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미나
  • 조회 수 358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4월 18일 00시 46분 등록

51. 새로운 인생 단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1.     저자에 대하여

1)    단테

단테는 유년시절부터 문학의 기본을 배웠다. 꾸준히 인문학을 연마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자신의 시간을 적절히 배분해 여러 선생님들 밑에서 역사와 철학을 몸소 통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사물들의 진실을 알아내는 달콤한 기쁜에 사로잡혔고, 인생에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순간적인 부보다 영원한 명예를 위해 시창작에 관한 완전한 지식과 작시법을 통해 창작법을 설명하는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훌륭한 스승들을 만났고, 그들을 모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러한 노력은 그의 탁월한 학문적 성과로 나타났다. 덕분에 당대 최고의 칭호들을 얻었고, 살아 생전에 시인, 철학자, 신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되었다.

 

9, 베아트리체라는 연인을 우연히 만남으로써 그는 사랑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고, 그녀에 대한사랑은 세월과 함께 커져만 갔다. 그래서 그에게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기쁨이나 위안, 평화를 주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베아트리체가 세상을 떠나고 그는 상실에 대한 깊은 고통을 겪게 된다. 단테의 사랑은 너무 순수한 것이었다. 베아트리체의 죽음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죽음 이전에 보편적 법칙의 힘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의 고통은 주변이들로 하여금 큰 실수를 감행하게 만든다. 사랑의 아픔을 또 다른 사랑으로 덮으려 했던 것이다. 그가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때 그에게 새로운 사랑을 연결해 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정확히 실패했다. 단테의 부인은 그의 마음이 유쾌한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슬픔은 그녀에 대한 증오로 받아들였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은 단테가 그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고통의 위안을 가족에게 얻지 못한 단테는 그녀를 떠나게 만든다.

 

그는 평생을 공부했다. 항상 지엄한 군주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철학자들과 대론을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시인을 즐겨 읽으며, 평생을 공부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고통을 달랬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인과 함께 함으로써 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상에 잠기곤 했다. 어떤 정신이 하늘을 움직이고, 동물들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사물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곤 했다. 이상한 발견을 예견하거나 사후 미래의 세계 가운데 자신을 영생하게 만들 그 무언가를 구상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이런 습관 덕분에 <신곡>에 대한 환상이 운명적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단테도 사람이었기에 사랑에 대한 감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명예를 추구했으며, 덕분에 정치판에 뛰어든다. 하지만 당파 싸움으로 인해 그가 평생을 그리워 했던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대중의 희망이었다.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백성들의 안식처였다. 그런 그가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 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가난이라는 새로운 고통에 처하게 된다. 생애 처음으로 근면함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학식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를 몹시 아끼는 친구의 도움으로 피렌체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나, 아무 정당성 없이 쫓겨난 그가 잘못을 빌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결국 유배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자기를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56세에 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다행히 당시 그와 함께 했던 로마냐 시의 라벤나 공이 그의 장례식을 성스럽게 치러주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원하던 월계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nhnsvc.jpg

<신곡>을 처음 읽었을 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인생>을 읽으니 단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던 단테. 평생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 사람의 열정이 부럽다. 그에게 찾아온 우연한 사건들은 그를 <신곡>으로 이끌었다. 그의 젊은 시절의 기록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갈팡질팡하고 있는 내 인생의 여정에 알 수 없는 확신이 생겼다. 이 책에서는 단테의 작가로서의 태도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꾸준함. 일상의 사건들이 작품으로 연결됨. 생활 태도 등 무엇하나 빠뜨릴 수가 없다.

 

<참고자료>

-       <새로운 인생>

 

2.     내가 저자라면 내 책에 적용하기

-       단테는 친절하다. 그가 쓴 해석 덕분에 소네트를 이해하기가 쉽다. 해석을 쓴 이유는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       평생을 학습했던 단테. 그가 훌륭한 시인들의 시를 즐겨 읽었던 것처럼 나 역시 꾸준히 좋은 책들을 읽어야겠다.

-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이 그의 작품으로 승화된다. 나 역시 일상의 감정들과 사건들을 내 글로 만들어야겠다.

-       젊은 시절의 기록. 삶에 대한 통찰. 내 책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그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이 작품의 목적이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일까?

 

3.     내 마음을 무질러 드는 글귀 내 책에 활용하기

::: 서문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새로운 인생>(단테의 생애 중 스물일곱 살까지를 다룬 청춘의 자선 혹은 정신의 기록)

단테의 생애 중 스물일곱까지를 다룬 청춘의 자선 혹은 정신의 기록이라는 점은 내 청춘의 기록을 쓰고 있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에 그러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연옥 편 30) 당시의 젊은 단테가 이와 같았다. p13

 

멀리 떨어진 초원에 서 있는 사람의 귓가에 날아와 바다를 바라볼 준비를 하게 해 주는 폭포수의 첫 웅얼거림과 같은 곡조가 <새로운 인생> 전체에 흐르고 있다.

보카치오는 단테의 생애에서 이 위대한 시인이 말년에 자신이 젊은 시절에 쓴 이 작품을 창피하게 생각했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생>이 젊은이만이 쓸 수 있는 책이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책으로 남아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p14

→ 아, 정말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젊은이만이 쓸 수 있는 책. 그리고 내 책 역시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책으로 남겨지길 바란다.

 

1부.        새로운 인생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p19

→ 단테가 쓴 첫 작품의 첫 문장. 나도 이 문장을 내 책의 첫 문장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목격한 그녀의 자태는 너무나 고귀하고 칭찬할 만해서 시인 호메로스의 표현이 그녀를 두고 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달이 아닌 신의 달처럼 보였다.”(<일리아스> 24 258) p20

 

그러나 내 청춘기의 열정과 행동이라는 주제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머무름으로써 내 말들이 꾸며낸 것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이제 이것들을 제쳐두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생략한 채 내 기억의 책 속에 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주제들로 넘어가겠다. p21

 

내가 본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 나는 이것을 당시 유명했던 여러 시인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 여러 시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월계관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고, 베아트리체에 대한 그의 마음을 널리 알리고 싶은 욕망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시에서 나는 사랑의 신에게 종속된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들에게 내가 본 환영을 풀이해 달라고 간청한 후에,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을 남김없이 써서 이들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소네트를 썼다. p23

