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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0일 06시 59분 등록

조직답지 않은 조직들

 

조직다운 조직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조직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조직구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과장 위에 부장'과 같은 직급이나 직함이 없는 기업이 있기도 합니다. 일을 부여 받은 작은 단위 조직은 경영자나 관리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과 함께 주어진 권한을 마음껏 행사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하여 '환경분석'으로 시작해서 '기대효과'로 마무리되는 화려한 파워포인트를 작성하지도 않습니다. 조직다움을 포기한 어떤 기업은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얽매이던 형태를 벗어나기도 하고, 'Nine to Six'라는 시간의 집착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기존의 관습을 포기한 대신에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면서 식품유통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의 조직은 민주주의 조직, 커뮤니티 조직이라고 불립니다. 홀푸드마켓은 점포 안에 존재하는 작은 팀을 기본 단위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작지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작은 기업처럼 움직입니다. 스스로 팀원을 고용하고 서로 일하도록 독려합니다. 자신들이 판매할 상품을 직접 조달하고, 가격결정을 내리고, 마케팅의 방식을 정합니다. 구성원들은 팀의 생존과 진화를 위하여 협력하고 헌신합니다. 회사는 과거의 방식 중에서 감독, 엄정한 계획과 방침, 강제적인 절차 등 일부의 관습들을 포기하는 대신에 사랑, 커뮤니티, 자율, 평등주의의 새로운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프리 페퍼가 <휴먼 이퀘이션 Human Equation>을 통하여 소개한 미국 전력회사 AES의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미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한 직원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협상에 임하면서 거의 1년 동안 그곳에 머무른 일이 있었다. 마침내 1년이 지나 본사에서 그에게 그만 포기하고 돌아오라고 하자, 그는 마지막으로 2달의 여유를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 때까지도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결국 그는 약속한 그 기간 내에 AES사가 운영하는 새로운 발전소 구매 협상계약을 타결지었다."

 

우리가 속한 조직, 아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조직들 중에서 경영자나 관리자의 승인 없이 판매하는 상품을 구성하고, 가격을 결정하고, 사람을 채용하도록 하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요. 직원의 믿음과 예감을 믿고 회사를 대표하도록 외국에 보내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은요?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기까지 장장 1년 이상을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구성원들의 참여와 주인의식을 독려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그것을 유도하는 조직 운영 철학에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컨트롤 타워에서 말초(末梢)의 촉()으로

 

21세기 경쟁 환경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극도의 불확실성, 빛의 속도로 변하는 급변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전혀 예상치 못한 위기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업의 존폐를 좌우합니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21세기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적시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민첩함은 조직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유전자가 되었습니다. 정답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성실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민첩함은 생존을 위한 제 1조건이 되었고, 민첩함을 좌우하는 것은 감지(sensing)입니다. 요점 유행어로 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촉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촉()은 말초(末梢)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경영의 시절에서는 촉()이 말초에 있지 않았습니다. 피라미드 상부에 있는 1%가 의사결정을 해왔습니다. 획일화된 대량소비 사회에서는 1%의 의사결정으로도 성공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획일화된 사회는 존재하지 않고, 변화는 느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불확실성과 급변성은 우리에게 민첩함을 요구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과거의 성공법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살펴본 홀푸드마켓이나 AES의 사례는 지난 날의 컨트롤 파워에 의존하는 과거의 조직다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말초(末梢)에 있는 촉()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지요.

 

<노동의 미래>를 저술한 토머스 말론(Thomas W. Malone)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런 조직적 변화를 "탈중심화(decentralized)"라는 간단한 개념으로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은 '탈중심화'라고 하면 단지 기존 조직 내에서 더 많은 권한을 하급 관리자에게 위임하는 것, 예를 들어 보통 CEO가 내리던 상품 전략 결정을 부장들에게 내리도록 하는 것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적인 탈중심화는 거대한 가능성의 표면을 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탈중심화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관계가 있는 의사결정에 관계자들이 참여함." 이런 점에서 탈중심화는 대략 자유(自由)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탈중심화는 훨씬 폭넓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과거의 조직다움을 포기한 조직들을 일컬어 토머스 말론의 '탈중심화'를 비롯하여 자기조직화, 분권화, 민주화, 참여적, 유연화, 커뮤니티 등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됩니다. 이들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보면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것은 '컨트롤 타워' 중심에서 '말초(末梢)'에서 시작하는 참여와 협력의 방식으로 경영 철학이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권한위임과 육성

 

조직은 항상 환경변화와 함께 해왔습니다. 미래의 조직 역시 미래 경영 환경에 맞춰 만들어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그래서 기업의 촉()을 발달시킬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권한위임입니다. 홀푸드마켓은 매장 안에 있는 작은 팀에게 큰 자율을 부여했고, AES는 입사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직원에게도 수만 킬로 떨어진 외국에서 회사를 대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권한위임과는 시작점을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위임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는 집단에게 마지못해 내어주는 한 부분과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위임전결규정입니다. 위임전결규정은 '중요한 것은 내가 결정할 것이니, 덜 중요한 것만 네가 결정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성원에 대한 신뢰나 믿음에서 출발하였다기 보다는 세련된 통제' 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맨주먹으로 인도 2위 이동통신 그룹 바르티 엔터프라이즈를 키워낸 수닐 바르티 미탈 회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 가운데 중요한 하나로 '권한위임'을 꼽습니다.

