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이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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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의 힘
· 저자에 대하여
원명 Joseph Campbell
-1904년 3월 26일 뉴욕 출생192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그 중 특히 박물관 한 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고 함.
대학을 졸업하고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 및 뭰헨이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연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 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베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면, 이후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서 (천의 열굴을 가진 영웅)이다.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 (전4권)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잡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 저서를 통해 완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빌 모이어스의 서문
‘그리스의 신들 따위’ 가 오늘날의 우리 인간 조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스 신들 따위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대단히 현대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서진 질그룻 부스러기가 문화인류학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듯이 ‘산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 ‘따위’ 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의례가 바로 이 에너지를 촉발한다. [10]
우리는 우리의 직관, 우리의 참 존재에 기대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11]
“영웅의 역정에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랍니다. [11]
인류는 ‘자기의 내부에 식인종적이고, 색정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는데도 이러한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탄한 바 있다…. 그런데 루카스의 영화를 보고는, 영웅의 역정을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 자기 발견의 삶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11]
“자기 내부에 자기 운명의 실을 풀어낼 힘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지요.” [12]
고명한 구도자와 영웅은 다른 점이 많은데, 그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화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12]
그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양을 읽으면서 평생을 산 사람이다. 그는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12]
,지적 가능성을 강타하는 에너지의 폭풍’ [12]
‘해보기는 했다니 놀랍군.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일주일에 읽으라는 것이 아니고 평생 읽으라는 것이네,” [13]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말로써,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오. 자기가 보았던 빛을 신도들에게 넌지시 보여주기만 하면 될 텐데 말이오..” [15]
그는 자기의 작업을 관류하는 ‘중심 사상’이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 임을 인정한 바 있다. [15]
“어르신, 저는 아직도 제가 신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17]
“그 아이를 사랑하고 다독거리는 그 몸짓에, 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몸짓이 깃들여 있답니다.” [17]
1. 신화와 현대 세계
캠벨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정신의 문학과 친해지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 일어난 일이라 그 시각에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만 겨우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25]
우리 삶의 중심과 관련된 영원한 가치를 좇으라고 한 분들에 대한 관심과 상충되지 않았어요. 나이를 먹어 나날의 삶에 대한 관심에 심드렁해지면, 사람은 내면적인 삶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 내면적인 삶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면 그것 참 곤란한 일이지요. [26]
우리는 바로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의 느낌, 깊고 풍부하고 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 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모이어스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 옛 이야기를 하고, 읽는다는 말씀이군요? [26]
캘벨 그는 책임감이 강한 좋은 아버지이긴 합니다만,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27]
캠벨 이어서 토니오는 “작가는 진실에 진실해야 한다.”고 씁니다. 그런데 토니오가 진실에 진실하면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왜냐,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인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28]
모이어스 왜 당신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28]
캠벨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는 우스꽝스런 강아지를 보세요 불완전해서 사랑스러운 겁니다. [28]
캠벨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보고 듣는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불사신이라는 느낌을 주는 대신, 아슬아슬한 것,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인간미·····. 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사랑스럽지요.[28~29]
캠벨 고통이라는 거지요 고통은 불완전한 조재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28]
캠벨 삶에 관하 지혜를 터득하는 젊은이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됩니다. [28]
캠벨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29]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30]
캠벨 신화는 결혼이 무언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산화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 랍니다. 결혼으로 재회하는 둘은 원래 하나였어요, 그러데 이세상에서는 둘로 존재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결혼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하는 두 사람 사이의 영적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결혼은 연애 같은 것과는 달라요, 연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에요. 결혼은 경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차원입니다. 오랫동안 연애하던 사람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얼마 되지 않아 갈라서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상대와 결혼해야 우리는 육화(肉化)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게 바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30-31]
