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을 읽고 쓰는 칼럼
천복을 찾는 독서법
책읽기는 언제나 나의 화두였고 지금도 나의 화두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다 읽어내나’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의 독서목록은 형편없었고, 책을 고르는 안목 또한 형편없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 미국의 대학생들을 위한 독서지침서였다. 지금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한 학기마다 테마를 정해 놓고서 읽어나가는 방식의 책읽기였다. 가령 1학년 1학기 때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읽고, 1학년 2학기 때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방만한 독서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 책의 지침대로 따랐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 지도 모른다.
조셉캠벨은 신화학자로 인류의 인문학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의 신화이야기도 좋았지만, 그를 신화학자로 이끈 그 과정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에게 스승이 되어 준 것은 책이었다. 조셉은 박사가 되는 것도 마다하고 책의 숲으로 들어갔다. 무작정 뉴욕의 우드스톡의 작은 오두막집을 빌려 5년 동안 칩거하면서 책을 읽어내었다. 우드스톡에서 그는 오로지 독서와 사색에만 몰두했다. 그의 표현대로 ‘그저 읽고 또 읽고 읽으면서’ 노트필기를 했다.
그는 5년 동안의 칩거 생활 중 미국 전역을 여행하다가 캘리포니아의 친구 집에 머물렀다. 그곳의 카멜도서관에서 우연히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두 권짜리 <서구의 몰락>을 꺼내들었는데, 이 책이 캠벨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영문학을 공부했던 그에게 신화학에 눈을 돌리게 한 것도 책이라는 위대한 스승이었다. <서구의 몰락>은 캠벨에게 평생을 두고 누릴 수 있는 ‘천복(天福)거리’를 안겨준 것이다.
천복이라는 개념이 사실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풍요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캠벨의 설명에 의하면 가장 영적인 언어로 알고 있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아난다(Ananda)라는 말은 천복 혹은 황홀을 뜻한다. 천복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말하며, 천복을 누리는 자는 ‘일생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캠벨은 젊은이들에게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고 충고한다. 사회가 만든 가치관에 자신을 구겨 넣지 말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라는 가르침이다.
캠벨이 제시하는 독서법은 공부인이라면 그대로 한 번 따라 해봄직하다.
“나는 조이스와 토마스 만과 슈펭글러를 읽었다. 슈펭글러는 니체를 언급했다. 나는 니체도 읽었다. 그러다가 니체를 읽으려면 쇼펜하우어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쇼펜하우어도 읽었다. 그러다가 쇼펜하우어를 읽으려면 칸트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해서 칸트도 읽었다. 칸트를 출발점으로 잡자니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괴테로 거슬러 올라갔다. ...... 그 다음으로 나는 융을 읽었고 그의 사고 체계가 근본적으로 슈펭글러의 사고 체계와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이 모든 것을 한데 버무리기 시작했다”
캠벨의 독서체계는 방대하지만 자신의 학문을 위한 커다란 퍼즐에 하나하나씩 맞추어가는 것이다. 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어야 합니다. 이러이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됩니다.” 캠벨은 일반사람들의 독서방식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거침없이 말한다. 자신의 앞길에 방향을 제시해 줄 작가를 선정했다면 ‘그 작가만 물고 늘어져라’고 충고한다.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 천복을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캠벨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수 십 년을 산다 해도 일회용이요, 신의 눈으로는 하루살이에 불과하기에 이 길이 아니라고 해서 궤도수정을 반복해서 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사람이 쓴 책을 모조리 다 읽은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책까지도 찾아서 모조리 다 읽는 것’이 캠벨의 독서방식이다. 이렇게 읽다 보면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자신이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된단다. 말하자면 한 분야에 있어서 자신만의 안목과 혜안이 열리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수많은 유혹에 시달린다. 말하자면 얼굴이 멀끔하게 잘 생긴 남자와도 한 번 만나보고 싶고, 지적(知的)이라 가까이 하기에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 번쯤 커피를 마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그 남자의 화려한 배경을 보니 만나서 밥이라도 한 번 먹어두어야 할 것 같고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바람난 여자 같이 이 책 저책 사이를 오고 간다. 캠벨은 그런 책읽기는 천복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캠벨은 “아! 정말 멋진 방법이 있어요. 방에 앉아서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책 속에 길이 있음을 간파한 캠벨은 독서에 대해서 강렬한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자기개발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에도 이렇게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독서방법을 제시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보통사람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 어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감동했다. 물론 캠벨은 저마다의 신화를 지니고 있기에 보통 사람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러면 우리 마음에 천복의 정거장을 들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천복의 정거장은 일종의 ‘성소(聖所)’이다. 자기 마음에 성소를 들이고 싶을 때도 역시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라”고 한다. 이 말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캠벨이 말하는 성소는 마음의 여백과 같은 것이다. 여백은 생각의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기에 마음의 성소임에 틀림없다.
독서를 통해서 천복을 찾았고,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천복을 누렸던 캠벨, 게다가 명성과 부까지 얻었던 캠벨의 독서 방법이 황홀하다. 그리고 위대하다. 성공의 지름길치고는 좀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천하기엔 만만치 않은 인내력과 책을 보는 안목을 필요로 한다.
세계로 난 가장 확실한 길은 인쇄된 책갈피에 있음을 뒤늦었지만 나에게 속삭여준다. 봄의 햇살이 참으로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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