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샐리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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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을 읽고 쓰고 싶은 컬럼 : 천복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책을 읽으며 가장 내 맘을 잡아 끄는 이야기는 ‘희생과 천복’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50이 다된 선배들에게서도 “ 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이런 이야길 아직도 듣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난 천복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럼 난 천복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가져 볼 수 있었다.
“네 몫의 토마토 쥬스는 마시거라.”
그러자 아들이 대답 합니다 “마시고 싶지 않은 걸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조금 전 보다도 조금 큰 소리로 “ 네 몫의 토마토 쥬스는 마시라니까.”하고 명령조로 말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먹기 싫다는데 뭘 그래요? 싫다는 건 하게 하지 말아요.”이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가 자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러는 겁니다.
“저 좋은 것만 하고 인생을 살 수는 없는 법이야. 저 좋은 것만 하고 세상을 살려고 했다가는 굶어 죽어. 나를 봐 !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어. ”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 천복을 한 번도 좇아 보지 못하고 산 셈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 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늘 너희들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잘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이 천복을 좆으면 어떻게 됩니까?
일주일 내내 천복에 꽂혀 있다 보니 천복을 따라 사는 사람 둘이 내 주변에 나타났다. 새롭게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 한 사람은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인데, 며칠 전 아내의 자격이란 드라마로 사람들이 왈가왈부 하길래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자격은 저리 가라하고 내 시선을 머물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에 대한 불륜의 이야길 엄청 큰 폰트로 그것도 붉은 색으로 장황하게 올려놓은 글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아래 지식인에 달려진 대답이었다. 파란색의 정상적인 폰트로 올라간 답 글은 질문자의 서너배는 되는 분량의 글이었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120점짜리의 글? 질문자가 약간은 흥분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장황하게 해댄 부분을 어찌나 정성스럽게 다듬어 정리를 해주었는지... 해결책도 아내와 살 경우의 당신이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을 때 당신의 행동수칙까지 정말 명쾌한 조정자의 역할에 난 감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보통은 넘는 수준의 전문가 feel이었다. 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의 멜 주소로 조심스럽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자기는 그저 평범한 월급장이 일반인라는 사실에 더 정신이 확 깼다. 그러나 난 그 답 글의 수준으로 볼 때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돌아온 답에 좀 더 궁금한 부분을 묻는 메일을 보냈는데 다음은 그 사람이 주말에 내게 답장을 보낸 내용이다.
주말입니다. 언제나 주말이면 따로 정해 놓지 않은 목적지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고 보니 길과 친구가 된 나날이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거와 무관하게 살아왔던 많은 날들이 있었고 불혹을 훌쩍 넘어선 이 즈음,
무엇을 위해 바삐 움직여야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강을 따라 걷기를 좋아 하고 조그마한 오솔길이나 잘 정돈된 공원길 걷기를 좋아 합니다.
주말 마다 찾아 가는 강을 거슬러 가는 길은 험난한 길도 꽤 있지만 한 번도 걸음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배낭하나 달랑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었던 일이 생각 나는군요. 몇년 전에는 잘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 받은 돈으로 세계를 돌았습니다.
그림을 그리진 못하지만 많은 이들의 그림을 대하면서 흉내를 내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 부터 사랑, 江, 그리고 길에 대한 낙서를 해왔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엔 엥겔지수와 의류비를 합한 것 보다 높은 문화비를 사용하며 헤비메탈과 락, 오페라, 국악, 춤판 등을 찾아 다녔습니다. 장날 사과 궤짝에 앉아 먹는 국수가 너무도 맛있어서 모든 시골 5일장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죠. 생긴 모습과는 달리 워낙 된장 같은 성격으로 지금도 15년이 넘은 단골 미용실과 20년이 넘은 음식점을 단골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떤 글에서 생면부지의 남정네에게(성별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메일을 보내려한
동기가 부여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소통"이라는 명제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주제가 무엇이든간에 소통을 통하여 "앎"을 이루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말 아침 답장을 보고 난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 세상에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용감한 사람들이 있구나. 천복을 따라 살기위해 묵묵히 자신만을 길을 개척하는 용기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의 상담 답글은 전문가 이상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과연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도 돌아보게 했다.