캠벨 결혼은 관계이지요.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하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 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결혼을 하면 바로 이러한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혼한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 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33]
캠벨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사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각에도 이 세계를 위협하는 것 아닙니까?[34]
캠벨 문명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행하는 파괴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도 뉴스로 등장해 있을 겁니다.[34]
모이어스 젊은이들은 의례를 통하여 한 겨레 혹은 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데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의례를 베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이군요. 모든 아이는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아이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어린 시절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34~35]
캠벨 우리는 테크놀로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교수들 역시 자기가 가르치는 학문 삶의 가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학문(문화인류학, 언어학, 종교학 등을 말합니다)에는 전문화 경향이 뚜렷해 보입니다, 한 방면에서 어엿한 전문가가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한 전문 학자가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알면 이런 경향이 있다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37]
캠벨 우리 무모님은 너그러운 분들이었어요. [39]
캠벨 신화는, 바로 지금 이 시작에 우리가 사는 삶과 구조에 어울리는 수준으로도 삶의 본을 제공 해줍니다. 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시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43]
모리어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변모시킬 수 있습니까?[47]
캠벨 삶이라는 것은 곧 명상입니다. 그 명상의 대부분이 비의도적(比擬圖籍)인 명상이기는 하지만요. 많은 사람이 명상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되, 돈이 들어올 데, 돈이 나갈 데에 관해서만 명상을 합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의 문제에만 관심을 둡니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는 관심입니다. 자기 자식들과 영적인 의식을 나누고자 하지만 이게 안 됩니다. … 그래서 신화가 필요한 겁니다.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47]
캠벨 이것은 우리 삶의 신비에 이르는 또 하나의 다른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각 종교는 정해진 명령 신호를 입력시켜야 접근이 가능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56]
캠벨 인간은 자연만이 아니고 본성도 파괴합니다. 노래를 죽이니까요. [59]
캠벨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 불교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보지요.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인식에 이를 것이냐 하는 겁니다. [61]
캠벨 신화는 인류 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운을 복돋우는 힘은 이 세계의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지요. [61]
캠벨 그러나 자연이 악마로 간주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대신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긴장과 불안이 조성되면서, 삼림을 베어내고 토인을 몰살시키는 등의 일이 일어납니다. 여기에 이르면 사람은 자연과 헤어집니다. [62]
캠벨 자연의 충동은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고, 복종해야 할 대상, 가꾸어야 할 대상이라고 되어 있어요.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과 관련된 환경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정말 놀라워요 [62]
캠벨 미합중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열세 개의 조그만 식민지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은 무시하고 오로지 상호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을 함께할 것을 결의하면서 태동합니다. [64]
캠벨 ‘이성'이라는 말과 ‘생각’이라는 말부터 구분해볼 필요가 있겠어요. [73]
캠벨 이성은 생각의 하나입니다. [73]
2. 내면으로의 여행
캠벨 나는 신화와 같이 삽니다. 신화는 나에게 늘 그런 소식을 전해줍니다. 우리가 자신을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게 되는 것 같은 순간에 은유적으로 이해가 되는 그런 문제이기도 하지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죽지 않아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죽음과 재생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 안에 존재 합니다. [86]
캠벨 꿈은 우리 자신에 대한 영적인 정보가 무진장하게 발현되는 현장입니다. [87]
모리어스 그런데 갑자기 에너지를 집중시킬 곳이 없어지니까 매일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현대 사화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꿈의 의미를 되씹어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까? [88]
캠벨 프로이트(꿈의 해석)이 출판된 이래로 많은 사람이 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88]
캠벨 범용한 사람도 자기의 길을 찾아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는 하나 기왕에 해석된 길을 반드시 벗어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영웅은 그렇지 않아요.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89~90]
모이어스 저는 신화가 공적인 것이라면 꿈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90]
캠벨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사적인 꿈은 신화적인 테마를 표현하게 됩니다. … 개인적인 꿈과 원형적인 꿈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인적인 꿈은 그 개인의 연상을 통하여 해설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꿈이 그 사람 삶의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느냐, 그 개인의 문제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느냐, 이런 것을 알면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91]
캠벨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 삶의 요체 중 하나가 바로 생명이 생명을 먹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먹는 행위 아닌가요? 생명은 생명을 먹습니다. …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세계의 창조 신화는 서로 아주 비슷한 거지요. [91~92]
