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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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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9일 11시 48분 등록

 

대지가 제 속살을 이리도 과감하게 내어 보인다. 왼손을 바위에 붙이고 교감하듯 눈을 감는다. 바위와 한판 접전을 벌이기 전 나만의 리츄얼이다. 거대한 바위,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참함 앞에 나는 난데없이 이 바위의 제 어미에 대해 궁금하다.

 

내가 너를 오르는 동안 나는 너를 다스리려 한다. 너를 키워준 어미의 현현이라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여 나로 하여금 너를 기특하다 여기게 하라

 

오르기 전의 두려움은 근거 없는 창조주적 거만함으로 포장된다. 그 천박함에 바위가 웃을 일이다. 피잉, , 챙챙, 오리기 전, 장비가 부딪히는 소리에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그 긴장감 위로 허공을 가르는 금속성의 채찍소리, 치잉

 

그 소리는 다시 내 안에서 시공을 가로질러 심연으로 깊이 처박힌다. 두려움의 소리다.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바위 앞에 서서 당장 엎드리고 싶지만 엎드릴 수 없는 미물의 기반 없는 저항이다.

마술사가 펼치는 매직의 세계는 그가 그린 원 안에서만 영험이 있듯 이 바위는 내 영혼의 자장(磁場)안에 있기에 내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알고 있지 않겠는가. 나의 리츄얼을 부디 삼켜 주시라.

 

확보 안전 확인!’

출발 준비 완료!’

출발!’

 

사지를 바위에 착 붙이고 제 몸뚱아리 떨어질까 걱정하는 꼴이 우리가 사는 비루한 생의 눈물겨움과 다를 것이 없다. 승모근과 전완근에 전해지는 혈류가 쌓이는 젖산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마이크로 세계의 눈물겨움은 우리 삶에 그대로 포개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눈물겨움에도 꿋꿋하다. 제 고통의 업이 무언지도 모른 채 가끔씩은 뜬금없이 행복해 하기도 한다. 중력을 배반하고 있다는 일탈의 기쁨, 오르다 솜다리(에델바이스)를 만난 우연에 기댄 기쁨처럼 말이다. 솜다리, 그래, 높은 바위에나 산다는 솜다리.

 

오르다 말고 코앞에 보이는 솜다리가 마치 웃는 듯 가쁘게 호흡하는 중에 시야에 들어온다. 지나치는 눈길에 솜다리를 보고는 시선은 다시 돌아와 집중한다. 척박한 바위 사이에서 솜다리는 그토록 의연하게 제 자리에 앉아있다. 무릇 조건 지어진 것들에 대한 슬픔이 와락 나를 껴안는다. 어디서 왔기에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척박함에 뿌리 하였느냐, 네 어미는 어디 있느냐. 바위와 솜다리를 번갈아 보고는 슬픔의 시작이 시간임을 느낀다. 그 슬픔이 떨어지지 않으려 바위에 꼭 붙어 있는 내 속으로 빨려 든다. 그리고 내 전완근의 힘은 스스르 풀리기 시작한다. 

 

손가락은 이제는 제 몫을 다한 것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같이 힘을 놓아버린다. 펌핑이다. 추락을 앞두고 머리 위를 지나는 천정의 바위를 본다. 우주처럼 한정 없다. 낭떠러지 밑으로 늘어진 자일을 본다. 허공에 흔들리는 모습이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는가. ‘떨어지자. 떨어지자.’ 마음을 단단히 먹지만 없는 힘에도 끝까지 바위를 놓지 않는 손가락의 끝마디는 내 원형의 자장이 미치지 못하는 천박한 육신이 하는 일이다. 캠벨이 그의 책 신화의 힘에서 총탄의 소나기 속을 뚫고 가며 했던 인디언의 말을 빌려 말한다. ‘죽기에 좋은 날이다.’ 점에서 시작한 생이 다시 점으로 돌아간다는데 누가 말리랴.

 

앙카!’

....

....

 

이 추락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죽음의 지대로 들어가는 천국의 빛으로 가득하리라, 떨어지는 몇 초간은 귀청을 때리는 침묵 속에 아름다운 음악 한 줄 흐르리라.

 

600m를 수직으로 뻗은 벽은 한갓 꿈처럼 지나갔다. 오르기 전의 두려움은 이제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땟물과 피가 섞여있고 손은 덜덜 대며 떨고 있다. 찢어진 손톱 밑을 애써 무시하고 무릎을 엑스자로 껴안는다. 산허리에 깔리는 장밋빛 노을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다.