→ 이후에도 나오지만 단테는 젊은 이 시절에 그에게 다가온 다양한 감정들을 시작으로 승화시켰다. 이 또한 나의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을 수 있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진실의 가리개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가 너무나 연기를 잘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나의 비밀을 알아냈다고들 생각했다. p25

 

그녀가 어느 곳에 나타나건 간에 그녀의 비길 데 없는 인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내 눈에는 더 이상 나의 적들도 보이지 않았고 과거에 내게 해악을 끼쳤던 사람마저도 누구든 다 용서할 수 있을 만큼 뜨거운 자비심이 생겨날 정도였다. p33

 

얼마 후 그와 헤어져서 나는 전에 울었던 그 방으로 돌아갔다. 울면서, 또 부끄러워하며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나의 처지를 알았다면, 나를 조롱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 분명 동정심을 느꼈을 거야.” 울면서, 나는 시 한편을 쓰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이 시가 그녀의 귀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나는 이 소네트를 썼다. p42

→ 단테의 감정들이 곧 시가 되었다. 그리고 단테의 모든 작품은 항상 지향점이 뚜렸했다. 목적, 즉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한 글. 그래서 단테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네트는 여러 부분으로 나누지 않았다. 나눔의 목적은 각 부분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함인데, 이 시는 시를 쓰게 된 이유를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나눌 필요가 없다. p43

 

이런 연후에, 이 소네트는 내가 아직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나의 상황에 관한 다른 네 가지 사실들을 시로 써야겠다는 욕망을 나에게 불러 일으켰다. p46

 

몇 차롄가(실은 빈번하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랑의 신이 내게 가져다 준 고뇌의 특성을

그러면 연민이 내게 한숨지으며 말하게 한다.

다른 어느 곳에,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p46

 

그 여인이 곁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다면, 무슨 목적으로 당신은 그 여인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이유를 말해 보세요. 그러한 사랑의 목적은 알 만한 가치가 있죠.” p48

 

그때 나는 앞으로는 이 고귀한 여인을 찬양하는 시만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 지고한 주제를 선택한 것 같아 감히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시작에 대한 두려움으로 며칠을 보냈다. 그 후 맑은 개울을 따라 난 길을 걷다가 불현듯 시를 짓고 싶은 커다란 욕망이 생겼다.

→ 아직 단테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은 떠오르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작가로 가는 길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인 것 같다.

 

단언하건대 그 때 내 혀는 스스로의 충동에 못 이겨 사랑을 알고 있는 여인들이여라고 말했다. 나는 이 표현을 시의 첫 구절로 쓸 생각에 크게 기뻐하며 마음에 담아두었다. p50

→ 사부님이 말씀하셨던 첫 문장을 수집하라가 떠올랐다. 단테는 뼛속까지 작가다. 그에게는 수시로 첫 문장이 떠올랐고, 그것들을 기억하고 곧 작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종국에 그대의 모든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지저분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찾지 말고, 예의 바른 남녀가 살고 있는 곳을 찾도록 노력해라. p53

 

이 시의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하려면 좀 더 세밀하게 나눠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구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p54

단테, 재미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이 미소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내가 말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이 미소뿐 아니라 그 작용도 기억 속에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p58

 

그녀가 어찌나 슬피 울던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불쌍해서 죽는 줄 알았소.” 그러자 눈에 눈물이 솟아나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얼굴에 손을 갖다 대어 가렸다. 그녀에 관한 소식을 좀 더 듣고자 하지 않았던들(내가 앉아 있는 곳을 그녀의 친구들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눈물이 났을 때 나는 아마 혼자 있기 위해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p59

→ 시인답게 감정이 정말 풍부한 사람인 것 같다.

 

그래, 나의 여인에게도 죽음이 틀림없이 찾아 오겠지.’

그러자 말할 수 없는 당혹감에

사로잡혀 나는 평온을 얻고자 눈을 감았소.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아파오기 시작했소. p67

 

나는 사랑의 정령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처럼 오랫동안 무감각했던 내 가슴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신이 기꺼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았다. p71

 

나의 얘기는 엄격한 진실에 따른다면 오류이다. p72

 

즉 과거에 사랑의 신에 대한 시를 쓴 사람들은 자국어가 아닌 라틴어로 썼다는 점이다. 즉 우리들 가운데, 아마 상황은 다른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서도 똑같았겠지만, 이런 것들 것 다룬 사람들은 구어로 글을 쓴 사람들이 아니라 문어를 쓰는 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p73

 

자국어로 시를 쓰는 것은 처음부터 사랑의 표현만을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랑 이외의 시제를 다루는 운율에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고전 시인들이 무생물들에게 감각과 이성을 가진 것처럼 말을 시키고 서로 대화를 나누게 했다면, 아니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재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것들까지도 말을 하게 하고 종종 우연적인 것들도 실체이자 사람인 것처럼 썼다면, 자국어 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것이 허용되어야 마땅하다. 이 점은 나중에 산문으로 밝힐 충분한 동기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지 무분별한 이유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p75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이 점을 조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들 고전 시인들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며, 우리 시대의 시인들 또한 이유 없이 같은 방식을 따라 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덧붙여 두겠다. p76

 

나는 끊임없이 그녀를 찬양하는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작정을 하고서 그녀의 놀라운 영향력을 이야기할 시를 한 편 쓰기로 했다. 말로써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그녀를 바라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겸손의 옷을 입고 태연히 걸어가네. p77

 

가장 아름다운 이 여인이 우리 곁을 떠나간 이후로 온 도시 전체가, 말하자면 위엄을 잃어버린 과부같이 되었다.

→ 아 정말, 이런 표현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얼마 동안 울어서 이제 더 이상 눈물로 내 슬픔을 토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눈물보다는 슬픈 말이 내 심경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p84

 

죽음이 너희들을 마르게 하기 전까지 너희들은 결코 울음을 그치지 않게 되리라! p97

 

이 여인은 젊고 아름다우며 고결하고 현명하다. 내 생명이 평화를 찾도록 그녀를 나에게 데려다 준 사람은 아마도 사랑의 신인가 보다. p98

→ 아홉살,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던 사랑의 신. 강력하다.