캠벨 인도에서는 내 안에 있는 신을 육체에 ‘사는 자’라고 한답니다. 이 신을 우리의 영원불멸하는 측면과 동일시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그 신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102]
캠벨 <<구약성서>>를 보아도 하느님은 하나의 금제를 세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하느님은, 아담이라는 친구가 필경은 그 금단의 과실을 먹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금제를 깨뜨림으로써 아담은 자기 삶에 입문하게 됩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지요 [106]
캠벨 한 가지 설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인간이 세계 어디에 살든 기본적으로 같다는 설명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육체가 하는 내적인 경험입니다.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갈등, 같은 공포를 가졌으니 인간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107]
캠벨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신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삶이 시 같고, 우리는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113]
캠벨 내가 ‘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 사진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113]
3. 태초의 이야기꾼들
캠벨 가령 인도의 신화에 따르면 말이지요. 우리가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들어갈 때는 입은 것도 달라지고 이름도 달라집니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나서 나는 내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삶에 관한 나의 사고방식도 바꿨습니다. 말하자면 삶에 관한 관념 자체를 바꾼 겁니다. 그러니까 공부하고 활동하는 삶을, 이 신비를 즐기고 감사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바꾼 것이지요. [142~143]
캠벨 중년에 으르면 육신은 내리막길로 들어서지만, 육신이라는 수레에 실리는 의식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이 문제의 해답도 신화에서 배웠어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빛을 내는 전구(電球)인가, 전구가 수레가 되어 실어 나르는 빛인가…… 나이를 먹어갈 때 생기는 심리적인 문제는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죽음의 문을 한사코 거부해요. 그러나 육체는 의식의 수레와 같은 것입니다. [143]
캠벨 특히 그리스 신화는 인간성과 젊음의 아름다움 쪽으로 많이 기울여져 있어요.[143]
캠벨 조그마한 오두막 안에서 며칠 동안 명상을 하면서 여자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기간이 있었다는 겁니다. [164]
4. 희생과 천복(天福)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가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177]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순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190]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자아’라고 하는 것이 더 크고 영원한 전체성의 한 기능임을 깨닫는다면, 작은 것이 아닌 큰 것을 섬긴다면, 이런 문지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무사통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공포와 욕망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 삶의 선이어야 한다는 데서 생긴 공포와 욕망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겁니다. [204]
영웅이란 자신의 물리적인 삶을 이러한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을 말합니다. [211]
전쟁터에서 우리는 문득, 살아 있음의 체험 안으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삶은 고뇌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 전쟁은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합니다. [215]
삶의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 [217]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깊이와 경험과, ‘사트, 취트, 아난다’와 관련된 존재의 확신과, 의식과 천복을 통한 나름의 존재 방식이 있어요. [226]
우리 자신의 경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는 것이지, 천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227]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굳게 믿는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천복을 쫓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천복을 쫓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227]
자기 천복을 쫓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227]
5. 영웅의 모험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229]
육체적인 행적을 보면, 영웅은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 데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요. 또 하나의 행적은 정신적 행적입니다. 이런 행적에 따르면,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합니다. [229]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의식은 어떻게 변모합니까?
스스로 부여하는 시련이나 계시를 통해서 변모하겠지요.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인 겁니다. [233]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239]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239]
이런 위험한 길을 갈 때는 자기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따르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위험이 우리를 다리 밑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244]
이 세상의 기원 신화를 접어두고, 인간의 내면 탐색에 관한 신화로 되돌아가, 깨달음의 단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어떤 시련을 경험하게 되는지, 어른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읽어보세요. [255]
이 세상의 기원 신화를 접어두고, 인간의 내면 탐색에 관한 신화로 되돌아가, 깨달음의 단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어떤 시련을 경험하게 되는지, 어른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읽어보세요. [255]
자아는 우리가 중심과 동일시하는 의식의 한 측면, 하지만 자아가 우리의 중심은 아니다. 자아를 나타내는 사각형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나타내는 점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 ‘무의식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바로 주도권을 행사한다. [260-261]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 상황에서 자라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그만큼 모르는 상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늘,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 [262]
신화는 어떻게 하면 이 진짜 ‘자기’를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까?
