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미나
  • 조회 수 2452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2년 4월 3일 10시 53분 등록

#47. 아프다

또 다시 찾아 온 백수 생활 2주차. 아침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가려는데 감기기운에 열도 나고, 오한까지 겹쳐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다행히 아침은 먹은 상태였기에 배고픔으로 몸 상태가 더 최악으로 느껴지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 오후 5시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회사를 그만 둔지 모르고 있는 엄마에게 너무 아파서 조퇴하고 집에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올 때 약 좀 사오라는 말과 함께. 마치 가시덩굴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온 몸이 콕콕 쑤셔댔다. 평소에 무던하기만 하던 피부의 감각들이 갑자기 예민해져서는 평소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들까지 되살아난 느낌이다. 머리와 눈앞은 온통 뿌옇기만 하다. 가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면 어지러움증까지 더해진다. 몇 시간을 이불 속에서 괴로움에 끙끙대고 있다가, 드디어 엄마가 왔다. 불려놓은 북어로 북어국을 끓여 내게 주신다. 엄마가 끓여준 북어국 한 그릇을 없는 입맛에 오로지 먹어야 산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비워버리고, 약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잠을 자면서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기침도 심해져서 자다가 깨기를 반복한다. 자다가 일어나 물을 마시고, 또 다시 잠을 청하지만,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요일 아침. 일요일 오후부터 계속 잠만 잔 것 같다. 중간중간 일어나서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잠으로 시간을 보냈다. 첫날 보다 몸이 조금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귓가도 눈가도 머리속에도 뿌연 안개가 걷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녁에 약속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나갔다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날인 수요일도 종일 집에서 멍하니 먹고 자기를 반복하는 하루를 보냈다. 하루는 쉬고 또 하루는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일 처리를 하는 패턴의 생활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금요일이 되었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감기에도 밥 먹고, 약 먹고, 땀을 쫙 빼며 한숨 자면 나을 줄 알고, 마지막으로 시도를 해 보았으나, 헛일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땀을 흘려 본건 처음일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지만, 결국 몸 상태가 좋아지진 않았다. 힘든 몸을 이끌고 동네 내과를 찾았다. 얼른 주사를 한대 맞고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은데, 때 마침 점심시간이다. 30 여분을 멍하니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간호사선생님과 의사선생님이 점심식사를 끝내고 병원에 돌아와 각자의 자리를 찾은 후에야 진료가 시작되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찰실로 가서 앉자마자 의사선생님이 증상을 물어본다.

열나고, 오한도 있고요, 목도 아프고, 기침도 심해요.”

콧물은요? 비염이 있나요?”

, . 콧물도 심하게 나요. 비염도 있구요.”

의사선생님과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간호사선생님이 체온을 재어 선생님께 말씀드리낟.

“38.7도요.”

순간 의사선생님이 안경 너머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물어본다.

열이 꽤 많이 나는데, 이런지 얼마나 됐어요?”

? 일주일 정도 됐어요.”

아니, 안 아팠어요? 어떻게 참았어요?”

정말 심하게 아팠다. 내 생에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약을 먹어도, 잠을 자도, 땀을 흘리고 나서도,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 선생님은 폐렴과 독감이 의심되니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하신다. 다행히 엑스레이상에 이상은 없었고, 독감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나는 20여분간 병원 침대에 누워 해열주사를 맞았다. 20분간 이 주사를 맞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이 싹 내려가고 내 주변에 맴돌던 안개도 싹 걷혔다. 그리고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몸이 좋아질 것을 나는 뭐 때문에 그리 오래 참았는지. 나 스스로가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프루스트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적절하게 탐구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은 고통의 기원을 이해하고, 고통의 규모를 파악하고, 고통의 현존과 화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고 한다. 하지만 신체적인 고통은 내가 탐구적이 되는 것과 전혀 거리를 멀게만 만든다. 열이 너무 심하게 났던 지난 일주일간 나는 최악의 무기력과 완전한 탈집중상태를 경험했다. 누워 있기만 하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읽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안개 속에 있던 내 눈은 글자 읽기를 거부했고, 머리 역시 글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책 읽기는 실패. 대신 온 몸을 움츠려 이불 속으로 밀어 넣는 데는 항상 성공했다. 신체의 고통은 생각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프루스트가 이야기하는 고통의 기원이나 규모 따위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냥 내 온몸이 느끼는 상황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고통의 현존과 화해하는 시점은 신체의 고통이 떠나는 그 순간이다. 고통이 멈추는 그 순간, 비로소 몸도 마음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평소에 해 오던 자신들의 할 일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탐구적이 된다. 이번의 뼈저린 고통을 통해 나는 아프면 참지 말고 바로 병원에 가자.’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발견했다. 평생을 아팠던 프루스트가 남긴 이 말처럼.

사람이 슬플 때에는, 침대의 온기 속에서 누워 있는 것이 좋다. 그 안에서 모든 노력과 분투를 포기하고, 머리를 이불 아래에 파묻은 채, 완전히 항복하고 울부짖음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마치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민이 많던 와중에 찾아온 독감은 그 동안 내가 겪어 온 슬픔을 이불 속에 파묻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항복하게 만들었다. 완전히 항복하고 났더니, 마른 나뭇가지에 거짓말처럼 새순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IP *.38.222.35

프로필 이미지
2012.04.03 12:12:45 *.70.15.140

이제 살아났냐?

니가 좋아하는 조셉 캠벨의 심연이라고 생각해라~ ㅋ

막판인거지.. 이제 귀환의 시기가 온 거냐? ㅋㅋㅋ

고생 많이 했네.. 짜슥...

너나 나나 제 컨디션 돌아오믄 한잔 하쟝~~~~

프로필 이미지
2012.04.03 13:55:52 *.143.156.74

이것들이 자나깨나 술먹을 궁리만 하지?!!!

미나도 루미도 이제 30대니 몸 생각해서 살살해라. 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2.04.03 17:49:07 *.138.53.71

일주일간의 독감으로 미나에게 큰 변화가 생길것 같구나.

이번주는 꿈벗에도 들어가니... 더 깊이 자신과 만나겠지?

다시 살아난 것을 축하한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04 07:06:46 *.35.244.10

미나야! 프루스트의 등장이 조금 갑작스럽다.

프르스트 이야기를 중간에 가볍게 터치해주는 것이 좋을 듯...

그다음 위에서처럼 미나의 이야기에 결론을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음에 수정할 때 고려해주세요?

 

PS. 어제는 잘 들어갔니? 고민이 깊어지는 너를 보고...도움이 되려나...

이런 말, 저런 말 했는데...상처 받지 않았기를...움츠려 들지 않기를!!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2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7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51
5201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200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82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90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8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801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6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