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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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이 있다. 이러한 기질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이다. 외향적, 내향적, 적극적, 소극적, 온순함, 성실함 등의 이러한 기질은 사람마다 다르며,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혹은 양면을 다 가진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가장 두드러진 기질은 외향적, 적극적, 유쾌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만의 동굴로 숨어버리거나 한없는 심연 속으로 침참해 버리는 기질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기질은 서로 번갈아 나타나며 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감정기복, 이것이 내게는 인생의 화두이다.
감정기복 때문에 나는 20대를 고스란히 방황으로 보냈다. 23살부터 시작된 우울증은 26살까지 계절적으로 찾아와 내 일상을 폭풍같이 휩쓸고 지나갔다. 깊은 감정의 끝을 경험하고 나온 후의 회복기간은 정말이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정신적 고문의 시간이다. 의학적으로도 우울의 시간보다 이 회복의 시간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자살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면의 어둠과 싸우면서 지칠 대로 지친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현실로 돌아오면 뒤쳐졌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걷기도 힘든 몸으로 뛰게 된다. 그러니 그게 되나, 다시 지치고 쓰러져 죽음만을 생각하게 되는 상태로 떨어진다. 이런 상황을 반복하는 우울증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이후 난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우울증이 환경의 변화와 정신적인 충격으로 감정의 어둠과 빛을 번갈아 경험하게 되는 조울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마, 그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나의 감정기복을 병으로 인정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제대로 받기 시작한 시기가. 어머님도 같은 기질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나에게서 우울증이 발현되고 나서 바로 진료를 받게 하셨으나, 나는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도 나의 감정기복을 병으로 인정하기 않았다. 벼랑 끝의 삶에서 오는 피로에 의해 육체와 정신이 방전된 것이라고, 여기서 회복되면 23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머님의 죽음이후 난 삶에의 의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렸고 그런 믿음은 사라졌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었다. 이제 이 세상에 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뿐인 동생을 두고 죽는 다는 건 비겁하고 졸렬한 행동이었다.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죽을힘으로 살려했던 의지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우울이 빛과 어둠으로 나타났다. 28살부터 경험했던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나를 좌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쌓아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회사에서 나와야 했고, 지금까지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왔던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는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나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굴 속에서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다짐했다. 억울했다. 감정기복이 내 삶의 숙명적 고난이라면 이겨내 보겠다고, 죽기 전에 이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도 해 보지 않는다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진심을 다했다. 진료에도 투약에도 운동에도 내 감정을 살피는 일에도. 조금씩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감정의 변화를 감지하여 조절하는 것에 성공했다. 보통은 6개월에서 1년을 주기로 심각한 증세가 보여왔으니 1년 반이라는 시간은 내게 미래에 대한 한줄기 희망이다.
캠벨은 묻는다. “이 세상 누가 고통을 끊어보았답니까? 언제, 어디에서 그런 삶을 살아보았답니까?”
그리고 말한다.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동화시키기가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이것을 성취한 인간은 그만큼 더 위대해지는 거랍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삼켜버리는 악마가 그런 우리에게 권능을 부여합니다.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돌아오는 상(賞)또한 그만큼 큽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창조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게 한 것이 당신의 내부 어디쯤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걸 알아내면 당신은 이것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당신 삶의 일부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나의 내부 어디쯤에서 ‘감정기복’이 생기는 것인지 알아낼 것이다.
알아내 내 삶의 일부로 즐기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극복해 내리라.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영웅을 깨워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