첫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가 하는 양을 가만히 보면서 그 제자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알아냅니다... 이따금씩 말을 해줌으로써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을 던져주어야 합니다.
또 하나 좋은 방법은,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263]
우리 생각의 체계에 맞게 이 조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상을 움켜 안고, 조직이 가해오는 비인간적인 압제에 저항함으로써요.
“컴퓨터를 끄고, 기계를 끄고 너의 느낌에 따라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 [265]
이 세상에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 세상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남의 말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270]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포스’를 찾아야 합니다...
나날의 경제적 관심과 육신의 안락에 갇히지 않는, 진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이런 능력이 있어요. [271-272]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272]
* 낙타의 삶-어린아이, 소년
책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과 수업을 받아야 하는 복종의 시절이 있는 법 -> 낙타가 무릎을 끓고 짐을 실음
* 광야에서 사자로 변모 - 청년, 자기 발견의 시대
등짐이 무거울수록 사자의 힘을 강해진다. 아이는 ‘그대의 미래’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에, 청년은 이것을 벗어던지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
‘그대의 미래’가 완전히 극복되면 사자는 그 사나운 본성을 버리고 아이로 변모 [283-384]
우리는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딱 하나뿐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지요. [286]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들떠서 행복한 상태, 흥분해서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천복을 쫓으면 되는’ 겁니다. [286-289]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발하고, 그것과 사귀어야 합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두 방법이 종교와 예술을 통해 이르는 방법입니다. [301-302]
6. 조화여신의 은혜
두 번째 태어남이란, 중심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가슴 아래쪽에 있는 세 차크라는 바로 우리가 초극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가 초극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 가슴을 섬기는 종이 됩니다. [322]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진정한 결혼은, 상대에게서 동일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혼에서 육체적인 하나 되기는 정신적 하나 되기를 확증하는 순서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진정한 결혼은 사랑, 즉 아모르의 영적인 충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345]
중세 기사가 섬기던 다섯 가지 미덕 - 절제, 용기, 사랑, 충성, 예의바름
어떤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다섯 기능 중 하나의 기능이 전체적인 질서를 섬기지 못하고 한 사회를 지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351]
황무지 사람들은 죽은 삶을 살기 때문에, “나는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 이런 말을 합니다. [357]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지요. 인생이라는 게 슬픈 것이기 때문에 사랑도 종국은 슬픈 겁니다.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은 법이지요.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373]
8. 영원의 가면
우리의 목표는 ‘자기’를 넘어서는 것, ‘자기’에 대한 모든 관념을 넘어서는 것, 이로써 자기라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의 드러남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 [381-382]
자기 삶을 가슴으로 사는 삶의 단계에 올려놓은 사람에게는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성적인 기관의 수준을 살고 있다, 그 사람 삶의 목적이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는 삶의 의미랍니다. 그것은 프로이트의 철학 아니겠어요? 다음에 대두되는 것이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애들러의 철학입니다. 애들러에 따르면 인생은 장애물과 싸우는 것, 이로써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도 완벽한 인생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건 동물의 수준이에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자기 삶을 타인에게 주어버리는 인생이 있어요. 가슴의 열림으로 상징되고 있는 삶이 바로 이런 삶인 겁니다...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것,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겠지요. [387]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중심을 우주의 중심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군요. [392]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하면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할 수 있는 겁니다. [393-394]
(괴테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존재하기와 변화하기를 통하여 신에게 이르는데 필요한 것이고, 지성은 존재가 확정된 것, 변화가 끝난 것, 말하자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알게 된 것을 이용하여 삶의 모습을 다듬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지적 탐색은 우리 내부의 발화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394]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앎에의 갈망을 체험하고, 인류의 언어를 초월해 있는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아는 일은 신앙을 돈독하게 할망정 신앙에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군요. [396]
삶의 모든 문제는 ‘존재하기’와 ‘되기’를 맴돈다
‘되기’라는 것은 단편적입니다만 ‘존재하기’는 전체적인 겁니다. [409-410]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시에서, 정확하게 선택된 언어는 언어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암시 효과와 함의의 효과를 지닙니다. 시를 통해서야 우리는 저 광휘, 저 에피파니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411]
나는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목적이 있는 인생은 완전한 인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체헌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는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잠재력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천복을 따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여행 그 자체이다. [412-413]
이 세상 도처에 왕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을 경험하면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이 아닌, 빛의 세상이 될 겁니다. [413-414]
· 내가 저자라면
죠셉캠벨은 유명한 비교신화학자이다. 학창시절 신화나 인류학에 관심을 가졌다면 한번쯤은 접해봤을 학자이다. 이 책 "신화의 힘"는 죠셉 캠벨이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 와 대담을 한 내용을 모아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원제는 "Power of Myth "이다. 대충 시대사를 통해 본 신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겠다. 죠셉 캠벨은 신화에 관심을 많이 가진 후 미 개척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낸 마스트로가 분명하다.