그러자 마음이 대답한다. “의심과 의심 사이에서 더 이상 싸우지 마시오. 이것은 사랑의 신이 보낸 전령 그에게서 들은 말만을 그대로 전할 뿐이니. p100

 

그래서 내 눈은 다시금 치욕과 해악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다른 어떤 아름다운 얼굴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지조 없이 변절을 부린 데 합당한 대가를 받은 셈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내용을 담을 소네트를 한 편 쓰기로 작정을 했다. 그래서 나는 오호, 애재라!’로 시작하는 시를 썼다. p101

 

내 눈은 너무 울어서 이제는 슬픔의 집이 되었고

웃음보다 눈물을 훨씬 귀히 여긴다. p102

 

이 도시는 베아트리체를 잃었노라.

그녀에 관한 한마디 말도 크나큰 힘을 지녔기에

듣는 이에겐 우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도다. p104

 

첫째 부분에서는 내 생각이 어디로 가는지를

둘째에서 나는 내 생각이 왜 높이 올라가는지, 그리고 누가 그렇게 만드는지

셋째 부분에서는 내 생각이 본 것, 즉 찬양 받는 여인에 대해

넷째 부분에서 나는 몰라볼 정도의 상태에 있는 그녀를 내 정신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p105

 

이 소네트를 쓴 후에 나는 매우 경이로운 환상을 보았다. *

*<신곡>의 세 주제인 지옥, 연옥, 천국의 환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정말 짜릿한 경험인 것 같다. ‘시가 내게로 왔다.’ 처럼 <신곡>에 대한 영감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니.

모든 생명의 원천이신 주께서 기꺼이 내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그녀에 관해 여태껏 어느 여인에 관해서도 써진 적이 없는 바를 쓰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p107

→ 그리고 그는 <신곡>을 평생을 걸쳐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2부 단테와 로세티

단테의 생애 (조반니 보카치오)

1 서문

그들의 후손인 요즘 사람들, 특히 나의 동포인 피렌체 사람들은 고귀하고 모범적인 이들의 발자취를 힘겹게 따라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길에서 너무 벗어난 나머지 미덕의 보상을 찾기보다는 야심만을 앞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이리하여 나처럼 두 눈 똑바로 뜬 사람들은 참으로 애통한 마음으로, 악하고 뒤틀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선한 사람이 멸시당하고 비난 받고 천대 당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p112

 

그는 비천하지 않은 양친 가운데서 태어난 시민으로, 지금까지의 행실이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도 보여주게 될 것처럼 자신의 미덕과 학식과 선행으로 큰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만약 그러한 행위가 정의로운 공화국에서 행해졌더라면, 그에게 최상의 보상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보상은커녕 부모의 유산마저 빼앗긴 채 영원한 추방이라는 부당하고도 비통한 저주가 그에게 주어졌고, 하마터면 얼토당토않은 무고로 그의 명예마저도 훼손당할 뻔했다. p113

 

나는 말로써 그를 찬양할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나의 기술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매우 겸손하고 가벼운 문체로 쓸 계획이다.

 

나는 먼저 단테 자신이 매우 겸손하게 침묵을 지킨 것들, 즉 그의 고귀한 출생과 성장과 공부와 습관 등을 기록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가 쓴 작품들을 한데 모을 것이다. p115

 

2 출생과 공부

반달족의 가장 잔인한 왕인 아틸라 왕이 지체 있고 명망 있는 시민들 대부분을 살해하거나 흩어버린 후에 거의 전 이탈리아를 약탈함으로써 이 도시를 불바다와 폐허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300년 이상 피렌체는 이러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p116

 

그는 유년 시절의 가장 초기부터 이미 문학의 기본을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정신과 시간을 오늘날 귀족들의 유행처럼 어머니 무릎에서 편안하게 뒹굴면서 젊은이의 색욕과 나태함에 바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도시에서 인문학을 꾸준히 연마하는 데 바침으로써 그 학문들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하려고 한다.

 

순간적인 부를 경멸하고 영원한 명예를 좇아 시 창작에 관한 완전한 지식과 작시법을 통해 그 창작법을 설명하는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전념했다. 이 훈련 과정에서 그는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오수, 스타티우스 및 다른 유명한 시인들과 매우 친숙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 시인들을 알게 된 것을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우리가 얘기하게 될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고상한 노래로 이들을 모방하려고 모진 애를 썼다.

→ 역시 훌륭한 작가 곁에는 또 다른 훌륭한 스승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는 시가 많은 얼간이들이 생각하듯 헛되고 단순한 우화나 경이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그 속에 역사적, 철학적 진실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시인들의 생각은 역사, 도덕 및 자연철학 없이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오랜 공부와 수고를 동반하여 여러 선생들 밑에서 역사와 철학을 몸소 통달하려고 노력했다. 하늘 아래 감추어진 사물들의 진실을 알아내는 달콤한 기쁨에 사로잡히고, 인생에 있어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는 모든 세속적인 근심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이것에만 전심전력했다. 철학의 전 영역을 샅샅이 뒤지겠다는 목표 하에 그는 예리한 천재성으로 가장 심오한 신학의 심연까지 꿰뚫었다.

→ 훌륭한 작가들의 특징이 역시 그에게서도 보인다. 한 가지를 시작하면 깊이 파고 든다는 것.

 

그처럼 다양하고 탁월한 학문적 성과로 인해 그는 당연히 최고의 칭호들을 얻었고, 그 결과 그의 살아 생전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시인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철학자로, 또 많은 사람들은 신학자로 불렀다.

 

3 베아티르체에 대한 사랑과 결혼

우리들의 단테가 전심을 기울인 학문 일반, 특히 사변적 학문들은 보통 고독, 무사태평, 마음의 평정을 요구한다.

격렬하고도 참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열정을 가졌었으며, 부인이 있었고, 집안과 공공의 일에 대한 걱정, 유배, 빈곤에 시달렸다. p121

 

청춘의 우연한 사건을 뛰어넘어 사랑의 불길은 세월과 함께 배가 되어서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그에게 기쁨이나 위안이나 평화를 주지 못하게 되었다.

청춘의 우연한 사건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도, <신곡>에 대한 환상을 본 것도 모두 우연이다. 그리고 그 우연으로 단테의 명작들이 탄생했다.

그 자신이 기록하는 바와 그의 격정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이 사랑은 너무나 순수한 것이어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 받는 사람 어느 쪽에서도 표정이나 말이나 표식으로도 어떠한 육체적 욕망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p123

→ 베아트리체에 대한 플라토닉한 사랑. 나도 죽기 전에 한번쯤은 이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사랑에 이르기도 전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불가사의한 존재, 심지어 희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 이런 사람이 있을까? 종교인들?

