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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7일 06시 48분 등록

지난 주에 선거가 있었지요. 선거가 있던날 큰 아이가 계속해서 말을 겁니다. 저와 같은 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싫어하는 저의 모습이 아이에게서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편협한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야단을 쳤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바램일 것입니다.

 

아이가 마음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아내가 와서 이야기 합니다. 아이가 단지 당신하고 이야기 싶어하는 것인데 그것을 몰라주냐고 합니다. 제가 싫어하는 모습만 보였을 뿐 그 마음을 읽지 못하는 바보 같은 아버지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리게 됩니다.

 

제가 심했다 싶어 다락방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내려가라고 소리칩니다. 예전 같으면 또 한 번 야단을 쳤겠지만 그날은 거기까지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내려와 생각을 해 봅니다. 내 방으로 내려와 있는데 아이가 아내에게 이야기 합니다. 누굴 닮아서 그랬겠냐고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그럽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것을 이제서야 실감하게 됩니다. 저와 대화하려는 아이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말하는 그것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하고 고치고 싶어하는 점이 아이의 모습에서 보여질 때 화를 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째, 아직 있는 그대로의 저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꿀 힘이 조금도 없다는 무기력함을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저 자신을 바꿀 힘 조차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사랑한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만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들을 아이에게 주입시키려 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내 뜻대로 상대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먼저 찌질한 자신의 모습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거기이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청출어람이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은 부전자전이기가 훨씬 더 쉽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한 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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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22:47:34 *.116.114.90

아이의 거울은 부모가 맞습니다. 

하지만 거울에는 왜곡된 자신이 모습이 비춰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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