나는 어려서 신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일찍 보지 못한 게 조금은 후회가 된다. 서구인들이 동양인에 대해서 가지는 편견같지만 서구인들의 생각을 지배해 온 배경은 본질주의에 뿌리를 내리고있지만 신화 영역에서도 훨씬 앞서있다. 서양인들이 이토록 많이 연구를 할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의 신화는 어디로 갔으며 우리의 전설은 어디로 날아갔는가.
본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첫 번째 장인 ‘신화와 현대 세계’에서 현대의 신화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내면의 탐색, 통과의례의 의미, ‘천복’, 그리고 영웅, 또 사랑과 결혼 등 현대인의 관심사와 결코 유리되지 않는 신화의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마지막 장까지 점차 확장되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 또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에서 신화의 힘을 되새겨보게 된다.
각 장의 첫 문장은 예외없이 모이어스의 도발적인 또는 사례가 있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 또한 독자가 책의 내용으로 빠져들게 하는 특별한 장치였다. 제 1장 ‘신화와 현대 세계’의 첫 문장,
“왜 하필이면 신화입니까? 우리는 왜 신화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까? 도대체 신화가 우리 삶에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 문장을 읽은 독자는 이 책에 빠져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흥미 진지하게 전개되어 긴장을 누출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있게 진행되는 느낌이 든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프로그램의 성격상, 신화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부터 차근차근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어서 일반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궁금한 점을 해소해 가며 읽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것도 이 책이 신화 입문서로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된다.
물론 이 책이 대담집이라는 특성상 좁은 의미에서 주제가 일관적이지 않고 흐르는 부분도 있다.
만일 세상이 모두 개인적인 천복을 좇는다면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모이어스의 질문에 대한 캠벨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회’는 곧 와해될 것이라는 의견에는 공감이 갔으나 그렇지 않은 사회에 대한 언급이 없이 기독교와 루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360-361p)
개인의 천복을 좇는 것과 사회의 요구와의 조화에 대한 캠벨의 의견이 궁금했다. 이 문제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 같다.
현대주의의를 이끌고 있는 정신은 본질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본질이란 배타성과 동일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구분하고 억압하고 배제한다.
이런 정신으로 현대는 오늘날 기업을 이루었고, 그 안에 있는 조직원들은 갈등하고 있다.
이런 갈등은 “우리”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나”가 강조 되면서 인간의 욕구가 너무 다양한 형태로
폭발하고 있다. 나는 “조직이 추구 하는 가치”와 “개인이 내면의 소리에 따라 행동 하는 욕구”
간의 조율이 기업내에 있는 리더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으로 보면,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아래 와 같이 살고 싶어 한다.
‘천복을 쫓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조직을 이루는 집단과 기업은 천복을 쫒고져하는 개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인용문 중 깜장글자로 강조해 놓은 단 한 개는 '신화는 개인의 의식의 변모를 다룬다'입니다. 그 의식의 변모를 가져오게 하는 시련과 도전 하고요.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가 생각하며 읽어내려 갑니다. 맨 아래에는 개인의 천복을 쫓는 것과 사회(조직)의 요구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주된 관심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천복을 쫓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 저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이런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요 집에서도 같이 살고 싶습니다. 아, 심장 벌렁거리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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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No.48 – 마음의 작동법 ![]() | 재키 제동 | 2012.03.25 | 5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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