이 세상에 불변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무언가 변화하기 마련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다.

→ 무언가 변화하기 마련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끊임없이 변한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예정될 수는 있으나 결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단테는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하여 이 보편적 법칙의 힘을 경험해야만 했다. p124

 

그녀의 죽음으로 단테가 너무나 큰 슬픔과 비탄에 빠졌기 때문에 친척과 친구들을 포함한 그와 가장 가까웠던 많은 사람들이 죽음만이 그의 슬픔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슬픔이 이성에게 자리를 양보함에 따라 보다 냉정하게 그는 울부짖음이나 한숨이나 다른 어떤 것이 자신의 사라진 여인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가 가슴속에서 겪었던 울부짖음과 고통, 그리고 자신을 돌보지 않음으로 인해 그는 깡마르고, 면도도 하지 않고, 옛날의 모습에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서 보기에도 비참한 몰골이 되었다.

 

단테 또한 그때까지는 고집스럽게 누구에게도 귀를 닫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소 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안하는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친척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서 슬픔을 완전히 떼어내고 행복을 되찾게 해주기 위해서 그들은 함께 회의를 열어 그에게 아내를 구해 주기로 했다. p126

→ 사랑의 슬픔을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흔한 말. 하지만 사랑의 차원이 다른데, 가능할까? 역시 단테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베아트리체를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사랑의 슬픔을 새로운 신붓감을 통해 완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말고는 확실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사랑의 성질을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서 사랑이 다른 모든 감정을 자신에게 덧붙여 버리는지를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의 가슴에 일단 사랑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 힘을 막으려는 어떤 도움이나 충고도 헛된 것이다.

사랑의 성질도 알지 못하고에 완전 공감한다. 단테처럼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감정-사랑, 상실감-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탈피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결혼하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혼을 강요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비록 한 가지 걱정에서 벗어났지만 수많은 다른 걱정으로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지각하지 못한다.

→ 고통. 그 고통의 원인이 완전히 정리되기까지는 그 어떤 다른 자극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그래서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라고 하는 모양이다. 다행히 단테는 24번째 소네트부터 죽음이란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치유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밤늦도록 신성한 공부를 파고드는 데 익숙해져서 그는 마음 내키는 한 자주 왕과 황제와 다른 지엄한 군주들과 대화를 나눴고, 철학자들과 대론을 했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시인들을 즐겨 읽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는 자신의 고통을 달랬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자신이 선택한 여인들의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랄 때마다 그는 이 훌륭한 동무들을 멀리해야만 했다. 그 여인들의 의견에 그는 마음에도 없는 동조를 해야만 했고, 고통을 더하지 않으려면 칭찬해야만 했다. 그 속된 무리들이 자신을 피곤하게 할 때마다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서 어떤 정신이 하늘을 움직이고, 동물들의 생명력은 어디서 오고 사물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명상에 잠기거나, 혹은 이상한 발견을 예견하거나, 죽은 후 미래의 세계 가운데서 자신을 영생하게 만들 그 무언가를 구상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p128

 

기쁜 감정이나 슬픈 감정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울고 웃고 한숨짓고 노래하던 그는 이제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 가족이란 굴레.

 

그녀는 그의 마음이 유쾌하면 이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증거로 받아들였고, 슬퍼하면 이를 그녀 자신에 대한 증오로 받아들였다.

→ 얼마나 괴로웠을까.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지옥일 것 같다.

그처럼 의심에 찬 동물과 살고 말하며 마침내는 함께 늙어 죽어야만 하는 헤아릴 수 없는 피곤함이여! p129

 

부인을 택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운명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사람을 가져야만 한다.

→ 남편도 마찬가지. 신곡이 단테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처럼, 베아트리체를 떠나고 등 떠밀려 결혼하지 않고, 그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단테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고통 덕분에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졌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것이 그의 작품활동으로 꾸준히 이어진 것일지도.

 

그가 고통에 처한 자신에게 위안이 되었던 부인을 한 번 떠나게 되었을 때, 그들 사이에 자식이 몇 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가려고 하지도 않고 그녀가 자신에게 오도록 하지도 않았던 점은 사실이다. p131

→ 완전 공감된다. 결혼도 안 했는데, 왜 공감되는거냐..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나는 확실하게 결혼을 권한다. p132

 

4 명예욕과 유배

단테의 시대에 피렌체의 시민들은 집요하게 두 패로 나뉘어 있었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지도자들의 선도로 각 정파는 매우 강력했고 한번은 이쪽에서, 다음 번은 저쪽에서 권력을 잡았다.

단테는 자신의 모든 천재성과 기술과 공부를 다 동원하여 현명한 시민들에게 위대한 것들이 분열로 인해 얼마나 쉽게 파멸해 버리며, 사소한 것들이 조화로 인해 얼마나 무한한 성장을 가져오는가를 보여주었다.

 

그가 성숙한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성스러운 품 안에서 자라나고 양분을 먹고 훈련을 받은 이 사람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고대와 현대의 제왕들의 몰락과 왕국들과 성과 도시의 황폐화와 운명의 여신의 성난 공격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지식이나 힘이 부족하였다.

→ 욕망이 과하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단테를 보며 생각한다. ‘내게 억제해야 하는 욕망이란 무엇일까?’

 

그러나 인간의 심사숙고는 흔히 하늘의 힘에 의해 패배를 겪는다. 정당한 이유도 없이 증오와 적의가 생겨났고, 이는 매일매일 커져서 시민들은 여러 차례 성급히 무기를 들었고 극도의 혼란이 일어났다. p134

 

승자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도시를 재조직하고 상대편의 모든 지도자들을 공화국의 대적으로 몰아 영구 추방했다. 주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이들 가운데 단테가 끼어 있었다.  그동안 이들의 부동산은 몰수당하거나 승리자들에게 양도되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품은 따뜻한 사랑의 대가로 단테가 얻은 것이 이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대중의 희망이요,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이요, 백성들의 안식처로 보였던 그가 갑자기 정당한 이유도 없이, 죄를 범하거나 해악을 끼친 사실도 없이, 성난 군중들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유배의 길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p135

 

5 피렌체에서의 추방과 방랑

너무 어려서 도망하기에 부적절한 아이들과 부인은 그곳에 남겨두었다.

자신의 여정을 확신하지 못한 채 그는 토스카나 지방의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p136

→ 나 역시 나의 여정을 확신하지 못한 채 이 회사, 저 회사를 방황하고 있다.

