의 신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질투로 죽인 편협한 신이 아니라 예술가의 껍데기를 벗겨 새롭게 태어나도록 도와 신의 경지로 이끄는 영감의 산파로 해석한 것이다. 끔찍한 엽기적 장면이 여기서 일대 전환을 이루어, 그 일에 죽고 그 일에 사는 입신의 경지로 오르는 새로운 탄생의 의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신의 경지, 인간의 오만은 늘 여기에 이르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늘 고통 속에 있으나, 껍질을 산채로 벗기는 그 산고의 통증이 예술의 정수에 이르는 길이기도 했다.   오늘 문득,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것에서만은 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주어진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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