책에서 알려주는 것 이상의 자연에게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을 거란 생각도 하게 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2년 전 내가 알던 사람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목수다.
그런데 그의 전시회가 회사 가까운데서 열린 다는 말을 듣고 저녁 회사가 마치기가 무섭게 달려갔다.
내촌 목공소 이정섭 목수 : 목수는 디자인을 배제하는 원형성에 집착하다.
내가 짧게 만난 그는 분명히 천복을 따라 사는 행복한 인간이다
2년전 겨울이 막 시작되는 11월 말 그는 정림포럼의 스피치 연자로 초대되었다. 그 주간에 그의 작품 몇 점이 전시 되고 있는 줄 몰랐던 나는 “ 야, 어디서 이렇게 멋진 탁자를 들여놨대? 딱 보기에도 아주 고가의 값있는 물건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중에 값을 알고 나니 무려 천만원이 넘는 호두나무 탁자였다. 뿐만 아니라 정림 포럼을 알리는 포스터에 나온 얼굴이 마치 원종배 선배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난 꼭 포럼을 들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는 스피치를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막 작업실을 뛰쳐나온 것처럼 보이는 청바지에 손은 그야말로 목수의 손- 옹이가 많이 박혀 있는손 - 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 20분의 스피치 시간은 정말 그 이 목수에게는 지옥같았나 보다. 세상에 태어나서 스피치를 하며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처음 본 것이다. 과연 20분간 이야기를 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난 그에게 서서히 몰입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스피치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너무 부끄럽단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스피치에는 기교도 기술도 없었지만 그의 어눌한 말 뒤에 숨어 있는 강력한 진실함이 청중들을 서서히 몰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20분의 강력한 (적어도 내겐) 연설이 끝나자 난 궁금했다. 그의 삶의 여정 중에 분명히 천복을 따라 사는 삶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스피치 중에 자신이 목수와 맞는 다는 것을 정말 어느날 우연히 흘러 들어간 한옥 짓는 곳에서 발견 한 이후 경제적 활동을 중단하고 철저히 일정기간은 목수 수업에 전념했던 시간이 있다고 이야기 한 부분 : 난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경제 활동을 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확신이 있을 때에는 가능한 일인데....그렇게 목공에 몰입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지? ...그는 처음엔 아니라고 하다가 멈칫 하더니 자신에 대한 확신 믿음이 있었던것 같다고 수줍게 웃으며 이야길 했던 기억이 난다.
천복을 따라 사는 삶은 아름답다. 뿐 만 아니라 그들은 천복의 강력한 바이러스가 되어 주변에 선항 영향력을 끼친다. 변경연의 대장 사부님부터 우린 천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부터 천복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 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용기라곤 눈꼽만큼도 없었던 내가 점점 용감해지고 있음을 보면 그렇다. 아직은 살과 굴대를 잡으며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살은 날려버리고 이제 굴대만을 잡고 살 것이다.
중세 필사본의 여러 문맥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가 바로 행운의 바퀴라고 하는 이미지입니다. 이 바퀴에는 굴대도 있고, 바퀴살도 있고, 태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 바퀴의 테를 잡고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굴대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즉 중심에 있을 수 있답니다. 이게 바로 천복을 좇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 보충반 (일명 부진아)반 학생들이
"수학이 왜 필요해요? 살면서 정말 필요없데요!"
이러길래 "아니 누가 그런 얘길 해?" 하면서 일장 연설하려다가
캠밸 선생님 생각나서
'천복' 하면 못알아 들을까봐
네가 하면 행복한 것, 즐겁고 기쁜 것, 힘들어도 하고 싶은 것들을 잘 생각해봐.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스스로를 잘 관찰하지 않으니.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단다.
하면서 막 90분 수업 중에 40분 할애해서 이야기 했는데..
우리가 잘 모르지만 주변에 천복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다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그리고 스스로도 그런 사람 되길 바라는 사람 되길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언니가 봐주는 덕분에 친구 동화책 조촐한 출간 기념 파티 잘 했답니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