 

따라서 가난에 처한 단테는 전혀 생소했던 근면함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유배 기간이 빨리 끝나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동안 죽음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정당한 분노를 그는 얼마나 삭여야만 했던가! 그러나 그가 도망해서 처음에 알베르토 델라 스칼라 씨의 환대를 받았던 베로나를 떠난 후로, 그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처음에는 카센티노에 있는 살바티코 백작의 집에 머물렀고, 그 후에는 루니자나에 있는 모루엘로 말라스피나 남작의 집에 머물렀고, 마지막으로는 우리브노 근처에 있는 델라 푸지우올라와 함께 머물렀다. 그는 매번 주인의 여력과 경우에 따라 가장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나중에 그는 그곳을 떠나 볼로냐로 갔고 거기서 잠깐 머문 후에 다시 파도바로 갔으며, 다시 베로나로 갔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이 사방으로 막혔다는 것과 매일같이 자신의 희망이 더욱더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는 토스카나뿐 아니라 전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갈리아 지방과 이탈리아를 나누는 산맥을 넘어 온 힘을 다해 파리로 향했다. p137

→ 다행인 건, 단테가 여기 저기 옮겨 다닐 수 있는 인품과 조건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단테와 같은 지식 때문은 아니지만, 나 역시 나를 불러주는 곳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테의 여정을 보고 나니, 나도 그냥 지금의 주어진 상황을 그저 믿고 따라가 봐야겠다.

룩셈부르크 백작인 하인리히가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5세의 요청과 희망에 따라 로마의 왕으로 선출되었다가 나중에 황제의 관을 쓰게 되는 일이 생겼다.

하인리히의 힘과 정의를 통해 피렌체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용기를 잃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테가 특히 더 그랬다. 귀향에 대한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한 채 단테는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서 로마냐로 들어갔다.

그 때 그 유명하고 오래된 로마냐 시의 라벤나 공은 구이도 노벨로 다 폴렌타라는 이름을 가진 훌륭한 기사였다. 인문학을 배우는 그는 가치 있는 사람들, 특히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을 크게 환대했다.

 

그 영주는 친절하게 용기를 북돋아 줌으로써 그의 거꾸러진 희망을 되살려 주었고,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분하게 주었으며, 단테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몇 년 동안 이 시인을 자신과 함께 있게 했다. p139

→ 예나 지금이나 인복이 필요하다는 건 진리인듯. 사람의 흥망성쇠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고통들 가운데서 가장 혹독한 고통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 가운데서도 단테는 자신의 시작에 가장 열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프루스트도 얘기했다. ‘고통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단테 역시 엄청난 고통을 통해 작품을 토해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그가 지상의 신이 되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p140

 

6 죽음과 장례식의 영예

여기서(라벤나) 그는 많은 학자들에게 시를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자국어로 시 쓰는 것을 훈련 시켰다. p140

 

누구에게나 정해진 때가 오듯 단테 역시 56세 무렵에 앓아눕게 되었다. 기독교 의식에 따라 교회의 성사를 겸허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반해 저질렀던 모든 일을 회개하며 하느님과 화해한 후에 1321 9월 교회가 성 십자가를 찬송하는 바로 그날에(9 14) 앞서 언급한 구이도와 라벤나 시민들의 애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지친 영혼을 창조주에게 되돌려 주었다.

56.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죽음이란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고결함 마음을 지닌 그 기사는 단테의 시신을 관 위에 안치하고 시인의 장식으로 치장했다. p141

 

7 피렌체에 대한 비난

피렌체 그대가 이 도시들의 모범을 따랐다면 치욕이 없었을 것이다.

무엇에 눈 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만이 유독 다른 길을 택했고, 자신에게 영광이 넘치기라도 한다는 듯이 이 영광스러운 인물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p145

 

그의 가치를 시기한 그대가 부당하게 그에게 내렸던 그 추방 중에 단테 알리기에리는 죽었다.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미움도 분노도 적의도 멈추기 마련이라면 본심으로 돌아가 제정신을 찾으라. p146

 

자신의 유배 기간이 그렇게 길었음에도, 그는 항상 자신을 피렌체 사람이라 칭했고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다. p147

 

폰투스 섬의 한 곳에 자신들의 오비디우스가 묻혔다는 이유만으로 술모나는 오랫동안 통곡했다. 한편 파르마는 카시우스의 무덤을 갖고 있어서 기뻐했다. 따라서 그대는 단테의 수호자가 되려고 분투해야 한다. 그를 돌려달라고 간청하라. p148

 

그대는 적의를 간직함으로써, 그대의 영광을 차지하고 행복해하는 라벤나로 하여금 미래의 세대들 가운데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구나. p149

 

8 외모 및 습관과 특징들

우리들의 시인은 중간 키였고, 성년이 된 이후에는 다소 구부정하니 점잖고 느릿한 걸음으로 걷곤 했으며, 항상 그의 나이에 걸맞는 수수한 옷을 입었다. 그의 얼굴은 길쭉했고, 코는 매부리코였으며, 눈은 다소 큰 편이었다. 턱은 컸으며, 아랫입술은 윗입술 너머로 튀어나왔었다. 피부색은 까맣고 머리카락과 턱수염은 짙고 검은 곱슬이었으며, 표정은 항상 우울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p150

 

집 안에서의 행동에서나 공적인 행동에 있어서나 그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질서 정연했으며, 매사에 다른 사람보다 예의 바르고 점잖았다. 먹고 마시는 일에 매우 절제했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했으며 필요한 분량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자신의 공부와 자신이 떠맡은 일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보다 더 열중인 사람이 없었다. p151

 

질문을 받지 않으면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대답을 할 때는 깊이 생각하고 나서 자신이 다루고 있는 문제에 적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필요할 때에는 웅변적이고 유창했으며, 마치 준비라도 한 듯 훌륭하게 전달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음악과 노래를 즐겼으며 그 당시 최고의 가수 및 악사 들과 친근한 우정을 유지했다. p152

 

공부에 열중하는 동안 듣게 되는 소식 때문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한 그는 공부에 매우 열심이었다.

 

이 책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그는 약재상 앞에 있는 의자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앞에 놓고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그는 3시부터 그런 자세로 책 읽기를 시작했지만 6시가 지나서야 그 책의 모든 요점들의 검토와 요약을 마치고 일어섰다.