 

18억년 간 우주를 가로질러 이제야 들을 수 있게 된 그 빅뱅의 메아리.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 경계하는 고양이의 앞발처럼 들리는 그 소리. 바위야, 들리느냐. 네 어미가 애타게 너를 부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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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자일 : 등반용 로프 

앙카 : 추락 시 외치는 등반용어

IP *.51.14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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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2:18:14 *.166.160.151

펌핑...그거 내가 알지. 아주조금

재용!!

솜다리는 그런곳에만 있는것은 아니라네. 몽골에 갔더니 너른 초원에 솜다리가 지천이었다네

나도 깜짝 놀랐다네.

바위와의 한판 접전. 어미가 부르는 소리.

눈앞을 막아서는 바위. 절대 범할수 없는 것같은 놈을

어떻게 범하고 난후의 산들바람...

이렇게 이야기하니 많이 해본 사람같다...ㅋㅋ

그냥 맛만봤어. 지난해에 실내암벽할려고 다시 시작했는데 그놈의 펌핑때문에 떨어져서

허리를 좀 다치고 나니, 아...이제 이럴 나이 아닌가벼.

이러고 가지않고 있다네.

좋은 느낌을 살려줘서 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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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7:50:45 *.51.145.193

형님을 책임지고 젊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어떻게?라고 물어보시겠지요. 세월이 오디말디 고마 사시면 됩니데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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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5:26:54 *.36.72.193

와~!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면서 읽어 내려 가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장면이 보이는 듯,

오빠가 에베레스트 산에 갔던 때를 이야기 하는건가?

정말 저 순간이었으면 아찔. 그자체..

 >.<

 

'으흠.. 죽기에 좋은 날이다.......'

 

재용오빠! 앞으로 산 얘기 많이 볼 수 있을 듯.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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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7:52:22 *.51.145.193

우리나라에 있는 큰 바위를 오를 때입니다. 칼럼이 스스로 맘에 안들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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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5:28:28 *.114.49.161

와, 멋지다! 긴장해서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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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7:55:07 *.51.145.193

몸으로 하는 천기(賤技)입니다. 잘 보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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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7:52:21 *.45.129.181

'신화의 힘' 책에 정말 좋은 말들이 많지만... 특히 머리를 도끼처럼 찍고 들어왔던 말이 바로 '죽기에 좋은 날이다' 였습니다. 하늘 한 번 바라보며 바람신에 인사하고 대지에 입맞춤한 뒤 적진으로 뛰어들어가는 인디언 용사처럼 삶의 어느 중요한 순간에 후회없이 용감할 수 있기를 기도하곤 했죠. 그 말을 컬럼에서 읽으니 반가워서 한 글 적어 봅니다.

 

이 글을 읽으니 갑자기 돌아가신 고 고상돈 대장이 떠오릅니다.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미국 매킨리 봉 등정 중에 실족으로 줄에 3명의 대원이 매달리자 가장 밑에 있던 고 대장은 스스로 칼로 자일을 끊어 다른 대원을 살리고 본인은 절벽 밑으로 떨어졌죠. '앙카'.... 찰라의 순간이었지만 고 대장은 그렇게 자연으로 귀의하셨을 겁니다. 30년 전 어린 마음에 감동적으로 읽었던 일화가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떨게 만드네요.

 

운명적인 순간에 일순도 망설임이 없기를... 그런 사람일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마음 잡아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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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7:58:24 *.51.145.193

선배님께서 왕림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동시에 갑자기 부끄러워 집니다.

'운명적인 순간에 일순도 망설임이 없기를..' 저도 취하여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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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9:52:03 *.118.21.153

난 정말 사부님 말씀대로  책읽기  글쓰기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

여행도  많이 해야 하려나 보다 .

도무지 뭔말인지 모르겠으니....상상력도 많이 동원해야 하고...

 

길수행님도 답글 단 솜씨가...보통이 아니고

당분간은  여러분의 글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수밖에....

그런데 나도 실내 암벽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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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8:52:14 *.163.164.152

재용씨, 잘 지내지요?

 

집중력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하나에 응축된 시선과 온몸이 한 곳을 향해서 촛점을 맞추고 있는 힘이 느껴지내요.

 

확실히 존재하는 글 하나가 있네요.

글 속에 녹아있는 재용씨가 어렴풋이 보이네요. 맞나요?

 

화이팅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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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19:17:08 *.47.75.74

재용씨에게 직접 이야기로 들었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글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그것이 실화였을때 오는 감동은

더 합니다. 재용씨의 보이지 않는 여유와 힘은 '살아있는 경험'을

통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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