 

"직원들에게 진정한 권한 부여를 해줬죠. 직원이 실수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을 정도의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주인의식이 생긴 거죠. 오랫동안 우리 회사의 연봉 수준은 최고가 아니었습니다. 중간 정도였는데, 회사를 떠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굉장한 거죠. 우리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열정적인 조직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권한위임은 리더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권한위임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는 구성원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역량에 대한 이해와 믿음 부족, 사소한 것까지 챙기지 않으면 나중에 뒤통수 맞는 일이 생긴다는 생각 때문에 시시콜콜 것까지 체크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권한이 줄고 권위가 약해진다는 불안감입니다. 그래서 일은 주지만 권한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직원은 리더에게 일일이 물어보게 되고, 직원들은 리더에 의존해 스스로 생각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권한을 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권력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토머스 말론은 그의 책 <노동의 미래>에서 이것을 '권력의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권력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 지나치게 아랫사람을 들볶는 관리자는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혹은 복종하기는 해도 사기가 떨어져 애써 관리자의 이상 추구에 동참할 의욕이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하급자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그들은 적극적으로 관리자를 돕고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 에너지, 창조력, 열의를 바칠 자세를 보일 것이다. 그들도 성공하고 관리자도 성공하는 셈이다. 그들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자신의 권력이 더 강해진다.

 

()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일일이 지시하고 통제하는 대신에 지원하고 배려하여야 합니다. 지원과 배려야말로 누구도 대체하지 못하는 리더 고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한위임과 더불어 중요한 원칙 두 번째는 육성입니다. 조직의 말단까지 스스로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 부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자율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를 잘 알아야 가능합니다. 홀푸드마켓에서 팀들이 자신들의 일을 스스로 경영할 수 있는 것은 열정과 함께 전문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인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하는 것도 거꾸로 생각해보면 즐기기 위해서는 좋아해야 하고, 좋아하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 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직원을 육성한다는 것은 결코 협소한 의미에서 교육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성장은 일과 관계를 통해서 팔할 이상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규모를 중시하고 틀에 박힌 생산 과정을 반복하는 구식 경영에서는 종업원들의 지성과 창조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지휘-통제의 방식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급변성으로 대표되는 현대 경영환경에서는 종업원들을 육성하고 그들의 지성과 창조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 비즈니스 성공의 관건입니다.

 

새로운 조직 형태 및 운영방식이 중력의 법칙처럼 적용되어온 과거의 습관을 하루 아침에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문제없이 성공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대부분 “맞는 이야기이긴 해”라고 수긍하면서도, “그런데, 가능하겠어?”라는 핑계로 기존의 조직다움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차일피일 미루다간 결국 한꺼번에 조직 모두를 바꿔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기 쉽습니다.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궁극적으로 변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변화를 위한 기반을 착실히 조성해 나가는 일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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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0:19:58 *.51.145.193

선배님과 같은 경영자라면 직장인은 성심을 다해 자기일처럼 할텐데.^^

 

환경의 변화가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데 기업은 과거 성공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말초의 촉이 필요함을 역설한 부분은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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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1:17:36 *.152.144.164

와~ 열공의 흔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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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1 13:08:20 *.143.156.74

오라버니도 조직으로 들어가 오라버니의 생각들을 실현하려고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현실과 이상은 항상 갭이 있지만 그 현실 속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 가는 것도 재미있으니까요.

내가 그 자리를 찾아 줘야 할텐데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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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1 16:33:21 *.231.221.216

오라버니~~~ 지난번 술자리에서의 이야기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답니당. 내 고민들에 또 고민. 계속 이어지는 고민에서..

 

그리고 이번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회사의 상을 그렸어. 매일 조금씩 구체화 시켜 가는 중..

기대해도 좋아요.ㅋㅋㅋㅋ.. (나중에 오라버니 책의 성공 사례가 될 만한 회사면 좋겠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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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 08:05:47 *.223.3.242

옵빠!!!!!!!!!!!!!!!!

공부 열심히 했군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요~ㅋㅋㅋㅋㅋ

근데 이 글을 읽으면서 오빠의 빙그레 웃음이 생각났다는

뭔말인지 잘 모르지만 기분이 좋아졌어.

나는 조직원이 아닌거얌? ㅋㅋㅋ

다시 한 번 잘 읽어볼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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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1:07:36 *.229.239.39

열공의 모습이 넘~ 좋습니다. 저의 관심 많은 영역을 다뤄주셔서...제목에 필 받았지만, ...시간내어 다시 잘 읽고,궁금한 점 질문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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