→ 그의 집중력. 부럽다.

더욱이 이 시인은 놀라운 이해력과 훌륭한 기억력, 날카로운 지성을 지녔다. p153

 

그는 높은 천재성과 정교한 창의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다른 어떤 공부보다도 시를 사랑한 것은 명예욕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상하기로는 철학이 다른 모든 학문을 능가하지만 그 탁월함이 겨우 몇 사람에게만 전달될 수 있는 데다 전 세계에 걸쳐 이미 많은 철학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반면, 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분명하고 즐거운 것이며 시인들은 극도로 희박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를 통해 월계관을 쓰는 비범하고도 훌륭한 영광을 얻고자 희망했으며 그 결과 시를 공부하는 일과 시작에 자신을 바쳤다. p154

 

9 시에 관한 여담

그래서 그들은 이 최상의 힘에 대한 존경심에서 넓고 훌륭한 건축물들을 지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과 형태가 달랐기 때문에 이들은 이 건축물들을 다른 이름으로 구분 지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를 신전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한 힘에 조용한, 혹은 침묵에 가까운 영광을 바치지 않기 위해 낭랑한 소리의 말로써 이 힘을 위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힘을 자신들의 필요에 호의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 신성한 존재 앞에서 자신들이 가치 있게 얘기하고 그것에 성스러운 찬양을 바칠 수 있도록 평범한, 혹은 공공 연설의 어투보다 뛰어난 말을 찾으려고 애썼다. 더 나아가 이 말들이 보다 효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율격에 따라 배열되도록 했다. 그로 인해 감미로운 소리만이 들리게 되었고, 모든 거칠고 단조로운 소리는 제거되었다. 또한 속되거나 습관적인 말의 형식이 아니라 에술적이며 정교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렇게 되어야만 했다. 이 형식을 그리스 사람들은 시적이라고 명명했으며, 그러한 형식 속에서 주조된 것은 무엇이나 로 불리게 되었고, 이것을 창조한 사람 혹은 이러한 말의 형식을 사용한 사람들은 시인이란 명칭을 얻었다. p157

 

새로운 신들과 신의 자식으로 가장한 사람들을 위해 이들 시인들은 최초의 사람들이 참된 신만을 위한 존경과 찬양에 사용했던 문체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유능한 사람들의 행동은 신들의 행동과 동등하게 되었으며, 여기에서 신들의 행동과 뒤섞어 인간의 전쟁과 다른 주목할 만한 행동들을 고상한 운문으로 노래하는 찬송이 생겨났다.

 

시인들이 왜 월계관을 쓰는지를 말하기 전에 시란 신학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p159

 

10 시와 신학의 차이에 관해서

우리가 신학이라 부르는 성경은 때로는 역사의 형식 속에서, 혹은 이상의 의미 가운데서, 혹은 의미 있는 애가의 형식을 통해, 혹은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느님 말씀의 신비로운 육화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상황들과 부활의 승리와 놀라운 승천과 그의 다른 행동들을 우리들에게 밝혀주려 한다. p161

 

시인들은 헤라클레스가 인간에서 신으로 변했고, 리카온은 늑대로 변했다고 꾸며댄다. 헤라클레스의 덕행을 통해 인간도 하늘에 동참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리카온의 악행을 통해 비록 겉으로는 사람 같아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금수와 같다는 도덕적인 교훈을 그들은 강조하고자 했다. p162

 

노동에 의해 얻어진 것은 무엇이든 노력 없이 갖게 된 것보다 더욱 달콤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쉽고 빠르게 이해되는 분명한 진리는 우리를 기쁘게 한 후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수고를 들여서 얻은 진리는 더욱 즐거운 법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더욱 오래 간직되기 때문에 시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와 일치하지 않는 많은 것들 아래 진리를 감추었다. 그들은 다른 어떤 위장보다도 이야기를 선호했는데, 이야기의 아름다움이 철학적 예증이나 설득을 통해서는 관심을 끌 수 없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p164

→ 고통으로 얻어진 지식 혹은 진리는 뼛속 깊이 새겨진다.

11 시인들에게 부여된 월계관에 대하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민족들 중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철학이 처음으로 그 비밀을 드러낸 민족이라고 여겨진다. 철학의 보물 창고로부터 그들은 군대의 원칙과 국가의 생명과 다른 많은 소중한 것들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 인해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영광스럽고 유명하게 되었다.

 

덕 있는 사람에게 줄 보상 가운데서 으뜸 가는 것은 공중 앞에서 그들의 동의를 얻어 경연에서 이긴 시인과 전쟁에서의 승리로 공화국의 영토를 넓힌 황제들에게 월계수 잎으로 마든 관을 씌워주는 것이었다.

 

포이보스의 연인인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했고, 그가 승리자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작가이자 시인들의 후견인이었기 때문에 그 포이보스가 이 월계수 잎에 품은 사랑을 기념하여 자신의 리라와 승리를 이 잎들로 장식했으며 인간들이 그의 본을 따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월계수는 특히 주목할 만하고 현저한 세 가지 속성

첫째 우리가 알고 있듯이 결코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

둘째 이 나무가 결코 벼락을 맞지 않는다

셋째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매우 향기롭다 p167

 

따라서 단테가 이 영광을 그토록 바랐던 데에도 이유가 있다.

→ 단테를 그린 그림에 왜 월계수가 그려져 있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12 자질과 결점들

그 친구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단테가 얼마 동안은 감옥에 있어야만 하고 그 후에는 피렌체시의 가장 큰 교회에서 열리는 어떤 엄숙한 공적인 자리에 출석하여 백성으로부터 자비를 간청해야만 과거에 그에게 내려졌던 모든 선고로부터 면책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식으로 고향에 돌아가기보다는 유배지에 남아 있는 것을 택했다.

단테는 이러한 방식들로 자신을 소중히 여겼고,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얘기하듯 자신의 실제 가치보다 자신을 값싸게 여기지 않았다. p169

→ 단테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나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긴 것.

