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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0일 10시 43분 등록

유토피아(Utopia)의 어원은 'ou(no)' 'topia(place)의 합성어로서 지상에 없는(no place) 이상향이라는 뜻입니다. 정녕 지상에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매력적인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를 경영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잔업 및 휴일 근무를 하면 혼이 나고, 전 직원 70세 정년이 보장되며, 정리해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산 현장을 포함해 비정규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연간 143일은 무조건 쉬어야 하며, 출산을 하면 3년간 육아 휴직이 보장되고, 5년마다 직원에게 해외로 자유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요? 맞습니다. 괴짜 경영자로 유명한 일본의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ㆍ77) 사장이 경영하는 중소기업 미라이 공업의 정책들입니다. 상식을 깨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회사는 직원들을 승진시킬 때 연필을 굴리거나, 직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선풍기로 날려서 결정하거나 혹은 출근 순서대로 직급을 정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회사에서 볼 수 있는 개인 성과목표 또한 없다고 하니 이제까지 인사제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했던 인사담당자로서 당혹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뜻 보면 망하기에 딱 좋은 기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미라이 공업은 일본 전기설비업계에서 70~80%의 독보적 시장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경상이익률이 15% 내외로 일본 업계 평균 3%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결코 지상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유토피아(Utopia)를 가능하게 한 미라이 공업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직원들을 일하도록 '닥달'하지 않으면서도 닥치고 일하는 다른 기업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야마다 사장 TV에서 인터뷰한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돈으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70세까지 고용을 보장해주고 사원복지를 높여주어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흔히들 인재를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천지가 물인데 정작 마실 물이 없다는 푸념입니다. 중소기업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야마다 사장은 자사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통해서 일하고 싶은 회사, 떠나고 싶지 않은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일본의 산업계에서 스스로 유토피아라는 간판을 내걸고 인재를 모으고, 유지하는데 본인의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소기업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넘어서서 중소기업이기에 가능한 차별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현실에 적용하였습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직원을 뽑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없다. 아무나 뽑는다. 우리 직원은 다 바보, 멍청이들이다.” 라는 엉뚱한 답을 합니다.

아무나 뽑는다고요? 야마다 사장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생각을 많이 하게끔 만들어주면 결국 플러스 결과가 나온다. 바보들일지언정 한 데 모아 신이 나서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게 진짜 사장 일이지.

그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역할이 '사장의 자격'이라는 것입니다. 맞는 말 아닌가요?

 

성과 목표가 없고, 직급의 결정을 볼펜을 굴려서 한다고 해서 태만의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라이 공업의 인사제도는 직무급제도(job classification pay system)로서 일의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보상과 지휘체계가 만들어집니다. 선풍기에 이름을 날리거나 출근 순서에 따라 직급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제스처 혹은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지요. 직급이 지휘체계나 보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개인의 성과 목표가 없다 것 또한 스스로 일의 목표를 정하도록 한다는 것의 이면적인 표현입니다. 이 회사의 사훈은 "항상 생각하라"입니다. 회사 내에서 세 걸음 마다 한번씩 이 문구를 볼 수 있을 만큼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이념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고, 제안하지 않으면 이곳에서도 남들에게 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강요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일은 직급이라는 사다리와 보상이라는 당근 때문에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강제적인 목표가 없지만, 눈 앞에서 승진과 보상이라는 깃발을 흔들지 않지만 직원들은 스스로 나아갑니다. "생각하라"라는 큰 울타리만을 만들어 주고 직원들을 마음껏 뛰어 놀게 합니다. 서로를 통해서 자극 받고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름에 공업이라는 2차 산업의 딱지를 붙이고 있지만 미라이 공업의 실적을 들여다보면 공장에서 비용을 절감하여 물건을 싸는 전형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생산품의 98%가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한 특허품일 만큼 직원들의 열정과 헌신적 기여를 통하여 승부하는 회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막이 오르면 연기는 배우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는 성장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면 연극은 망한다."

"인간은 말이 아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필요 없고 당근만 주면 된다."

"사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잘 된다"라고 미라이 공업의 야마다 사장은 말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인간 존중이라는 철학이 없다면 불가능한 실천들입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이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실의 형광등은 기본적으로 모두 꺼져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만 형광등에 매달린 줄을 당겨 사용합니다. 복사기는 3층에 걸쳐 한 대만 있고 이면지 사용은 기본의무입니다. 서류봉투는 수신ㆍ발신 항목을 기재해 50번씩 사용하여야 합니다. 아끼고 또 아끼는 '짠돌이 경영' 또한 이 회사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절약된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반 기업과 다릅니다. 미라이 공업은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직원들의 외국여행 경비를 충당한다.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그것을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는 기본철학입니다. 많은 기업에서 비용절감을 내세우지만 그것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구성원들은 많지 않습니다. 회사와 나는 별개니까요. 회사를 위해서 왜 불편함을 자청해야 하는지 모르니까요.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서 작은 것부터 헌신하게 하는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존중'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화려한 1회성 이벤트요, 말장난에 불과할 뿐입니다.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라이 공업은 중소기업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체념하지 않고 중소기업이기에 가능한 차별화를 선택했습니다. 직급을 없애고, 목표를 없애고, 스스로 일하게 하는 환경은 중소기업이기에 더욱 가능했던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중소기업이기에 경쟁보다는 협력을 집단적인 성과목표 보다는 개별적인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시간, , 사람 등 기업의 모든 운영적인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업 운영의 철학만큼은 뒤질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에 적합한 문화와 제도를 찾아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불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정의해 보아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이니까 우리도 사원-대리-과장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중소기업이기에 가능한 자신만의 차별점을 찾아야 합니다.

 

<끝>

 

IP *.163.16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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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0 18:08:50 *.143.156.74

미라이 공업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어요.

백발의 사장님이 팬티만 입고 선풍이에 종이를 날려 승진자를 가리더군요.

그런데 그 회사의 경쟁력은 중소기업이기에 가능한 차별점을 찾는 거였군요.

오라버니, 칼럼 재미있어요.

취업한 후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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