 

이 훌륭한 사람은 온갖 역경에 처해서도 기죽지 않고 매우 단호했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단 한 가지 점에서 격정적이었달까, 아니 그냥 참을성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 p170

→ 이런 단점마저 없었더라면, 정말 단테는 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보카치오가 그를 이라 부르고 싶다고 한 점 역시 이런 단테의 기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를 기림에 있어 가장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로마냐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연약한 여인이나 어린아이가 두 당에 관해서 말하는 중에 기벨린 당원들을 저주할라치면 그가 불같이 격노하여 그 말을 한 사람이 입을 다물지 않는 한 거의 돌을 던질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통렬함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p171

 

13 다양한 작품들에 관해서

첫째로 그가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인해 여전히 눈물을 쏟아내고 있던 스물여섯인가 그쯤 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그만 책을 출판했다. p173

이 작품을 편찬한 후 몇 년 있다가 그는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정부의 최고 요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그러한 위치에서 보게 되는 경우에 대개 그러하듯 인생은 무엇이며, 군중들의 결점들은 무엇이며, 이들 무리들을 뛰어넘는 사람이 얼마나 극소수이며, 이들은 얼마나 큰 명예를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가 다른 어떤 공부보다도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는 시를 쓸 계획을 세웠다. 무엇을 쓸 것인지를 오랫동안 생각한 후에 그는 서른 다섯 살 되던 해에 자신이 전에 심사숙고했던 것, 즉 다양한 업보에 따라 사람들을 벌하거나 상 주는 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인생은 세 가지 중류가 있다.

<희극>이라고 이름 붙은 자신의 작품을 그는 놀랍게도 세 권의 책으로 나누었다. 그는 첫 권에서 사악한 사람들을 징벌했으며, 마지막 권에서 선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었다. p175

 

14 <희극>에 관련된 몇몇 사건들에 관해서

단테가 이처럼 이 대작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빈번한 중단 없이 이를 끝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잇따른 심각한 사건들 때문에 한 자도 쓰지 못한 채 어떤 경우는 몇 달, 다른 경우는 수년에 걸쳐서 이를 제쳐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죽기 전에 작품을 출판하려고 지나치게 서두르지도 않았다.p178

→ 서두르지 않음. 여유로움이 그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을 수도 있겠다. 적절한 휴식. 그리고 그 휴식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음. 독일에서 음악가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미완으로 남아 있는 약간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의 목숨을 하느님께서 단테에게 허락하시지 않은 것에 대해 그의 모든 친구들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모두 시인이었던 단테의 두 아들, 자코포와 피에로.

자신들의 능력이 닿는 한 아버지의 작품을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자코포는 이때 놀랑운 꿈을 꾸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어리석은 시도를 구만두었을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그 열세 편의 노래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단테의 제자였던 피에로 자르디노라는 이름을 가진 라벤나의 훌륭한 사람이 전한 바에 따르면, (……)

꿈속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살아 계시냐고 물었더니 그는 잃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이 현생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삶 속에 살아 있다.” p179

 

15 <희곡>이 속어로 써진 이유

어째서 <희곡>과 같이 대작이자 그렇게 고상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이전의 다른 시인들처럼 라틴어로 쓰지 않고 피렌체 방언으로 썼는가?

첫째로 동료 시민들과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두루 소용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단테는 피렌체어의 아름다움과 그 언어에 대한 자신의 탁월한 구사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전에는 한결같이 무시당했던 학식 없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자신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 이 부분을 읽는데, 지난 주말 이만방 선생님이 해 주신 강연의 내용이 생각났다. 자국어로 음악을 만들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모차르트. 단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만의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 이유, 모든 사람들, 특히 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헌정했던 군주와 귀족들이 인문학을 버렸고, 그 결과 베르길리우스와 다른 훌륭한 시인들의 고귀한 작품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경시당할 뿐만 아니라 거의 경멸을 당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고귀한 주제가 요구하는 대로 실제로는 라틴어로 작품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곧 중단했는데, 아직 젖을 빨고 있는 사람들의 입속에 빵껍질을 넣어주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p181

 

그는 이 <희극>이라는 작품을 삼등분에 따라 각각 세명의 유명한 이탈리아 인에게 헌정했다. 지옥 편인 제1부를 그는 당대에 토스카나 지방에서 피사 공으로 대단히 칭송받던 우구치오네 델라 푸지우올라에게 바쳤다. 2부인 연옥 편은 모루엘로 말라스피나 남작에게 바쳤고, 3부인 천국 편은 스페인의 왕인 프레데리코 2세에게 바쳤다. p182

 

16 <군주제에 관하여>와 다른 작품들에 관해서

<군주에 관하여> 라는 또 다른 작품을 썼다.

1권에서 그는 세상의 복지를 위해서 제국이 필요함을 논증하고 있다.

2권에서는 그는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가며 로마가 제국의 칭호를 간직하고 있음이 정당함을 보여준다.

3권에서는 신학적인 논증을 통해 제국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것이지 성직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부의 중재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p183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에다 이 훌륭한 시인은 연모의 한숨과 가련한 눈물, 사적이고 공적인 걱정거리들 및 적대적인 운명의 다양한 변화들로부터 짜낼 수 있는 틈틈이 시간을 쏟아 부었다. p185

 

17 어머니의 꿈에 대한 설명과 결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의 것은 요구되지 않는다. 나보다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서 기록했다는 사실 떄문에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꾸었던 꿈 이야기

이 부인은 임신 중에 맑은 시냇가에 있는 높은 월계수 발치에 누워서 아들을 출산하는 꿈을 꾸었다. 아들은 월계수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고 그 샘의 물을 마시고 갑자기 키 큰 목동이 되었고, 월계수 잎들을 너무 좋아했다. 잎을 따려다가 떨어졌고, 그가 떨어진 자리에 갑자기 공작이 나타났다.  p186

 

아이가 먹고 자란 열매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하늘의 섭리에서 비롯한 결과물들이다. 이 결과물들은 시집들과 그 가르침들이며, 이것을 단테는 매우 깊숙이 들이마셨다.

맑은 시내는 내 생각으로는 도덕 및 자연 철학의 풍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맑은 물, 즉 철학에 의해 그는 소화를 시켰고, 다시 말해 자신의 지성 안에서 그가 먹은 열매들, 즉 시를 더없이 부지런히 공부했다.

그가 갑자기 목동으로 변한 것은 그의 탁월한 천재성을 예증한다. p188

 

영혼을 돌보는 목동도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먹이는 목사, 성직자 및 설교자 들로 이들은 각자가 다스리도록 맡겨진 연약한 영혼들을 보호할 의무를 각고 있다. 둘째 부류는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쓴 것을 읽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보기에 생략되었거나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들을 직접 집필하여서 청중들과 독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일깨워 주는 훌륭한 학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p189

 

그 열매를 먹은 나무의 잎을 가지려는 그의 노력은 월계관에 대한 그의 집요한 욕망을 의미한다.이 추락은 우리 모두를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가 목동에서 공작새로 변했다고 한다.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바로는 이 변신은 사후의 명성을 의미한다. p190

 

마지막으로 내가 능력이 있고, 나의 주제가 이를 허용하였다 할지라도, 나보다 뛰어난 능력과 큰 욕망을 가진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겨놓기 위해서 내가 얘기한 것 이상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작은 조각배는 이제 맞은편 해안을 떠날 때 뱃머리를 향했던 항구에 도착했다. p193

 

로세티의 생애

가브리엘레는 정치적 이유로 나폴리에서 추방당하여, 1824년부터 런던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검소한 삶을 꾸려나갔다. p195

 

헌트와 로세티와 밀레이는 모방적이고 형식에 얽매인 왕립 아카데미의 화풍에 반대했고, 그래서 반아카데미 모임을 만들기로 한다. p197

 

그들은 아카데미 연례 전시회를 지배하던 감상적이고 식상한 주제들은 피하고,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감정적으로 진실한 주제들을 다루기로 했다. p198

 

유화를 그리는 데 기술적 어려움을 느꼈던 로세티는 드로잉으로 전환하여 1849 <베아트리체의 일주기 날 천사를 그리는 단테>를 완성, 밀레이에게 선물한다. 이 그림은 초기 라파엘 전파 화풍으로 그린 그의 그림 중 최고의 작품일 뿐 아니라 단테 알리기에리, 특히 그가 1848 11월에 번역을 마친 단테의 자전적 작품읜 <새로운 인생>.에 대한 평생에 걸친 관심을 최초로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회지는 모든 회원들이 공동 소유주가 되어 수익과 손해를 함께 부담하기로 했고, 로세티의 동생 윌리엄이 편집을 맡았다. p199

 

작가나 저널리스트들의 비난은 계속되었으나 화가들은 라파엘 전파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로세티는 자신과 시덜의 관계를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관계와 동일시했다. p201

 

어쩄든 로세티는 시덜이 죽어간다는 확신이 들자 그녀와 결혼한다.

1856년부터 로세티는 새로운 모델 패니 콘포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평생 동안 로세티의 연인이자 가정부이자 절친한 친구로 남았다. p203

 

로세티는 제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다시 시를 쓸 의욕을 갖게 된다.

18726 8일 로세티는 자살을 기도한다.

1874년 실질적으로 제인과 로세티의 관계는 끝나게 되는데 로세티는 이때부터 죽는 날까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한때는 그토록 사교적이고 외향적이었던 그가 대인 기피 증상과 동시에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p205

 

::: 작품 해설 :::

단테의 <새로운 인생>은 제목이 시사하듯 그의 젊은 날의 열정의 기록이다. 우리가 여기서 새로운이라고 번역한 ‘nuova’젊은이란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제목이 말하는 새로운 인생이란 젊은 날의 열정의 기록을 넘어서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이 그의 내면에 불러일으킨 환영, 삶에 대한 통찰, 시적 과정에 집착하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포함한다. p207

→ 단테의 <새로운 인생>이 가진 의미는 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에 대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다른 희열을 느꼈다. 마치 단테에게 <희곡>이 찾아온 그 순간처럼 말이다.

이들은 사랑을 종교적인 숭배의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이 사랑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정서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을 시인의 임무로 여겼다. p208

 

자신이 바란 것은 오직 베아트리체의 인사였다고 대답한 시인은, 이 시간부터 자신의 모든 행복을 그녀의 칭찬에 맡기기로 결심한다. p211

 

시인은 자신의 눈이 어리석게도 베아트리체를 잊을 수 있음을 책망한다. 이로 인해 그는 생각의 전쟁을 겪는다.

이 마음의 격투는 베아트리체의 환상이 나타남으로써 끝이 난다. p213

 

사랑과 죽음이라는 로맨스적 전통을 따르고 있는 단테에게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순간적인 지상의 사랑을 영원 속으로 승화시키는 하나의 시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물세번째 칸초네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다. 전반부가 사랑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있다면 후반부는 죽음의 현실을 인정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p215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인간과 신을 연결시켜 주는 사랑의 화신이며, 이상적인 관념이다. 1300년에야 완성을 본 <새로운 인생> <신곡>의 이해를 위한 교두보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시인의 상상력의 발전과 시 창작 과정에 대한 자전적이고 분석적인 설명으로서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p217

 

단테가 지루한 유배 시절의 공복감을 가슴에 깃든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채움으로써 견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시인에게 끝없는 욕망의 대상이며, 이 욕망이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점에서 시인의 창작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p218

→ 베아트리체라는 대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절대 채울 수 없는 욕망. 그것으로부터 오는 고통. 이 고통으로 그의 창작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IP *.38.222.3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92 북 No.38 –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file [1] 재키 제동 2012.01.16 3575
991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 편해문 [1] 정야 2010.03.23 3577
990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정민 file 희산 2010.02.20 3578
989 회복탄력성 - 김주환 [2] 루미 2012.02.06 3579
» 51. 새로운 인생 – 단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file 미나 2012.04.18 3580
987 소박한 삶의 철학 - 듀안 엘진 [1] 혜향 2010.03.30 3582
986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김용규 [2] 세린 2012.10.16 3582
985 강의 - 신영복 file 콩두 2012.11.26 3582
984 (27) 컬처 코드 - 클로테르 라파이유 [1] [1] 이한숙 2008.12.01 3585
983 [26]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인용문 수희향 2009.10.20 3585
982 [역사속의 영웅들] 윌 듀런트 - 완료 신재동 2005.03.31 3589
981 33. 맹자 file 미선 2011.12.12 3590
980 [17] 노동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1] 거암 2008.08.04 3591
979 킹핀 - 전옥표 [2] [1] 書元 2010.07.18 3593
978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정민 학이시습 2012.11.05 3593
977 [북리뷰7]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1997 [2] 2011.07.05 3595
976 북리뷰 60 :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 앤서니 라빈스 범해 좌경숙 2010.11.22 3596
975 자유로운 책 읽기 [10] 부지깽이 2009.02.25 3598
974 북리뷰 14. 백범일지_김구(도진순 주해, 돌베개) [1] 박상현 2010.06.07 3602
973 '선비' - 김기현 file 희산 2010.01.31 3604